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을 가지고 대화를 시도하면 마음이 하나가 되는 기쁨이 있다
소망을 가지고 대화를 시도하면 마음이 하나가 되는 기쁨이 있다
  • 홍오윤(기쁜소식강릉교회 목사)
  • 승인 2020.01.09 1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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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호 기쁜소식
신앙과 마인드 (행복한 부부4)

 

지난 호에서 이야기했듯이 여자는 남자에게 씨를 받아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할 때 가장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그 말씀이 삶에서 나타낼 때 가장 복되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전적으로 마음에서 이루어지며 믿음으로써 이루어 진다. 이 믿음의 관계는 ‘믿으려고 하는’ 사람이 ‘믿으려 하는’ 대상인 하나님을 크게 여기고 존중할 때 가능하다. 이러한 원리는 부부 관계에도 적용된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고 따르려면 남편을 자신보다 크게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남편’이라는 확신과 하나님이 주신 질서가 마음에 세워져 있어야 한다.

부부의 권한이 동등할 때 싸움은 셀 수 없이 많아진다
부부 가운데 한 쪽의 힘이 현저하게 강해 힘의 차이가 있으면 다툼은 일어나기 힘들다. 한쪽이 이야기할 때 다른 쪽이 듣거나 무시하는 식으로 결론이 날 뿐이다. 그런데 부부의 힘이 누가 우위인지 확실하지 않거나 부부의 권한이 동등한 상태가 될 때 싸움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진다. 그런 상태에서는 서로 감정이 극도로 상하고, 상대에게 상처를 줄 말들을 골라서 하게 되기에 심적 고통이 상당하다.
이러한 상황은 자녀들에게 정서적 학대를 고스란히 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부부가 서로 고함을 지르고 극단적인 말을 쏟아낼 뿐 아니라 물리적인 폭력을 휘두를 때 아이들은 공포감을 느낀다. 이런 일이 지속되면 자녀들은 집안이 조용해도 그 안정이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늘 가지고 지내며, 자존감이 낮고 매사에 무기력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성인이 되어서는 결혼을 기피하기도 한다.
부부의 싸움이 오래 지속되면, 남편이나 아내나 자신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아이들을 자기 편으로 삼으려고 한다. 자녀들이 누구 편을 드느냐에 따라 우위가 정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의도적으로 잘해 준다. 호감을 사려고 선물을 사주거나 용돈을 후하게 주고, 자녀들이 잘못해도 꾸짖거나 나무라지 못한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상대를 험담하면서 깎아내린다. 또한, 자녀가 조금이라도 상대 편을 들면 즉시 “너도 네 엄마랑 똑같다”라고 하거나 “미련하고 멍청하게 생각 없이 아빠처럼 사냐?”라는 등등의 말들을 쏟아낸다. 자녀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입장이 난처해진다.
남편이든 아내든 자녀가 상대 편을 들면 자신에게서 멀어진다고 생각해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면서 “내가 너 하나 생각하면서 온갖 고생을 참고 살아왔는데 네가 이럴 수 있어?”라는 식으로 말한다. 자녀들에게 엄청난 부담과 스트레스를 주는 말인데도, 본인들은 자기 속에 빠져 있기 때문에 잘 모른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만만한 아이들을 괴롭히거나 억지 트집을 잡아서라도 폭력을 휘두르는 문제아가 된다. 성장해서는 부모가 부부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려고 자신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고 배신감을 느껴 더욱 과격해진다.
가정불화에 자주 노출된 아이들은 불화를 겪으면 겪을수록 무뎌지고 무덤덤해져서 문제를 이겨내지 못한다. 어떤 일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대해 사고하는 기능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부담스런 문제를 만나면 부딪쳐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피해버린다. 그렇게 성장하면 나중에 가정을 이루었을 때 배우자와 의견을 조율하면서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정신적 장애를 나타낸다. 논쟁이 생기면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대화를 끊거나 집을 나가버려서 결국 별거나 이혼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 불행은 다시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서로의 문제를 풀어줄 수 있을 거라는 소망과 확신을 가져야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대화다. 처음부터 잘 되지는 않겠지만, 대화가 서로의 문제를 풀어줄 수 있을 거라는 소망과 확신을 가지고 대화해야 한다. 대화로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시도하는 사람과 이야기해봐야 소용없을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대화에 임하는 사람은 그 결과에 엄청난 차이가 난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이 대화를 통하여 사람을 바꾸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대화하셨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창 17:15~16)
하나님은 아담 안에서 타락한 어떤 사람에게도 기대를 갖지 않으셨다. 인류를 구원할 약속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어떤 사람에게도 기대를 갖지 않으셨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인류를 구원하는 것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는 통로로 아브라함과 사라를 선택하셨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살던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 하나님이 지시하신 가나안 땅까지 왔지만,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자신을 부르셨는지 몰랐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마음의 거리는 아직 멀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무엇 때문에 늙고 경수가 끊어져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자신들이 아이를 얻을 거라고 하시는지, 하나님의 말씀이 마냥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속으로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오?’ 하며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아브라함이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닫지 않고 계속 대화하셨다. 그렇게 대화하는 동안 아브라함의 마음에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라가 아들을 낳는 일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데 아무것도 아닌 자신이 웃었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럽고 악하고 교만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 마음과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래서 창세기 17장에 나타나는 아브라함은 자기 생각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극히 인간적이고 육신적인 사람이었지만, 로마서 4장에 나타나는 아브라함은 다르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롬 4:19~21)
아브라함이 놀라운 믿음의 조상으로 바뀐 것이다. 어떻게 바뀌었는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달라졌다. 이것이 대화와 교류와 소통의 힘이다.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된 척수염에 걸린 형제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자 이야기는, 4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사람과 가장 오랫동안 대화를 나눈 내용이다. 사마리아 여자는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꾸어 여섯 번째 남편과 살고 있는 문제가 많은 여자였지만 예수님과 대화하면서 변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전도하는 여자가 되었다. 사마리아 여자가 자신이 그처럼 전도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생각했더라면 부담스러워서 예수님을 피했을지도 모른다. 여자는 그냥 예수님과 만나서 대화하는 동안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두 달 전, 우리 교회의 버스를 운전하는 형제님에게 척수염으로 하반신 마비가 찾아왔다. 구원받았지만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못해 사람들과 자주 부딪히는 형제님이었다. 형제님이 어느 날 거래처에 물건을 가져다주러 갔다가 주차장에서 털썩 주저앉아 발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게 되자, 평생 휠체어를 타고 지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에 공포와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 후 조용한 병실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었구나. 내 몸이라면 내 마음대로 해야 하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없구나. 내가 이처럼 쓸모없는 무능한 사람인데 내 모습을 잊고 구원의 감사까지도 잊고 살았구나.’
형제님은 자신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허탄하게 살았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성경이나 목사님들의 설교 말씀과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설교 말씀을 듣고 종종 찾아오는 성도들과 대화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려고 어려움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미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는데 생각에 속아서 옛사람의 마음으로 살았던 것을 뉘우치고 말씀을 믿는 편으로 마음을 옮겼다. 그때부터 죽었던 신경이 기적처럼 살아나고 몸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몸이 회복된 것도 감사하지만 하나님이 새로운 마음을 갖게 해주신 것에 대하여 더욱 감사해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형제님을 사랑하셔서, 전에는 자기 생각과 욕망 때문에 대화가 잘 되지 않았는데 고난과 어려움으로 거칠고 과격한 성격을 잠재우고 어린아이처럼 만들어가시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형제님의 아내를 비롯해서 가족들도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를 보는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다.

