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마침내 찾은 아메리칸드림
[라이프] 마침내 찾은 아메리칸드림
  • 글 | 프린스 죠셉 도(미국 기쁜소식포트웨인교회)
  • 승인 2020.09.1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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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호 기쁜소식
보배와 질그릇

미얀마 난민촌에서 자란 프린스 죠셉 도. 열악한 환경을 벗어나고자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미국에 이민하지만, 곧 길을 잃고 말았다. 공허한 마음을 문신으로 위로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인생에 찾아와 진정한 아메리칸드림을 선물하셨다.

 

1997년, 미얀마의 수많은 소수민족 사람들은 군사 정권의 핍박을 피해 어머니의 땅을 떠나야 했다. 미얀마는 100개가 넘는 소수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인데, 그 가운데 카렌 부족 마을은 매년 미얀마 군대의 공격을 받았다. 마을 전체가 불타기 때문에 대부분 태국 국경 지역에 형성된 열두 곳의 난민촌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우리 부모님도 그렇게 난민촌에 정착하셨다. 난민촌에서는 대나무로 집을 짓고 살았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도 없어서 외부 세상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먹을 물을 얻기 위해 집에서 먼 강까지 걸어가야 했고,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열악했다.
나는 난민촌에서 4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아침부터 늦게까지 뜨거운 햇볕 아래서 일하셨고, 우리는 종일 부모님을 기다렸다. 난민촌에서의 삶에는 소망이 없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난민촌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 캐나다, 호주 같은 선진국에 가서 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난민촌마다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민을 하려면 최소 10년이 걸렸다. 이민은 단지 꿈일 뿐인 경우가 많았다.

난민촌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아메리칸드림
2006년, 난민촌에서 산 지 9년 반 만에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문이 열렸다.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때 나는 열 살이었다.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미국에서의 삶은 난민촌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물을 구하려고 더는 먼 길을 걸어갈 필요가 없었다. 물을 마시고 싶으면 수도꼭지만 틀면 되고, 불을 켜려면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었다. 좋은 집과 멋진 자동차, 풍부한 먹거리 등 미국에서의 삶은 모든 것이 편리하고 풍족했다.
다른 이민자들처럼 우리도 새로운 나라에서 이루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아메리칸드림은 오래가지 못했다. 외형적으로는 모든 것이 풍부했지만 내 마음은 점점 더 공허해졌다. 내 주위에 있는 학생들은 꿈이 있고 의사나 선생님, 엔지니어 등이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난 왜 사는 거지? 왜 돈을 많이 벌어야 하지? 인생을 사느라고 에너지를 낭비하는 이유가 뭐지? 인생의 결국은 죽음인데. 미국에 와서 학교에 가고 대학에 들어가고 직장을 잡고 가정을 이루고 계속 일하다가 나중에는 죽잖아.’ 이런 생각들 때문에 나는 공부에 관심이 없고, 내 인생에도 관심이 없었다. 세상에 대해 흥미가 없었다.
나는 죄를 짓기 시작했다. 죄는 점점 커지고 자라서 나 자신을 붙들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나는 열세 살 때부터 문신을 하기 시작했다. 온종일 문신을 하고 있으면 공허함이 채워지는 것 같고 마음이 평화로웠다. 나는 목과 팔과 등에 내 인생을 그려 넣었다. 난민촌에서의 기억부터 내 마음의 선과 악의 갈등, 인생에 대한 의문, 장미와 날개, 가족의 이름 등등.
나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기에 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어느 날부터 나는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나의 죄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지칠 줄 모르고 인터넷을 검색했다. ‘어떻게 하면 내 죄를 해결할 수 있지? 어떻게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 그 답을 찾으려고 했다. 만족스러운 답은 없었지만 찾은 방법을 내 삶에 적용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내 마음에는 여전히 죄가 남아 있었다. 좋은 일을 하면 기분이 좋고 나쁜 일을 하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좀 더 부지런해지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하면 마음이 가벼울 수 있었다. 이것이 나의 영적 생활이었다. 나는 죄와 싸우고 또 싸우고 또 싸우기를 반복했다.

처음 들은 말 ‘구원, 복음’
2013년, 고등학교 졸업반일 때 댈러스에서 가진 겨울캠프에 참석했다. 이미 구원받고 기쁜소식포트웨인교회에 다니고 계셨던 고모님이 우리를 초대한 것이다. 나는 별다른 기대 없이 사촌들과 함께 참석했다. 캠프에서 나는
‘구원, 복음’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첫날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
“그게 뭔데요? 그걸 어떻게 받는 거지요?”
선생님은 우리를 구원과 복음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곳에서 말씀을 듣게 해주셨다. 3일 동안 오전 시간에 말씀을 들었다. 강사 목사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 두 가지만 기억에 남았다. 첫 번째는, ‘아시아 사람이 아프리카 사람이 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죄인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였다. 두 번째는, 마지막 날 목사님이 성경을 펴서 보여주신 요한복음 1장 29절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말씀이었다. 캠프에서 지낸 며칠 동안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죄를 어떻게 가져가셨는지에 대해 배웠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내 죄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캠프를 마쳤다.

