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죄 속에 살았던 나에게 의인의 삶을 주신 하나님
[라이프] 죄 속에 살았던 나에게 의인의 삶을 주신 하나님
  • 글 | 최정주(기쁜소식강남교회)
  • 승인 2020.10.07 1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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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호 기쁜소식
보배와 질그릇

 

나는 1964년 경기도 김포시에서 태어나 자랐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즈음 아버지가 월남전에 파병되셨다. 아버지가 휴가를 나오신 날, 큰아버지가 동네 사람과 싸우다가 작대기로 때려서 그 사람이 그만 죽고 말았다. 큰아버지는 아버지와 이 문제를 상의하다가 큰아버지 대신 아버지가 사람을 죽였다고 말하고 감옥에 들어가면 우리 가족에게 집도 지어주고 앞으로 살아갈 만큼 재산을 주겠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형님의 부탁이기도 하고, 가족을 위해 큰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이셨다. 아버지는 살인죄로 10년 형을 받으셨다.
아버지가 교도소에 들어가시자 어머니는 우리를 큰집에 맡기셨다. 나는 큰아버지의 학대 속에서 초등학교에 다녀야 했다. 지게를 지고 소를 몰고 나가서 소 풀을 한 짐 지고 들어와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배가 너무 고파서 급식 빵을 훔쳐먹고 구멍가게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기도 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학교에 간 날은 2년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경찰서와 소년원을 들락거렸다
내가 중학교 1학년쯤에 아버지는 감형되어 7~8년을 복역하고 출소하셨다. 아버지는 큰아버지에게 찾아가 약속대로 집과 재산을 달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큰아버지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큰댁에 매일 찾아갔고, 화가 나고 억울해서 싸우고 큰집에 불을 지르셨다. 큰아버지는 아버지를 달래면서 돈을 조금씩 주셨고, 아버지는 그 돈으로 노름을 하고 술을 마셨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오는 날에는 가족들을 앉혀놓고 밤이 새도록 화풀이를 하고 울분을 토하셨다. 추운 겨울날에는 길바닥에 쓰러져 주무시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날도 많았다. 아버지의 술주정은 점점 심해졌다. 나를 발가벗겨서 밖에 내쫓으면 나는 남의 집 굴뚝 밑에서 잠을 잤다.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다가 주먹으로 어머니를 때리시면 말리는 나도 아버지에게 맞았다. 그런 날은 아버지가 주무실 때 우리는 몰래 집을 나와 교회 뒷산에 있는 굴에 숨어서 지내기도 했다. 어떻게 아셨는지 나중에 아버지가 교회에 찾아와서 유리창을 깨고 집기를 집어 던지고 난동을 부리시고 기어이 어머니를 찾아서 집으로 끌고 가서 다시 때리셨다.
아버지의 폭력과 폭언 속에 사는 것이 너무 싫고 벗어나고 싶었다. 중학교에 다니면서 학교에 가는 날보다 불량한 친구들과 나쁜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날이 많았다. 나 역시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방황하기 시작했다. 부끄럽지만 16세의 나이부터 경찰서와 소년원을 들락거렸다. 전국 교도소 중에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젊은 날을 죄를 짓고 수감되고 출소하고 다시 죄를 짓고 수감되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두 번의 자살 시도
수감 중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어려웠다.
2007년 청송교도소에 있었을 때 아침에 인원 점검을 마치고 담당 근무자가 할 말이 있다며 잠깐 나오라고 했다. 법무부에서 연락이 왔는데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장남인 내가 아버님 장례를 치러드려야 하는데 갈 수 없었다. 미결수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밖에 나갔다 올 수 있지만 나는 징역형에 보호감호까지 받는 상황이라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일주일 동안 독방에서 근신했다. 불효자식이 된 것을 한탄했다. 속옷 상의를 찢어서 화장실 철창에 목을 매어 죽으려고 하다가 발각되어 수갑과 보호구를 차고 일주일을 보냈다. 다시 자살을 시도했다. 몰래 수면제를 모아 먹고 손목을 자해하였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깨어났다. 나의 몰골은 비참했다.

