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한국에 와서 찾은 행복
[라이프] 한국에 와서 찾은 행복
  • 글 | 오 알렉세이 (기쁜소식인천교회)
  • 승인 2020.04.07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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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호 기쁜소식
성도 간증

올해 34세인 나는 러시아에서 태어난 이민 3세 고려인이다. 어려서부터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부모님이 힘들게 일해 돈을 버셨다. 그래서 나는 러시아정교회에 다니고 싶었지만 다닐 수 없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신이 있음을 믿었고, 중고등학생 때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상상하면서 영혼의 구원에 관심이 많았다.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 알 수 없어서 ‘우리 조상들이 믿었던 불교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하고 가끔 불교 서적들을 사서 읽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 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성인이 될 때까지 별다른 문제나 어려움 없이 평범하게 살았다. 그런데 사귀었던 여자친구와 안 좋은 일이 생기면서, 매우 우울하고 마음이 몹시 어려웠다.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막연히 기도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고, 악몽에 자주 시달렸다. 악몽을 떨치려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사소한 도둑질이나 싸움도 자주 했다. 나는 더 이상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되는 대로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세 명의 친구가 죽는 일이 일어났다. 한 친구는 살해당하고, 두 친구는 자살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너무 큰 충격을 받았고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때 또 다른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서 거의 신경쇠약에 걸린 것처럼 내 마음은 피폐해져 갔다. 그때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고려인이 아닌 러시아인이어서 러시아정교회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아내의 신앙에 의지하면서 종교적으로 많은 위로를 받아 괴로움과 죄책감에서 차츰 벗어났다. 우리는 결혼하고 두 아들을 낳았으며, 비록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지만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남동생이 갑자기 죽었다. 나는 다시 충격에 빠졌고, 러시아를 피해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었다. 그래서 그동안 망설였던 한국행을 결정했다. 
한국에 와서, 고려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인천시 연수구 함박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동포비자를 받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공장에 취직했다. 주물공장에 다니며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1년 반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일했다. 아내는 어느 날부터 기쁜소식선교회에서 운영하는 고려인지원센터의 한글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가보자고 권해서, 한국어를 배워야 했기에 참석하기로 했다. 그곳 선생님은 나이가 꽤 들었지만 러시아어로 한국어를 가르쳤다. 그분과 차츰 만나면서 전에는 카자흐스탄의 선교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분이 나에게 종종 성경 이야기를 해주면서 기쁜소식인천교회의 예배와 성경세미나에도 초대했다. 거기 참석해서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점점 끌리기 시작했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죄에서 구원할 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씀을 자주 들었다. 
지난 겨울에는 강릉에서 있었던 겨울수양회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한 사람 예수님이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죄가 다 씻어졌다’는 말씀을 들었고, 나는 그 모든 말씀이 그대로 믿어졌다. 또, 구약시대에 염소에게 안수하여 죄가 넘어가듯이 우리의 모든 죄가 세례 요한을 통해 예수님에게 넘어갔으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죄가 다 사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많은 죄를 지으며 더러운 죄인으로 살아왔지만, 그 죄가 모두 깨끗하게 씻어졌다는 사실이 믿어졌다. 
이제 나는 정말 행복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셨다. 아내와 나는 기쁜소식인천교회에 다니며 말씀을 듣고 있다. 우리 가족은 지금 정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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