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치리자의 지팡이
[라이프] 치리자의 지팡이
  • 김학철(태국, 기쁜소식방콕교회 선교사)
  • 승인 2020.07.06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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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호 기쁜소식
선교사 수기_제7화

 

선교 초기에는 교회에 한 사람이라도 찾아오면 반가웠고, 기쁜 마음으로 성경공부를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속이기도 하고 교회에서 마음대로 나가기도 해 허탈할 때도 있고 분할 때도 있었다. 그때 하나님이 창세기에 나오는 ‘치리자의 지팡이’ 말씀으로 악한 내 마음과 상관없이 태국 교회를 세우시는 당신의 마음을 보여 주셨다.

 

태국에 온 지 2년 정도 되었을 때, 그동안 가정집에서 지내다 건물을 얻어서 예배당을 마련했다. 한국에서 목사님들을 초청해서 전도 집회도 갖기로 했다. 전단지와 포스터를 만들면서 무척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첫 집회를 준비했다. 그때는 교회에 거주하는 형제 자매들이 없어서 우리 가족 넷이 사람들이 붐비는 곳을 찾아 다니며 전단지를 나눠주었다.

성경공부를 하러 온 아가씨
히루는 어떤 아가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성경세미나 전부터 교회에서 거주하며 성경을 배울 수 있냐?’고 하는데, 정말 반가워서 오라고 했다. 첫날 성경공부를 하고 다음날 그 아가씨가 친구 를 집회에 초청하고는 나갔는데, 경찰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파찰랏이라는 아가씨가 거기서 숙식합니까? 아는 사람입니까?” 그 아가씨의 이름이 파찰랏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상점에서 손톱깎이와 스타킹 등을 훔치다 잡혔다면서 와서 보증을 서주면 경범죄니까 풀어주겠다고 했다. 전날 만난 아가씨라 선뜻 보증을 서주기 어려웠다. 결국 파찰랏은 교도소에 갔고, 나는 그를 잊고 지냈다.
6개월이 지나 법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파찰랏이 풀려나는데 고아라서 갈 곳이 없으니 같이 지낼 주소를 써주면 내보내겠다고 했다. 파찰랏은 나에게 마음을 바꾸었다며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파찰랏과 다시 성경공부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주소를 써주고 교회로 데리고 왔다. 2~3일 후, 파찰랏이 어느 병원에 전도할 사람이 있으니 같이 가자고 했다. 병원에 가는 방법을 설명하는데 복잡했다. 그래도 “선교사님이 그분에게 전도해 줄래요?” 하는데 기꺼이 아내와 함께 파찰랏을 따라나섰다. 병원에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병원 안으로 들어가다가 옆을 보니 파찰랏이 없었다. 사람이 많아서 서로 헤어진 줄 알고 파찰랏이 우리를 찾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한 시간 만에 나타나서 ‘그 병원 정신과에서 복용하던 약을 받아 왔다’고 했다. 기가 막혔지만, 그래도 전도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전도할 사람에게 가자고 했다. 파찰랏은 잠깐 주저하다가 우리를 병원 식당으로 데려가서 음식을 준비하는 아주머니를 가리켰다. 그분에게 가서 파찰랏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했다. 알고 보니, 약을 타기 위해 혼자 버스 타고 병원에 가는 것이 싫어서 나와 가면 택시 타고 갈 수 있으니까 나를 속여서 왔던 것이다. 화를 참을 수 없어서 “또 나를 속인 거야?” 하고 소리치자 도망가버렸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전도하지?
파찰랏이 내 마음에 미친 영향은 컸다. 생각할 때마다 화가 나고, 파찰랏뿐 아니라 태국 사람들이 다 미웠다. ‘사람을 이렇게 속일 수 있나? 이런 곳에서 어떻게 전도하지?’ 전도할 힘이 나지 않았다. 이삼 일이 지나 전화가 걸려 왔다. “여기 장례 치르는 곳인데요, 파찰랏 알아요?” 순간 전화기를 떨어뜨렸다. 파찰랏이 자살했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다. 선교사가 아니라 살인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너무 고통스러워서 며칠 잠을 설쳤다.
그렇게 사오 일이 지났을 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파찰랏이었다. “너, 안 죽었어? 어디야? 빨리 와!” 살아 있다는 것이 한없이 감사했다. 파찰랏이 교회로 돌아오자 왜 그랬냐고 물었다. “선교사님이 너무 미워서 어떤 아저씨한테 전화하라고 시켰어요. 내가 자살한 것처럼 꾸며서 선교사님 애먹이려고요.” 지치고 질려서 파찰랏의 얼굴도 보기 싫었다. 태국을 떠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정식으로 준비한 첫 번째 집회에서 그런 일을 겪어 낙심했다. 그래도 하나님이 마음을 풀어 주셔서 파찰랏과 한 달 넘게 교회에서 지냈다. 파찰랏은 복음을 듣고 정신이 많이 좋아져서 취직도 하고, 점점 안정된 생활을 했다. 그런데 살 만하니까 어느 날 도망가버렸다. 파찰랏이 바뀌었다며 감사하던 마음이 그만큼 씁쓸한 마음으로 바뀌었고, 서글펐다.

