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진리의 말씀을 만나고, 말씀 안에 서다
[라이프] 진리의 말씀을 만나고, 말씀 안에 서다
  • 글 | 임광균(기쁜소식동서울교회)
  • 승인 2020.08.05 2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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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호 기쁜소식
보배와 질그릇

20여 년 동안 장로교회에 다니며,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강도 만난 자를 살려준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 줄 알았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만났고, 그 책이 진리의 말씀에게로 그를 인도했다.

나는 올해 3월에 구원받았다. 단 몇 개월 동안 하나님이 나와 가족을 인도하신 것을 생각하면 너무 놀랍고 감사하다. 내가 박옥수 목사님에 대해 알게 된 것은 2019년 9월 목사님의 마인드교육 서적 가운데 <마음밭에 서서>를 읽으면서부터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안타깝게도 게임에 중독되거나 분명한 목적성이 없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곤 한다. 지도교수로서 학업 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을 만나 상담할 때마다 늘 마음속에 ‘지식을 전달할 때는 참 쉽고 편한데 상담은 왜 이리 어색하고 힘든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을 만나 상담하면 할수록 늘 미안한 마음이 커져 갔다. 그들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지만 결국 “네가 열심히 해야 해. 네가 열심히 계획을 세워서 부지런히 하면 네 선배들처럼 잘될 수 있어!”라는 말뿐이었다. ‘내가 해주는 말이 학생들에게 공허한 메아리가 되는 건 아닐까?’ ‘나이 많다고 얘기하는 뻔한 꼰대이지는 않았을까?’ 이런 답답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마음에 관한 책을 처음 접하고 응용해 보다
‘학생들에게 이렇게 상담해 주면 안 되겠다. 그들에게 마음을 바꾸는 이야기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처음 찾은 책이 바로 <마음밭에 서서>였다. 책을 구입해 읽으면서 무척 감동적이었다. 특히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사람들에게 어렵고 슬프고 아픈 일이 있을 때 그 상황을 보고 그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감사로 채우라는 말씀이었다. 이 책 외에도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 <내 안에 있는 나 아닌 나>를 계속 읽었다.
학생들과 상담할 때 이제는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방법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그들의 마음이 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학생들과 상담할 때 감사 목록부터 작성해 보기 시작했다. 감사 목록은 나 자신이 얼마나 감사를 모르며 살아왔는지를 새삼 알게 하였고, 그걸 토대로 학생들과 마음이 조금씩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박옥수 목사님은 나에게 좋은 상담 방법을 알려준 고마운 저자였다.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장에서 저자를 처음 만나다
작년 12월 어느 날, 아내가 아는 분에게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 표를 받았다며 공연을 보러 가자고 했다. 다니던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때마다
성가대원들이 준비한 공연을 보았던 생각에 그리 큰 기대 없이 따라나섰다. 그러나 공연의 규모와 마음을 움직이는 압도적인 감동이 공연 내내 계속되었다. 공연 후반부에 들어설 즈음 깜짝 놀란 것이, 이름이 낯익은 분이 무대에 등장했다. ‘어? 저분은 누구시지? 내가 읽었던 책의 저자 중 한 분인데 여기서 말씀을 전하시네?’ 바로 박옥수 목사님이 나와서 성탄 메시지를 전하신 것이다.
나에게 그분은 목회자 이전에 좋은 책의 저자였기 때문에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너무 반가워서 목사님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나 나는 20여 년 동안 장로교회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 한편에 방패를 세우고 말했다. “목사님, 저는 다른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목사님 책들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지난 해 12월 우연히 저자와의 짧은 첫 만남을 가졌다.

