피로 죄의 기록을 지우고
피로 죄의 기록을 지우고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0.01.07 10: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0년 1월호 기쁜소식
믿음에 이르는 길 |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4편)

 

하늘나라 어디에도 우리 죄의 기록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하늘나라 성전 제단 뿔에 발려서
우리 죄의 기록이 모두 지워졌기 때문입니다.

 

성경 창세기 1~2장에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이야기가 나오는데, 거기에는 죄가 없습니다. 죄가 없었을 때 인간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어 인류에게 죄가 들어옵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요한계시록 21~22장에 이르면 다시 죄가 없어집니다. 성경은 복된 하나님의 세계를 떠난 인간이 죄 속에서 살다가 죄를 사함받아 다시 죄가 없는 세계로 들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기 전에 인간의 마음에 미움이나 슬픔이나 욕망이 없었던 것처럼, 구원받은 성도는 죄가 없는 아름답고 영광스럽고 영원한 하늘나라로 갑니다.

빨리 성막을 만들어야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시내산 앞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이 모세를 시내산 위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돌판 두 개에 손가락으로 친히 십계명을 써서 그것을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돌판을 들고 내려가려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다른 것을 보여 주십니다. 성막입니다. 법이 임하면 죄가 형성되기 때문에, 그 죄를 씻을 곳이 없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로 인해 저주와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가 십계명이 새겨진 두 개의 돌판만 가지고 가도록 하시지 않고 40일 동안 시내산에서 하늘나라에 있는 성전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범했을 때 그 죄를 씻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산에서 본 모양 그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 모세는 시내산에서 십계명이 새겨진 두 개의 돌판을 두 팔로 안고, 마음에는 하늘나라의 성막을 담고 내려왔습니다. ‘빨리 가서 성막을 만들어야겠다! 그래서 백성들이 죄를 지으면 씻어야겠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오니 이게 웬일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 동안 내려오지 않으니까 ‘바위만 있는 저 산에서 40일을 살지는 못할 거야. 죽었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모세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으니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제사하고 춤을 추며 야단이었습니다. 십계명 돌판을 들고 있던 모세는 겁이 났습니다. 법이 존재하는 순간 죄가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십계명을 받기도 전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계명과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을 범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이 저주를 받을까봐 두려워 얼른 십계명 돌판을 깨트립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죄를 지은 후였습니다.
성막이 있으면 속죄제사를 드려 죄를 사함받을 수 있는데, 성막이 아직 세워지지 않았으니 죄를 해결할 길이 없었습니다. 결국 3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죄를 씻기 위해서는 빨리 성막을 지어야 했습니다. 모세가 외쳤습니다. “금을 가진 자는 금을 가져와라. 은을 가진 자는 은을 가져와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걸이, 목걸이, 반지 등을 뽑아 모세 앞에 가져왔습니다. 금이 쌓이고, 은이 쌓이고, 놋이 쌓였습니다. 그것으로 성막의 기구들을 만들었습니다. 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 그리고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들을 시켜 물두멍, 등대, 떡상, 향단, 법궤와 속죄소를 만들게 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성막이 완성되고 레위기가 시작되며, 레위기는 제사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레위기 1, 2, 3장에는 번제, 소제, 화목제에 관하여 나오고, 4장에는 속죄제를 드리는 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속죄제는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그 죄를 눈처럼 희게 씻는 제사입니다.

속죄제물의 머리에 안수한 후 죽이고
레위기 4장에는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죄를 범했을 때, 이스라엘 회중이 죄를 범했을 때, 족장이 죄를 범했을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민이 죄를 지었을 때 어떻게 속죄제사를 드리는지 나옵니다.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레 4:27~28)
죄는 마음에 작용합니다. 죄를 지었지만 깨닫지 못할 때에는 죄가 마음에 작용하지 못합니다. 가책이나 두려움이나 근심이 없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죄를 깨닫는 순간 마음에 평안이 사라지고 두려움과 가책이 일어납니다. 이때 “하나님, 이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한다고 죄가 용서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죄를 지어도 한 생명이 죽어야 죄가 사해집니다. 그 외에는 죄를 사할 방법이 없습니다.
한 평민이 죄를 짓고 그 죄를 깨달으면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성막으로 갑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암염소가 대신 죽는 것입니다. 암염소를 끌고 가면 제사장이 먼저 염소에 흠이 없는지 살핍니다. 흠이 없는 암염소는 죄를 짓지 않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실 수 있었던 것은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죽어줄 수 없습니다. 제사장이 암염소를 자세히 살펴 흠이 없으면 속죄제사를 시작합니다. 먼저 죄를 지은 사람이 암염소의 머리에 안수합니다. 왜 안수하는지에 대해서 성경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레 16:21)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제사를 드릴 때 제사장 아론이 암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었습니다.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죄를 염소에게 넘기는 것입니다. 레위기 4장에 나오는 평민의 죄를 씻는 속죄제사에서, 죄를 지은 사람이 암염소에게 안수하면 그의 죄가 암염소에게 넘어갑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이제 암염소는 죽어야 합니다.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레 4:29) 염소의 목을 찔러 피를 흘리고 죽게 합니다.