 

부유해 보였던 청년 엑
그 후에 ‘엑’이라는 청년이 집회 전단지를 보고 찾아왔다. 엑은 말기 암 환자라고 했다. 몸은 항상 힘없이 축 처져 있었고, 어느 날에는 화장실에서 피를 토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성도가 얼마 되지 않아 한 사람이 정말 소중했기에, 모두 마음을 쏟아 그를 위해서 기도했다. 일주일 동안 밤늦게까지 엑을 위해 기도했는데, 그의 몸이 말끔히 나았다. 엑이 건강해져서 우리 모두 기뻤다. 엑은 가진 돈은 없어 보이는데, 집안이 부유한지 어디 나갔다 오면 돼지고기 꼬치, 닭구이 꼬치 등을 사다 주었다. 휴대폰이 굉장히 귀하고 비싼 시절이었는데, 최신 휴대폰을 들고 다녔다. 그런데 한번씩 사라졌다가 2~3주 후에 나타나면, 몸 이곳저곳이 멍들어 있었다. 집에서 불상 만드는 일을 하는데, 자기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니까 아버지가 때리고 감금시킨 것을 도망쳐 나왔다고 했다. ‘태국에도 복음을 위해 이렇게 핍박을 받는 사람이 있구나’ 하면서 엑이 선교학생이 되어 복음을 위해 살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하루는 엑이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할머니가 중국계 사람이어서 전세기를 타고 온 가족이 중국에 장례를 치르러 갔다 온다’고 했다. 그래서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고, 창문에서 내려다보니 엑이 탄 택시가 공항 반대 방향으로 갔다. 엑은 3일 만에 돌아왔다. 잘되었다고 하며 엑의 형수에게 복음을 전하러 가자고 했는데, 그 뒤로는 연락이 끊어지고 교회에도 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엑이 들고 있던 최신 휴대폰은 우리 교회에 나오던 아가씨가 사 준 것이었다. 엑을 좋아한 그 아가씨가 휴대폰도 사주고 요금도 내주며 교회에 나오라고 했던 것이다. 엑은 부자로 보이게 하려고 그 아가씨에게 받은 돈으로 음식들도 사왔던 것이다. 휴대폰 번호를 추적해서 집에 찾아가, 빈민가의 허름한 집에서 그의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엄마는 “엑, 그놈은 십대 때 집을 나가서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아요.”라고 했다. 엑이 청소년 시절에 가출해서 길거리에서 패싸움이나 하고 다니는 건달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다. 싸우다 맞아서 멍이 든 것을 아버지에게 맞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거짓말했던 것이다. 그 후에 엑은 교회에 다시 찾아오기도 했지만 철저히 돈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 차례 크게 소동이 일어난 후에는 교회에 오지 않았다.