재발한 아내의 탈모, 그런데 잘된 거래!
올해 2월 초, 새 책 한 권이 거실에 며칠째 놓여 있었다. 그 무렵 아내는 심한 탈모증세가 다시 반복되어 마음에 우울함이 가득했던 시기로, 같은 교회에 다니던 자매와 새로운 몇 분을 틈틈이 만나 신앙의 교제를 하고 있었다. 그분들을 만나고 올 때면 아내는 “자기야, 그분들은 내가 머리 빠진 게 잘된 거래. 나는 이해가 안 돼.”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나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걸 통해 믿음을 키우라는 얘기겠다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여보, 이게 무슨 책이에요?”
“응, 요즘 만나는 분이 준 거예요!”
“그래?”
거실에 놓여 있던 책의 표지를 보니 저자가 박옥수 목사님으로, 제목이 <나는 이렇게 죄에서 벗어났다>였다.

죄 사함? 내가 받고 싶은 건데…
‘나는 이렇게 죄에서 벗어났다? 죄 사함은 내가 받고 싶은 것 중 하나인데?’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목사님의 마인드 서적을 이미 여러 권 읽었기에 이 책도 믿을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책을 읽을수록 내용에 점점 빠져들어 갔다. ‘이 말씀이 진짜일까?’라는 의구심이 들어서 성경을 직접 찾아가며 읽어 내려갔다. 내 마음에 특별히 남은 말씀은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강도 만난 자의 이야기였다. 내가 20여 년 간 장로교회에 다니면서 배운 강도 만난 자에 대한 말씀은 ‘우리는 강도 만난 자를 살려주고 보살펴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사마리아인처럼 못 하는데…. 내가 어떻게 그 사람처럼 할 수 있지?’
그런데 박 목사님은 전혀 다르게 말씀하고 계셨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이고, 강도 만난 자가 나라는 것! 완전히 다른 관점의 해석이었고, 이 말씀이 내 마음에 더 이상 족쇄가 아닌 은혜의 말씀으로 와 닿았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왜 그토록 성경을 나의 행위 관점에서만 바라봤지? 똑같은 말씀을 왜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지? 내가 지금 제대로 믿고는 있는 건가?’와 같은 질문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져왔다. 그렇게 이 책을 여러 번 읽으며 내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기쁜소식선교회와 연결되다
아내와 죄 사함에 관한 책과 성경 말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박옥수 목사님은 분명 뭔가 다른 게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부는 2월 말부터 기쁜소식동서울교회의 목사님과 만나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책을 보면서 생긴 죄 사함에 대한 심증이 성경 말씀을 배우면서 점점 확증으로 바뀌어 갔다. 처음 말씀을 배울 때 ‘여느 이단에서와 같이 특정 말씀에 국한해서 과대 해석하고 왜곡하는 부분은 없을까?’라는 마음의 판단이 나름 있었다. ‘나는 항상 죄인이어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을 내가 열심히 해야 그나마 복을 받지!’라는 굳건한 나만의 신앙의 틀은, 목사님이 종종 던지는 다음 질문에 여지없이 무너져버렸다.
“성경을 믿을래요, 아니면 형제님 생각을 믿을래요?”
‘그래! 내 생각이었구나.’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성경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으면 되는데 왜 그렇게 하지 못했던 걸까?

