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글쭈글 천 쪼가리가 아니야
쭈글쭈글 천 쪼가리가 아니야
  • 송근영
  • 승인 2020.03.20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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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키즈마인드
생각하는 동화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쬐는 날이었어요. 수선 아주머니는 쏟아진 햇살 사이에 흩어져 있는 천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으고 있었답니다. 천 조각들은 모양이 가지각색이었어요. 네모 모양, 동그란 모양, 삐죽삐죽한 모양, 길쭉한 모양까지…. 
“여기도 있었네!”
소파 밑으로 굴러 들어간 조각까지 찾아낸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수납장 제일 마지막 서랍을 열었어요. 그곳에는 천 조각들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어요. 오늘 모은 
천 조각들도 모두 서랍 속으로 들어갔지요. 

 

수선 아주머니는 동네에서 작은 수선집을 운영하고 계세요. 사람들은 옷이 망가지거나 고쳐야 할 때 언제나 수선 아주머니를 찾아왔지요. 그러면 아주머니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투박한 손으로 정성스럽게 옷을 어루만지며 말씀하시곤 했어요.
“아유, 잘 오셨어요. 내가 예쁘게 고쳐 드릴게.”
옷을 수선하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크고 작은 천 조각들은 어김없이 마지막 서랍 속으로 들어갔어요. 
오늘 수선한 옷은 동네에서 제일 귀여운 지우의 빨간 망토였어요. 선물 받은 망토가 너무 커서 조금 줄이기로 했지요. 싹둑싹둑 가위가 지나가고 빨간 천 조각이 바닥에 떨어졌어요.
“아이쿠, 아얏!”
아주머니는 빨간 조각을 주워 서랍에 집어넣으며 말했어요.
“조각들아, 나중에 예쁜 이불로 만들어줄게.”
서랍 속에 들어간 빨간 조각은 울상이 되었어요. 어두컴컴한 서랍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야, 신입. 너 표정이 왜 그래?”
뾰로통해 있는 빨간 조각에게 덩치가 제일 큰 곤색 조각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어요.
“표정이 왜 그러냐고? 이렇게 답답한 곳에 있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너희들이 이상한 거 아니야? 금방 곰팡이가 피겠는데? 난 탈출할 거야!” 
서랍에서 나가겠다고 당당히 외치는 빨간 조각의 한쪽 모서리는 이미 서랍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어요.

 

“뭐? 탈출?” 
꽃무늬 조각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비아냥거렸어요.    
“넌 오자마자 무슨 그런 말을 하니? 수선 아주머니가 
우리를 예쁜 이불 만드실 거라고 하신 거 못 들었어?”
구석에 있던 체크무늬 조각은 정색하며 말했어요. 그 순간 빨간 조각이 서랍을 획 빠져나갔어요. 조각들은 갑자기 어리둥절했지요. 알고 보니 수선 아주머니가 기르는 강아지 콩이가 서랍 틈새로 보이는 빨간 조각을 물어 당긴 거였어요. 

‘거봐! 내가 탈출한다고 했지?’
빨간 조각은 콩이랑 신나게 장난을 쳤어요. 깔깔거리고 웃다보니 반듯하고 윤기 나던 빨간 조각이 어느새 쭈글쭈글한 천 쪼가리가 되어 있었지요. 한참 빨간 조각을 
물었다 놨다 하며 장난치던 콩이는 언제 같이 놀았냐는 듯 빨간 조각을 풀밭에 버리고 가 버렸어요. 
풀밭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빨간 조각은 갑자기 외로워졌어요. 귀염둥이 지우의 망토로 온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천 조각 신세가 된 것이 서글펐지요. 마침 지나가던 개미가 빨간 조각을 보더니 짜증을 냈어요. 
“아니, 이 시뻘겋고 쭈글쭈글한 천 쪼가리는 뭐야? 내가 지나가는 길을 막고 있다니!”
“뭐? 나는 쭈글쭈글한 천 쪼가리가 아니야! 예쁜 빨간 망토라고!”
“풉, 예쁜 빨간 망토라고오~? 웃기고 있네. 너 같은 쭈글이가 무슨 망토? 저리 비켜!”
“음… 난 혼자 못 움직여…. 네, 네가 돌아가….”
“뭐? 하, 정말 짜증나게 하는 천 쪼가리네.”
개미가 투덜거리며 지나갔어요. 
아무도 없는 풀밭에 어둠이 깔렸어요. 찬바람이 불자 콩이의 침 때문에 축축해진 몸이 으슬으슬 떨렸지요. 
“어휴, 추워. 욱, 게다가 침 냄새까지. 이게 뭐야! 차라리 서랍에 있었다면 이렇게 춥지는 않았을 텐데….” 
그때였어요. 지나가던 회색 쥐가 투덜거리는 빨간 조각을 발견했어요.
“어? 이 천 쪼가리는 뭐지?”

의기소침해져 있던 빨간 조각은 천 쪼가리라는 말에 또 발끈했어요.
“뭐? 나는 천 쪼가리가 아니야! 예쁜 빨간 망토라고!”
“뭐? 하하하하! 너 진짜 웃기는 애구나? 무슨 망토? 넌 쭈글쭈글한 천 쪼가리야!”
“아니야!”
빨간 조각과 회색 쥐는 한참 동안 실랑이를 했답니다. 어둠이 짙어졌을 때는 둘 다 지쳤어요. 그리고 회색 쥐가 말했지요.
“너, 솔직히 말해봐.”
“뭘?”
“네가 버려졌다는 걸 받아들이기 싫은 거 아냐? 천 쪼가리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버려진 게 되니까.”
빨간 조각은 가슴이 철렁했어요.
“생각해보니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내가 천 쪼가리가 되었다는 게 너무 싫거든. 버려질 것 같아 무섭고.”
회색 쥐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어요.
“그렇지? 하지만 넌 이미 버려졌어. 빨간 망토였던 건 다 지나간 일이라고. 그런데 누가 널 버렸지?”
“당연히 그건!”
빨간 조각은 “수선 아주머니야!”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요. 아주머니가 “나중에 예쁜 이불로 만들어줄게”라고 말하며 서랍 속에 넣었을 때 도망가려고 틈새로 손을 내민 건 바로 자신이었거든요.
“그건…, 나야. 내가 나를 버렸… 어.”

빨간 조각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렀어요. 
“난 수선 아주머니 말을 믿지 않았어. 나를 잘라낼 때부터 이불을 만들 거라고 하셨지만, 서랍에 들어가자마자 너무 답답했거든. 언제부터 들어와 있는지 알 수도 없는 다른 조각들을 보면서 빨리 탈출할수록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흑!”  
빨간 조각은 그만 울음을 터뜨렸어요. 그때 회색 쥐가 다정하게 말했어요.
“내가 널 도와줄게.”
회색 쥐는 빨간 조각을 냉큼 물고 수선 아주머니 가게로 달려갔어요. 그러고는 강아지 콩이의 눈을 피해 문앞에 빨간 조각을 살며시 내려놓았어요.

 

어느새 동이 텄어요. 아침 일찍 일어난 수선 아주머니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어요.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니 조각이불을 만들어야겠다.”기분 좋게 문을 나선 아주머니는 바닥에 떨어진 빨간 조각을 발견했어요.
“어머, 이게 왜 여기 있지? 더럽고 쭈글쭈글해졌네. 콩이가 물어다 장난을 친 모양이야. 유난히 색이 고와서 이불 만들 때 가운데에 쓰려고 했는데, 깨끗하게 빨아야겠어.”
돌아서는 수선 아주머니의 등 뒤로 햇살이 유난히도 따뜻하게 쏟아져 내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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