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학교와 군대에서 하나님의 인도
선교학교와 군대에서 하나님의 인도
  • 김학철(태국, 기쁜소식방콕교회 선교사)
  • 승인 2020.03.0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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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호 기쁜소식
선교사 수기_김학철 선교사 편(3화)

태국에서 25년 남짓 선교하는 동안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할 정도로 내 인생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을 만났다. 그 일들을 해결할 힘이 나에게는 없었기에 하나님에게 편하게 맡겼고, 모든 일이 하나 하나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이루어졌다. 나를 태국에서 선교할 수 있도록 안전하게 이끌어주신 하나님은, 내가 젊은 시절에 선교학교와 군대에서 겪은 여러 일들을 통해서 내 마음이 아닌 말씀을 의지해서 사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이 나를 잠재우셨다
사도행전 12장 6절에 “...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라고 나온다. 베드로는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깊이 잠을 자고 있었다. 손발이 묶인 채 감옥에 갇힌 베드로는 자신이 그 형편에서 벗어날 어떤 힘도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잠이 들었던 것이다. 내 인생이 그러했다. 내가 걸어온 삶을 잠잠히 생각해 보면, 마치 잠을 자는 것과 같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집에 가서 선교학교(현 마하나임신학교)에 가겠다고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고생해서 대학교까지 보내놓았더니 그게 무슨 소리냐?’며 호적을 파가라고 하셨고, 형님은 ‘대학까지 나와서 부모님께 용돈 한 번 드린 적 있냐?’며 나를 무시하셨다. 그처럼 마음에서 많은 갈등과 부담을 넘어 선교학교에 들어갔는데, 감사한 일들보다는 또 다른 어려움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교학교에는 여러 규칙들이 있었고, 규칙을 어길 경우에는 함께 숙식하는 학생들 가운데 생활반장이 있어서 그가 규칙을 어긴 학생에게 청소를 시키거나 밥을 한 끼 먹지 못하게 했다. 요즘도 그렇지만, 선교학교에 신입생이 들어오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일주일 동안 금식하면서 성경을 한 번 다 읽는 시간을 갖는다. 나도 입학해서 일주일 동안 금식하면서 성경을 다 읽었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식사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시간을 30초 어겼다고, 생활반장이 한 끼 금식하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른 학생들도 나를 보고 답답하다며 유난히 어렵게 하는 것 같았다. 6개월이 지났을 즈음, 서울 지리를 잘 아는 형제님과 함께 심방을 갔다. 지하철을 한 시간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합정동에 있는 어느 양복점을 찾아갔다. 같이 간 형제님이 나에게 ‘그곳에서 일하는 형제와 교제하고 있으면 자기는 다른 곳에 들렀다가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나는 양복점 주인 눈치를 보며 형제에게 말씀을 전한 뒤 밖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함께 간 형제님이 오지 않았다. 
돈은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촌놈이라 서울 지리를 잘 몰라서, 전에 성경공부를 했던 중앙대학교에 다니는 형제의 자취집이 생각나 두어 시간이면 갈 줄 알고 걸었다. 그런데 일곱 시간을 걸어 새벽 1시에야 그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게다가 집 문은 잠겨 있고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근처에 있는 예배당에 들어가 중층에서 잠을 청했다. 사람들이 기도하는 소리가 들려서 눈을 떠보니 새벽 4시 반이었다. 얼른 일어나 또 하염없이 걸어 오후 3시에야 선교학교에 도착했다. 함께 간 형제님에게 왜 나를 그냥 두고 갔느냐고 물었다. 깜빡 잊고 혼자 돌아와서 미안하다고 할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고생해서 왔어요? 버스 기사한테 차비가 없으니 한 번만 태워달라고 사정해서 타고 오면 되지.”라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그때 하나님이 나를 잠재우셨다. 나에게 힘이 있어서 깨어 있었다면, 내가 보기에 부당하다고 여기는 일들과 싸워 이기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싸울 힘도 없고,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 천사가 또 가로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행 12:7~9)
천사가 베드로를 감옥에서 이끌어내는데, 베드로는 잠을 깊이 잤기 때문에 자기가 환상을 보고 있는 줄로 생각했다. 