‘거지처럼 살지언정 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마음을 먹지만
수감 생활 중에 폐결핵을 앓고 독방에서 6개월을 보내기도 하고 사기를 당해 억울한 시간도 있었다. 어느 교회의 장로가 내가 교도소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와주고 싶다며 어머니와 같이 면회를 오셨다. 내 신용카드를 빌려주면 사업자금을 넣어서 신용을 높여주고 부자로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교회 장로이며 어머님의 지인이라는 말을 믿고 빌려주었다. 그러나 어느 날 카드사에서 카드 사용중지 안내 우편물을 받고서야 그가 사기를 쳤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머니도 교회의 목사에게 전세금을 사기당해 거할 곳이 없어진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2018년 출소 후 경찰서에 가서 그를 신고했지만, 그가 돈을 갚는다고 말하기 때문에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상습적인 사기꾼이었다. 교회를 통해 속은 것이 너무 속상했다. 하나님은 안 믿겠다고 결심했지만, 어머니를 따라가다 보면 교회에 앉아 있게 됐다. 그러나 건성이었다.
나는 30년 넘게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불효자로 살았다. 어머님께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죄송하고 나 자신에게는 너무 가슴 아픈 일이었다. 출소할 때마다 ‘거지처럼 살지언정 교도소가 아닌 사회에서 살고 싶다’라고 마음을 먹는 데 사회에서 살다 보면 죄의 유혹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죄를 짓고 잡히면 또다시 후회했다. 이런 생활이 계속 반복되었다.

내가 왜 이 말씀을 여태까지 몰랐지?
이번에 출소한 뒤로는 가장 길게 2년 넘게 사회에서 살고 있다. 유혹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머니가 “너 다시 들어가면 나 죽는다.”라고 하신 말씀을 가슴에 담고 있다. 나 때문에 고생하시는 어머님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보려고 마음먹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건설 일용직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남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고 힘들게 일하고 산다는 것이 보람이 있고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작은 집에서 살지만, 어머니와 함께하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
일하러 나갈 때면 어머니는 늘 “일보다 건강을 조심해라. 건강해야 일도 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다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자부하며 일했는데 사고는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동안 두 번의 사고가 있었는데 하나님이 지켜주셨다고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올해 8월에 세 번째 사고가 났다. 그런데 이번에 난 사고는 좀 컸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허리와 손을 다쳤다. 얼굴을 다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 갔던 병원에서 처치가 늦어서 다른 병원으로 옮겨 입원했다.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병원 복도에서 기쁜소식강남교회의 염연화 자매님을 만났다. 비가 많이 오는 것이 마치 세상이 심판을 받는 것 같다고 말하자 갑자기 성경을 가져와 말씀을 전해주었다. 로마서 3장 23~24절 말씀을 이야기하며 나에게 읽어보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뒤로 다시 한 번 설명해 주고 읽어보라고 하셨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말씀이 그대로 내 마음에 들어왔다. ‘내가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구나. 내가 왜 이 말씀을 여태까지 몰랐지?’ 자매님이 이 말씀을 믿느냐고 물어보실 때 나는 믿는다고 했다. 이런 말씀은 처음 들었다. 나는 로마서 3장 말씀을 통해 죄인이 아닌 의인이 되었다. 너무 놀랍고 감사했다. 그동안 교도소에서 자매결연으로 만난 목사님과 교인 중에 누구도 이런 말씀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분들은 항상 앞으로 죄를 짓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만 말했다. 그동안 지은 죄가 크기 때문에 하나님께 눈물 흘려 기도하면서 속죄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믿었다. 죄 사함을 받은 뒤 치료를 받으면서도 마음이 행복했다. 이 행복을 어머니에게도 전하고 싶어서 염 자매님을 소개해 드렸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 말씀처럼 거룩하고 의롭다
8월 29일 퇴원하고 염 자매님의 초청으로 온라인으로 실버여름캠프에 참석했다. 박옥수 목사님이 전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다시 한 번 이 말씀이 진리인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박 목사님이 20여 년 전에 대전교도소에서 성경 공부를 하셨던 이야기를 하실 때 깜짝 놀라고 마음이 울컥했다. 내가 대전교도소에 있을 때 한 수감자가 기독교 모임에 가자고 권해서 참석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보다는 모임에서 나눠주는 떡에만 관심이 있었다. 어느 날부터 기독교 모임에 박옥수 목사님이 오셔서 여러 차례 말씀을 전하셨다. 나는 관심이 없어서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려보냈다. 그때 뵈었던 박 목사님을 20여 년이 지나 다시 만났다. 그때는 듣지 못했던 죄 사함의 복음을 이제 듣게 해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니 너무 감격스러웠다.
나는 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살아왔다. 나의 삶은 고린도전서 6장 10절과 같았다.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10) 그러나 이제 나는 고린도전서 6장 11절 말씀처럼 거룩하고 의롭게 되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고전 6:11)
너무 부끄러운 삶을 산 나에게 의인의 삶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지난 9월 기쁜소식강남교회 주일 예배에서 간증하는 은혜를 입었다. 20여 년 만에 박 목사님을 직접 뵈었고 안수기도를 받았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 눈물이 났다. 죄로 고통받던 시간을 지나 이제 의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 같은 사람에게 
일하시는 것이 꿈만 같았다

