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은 사람들의 기뻐하는 표정을 잊을 수 없어요
구원받은 사람들의 기뻐하는 표정을 잊을 수 없어요
  • 담당 | 전진영 기자
  • 승인 2020.01.12 2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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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호 기쁜소식
단기선교사 | 아프리카에서 행복한 이유

한국의 대학생들이 아프리카로 떠나는 이유가 있다. 입에 맞지 않은
음식과 낙후된 환경에서 많은 고생을 하지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경험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햇볕 만큼이나
뜨겁고 따뜻한 그들의 이야기는 또 다른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할머니는 웃으며 죄가 없다고 하셨다

글 | 김소영 단기선교사

베트남 하노이에서 유학하던 중 설날이 되어 한국에 왔다가, 인도로 단기선교를 다녀온 친구의 초청으로 귀국발표회를 보았다. 공연하는 단기선교사들의 표정이 너무 밝고 행복해 보였다. 유학하며 외롭고 지루하게 살았던 나에게 그들의 표정은 너무나 부러운 것이었다. 나도 당장 열정이 가득한 아프리카로 가서 새로운 경험을 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때 가진 꿈을 좇아 지금 나는 남아공에서 단기선교사로 지내고 있다. 남아공은 아프리카에서 많이 발전된 나라여서 아프리카로 볼 수 없다고 하는 분들이 많지만, 백인과 흑인의 인종차별이 심하고 빈부 격차가 매우 커서 가난한 지역에 가면 내가 상상하던 아프리카를 만날 수 있었다.
하루는 ‘템비사’라는 곳에 집회가 있어서 갔는데, 흙 묻은 옷을 입은 아이들이 유리가 있을지 모르는 흙길을 맨발로 뛰어다니고 부러질 것만 같은 나무에 올라가며 놀고 있었다. 내가 옆을 지나가자 나를 중국인으로 알았는지 아이들이 “칭챙총, 차이나”라고 하며 다가왔다. 놀란 나에게 아이들은 반갑게 인사하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흙범벅인 모르는 아이들이 나를 안아 놀라기도 하고 거리낌도 있었는데, 순수한 얼굴로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도 그들을 꼭 안아주었다. 지금도 그 아이들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템비사에서는 주말마다 집회를 했는데, 사람들을 집회에 초청하기 위해서 집집마다 돌아다녔다. 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경계하며 문을 열어주지 않아 만날 기회조차 없는 경우도 많은데, 템비사에서는 어느 집이든 문을 열고 그냥 들어갈 수 있어서 신기했다. 한 집에 여러 세대가 살기 때문에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한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하고 자연스럽게 인사하며 들어가면, 사람들이 “예,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하며 밝은 미소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하루는 한 할머니의 집에 들어가 안부를 여쭙고, 내가 그곳에 가게 된 이유와 내게 일하신 하나님과 우리 가족에게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해 드렸다. 할머니는 연세가 많아 아픈 곳이 많지만 주일이면 꼭 교회에 가고 교회의 중요한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마음에 있는 죄 때문에 근심이 많다고 하셨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할머니에게 복음을 차근차근 설명해 드렸다. 할머니는 “내가 성경을 몇 번이나 읽었지만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는지 몰랐네.”라고 하시며, 나에게 종이와 펜을 건네면서 그 구절들을 적어 달라고 하셨다. 나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다 씻으신 사실이 기록된 말씀들을 할머니에게 자세히 설명했고, 할머니는 그대로 받아들이셨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할머니에게 여쭈었다.
“할머니, 마음에 여전히 죄가 있어요?”
할머니가 웃으며 대답하셨다.
“없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씻으셨잖아. 너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 주신 천사야. 고마워. 저기 옆방에 우리 딸이 있는데 딸에게도 이 귀한 복음을 전해줘.”
다음 날 그 집을 다시 방문하여 할머니의 딸에게도 복음을 전했다. 그 후로 할머니는 우리가 템비사에서 집회를 할 때마다 아들, 손자 손녀들과 함께 와서 말씀을 들으신다. 내가 템비사에 갈 때마다 할머니 집을 찾아가서 “할머니~!”하고 인사하면 할머니는 “나의 천사~!”라고 불러주신다. 남아공에 구원받은 나의 할머니가 생긴 것이 감사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복음 전하는 것밖에 해줄 수 없었다