“…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행 12:10~11)
여기서 베드로가 ‘참으로’라고 하는데, 참인지 꿈인지 모르고 천사를 따라 걸었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힌 것에 비교할 수 없지만 나도 선교학교에서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는데, 잠을 자고 있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정확히 모른 채 보냈다. 나중에 모든 데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었을 때에야, 그때 하나님이 나를 잠자게 하셨다는 사실을 알았다. 
성경은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 5:6)라고 했다. 우리가 때로 오해를 받고 무시를 당하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신다는 것이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 맡기고 자고 있으면, 때가 되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씀을 의지해서 신앙의 길을 걸어왔고,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어 있었다. 베드로 앞에서 감옥 문이 저절로 열렸던 것처럼 말이다. 

정금과 같이 만드시겠구나
내가 모든 문제 앞에서 잠잠히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군생활은 나에게 선교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다른 것을 가르쳐 주었다. 성경 말씀 앞에서 나의 악한 마음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마음을 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1985년에 선교학교에 입학해 8개월 정도 지낸 뒤 입대했다. 늦은 나이에 군대에 가면 많이 고생할 것 같아서 장교로 가기 위해 시험을 보았지만, 마지막으로 체력 측정을 하던 날에 급체하는 바람에 떨어져 사병으로 가야 했다. 군대에 가서 고생할 것을 생각하니 두려웠는데, 어느 날 성경 구절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3~4)
장교가 아닌 위치가 가장 낮은 사병으로 가면, 내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첫날, 종교행사를 한다고 해서 군대 교회에 들어가 보니 길게 드리워진 커다란 플래카드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라고 적혀 있었다. 뜨거운 용광로에서 정금을 얻듯이, 하나님께서 용광로와 같은 군대에서 나를 단련하여 정금처럼 만드시겠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훈련을 받았다.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는 전방의 공병부대에 배치 받았다. 그런데 나는 행정병이 되어, 밖에서 고생하는 전우들과 달리 사무실에서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으며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나를 괴롭히던 고참
행정병이 되어 사무실에 가니, 직속 고참이 한글의 ‘ㄱ’부터 쓰기 연습을 시켰다. 가르쳐준 대로 똑같이 못 쓰자 “내가 이렇게 쓰지 말라고 그랬잖아!” 하며 혼내는데, 글씨체가 생각처럼 빨리 고쳐지지 않았다. 글씨 때문에 나보다 두 살 어리고 체구도 작고 빼빼한 고참에게 많이 맞고 기합을 받았다. 한번은 고참이 정말 화가 나서 50센티미터 자로 내 정수리를 때리고 군홧발로 옆구리를 차서 쓰러트렸다. 그리고 원산폭격을 20분 동안 시켰다. 울분이 올라왔지만 군대에서는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내가 복무했던 부대의 교회에는 군목이 없고 군종병만 있었다. 교회에는 50명 정도의 사병이 모였는데, 군종병이 말씀을 못 전하니까 나보고 말씀을 전하라고 했다. 주일마다 군종병이 예배를 인도하고 내가 말씀을 전했는데, 나에게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그런데 어느 주일 아침에 고참이 “오늘은 절대 교회에 가면 안 돼. 중대장이 네 일을 나한테 시켰어. 내가 네 일 도와주는 거니까 너 오늘 예배에 가지 마.”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하고, 일요일 아침부터 고참과 사무실에서 일을 했다. 
9시 반이 되자 ‘이제 교회에 가야 하는데…’ 하고 마음에서 갈등이 되었다. 10시 가까이 되어 고참이 화장실에 간다고 자리를 비웠는데, 잠시 정신이 나갔다. ‘오늘 그냥 예배 드리고 죽자!’ 하고 교회로 달려갔다. 교회에서 사람들이 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바로 강단에 올라가서 말씀을 전했다. 