2014년 여름, 마침내 진리를 알게 되었다
2014년에는 월드캠프에 초대를 받았다. 3일 동안 죄 사함에 대한 강의를 다시 들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이 나의 눈을 띄워주셨다. 나는 너무 기뻤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어떻게 씻어주셨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내가 죄인이 된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었다. 아담으로 말미암았고, 또한 내가 한 일이 아니라 예수님의 순종을 통해 나는 영원히 의롭게 되었다. 말씀은 내 모습과 상관이 없었다. 믿거나 말거나 나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가 다 이미 2천 년 전에 끝난 것이었다.
이사야 53장에서도 이 사실을 말씀하고 있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4~5)
내 평생에 나를 거룩하다거나 의롭다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역시 나 자신을 거룩하다거나 의롭다고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나는 내 눈으로 나 자신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를 의롭고 거룩하고 완전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 때문이었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판단이었다. 나와 세상의 판단이 아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롬 8:33)
살아 있는 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전과 전혀 다른 하루를 살 수 있는 소망을 주었다. 또한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마음과 몸이 매우 가벼워졌다. 나는 마침내 진리를 알게 되었고 이 진리가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캠프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친구들과 가족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 소중한 복음을 위해 살고 싶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예수님의 제자라고 불릴 자격이 없어’
2015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회의 인도로 기쁜소식인디애나폴리스교회에서 신앙생활을 배우기 시작했다. 교회가 기뻐하는 일에 함께했고, 내 마음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선교사님이 나를 이끌어 주셨다. 그러나 교회에 3년 가량 있는 동안 나는 교회와 목사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게다가 일이 어렵거나 내 마음에 맞지 않을 때마다 늘 도망치고 싶었다. 교회가 이끌어주려 했던 길을 항상 피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죄와 유혹에 빠졌다. 네 번이나 교회를 나갔다가 돌아왔다. 내가 보기에 나는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2017년 그라시아스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칸타타 북미 순회공연’이 시작되었고, 나는 공연 준비를 마치고 교회를 떠나기로 했다. 하나님은 내가 교회에서 영적인 삶을 배우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복음을 위해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내 마음이 힘을 잃어갔다. ‘나는 예수님의 제자라고 불릴 자격이 없어’라고 결론을 짓고 망설임 없이 교회를 떠났다.

 

매일 밤 두려움 가운데 잠을 잤다
교회를 나온 뒤 여느 세상 사람들처럼 살았다. 대학에 들어갔고, 직장을 구하고 내게 주어진 삶에 충실했다. 나는 500권이 넘는 책을 사서 읽으며 공부했다. 나는 점점 세상과 돈에 빠져들었다. 그리 오래지 않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그 삶이 내게 불안과 공허함을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매일 밤 두려움 가운데 잠을 잤고 매일 아침 절망 가운데 잠을 깼다. 교회에서 배운 것처럼 내 마음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지만 내 마음을 치료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19년 2월, 나는 혼자 차를 몰고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캘리포니아로 갔다.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서 도망치고 싶었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 LA에 도착했을 때 한 패스트푸드 식당 앞에서 열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돈을 구걸하는 것을 보았다. 깜짝 놀랐다. ‘LA라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할 줄 알았는데 여기 있는 소년은 왜 음식과 돈을 구걸하고 있는 것일까?’ 순간 내 마음을 계속 좇아가면 나도 분명히 그 소년처럼 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다시 LA를 떠났다.
나는 네브래스카의 오마하로 갔고, 그곳에서 두 달 동안 머물렀다. 돈을 많이 벌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고 평화도 안식도 없었다. 교회를 떠난 후부터 그때까지 교회에 있는 누구와도 연락한 적이 없고, 기도도 하지 않고, 성경도 읽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내 마음은 교회로 향했다.

