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수님만이 길이었던 여자
[설교] 예수님만이 길이었던 여자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0.05.0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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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호 기쁜소식
믿음에 이르는 길_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8편)

 

간음하다 잡힌 여자는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결국 범죄해 돌에 맞아 죽어야 했습니다.
이젠 자신의 의지가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여자는 죽음 앞에서 예수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이 행하는 모든 것이 악하다고, 성경은 말한다
야곱과 에서 이야기에서 에서는 ‘나는 사냥을 잘해, 사냥한 짐승을 요리해서 아버지에게 드리면 복을 받을 수 있어’ 하고 자신을 믿었습니다. 반면 야곱은 아버지 앞에 가서 복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론은 에서는 저주를 받고 야곱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멸망을 당하고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 살아온 삶입니다.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인간이 행하는 모든 것이 악뿐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 기준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남을 도운 것, 희생한 것, 봉사한 것, 열심히 일한 것 등 착하고 잘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기준이고,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사람에게 선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근본이 더럽고 추한 인간의 마음에서 나온 모든 것이 악합니다.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냐,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냐? 내가 한 것이냐, 예수님이 하신 것이냐?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이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해도 하나님 앞에 설 때 내가 한 것을 가지고 나가면 저주와 멸망뿐입니다.
우리 조상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뱀의 말을 들어 사탄에게 이끌림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의 마음은 사탄과 연결되어 인간 속에서는 사탄에게서 오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절대로 사탄을 이길 수 없기에 사탄이 넣어주는 죄의 욕구를 이길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이 포기되고,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에라야 사탄을 이기고 죄를 이기며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자신이 포기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신을 맡기면 술이나 마약이나 도박 등 어두운 삶을 끊는 것이 쉽습니다.

여자는 죽음 앞에서 예수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하다 잡힌 여자는 음란한 마음이 일어났을 때 처음에는 간음하지 않으려고 애썼을 것입니다. ‘남편 있는 내가 이러면 안 돼! 그리고 간음하다 잡히면 돌에 맞아 죽어!’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죄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제일 높고 다음이 사탄이고 그 다음이 인간이기에,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되지 않고는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없습니다. 각오하고 결심하고 노력해서는 절대로 악한 마음, 추한 마음을 이기지 못합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자는 음란한 마음이 일어날 때 간음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지 예수님을 찾지는 않았습니다. 여자는 간음하고자 하는 유혹이 찾아올 때 뿌리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결국 넘어져 간음했고, 잡혀서 돌에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이젠 자신의 각오나 의지가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여자는 돌에 맞아 죽기 위해 끌려갔습니다. 그 앞에서는 얼굴이 예뻐도 안 되고, 똑똑해도 안 되고, 돈이 많아도 안 되고, 아버지가 높은 사람이라도 안 되고, 사정해도 안 되었습니다. 어떤 길도 없었습니다. 여자는 죽음 앞에서 예수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가까이에서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내가 열심히 하면 돼’ 하고 자신이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 동안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를 도우실 길이 없습니다. 젊다는 것, 돈이 있다는 것, 잘났다는 것, 좋은 직장에 다닌다는 것들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되어서 예수님을 멀리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간음한 여자에게 자신의 길이 전부 무익한 것을 알게 하셨고, 예수님밖에는 소망이 없는 길로 이끄셨습니다. 간음한 여자가 간음하다 잡히고 싶었겠습니까? 잡히지 않으려고 했지만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이제는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손에 주먹만한 돌을 들고 여자를 따라갔습니다. 여자는 그것을 보기만 해도 두렵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오십니다.