흘린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고
제사장은 염소가 흘린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번제단 뿔에 바릅니다.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고”(레 4:30) 왜 번제단 뿔에 바를까요? 예레미야 17장에 그 이유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거늘”(렘 17:1)
오래 전에는 연탄을 파는 가게가 있었습니다. 그 가게에 칠판이 걸려 있고, 칠판에는 외상으로 연탄을 가져간 사람의 이름과 몇 장을 가져갔는지 쓰여 있었습니다. 연탄가게 주인은 칠판에 적힌 것을 보고 ‘아무개에게 외상값을 얼마 받아야지’라고 생각합니다.
외상으로 물건을 거래하면, 판 사람이나 산 사람 모두 그 사실을 어떤 형태로든 기록해 둡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에도 두 곳에 기록됩니다. 하나는 우리 마음 판이고, 하나는 제단 뿔입니다. 거짓말을 하든 도둑질을 하든 간음을 하든 우리 마음 판에 기록되고, 하나님은 우리 죄를 제단 뿔에 기록하십니다. 연탄가게 주인이 칠판에 외상값을 기록해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 죄를 제단 뿔에 기록하고 확인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연탄 50장을 외상으로 가져갔다가 그 후에 연탄 값을 갚으면 외상으로 가져갔다고 칠판에 적혀 있는 것을 지워야 합니다. 속죄제사에서 염소가 죽음으로써 죄의 값이 지불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피를 제단 뿔에 발라서 죄의 기록을 지워야 합니다. 그처럼 무언가를 발라서 지우는 것을 ‘도말塗抹’이라고 합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사 44:22) 피로 죄의 기록을 칠해서 덮어버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죽으셨습니다. 그 피를 하늘나라 성전에 있는 제단 뿔에 바르셨습니다. 죄가 해결되었으니 죄의 기록을 지운 것입니다. 그 후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31:34)
하늘나라 어디에도 우리 죄의 기록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하늘나라 성전 제단 뿔에 발려서 우리 죄의 기록이 모두 지워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죄의 기록이 남아 있는 곳은 하나, 우리 마음 판입니다. ‘내가 거짓말했어. 탐냈어. 악한 짓을 했어….’ 그 죄의 기록을 지우는 방법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내가 죄를 지었지만 예수님이 내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죄의 값을 다 치르셨어. 내 죄가 다 사해졌어!’ 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가질 때 우리 마음 판에 있던 죄의 기록이 지워집니다. 죄가 더 이상 죄로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죄가 이미 해결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두려움이나 고통이나 괴로움을 주지 못합니다.

죄를 지은 기억이 있든 없든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날 만큼 감격스러워야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죄가 사해져야 이루어집니다. 그에 대해 성경은 우리 죄가 사해졌다고 확실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레 4:31) 속죄제사를 다 드리면 죄가 사해집니다.
속죄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제사장이고, 죄를 사함받는 사람은 죄를 범한 사람입니다. 그것처럼 예수님이 우리 죄를 씻는 일을 모두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믿지 않아도 죄를 사하는 일은 이미 끝났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를 ‘보혈寶血’이라고 합니다. 왜 보배로운 피입니까? 그 피로 우리 죄의 기록을 모두 지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가 우리 죄의 값을 치른 증거요, 영수증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성찬식을 할 때 포도주를 마시며 예수님이 흘리신 피를 기념합니다. 그 피가 우리 죄를 씻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려 죄를 사했습니다. 신약시대가 되어서는 예수님이 세상 죄를 한꺼번에 모두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흘린 피를 땅에 있는 제단에 뿌린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가지고 올라가서 하늘나라에 있는 성전의 제단에 뿌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죄가 영원히 해결된 사실을 성경이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서도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죄가 있다고 여기지만, 지은 죄가 크고 양심에 가책이 있기에 죄가 사해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처럼 여길 뿐입니다. 죄를 지은 기억이 남아 있다고 해서 죄가 사해지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지은 기억이 있든 없든,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분명하게 사해졌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씻기 위해 피를 흘리고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어 우리 죄를 완벽하게 씻으셨고, 우리를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