글 | 김민욱 단기선교사

고등학생 때부터 미국에서 살며 극히 개인주의적이고 배타적인 문화에 회의를 느끼던 중, 순수하고 따뜻한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해 듣고 남아공으로 향했다. 그런데 남아공에서 만난 사람들은 들은 것과 달랐다. 나에게 “칭챙총, 차이나”라고 하며 웃고 쿵푸 동작을 하면서 놀렸다. 복음을 전하려 했던 열정은 사라지고 주눅이 들어 사람들을 피했으며, 남아공 사람들은 지저분하고 못 배웠다고 무시하기 시작했다.
8월 초에 선교사님이 템비사 빈민촌에서 성경세미나를 하자고 하셨고, 사람들을 초청하면서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눈동자에 초점이 없고 목소리도 힘이 없으며 삶에 대한 의욕 자체가 없는 분이었다. 그분에게 우리 선교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음날엔 다른 단원들과 함께 현지어로 아카펠라도 불러주었다. 아주머니의 사연을 들어보니, 나이지리아 사람인 남편이 남아공 시민권을 얻으려고 아주머니에게 접근했다가 어린 아들과 함께 버리고 도망간 것이었다. 한번은 대화 도중에 아주머니가 갑자기 가루를 꺼내 코로 흡입했는데, 마약이었다. 아주머니는 약 기운에 취해 어린 아들을 방치하고 있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나는 자주 말씀을 전해주었고 신앙 서적도 선물했다. 아주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조금씩 생겼다. 하루는 아주머니가 말했다.
“우리 집에 와줘서 너무 고마워. 너는 하나님이 내게 보낸 선물이야.”
부끄러웠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내 기대에 맞지 않는다고 사람들을 무시하고 싫어했는데,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듣고 즐거워했다. 사람들이 칭챙총이라고 하는 것이 나와 친해지고 싶어서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거리에 나가면 누구와도 친구가 되며 거리낌 없이 하나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레소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복음 전하는 행복

글 | 장혜진 단기선교사

나는 레소토에 와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해보았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한국에서는 복음을 전하지도 않았고, 복음 전하는 기쁨을 느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단기선교사로 레소토에 와서 복음을 전하며 사는 삶이 얼마나 행복하고 기쁜 일인지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내 인생에서 무엇보다 돈이 중요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자립해서 살고 싶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내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그런데 나는 항상 돈에 매여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낀다고 아끼고 관리했지만, 친구들을 만나고 노는 것이 좋다 보니 거기에 돈을 많이 쓰게 되어 속이 상했다. 이런 삶을 반복하고 있을 때, 교회에서 목사님으로부터 아프리카 레소토로 단기선교를 다녀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프리카 단기선교사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내 인생이 잘 풀리지 않는 것 같았기에 목사님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레소토에 온 뒤, 낯선 아프리카의 환경에서 짧은 영어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 어려웠다. ‘이곳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하는 영어를 알아들을 수는 있을까? 동양인은 다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니 어딜 가나 사람들이 나를 중국인이라고 생각하겠지?’ 이런 저런 생각들로 마음이 복잡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하루는 어느 현지 형제님의 권유로 무작정 입을 열어서 한 아이에게 복음을 전했다. 말도 안 되는 엉망진창 영어로 복음을 전하려고 애쓰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그 아이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옆에 있던 현지 형제님이 중간에 나 대신 복음을 전해서 그 아이가 구원받았지만, 나는 여전히 모든 것이 두렵고 복음 전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내던 중 한번은 선교사님이 전하신 여호수아 1장 9절 말씀이 마음에 들어왔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하느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이 나를 레소토에 보내셨고 내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데 내가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뒤로는 무슨 일을 하든지 담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영어 실력이 부족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여전히 두렵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올라왔지만, 그때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며 반격할 수 있었다.
마음에 말씀을 품고 복음을 전하니까 확실히 전과 달라졌다. 사람들이 마음을 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는 레소토 교회 근처에 있는 마을 ‘하테자니’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음타비생’이라는 미혼모를 만났다. 음타비생은 6개월 된 아기를 혼자 키우며 초등학생인 남동생과 셋이 살고 있었다. 남편은 자신이 아기를 가졌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갔다고 했다. 음타비생은 함부로 살았던 자신의 지난날을 정죄하며 죄가 너무 무거워서 의인이 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나는 죄 때문에 괴로워하는 음타비생에게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를 들려주며 복음을 전했고, 음타비생은 구원을 받았다. 나에게 계속 고맙다고 하며 너무나도 행복해했다.
레소토에 와서 확실하게 배운 것은, 내가 나를 위해 사는 것보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이다. 전에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나름대로 애를 쓰고 노력했지만 내 삶은 행복하지 않았다. 레소토에 와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복음을 전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에게 소망을 전해주면서 느끼는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레소토