사탄으로 말미암은 잘못된 생각이 들어오면 대화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죄를 씻으라고 하시는 것은, 죄가 더럽기도 하지만 그보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의 사귐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죄는 가책과 정죄를 불러와 우리로 하여금 부끄럽고 숨고 가리고 피하게 만들어서 하나님과 사귐을 갖지 못하게 하기에 죄를 씻으라고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씻어져 우리가 의롭게 되었기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계시는데, 사람들이 그 사실을 믿는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은 안타까워하신다.
그것처럼 부부는 한몸이기 때문에 허물될 것이 없는데도 사탄으로 말미암은 잘못된 생각이 들어와서 부부가 서로 대화하지 못한다. 부담스럽고 어렵다고 마음을 닫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쉽지 않지만 인내와 소망을 가지고 조금씩 대화하다 보면 상대방의 마음도 보이고 자신의 마음도 보인다.  그토록 옳고 선하고 똑똑하다고 여겼던 자신의 마음이 악하고 더럽게 느껴지면서, 자기를 주장하는 마음이 서리 내린 뒤 녹아버린 화초 잎처럼 힘을 잃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면 마음이 달라지고 삶이 달라진다. 대화는 서로의 마음을 같아지게 하는 힘이 있다.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대화하다 보면 말씀과 우리 마음이 같아진다. 성경에서는 그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도 대화를 시도하면 생각이 같아지고 마음이 같아져 하나가 되는 기쁨이 있다. 그런 관계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행복한 부부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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