“자매님, 사탄이 먼저 와서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가까이에 계시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외면하고 자신의 수단과 방법, 자신이 잘난 것으로 살려고 합니다. 사람은 쉽게 자신을 믿고 자신을 높입니다. 자신이 잘했다고 흐뭇해합니다. 개 사육사가 경비견을 특별히 훈련시킵니다. 도둑들이 경비견이 있는 집의 담을 넘기 전에 개를 먼저 처리합니다. 개가 좋아하는 고기에 독약을 넣어 담 너머로 던지면 개가 먹고 죽습니다. 그래서 사육사들은 주인이 아닌 사람이 주는 고기를 먹지 않도록 개를 훈련시킵니다. 개에게 “도둑이 고기를 던져주는데 거기에 독약이 들어 있어서 먹으면 죽어.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주는 고기는 먹지 마.” 이렇게 해서 알아들으면 개가 아닙니다. 그래서 사육사들이 개를 굶긴 뒤, 지나가는 사람이 슬쩍 고기를 던져줍니다. 개가 바로 고기를 콱 무는데, 그 안에 바늘이 잔뜩 들어 있어서 입안을 다 찔립니다. 사육사가 바늘을 다 빼주고 치료해 준 뒤, 다른 사람이 주는 고기는 먹으면 안 된다고 다시 설명합니다.
이번에도 개를 굶긴 후 지나가는 사람이 독한 약을 넣은 고기를 개에게 던져줍니다. 개가 지난번에 바늘에 찔린 경험이 있기에 바늘이 있는지 없는지 앞발로 고기를 눌러 봅니다. 바늘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덥석 뭅니다. 그런데 입에 넣자마자 지독한 맛이 입을 가득 채워 모든 것을 토합니다. 그렇게 열 번, 스무 번 주인이 주는 것 외에는 먹지 않을 때까지 훈련합니다.
사람이 개보다는 낫지만 그와 같이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사탄이 넣어주는 생각을 받아들여서 쉽게 자신을 믿고 자신을 높여 하나님을 등집니다. 디 엘 무디가 어느 날 설교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한 부인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답니다.
“오늘 저녁 당신의 설교가 제 마음에 은혜를 끼쳤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무디가 대답했습니다.
“자매님, 죄송하지만 한 발 늦었습니다.”
“제가 뭐가 늦었습니까? 오늘 말씀이 너무 은혜로웠다고요.”
“그러니까 한 발 늦었다고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자매님보다 사탄이 먼저 와서 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너, 오늘 설교 참 잘했다. 네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은혜를 입는다’라고요.”
더러운 죄인을 구원해 복음 전도자로 세워 주었으니 감사할 뿐인데, 하나님이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사탄이 넣어주는 생각을 덥석 물어 하나님을 등지는 길로 갑니다.

우리에게 예수님밖에는 길이 없어야 한다
간음하다 잡힌 여자가 죽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들어가기 전에는 자신을 믿는 마음 때문에 예수님이 일하실 수 없습니다. 여자가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위치에 섰을 때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하나님 앞에 서려면 자신이 무언가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십일조, 금식기도, 봉사…. 그런 것들을 잘했다고 생각하면 하나님 앞에 흐뭇한 마음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자신이 잘한 것을 의지했던 에서는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야곱처럼 잘한 것이 없는 사람은 은혜로 나아가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예수님밖에는 없어야 합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자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때 예수님이 여자를 당신 뒤에 세우고 모든 것을 처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쓰셨습니다. 예레미야 31장에 기록된 말씀대로 새 언약을 세우신 것입니다. 첫 번째 언약인 율법은 모든 사람이 어겼기에 그 법으로는 우리가 구원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새 법을 세우셨습니다. 그 법은 예레미야 31장 3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이 이 법으로 우리를 재판하십니다. “네가 죄를 지었느냐? 내가 너의 죄를 사하고 다시는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이 손가락으로 글씨를 써서 법을 새로 바꾸셨습니다. 그 후 간음한 여자를 재판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예수님이 여자에게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그리고 전에는 네가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해서 안 되었는데, 이제 나를 바라보면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자가 구원받았습니다.

예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때때로 우리 삶에 고난이나 슬픔이나 어려움을 주십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6·25전쟁 이후 우리나라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삶이 좋아지면서 사람들이 교회를 점점 떠나고 있습니다. 전에는 건물 2층에 교회가 많았는데 요즘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목사님들이 목회를 할 수 없어서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빠르게 힘을 잃고 있습니다.
요즘 신학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끌어다 대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게 배운 신학생들이 목회자가 되고, 그들 또한 성경을 믿지 않기에 성경을 이야기하기보다 자신의 생각이나 지혜를 이야기합니다. 자기 수단이나 방법으로 살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빠르게 변질되고 타락합니다.
나의 선한 것, 나의 지혜나 경험, 돈이나 내가 잘난 것, 그런 것들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 지혜로 나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고 헌금을 드린 것으로 죄를 씻지 못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선한 것, 잘한 것, 좋은 것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참된 구원자가 되어 주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탄에게 속아서 자신에게 선한 것, 잘한 것이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선을 행하라고 하고, 그렇게 해야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는 악하기에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선을 행했다 해도, 악한 자신이 보기에 선한 일을 행한 것으로 그 자체가 선이 아닙니다. 우리가 행한 모든 일에는 멸망과 저주가 따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잘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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