아, 말씀이 이렇게 쉽고 논리적이었구나!
내가 주로 하는 일은, 데이터를 분석하여 거기에서 문제점과 현상을 찾고 그에 합당한 논리적 결론을 내서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즉, 어떤 연구에서 도출한 결론이 충분한 논리성이 있는가의 여부는 그것을 평가할 때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내 신앙생활에서 마음의 결론은 늘 ‘착하게 살고 교회에서 봉사도 잘하고 신앙생활을 잘하면 복을 받을 수 있어’였다. 그래서 그 결론에 맞게 교회에서 봉사도 열심히 하고 착하게 살고자 노력하였으며, 때로 눈물을 쏟으며 기도했다. 그럴 때는 신앙생활이 잘 된다는 생각 속에 있다가도 다시 죄인이 되어 낙담하는 상태로 되돌아가곤 했다. 무턱대고 내 감정과 내 노력에 따른 행위의 결론만 바라보니 신앙이 될 리 없었고, 틀렸을 때 바로잡아줄 튼튼한 믿음의 줄기 즉, 논리성이 없었다.
그런데 로마서 3장, 이사야 53장, 히브리서 9~10장을 보니 너무나도 논리적이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으며, 하나님이 나의 모든 죄를 예수님에게 담당시키셨는데 조금씩 여러 번에 걸쳐서가 아닌 한 번에 영원히 담당시키셨고, 하나님이 나를 거룩하고 영원히 온전케 하셔서 이것을 믿을 때 나를 의인이라 부른다고 약속하셨다. 또 그 증거로 내게 성령을 주시고, 이 새로운 약속은 더 이상 문서가 아닌 내 마음과 생각에 기록하겠다고 하셨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내가 당신의 눈치 볼 것을 미리 아시고 심지어 내 죄를 다시는 기억조차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래, 이제는 내가 담대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곧게 세워졌다. ‘믿음이 이렇게 쉽고 논리적이었음을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구원은 성경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만 받는 것이었다. 누가 나에게 구원받은 증거를 대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이러한 논리적인 말씀들이라고 할 것이다.

이왕이면 처음부터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분을 만나게 해주세요
20여 년 동안 교회에 다니면서 한 가지 부끄러운 것이 있었다. 제대로 된 전도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이다. 믿음의 줄기(논리성)가 없었으니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무턱대고 믿으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에게 교회에 다니라고 권하는 것은 스스로도 자신감이 없었을 뿐 아니라 그저 ‘입바른 소리겠구나’라는 생각뿐이었다. 그 사실이 무척 부끄러웠다. 반면 아내는 이야기를 잘하는 성격이라 전도를 많이 해, 아내와 비교하면 더 그러했다. 아내가 나를 전도해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으니 전도하는 그녀의 적극성은 참 부러웠다.
그런데 구원받고 나니 나도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기쁜소식동서울교회에서 두 달 가량 성경공부를 하고 나서, 3주가 안 되는 시간 동안 내 인생에서 한 번도 겪지 않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전도할 마음이 들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이왕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면 처음부터 전도하기 어려운 분을 만나게 해주세요.”
며칠이 안 되어 내가 전에 나가던 교회의 한 목사님을 만났다. 그 목사님 부부는 결혼한 지 10년이 되어가지만 아직 아이가 없다. 목사님은 고등부 담당 교역자로 나는 부장으로 2년 이상 같이 지내며 매우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모님이 자궁암으로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목사님은 사무엘하 12장에서 밧세바가 다윗을 통해 낳은 첫 번째 아이가 죽는 이야기를 하며, 다윗이 기도해도 들어주지 않았던 것처럼 자신에게도 아이가 생기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자신과 가까운 장로님이 기도 중에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고 그것을 굳게 믿고 계시다니….’ 나는 목사님에게 담대하게 이야기했다.
“왜 같은 장에 있는 14절 말씀은 안 보세요?”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 하고”
“아이가 죽은 것은 다윗 왕에게 비난거리를 미리 없애기 위함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밧세바를 통해서 솔로몬 왕이 태어나게 하셨겠어요? 목사님, 죄 가운데 태어나 죽은 아이를 보지 말고 솔로몬을 보세요. 목사님이 솔로몬을 바라보시면 1년 안에 아이가 생길 거라는 믿음이 제게 있어요.”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 같다는 믿음이 마음에서 일어났다. 이야기를 마치고 목사님께 <나는 이렇게 죄에서 벗어났다>를 드렸다. 그분과 계속 교제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계속 인도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