치리자의 지팡이가 떠나지 아니하리라
사람들에게 속임을 당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황당한 일들을 맞닥뜨릴 때마다 내 마음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들이 가로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가하니이까?”(창 34:31)
시므온과 레위가 자신들의 여동생 디나가 세겜 족속의 족장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자, 세겜의 남자들을 다 죽여버렸다. 내 마음이 시므온과 레위가 품었던 마음과 같았다. 파찰랏이 나를 속였을 때, 나는 마음에서 내 혈기를 따라 그를 죽였던 것이다. 파찰랏이 진짜 자살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이 나에게 ‘네가 그렇게 했다’고 보여 주시는 것 같았다. ‘네가 혈기로 파찰랏을 죽이는구나. 하나님이 없으면 네가 결국에는 혈기로 사람들을 죽이는 사람이 되고 마는 거야.’
처음에는 내가 그런 사람들을 품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교회에 데리고 있으면서 성경을 가르쳤지만, 결국 나는 그들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파찰랏이나 엑을 마음으로 품어 주고 교 제해 믿음을 세워줄 만한 힘이 나에게는 없었다.
시므온과 레위가 자신들이 세겜 사람들보다 의롭다고 생각하니까 ‘아니, 누이를 강간한 놈이 사는 세겜 땅 사람들을 죽인 게 무슨 잘못이야?’라고 여겼다. 나도 ‘저놈이 나를 이렇게 속이고 교회도 속이고 온갖 거짓말로 이야기하는데, 미운 게 당연하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파찰랏이나 엑보다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롬 2:1~2)
나도 하나님이 없었던 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도 그들을 마음으로는 죽이고 있었던 살인자였다. 그런 사람들이 지능적으로 나를 속일 때 나는 그들을 이길 만한 지혜가 없으니까 미운 감정, 분한 마음을 쏟아냈다. 그 괴로움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성경을 읽던 중에 하나님이 창세기에 나오는 이 말씀을 보여 주셨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창 49:8)
유다도 다른 형제들처럼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해서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았던 사람이다. 유다가 시므온이나 레위보다 믿음이 좋았던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그가 다른 형제들보다 착해서 복을 받은 것이 아니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 49:10)
이 구절에서 말씀하기를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수없이 넘어져도 치리자의 지팡이가 유다에게 있어서 유다를 붙들어 주는 것이다. 나도 속임을 당하면서 내 감정에 휘말려 넘어지고 또 넘어졌다. 만약 치리자의 지팡이가 거기서 나를 건져주지 않는다면, 나는 감정을 따라 사람들을 판단하고 혈기대로 죽이는 일을 하다가 결국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다의 아버지 야곱에게도 마음에 저주가 찾아왔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가 받아야 할 저주가 있다면 어머니 리브가가 대신 받겠다고 하였고, 야곱은 그것을 믿었다. 야곱은 이 마음을 아들인 유다에게도 가르쳐 주었다. 유다는 아버지가 전해준 말을, 그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저주는 예수님이 다 받으시는 것이고, 예수님이 이미 받으셨다.
예수님이 저주를 받으시지 않았다면 나는 태국에서 선교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탄이 수없이 간교한 사람들을 붙여서 내 마음을 거기 휩쓸리게 만들었다. 내 안에서 미움과 저주가 일어날 수밖에 없게 했다. 내가 미워했던 사람들과 똑같은 나도 저주를 받아야 할 똑같은 인간이지만 그 저주를 예수님이 받으셨다. 나는 생각에 쉽게 빠지고, 분함에 빠지고, 미움에 빠지고, 좋지 않은 마음 들에 수없이 빠져 넘어졌지만, 치리자의 지팡이가 내 발 사이에 있었다. 그 사실로 인해 하나님을 항하여 감사한 마음, 예수님 앞에서 감사한 마음이 내 마음에 가득 찰 때, 미움이나 시기나 고통 같은 것들이 다 사라지고 사자와 같은 힘이 생겨서 어떤 절망에서도 일어날 수 있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창 49:22)
이 말씀을 보면서 마음에 소망이 일어났다. 담을 넘는 샘 곁의 무성한 가지처럼 태국 교회가 어려움을 넘고 문제를 뛰어넘어 성장하는 교회가 되겠다는 마음이 일어났다.

렉 집사님과 껍 형제
파찰랏과 엑 이야기는, 선교 초기인 20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때 하나님이 창세기 49장 말씀을 내 마음에 심어주셨는데, 그 후로 이런저런 일들이 생길 때마다 이 말씀으로 이길 수 있었고 절망 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현재 우리 교회의 집사님으로 일하는 ‘렉’이 구원받은 일이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아무리 상담을 하고 복음을 여러 번 전해도 예수님이 우리 죄를 씻으셨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지 못했다. 그런데 집회 때 한국에서 오신 강사 목사님과 개인 상담을 하면서 잠깐 사이에 복음이 마음에 임해서 죄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았다.
또 한 사람, 굿뉴스코 해외봉사를 다녀와서 구원받은 ‘껍’이라는 청년이 있다. 구원받고 한동안 신앙생활을 하다가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서 마약을 하며 방탕하게 지냈다. 그 형제를 믿음으로 정말 여러 번 교제하고 마음을 쏟았지만, 나중에는 교회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 박옥수 목사님이 학생들에게 하셨던 “여러 분은 이 세상을 비추는 별이에요.”라는 이야기를 껍 형제에게 그대로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창 49:11~12)라는 말씀을 보여준 후, 이렇게 말했다.
“껍아, 너는 나귀야. 그런데 포도나무에 매이는 나귀야. 네가 나귀일지라도 예수님의 손에 잡혀 쓰임 받는 사람이 될 거야. 너의 눈은 기쁨의 포도주로 붉을 것이고, 너의 입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희어질 거야.”
껍 형제가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지금 껍은 목회자가 되어 치앙라이 교회에서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고 있다. 
나 혼자 힘으로 사역할 때에는 형제 자매들이 믿음에 서지 못하고 넘어지고 절망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교회에 흐르는 주님의 마음을 끌어와서 형제 자매들에게 흘려줄 때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보았다. 내가 어둠 속에 있을 때마다 치리자의 지팡이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박옥수 목사님의 말씀 테이프를 듣고, 수양회 말씀 테이프를 듣고, 월간<기쁜소식>을 읽으면 내 마음에 새 힘이 들어와서 절망에서 벗어나 계속 선교할 수 있었다. 목회는 인간의 의지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 마음으로 목회한다면 나는 태국 사람들을 다 죽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 믿음의 터인 한국 교회에 흐르는 주님의 마음이 나를 잡아 일으켰고, 나는 그 힘에 사로잡혀 선교사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내 삶 속에 이 하나님이 나와 언제나 함께 계셔서 정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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