복음을 전하며 새로운 기쁨을 알아갔다

글 | 윤현아 단기선교사

영어로 누구와도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던 내게 영어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2018년에 영어말하기대회에 참가했다가 너무 부담되고 긴장한 나머지 발표하던 중 5초 동안 정신을 잃었던 적이 있다. 바로 정신을 차렸지만 너무 창피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한국어로 설교 말씀을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내가 지금은 레소토에서 영어로 설교를 듣고 이해하며 전도까지 해내고 있다.
지난 12월에는 무전전도여행을 떠났다. 가기 전에 선교사님께서 ‘우리 욕구를 따라가면 끝에는 후회와 실패가 남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 복음을 전했을 때에는 마음이 행복으로 가득찬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기억하며 일주일 동안 오직 복음에 초점을 맞춰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복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고 살리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영어를 생각하면 자신감을 잃던 내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무전전도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전한 사람들 모두 구원을 받았다. 천주교를 믿는 아주머니를 만났을 때에는 마태복음 1장 21절에 나오는 예수님 이름의 뜻을 보여준 뒤, 히브리서 10장 10절과 14절 말씀으로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거룩해진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가족 모두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싶다고 하셨다.
레소토에서 보낸 시간들 중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많은 순간들이 복음을 전하며 새로운 기쁨의 맛을 알아가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영어 때문에 마음이 무너졌지만 단기선교사가 되어 영어로 복음을 전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해본 귀한 시간이기도 했다.

 

레소토

아주머니가 ‘모토야루낄렝(의인)’이라고 했다

글 | 이세연 단기선교사

12월에 ‘보타보테’라는 도시로 무전전도여행을 갔다. 레소토 사람들은 ‘세소토’라는 현지어와 영어를 쓰는데, 수도인 마세루를 벗어나면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 많기에 전도에 어려움이 많았다.
여행 중에 만난 한 아주머니도 현지어만 쓰고 영어는 조금 알아듣기만 하셨다. 내가 간단한 영어로 “아주머니는 죄인이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묻자 아주머니는 고개만 끄덕이셨다. 아주머니가 영어로 말을 할 수는 없기에 마음 한쪽에서 ‘어차피 복음을 제대로 전하기 힘들 텐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찾자’라는 소리가 올라왔다. 그런데 다른 쪽에서 ‘만약에 지금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누가 이 집에 복음을 전하러 올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일어서려다가 다시 앉아 쉬운 영어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말씀을 전하는 중간에 이해하느냐고 물으면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마지막에 “아주머니, 이제 아주머니께서 의인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겠어요?”라고 물었는데, 아주머니가 고개를 저으셨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설명해 드렸는데도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으셨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아주머니, 이제 죄가 없으세요?”라고 묻자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주머니가 의인이라는 단어는 모르셨던 것이다. 정확하게 확인하고 싶어서 내가 아는 현지어를 기억해내서 되묻자, 아주머니가 자신이 ‘모토야루낄렝(의인)’이라고 말하셨다.
“깔레보하(고마워)!”라고 인사하며 웃으시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내 마음도 정말 행복해졌다. 내가 언어라는 장벽에 막혀 복음 전하는 것을 포기했다면 절대로 보지 못했을 웃음이었다. 복음의 일은 나에게 행복이라는 삯을 준다.

 

케냐

이 복음은 최고의 복음이야!

글 | 허유진 단기선교사

케냐에서 무전전도여행을 여러 차례 했는데, 어려운 일이 많아서 기도를 많이 했던 지역이 ‘수부키아’다. 수부키아에 간 첫날, 어느 목사님이 호텔에서 잘 수 있도록 저녁 6시쯤 숙박비를 지불해 주셨다. 점심과 저녁을 먹지 못한 상태여서 ‘복음을 전하고 상황을 설명하면 누군가가 도와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성경을 챙겨서 식당 근처로 갔더니 경비원이 앉아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 로마서 3장 23절과 24절 말씀, 그리고 히브리서 10장 10절 말씀으로 복음을 전했다. 하나님이 이미 2천 년 전에 우리 죄를 사해 놓으셨기에 우리는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된다고 했더니, 경비원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계속 웃으면서 반박하려고 했다. 나는 성경을 덮고 그분에게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하셨던 모든 일들,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눈먼 소경을 보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일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우리 머리로는 당연히 이해가 안 가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구원 또한 우리 머리로 이해가 안 가지만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내 말을 듣던 경비원의 표정이 갑자기 환하게 변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 생각에는…, 내 생각에는…, 이 복음은 최고의 복음이야!”
경비원은 성경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받아들여서 구원을 받았다. 그의 마음에 복음이 임하면서 눈빛이 바뀌던 것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날 우리는 저녁을 먹지 못했지만 마음은 정말 행복했다.
그 뒤로 어딜 가든지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느꼈다. 비가 오든 밥을 먹지 못하든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기다림 후에 하나님께서 당신이 준비한 최고의 것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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