장모님이 남기신 축복
나의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내 마음에 가시 같은 분이 있다. 늘 술에 취해 있고, 당신의 의가 누구보다도 강해 고집이 세신 장인어른이다. 관계가 어렵다 보니 말다툼도 일어나고 심하게 감정 상할 일들이 자주 일어나곤 했다. 우리가 결혼할 즈음 장인어른은 재혼하셨고, 착한 장모님은 늘 그런 고통을 말없이 감내하셨다.
그러던 중 지난해 초 장모님이 유방암 말기 진단을 받고, 오랜 투병생활을 하신 후 올해 5월에 소천하셨다. 놀라운 일은, 우리 부부가 구원받으면서 장모님이 돌아가시기 1주일 전에 복음을 듣고 돌아가셨다. 장모님을 구원하려고 하나님이 우리 부부에게 먼저 찾아오신 것을 생각하니 너무 감사했다. 기쁜소식전주교회 목사님을 통해 병상에서 1주일 동안 복음을 들으셨고, 장인어른도 자연스럽게 복음을 듣는 기회가 되었다.
장인어른은 종손으로 조상을 모시는 가례에 대하여는 그 누구보다도 자부심이 대단하시다. 그러니까 모든 장례 절차를 예배로 시작해서 예배로 끝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남원의 장지에서조차 입관예배로 모든 장례 절차가 잘 마무리되었다. 장례를 통해 장인어른이 기쁜소식남원교회의 목사님과 알게 되어 마음을 열고 교제를 이어가고 계신다. 기쁜소식전주교회에서 가진 전주 지역 연합 장년회에도 참석해 기쁜소식전주교회 목사님과도 다시 상담하셨다고 한다. 교회와 연결되니 장인어른도 죄 사함을 받고, 지금은 기쁜소식남원교회에 나가며 말씀으로 양육을 받고 계신다. 장모님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장인어른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우리 부부에게 큰 간증이 되었다.

제가 오히려 힐링을 받았습니다
장모님 장례 기간에 전담 장례지도사가 여러 절차들을 잘 처리해 주었다. 젊은 청년이 일을 아주 깔끔하게 처리하는 모습에 감동이 있었던 터라 얘기도 나눌 겸 남원 장지로 내려가는 길에 그를 내 옆에 앉게 했다. 나와 아내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예수님과 죄 사함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장례를 마무리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다시 그와 성경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장지로 내려갈 때는 장례지도사로서의 직업적인 자세가 가득해서 마음을 쉽게 열지 않았다면, 올라오는 길에는 그의 마음이 완전히 무장해제 된 듯 보였다. 그는 1년 전에 형이 자살했다고 했다. 형의 극단적인 선택은 자기로 기인해서 자신은 그 죄를 평생 안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말씀을 나누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히 10:17)

서울에 도착하여 그가 말했다.
“원래 제 역할이 유족들을 힐링하는 것인데 오히려 제가 유족들에게 힐링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며칠 후 나는 그에게 <나는 이렇게 죄에서 벗어났다>를 보냈다. 그와 계속 교제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

유사품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
세상 물건도 유사품과 진품을 구별하는 데 꽤나 많은 시간을 들인다. 장로교회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지만, 이렇게 짧은 몇 개월 동안 하나님이 일해주신 놀라운 경험은 처음이다.
첫째는, 2개월 정도 책을 읽고 교제하는 동안 하나님이 진품과 유사품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다. 이제 내가 진품에 속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인생의 끝자락이나 큰 어려움 속에 있지 않을 때 죄 사함을 받았으니 감격스럽고 행복하지 않은가! 둘째는, 세 자녀의 가장으로 우리 부부가 참된 복음을 만나 가정이 복음으로 정확히 세워진 것이다. 안개 속이 아닌 밝은 햇살 아래서 주님을 바라보니, 내 생각이나 형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놋뱀을 바라보았듯이 나도 예수님을 볼 수 있는 지혜를 주셨다. 마지막으로, 성경 말씀이 달기 시작했다. 죄 사함을 알고 난 후 성경 말씀의 뜻이 쉽게 풀어져서 마치 사이다 같은 시원함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이처럼 짧은 몇 달 동안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많은 축복을 주셨다. 앞으로 우리 가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에 소망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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