나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복음이었다
4월이었다. 마음이 너무 피곤하고 불안해 더 참을 수가 없어서 인디애나폴리스교회 목사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목사님은 뉴욕에서 성경 세미나를 준비하고 계셨다.
“목사님, 아직도 저를 위해 기도하세요?”
“네가 교회를 떠난 후부터 지금까지 너를 위한 기도는 멈추지 않았어. 지금 어디에 있니?”
그 문자를 보는 순간 교회로 돌아갈 힘이 생겼다.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마하에서 뉴욕까지 차를 몰고 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교회가 내 삶을 이끌어주고 있다.
그해 여름 스프링필드에서 가진 여름캠프에 갔을 때, 포트웨인교회의 타이 목사님이 몇몇 청년들에게 이렇게 교제해 주셨다. “여러분은 선교 학생이니 항상 복음 전할 준비를 하세요.”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이제 막 교회로 돌아왔을 뿐인데 어떻게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선교 학생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목사님께 물었다.
“목사님, 제가 어떻게 누군가를 인도하고 교회를 인도할 수 있을까요? 저 역시 고통을 받을 거예요.”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프린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니? 하나님께서 너를 선교 학생으로 세우신다면, 그것을 이행하실 분은 하나님이야. 왜냐하면 하나님이 정하신 것은 하나님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이야. 하나님께서 너를 인도하실 거야. 너를 변화시키는 일은 바로 그분의 일이니까.”
목사님과 교제를 갖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후 마음이 어려울 때면 그때 나누었던 교제가 나에게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 안에 서 있을 수 있는 힘을 주었다.
9월에는 그라시아스합창단이 다시 ‘크리스마스 칸타타 북미 순회공연’을 시작했다. 포트웨인에서도 공연하기에 교회 형제들과 나는 공연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기뻤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들을 공연에 초청할 ‘이웃에게’ 편지를 준비하고 집마다 전달하며 몸은 피곤했지만 많은 사람이 합창단의 노래와 복음을 들을 것을 생각하면 너무 소망스러웠다.
내가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어둠과 절망에 빠졌는데, 나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복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인생을 복음을 위해 드리고 싶었다.

열째마다 여호와의 거룩한 것이 되리니
2020년 1월, 형의 결혼식이 있어서 타이 목사님 가족과 함께 미얀마에 갔을 때 김대인 선교사님이 레위기 27장 32절 말씀으로 교제해 주셨다.
“소나 양의 십분 일은 막대기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째마다 여호와의 거룩한 것이 되리니”(레 27:32)
선교사님은 막대기 아래로 통과하는 열 번째 소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그 소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가장 쓸모없는 존재라는 뜻이라고 하셨다. 주인도 쓸 수 없고 부모도 쓸 수 없고 세상도 쓸 수 없는 소, 그러나 그 소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해 택하신 것이라고 했다. 내 모습이 그러했다. 나는 나 자신뿐 아니라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그런 나를 택하셨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고, 그 구원 안에 나에 대한 계획도 있었다.
하나님은 이미 내 인생의 주인이셨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당신이 원하는 도구로 나를 쓰실 것이다. 당신의 약속을 이루고 나를 인도할 모든 책임이 하나님께 있었다. 또한 주님은 약속을 잊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리고 약속하신 것을 이루는 것이 주의 일이라고 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 55:11)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인 것을 알게 해주고 싶으셨다
올 3월에 있을 예정이었던 CLF를 준비하며 성경을 읽는 동안 나는 이 소명을 받았다.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그동안 이 말씀을 수없이 읽었지만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적이 없었는데 그때 이 말씀이 내게 말했다.
“프린스, 너는 내가 선택한 그릇이야. 내가 너를 사용할 거야. 나는 너를 통해 영광을 받을 거야. 나는 이미 너를 선택했어. 나는 너를 통해 일할 거야. 담대하게 말해. 앞으로 나가. 구원을 베푼 이가 바로 나야. 누가복음 1장에서 말하듯이 너는 복음의 증인이 될 거야.”
구원받고 처음에는 교회에 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교회의 인도가 진정 필요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동안 교회를 떠나고 많은 어려움을 겪은 이유가 나를 향한 하나님 계획의 일부라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은 나를 쓰시기 전에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인지 알게 해주고 싶으셨다. 내 생각과 내 기준이 무너지지 않으면 내 마음에 당신의 약속을 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눈으로 본 나
아메리칸드림은 좋은 집과 비싼 자동차, 많은 돈을 갖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아메리칸드림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임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이 힘들 때 어려움에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나는 꿈이 있다. 5년 후, 10년 후, 여러 부모님들이 보낸 문제가 많은 학생들과 큰 탁자에 둘러앉아 이야기하고 그들과 한 달 동안 여행하는 상상을 한다. 교도소에 가서 강연하고 복음을 전하는 상상도 한다. 나는 젊은이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 나처럼 공허 속에 있던 젊은이들이 변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알았다. 내 눈으로 본 나는 문제투성이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본 나는 이제 진리를 말하는 사람, 평화를 주는 사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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