한창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교회 뒷문이 조금 열리더니 고참의 얼굴이 보였다. 고참이 나오라고 손짓하는데 무시하고 설교를 계속했다. 그러자 고참이 주먹을 꽉 쥐어 보이며 ‘넌 이제 죽었어!’라고 신호를 보내고 돌아갔다. 한 시간 설교를 마치고 내려오니까 그제야 정신이 차려졌다. ‘내가 미쳤지! 사무실에 가면 고참이 몽둥이를 들고 나를 기다리겠다.’ 불안한 마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서니 다행히 고참이 없었다. 그런데 사무실 옆에 붙어 있는 내무반에 들어가자 고참의 워커발이 내 얼굴로 날아왔다. 그날 얼마나 맞았는지, 바로 의무실에 입원해야 했다. 

소망이 분한 마음을 이겼다
병실에 누워 있는데 별별 생각이 올라왔다. ‘중대장에게 보고해서 영창 가게 할까?’ ‘내가 실탄 창고 열쇠를 관리하는데 총에 실탄을 넣고 쏴버릴까?’ 그런 일을 당하게 하신 하나님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원망스러웠다. 내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설교한 것밖에 없는데, 이렇게까지 당해야 하는지 납득이 안 됐다. 그때 군대에 오기 전에 마음에 품었던 말씀이 생각났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딤후 2:3) 생각이 이어졌다. ‘내가 정말 하나님의 군사인가?’ 하나님의 군사라면 분한 일을 당해도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이길 수 있어야 하는데, 내 마음에는 분함과 원망이 가득 차 있었다. 복음 때문에 고난당하는 것으로 인해 분한 마음을 갖는 나는 하나님의 군사가 아니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사도바울이 관리들에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다. 그런데 25절에 보면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라는 내용이 나온다. 바울은 그 큰 고난을 당하고도 분한 마음을 갖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을 찬미했다. 그런데 나는 바울이 겪은 것에 비교할 수 없이 작은 고난을 당하고도 마음이 분노로 가득 찼던 것이다. 
처음에는 도대체 내가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말씀을 하나씩 더듬으면서 알 수 있었다. 나의 지혜와 능력을 버리지 않고 그것으로 살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당케 하셔서 버리게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이 억울한 일을 통해 내 마음의 악한 것들을 다 드러내 ‘네가 이 마음을 품고 살면 너는 죽어. 그러니까 모두 버리고 말씀을 의지하고 살아’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나를 용광로와 같은 곳에 넣어서 훈련하여 정금으로 만들고 계셨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마음에 소망이 일어났고, 분한 마음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처럼 내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 나를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상처를 직접 씻겨주시고
얼마 뒤 나를 그렇게 괴롭히던 고참이 제대했다. 내가 고참이 되었고, 내 자리에 새로운 후임이 들어왔다. 하루는 그 후임이 나에게 말했다.
“김 병장님, 예전에 성경공부를 많이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도 성경을 배우고 싶습니다.”
나는 웃으면서 후임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한테 복음 안 전해. 다른 사람은 다 구원받아도 너는 구원받으면 안 돼. 네가 구원받으면 네가 잘못할 때 내가 너를 못 때리잖아.”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는 그 후임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었고, 후임이 구원을 받았다. 그 후임이 지금 카자흐스탄에서 선교하고 있는 박성수 선교사다. 내 후임이 구원받았을 때, 옛날에 내가 고참에게 억울하게 맞았던 상처들이 마음에서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씻어졌다. 내가 스스로 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상처를 씻어 주신 것이다. 그 외에도 그때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사람 가운데 하나가 지금 피지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양운기 선교사다. 이렇게 하나님의 종이 일어난다면 고참에게 그 정도 맞을 만한 것 아니겠는가. 
나는 사도행전 16장 33절을 보면 너무 행복하다.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이런 세계가 하나님의 세계였다. 사도 바울이 갇혔던 감옥의 간수가 바울의 상처를 직접 씻겨주는 이 장면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하나님은 이 장면을 나의 인생에도 허락해 주셨다. 
세월이 지나면서 알게 된 사실은, 행복과 감사는 내 손에 있지 않고 하나님이 나에게 만들어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를 그렇게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을 볼 때 찬양할 수밖에 없다. 그런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신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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