글 | 염연화(기쁜소식강남교회)

 

6월 15일에 남편이 일하다가 사고가 났다. 오른쪽 발이 골절되어 입원했다. 마음이 어려웠는데 6월 20일 주일예배 후 박옥수 목사님이 전화로 기도해주셨다. “하나님 아버지, 내일 형제가 수술한다고 합니다. 제가 위장이 안 좋았을 때 깨끗하게 낫게 하신 하나님이 형제의 수술도 잘 되게 해서 건강한 발로 남은 삶을 복음을 위해 살 수 있도록 은총을 입혀주십시오.” 목사님의 기도가 우리 부부 마음에 평안과 큰 소망을 주었다.
나는 형편에 매이지 않고 복음을 전했다. 매일 병원에 갈 때 택시를 타고 가면서 기사님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박 목사님이 우리에게 입을 열고 계속 복음을 전하자고 하신 말씀 그대로 상대방이 듣든지 안 듣든지 복음을 전했다.
남편에게 가면 택시를 타고 오면서 복음 전한 이야기도 하고, 새벽 기도 말씀도 이야기해주며 교제했다. 병원에서도 복음을 전해 어떤 할아버님이 구원받아 감사했다.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은 점심을 먹고 커피 끓일 물을 받으러 복도로 나갔다가 창가에 서 있는 분을 만났다. 그분이 말했다.
“비가 많이 오네요.”
그 자리에 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내가 대꾸를 했다.
“인천에 비가 이렇게 많이 오면 다른 데는 더 많이 올 거예요.”
“재앙이네요. 심판을 받는 것 같네요.”
“맞습니다. 재앙입니다.”
순간 이분이 예수님을 믿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교회에 다니세요?”
“예, 장로교회에 다닙니다.”
“그럼 잠깐 기다리세요. 제가 성경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나는 로마서 3장 23절과 24절, 히브리서 10장 14절, 이사야 53장 4~6절, 로마서 4장 25절 말씀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분에게 로마서 3장 23절과 24절을 몇 번 읽어보라고 했다. 그분이 두 번을 읽었을 때 물었다.
“죄가 사해졌습니까?”
“성경에서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고 하셨으면 의로운 거지요.”
마음을 열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정말 감사했다.
이틀 뒤에 그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병실로 와 달라고 해서 갔는데 그분의 어머니가 와 계셨다. 그분도 교회에 다니고 권사님이라고 하셨다. 나는 죄 사함을 받은 간증을 했다. 아주머니는 “하나님이 좋은 자매님을 내게 붙여주셨네요.” 하며 자신의 집에 가자고 하셨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에 가기로 했다.
아주머니 댁에서 우리는 마음을 다 털어놓고 이야기했다. 내가 구원받은 간증을 하고 아주머니도 살아오신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 이때가 기회다. 이분을 온라인 여름캠프에 초청해서 같이 말씀을 들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권사님. 8월 19일부터 온라인으로 여름캠프가 시작되는데요. 우리 집에 오셔서 같이 말씀을 들어보세요.”
아주머니가 마음을 여시고 말씀을 들어보겠다고 하셨다.
여름캠프가 시작되던 8월 19일 수요일 저녁에 아주머니를 우리 집에 모시고 와서 저녁을 함께 먹고 말씀을 들었다. 다음 날도 같이 말씀을 들었는데, 이틀 동안 말씀을 듣고 나자 이런 말씀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며 신기해하셨다.
“나는 지금까지 교회에 다녔지만, 죄인으로 살았는데 목사님은 나에게 의인이라고 하시네요. 정말 감사해요.”
그리고 마지막 날인 토요일 저녁에는 말씀이 시작하기 전에 자신이 아는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고 싶다고 하셨다.
“목사님, 성경에는 우리가 의롭다고 말씀하는데 우리가 계속 ‘죄인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 맞습니까?”
그러자 그 목사님이 “우리가 의인이지만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회개 기도를 해야 합니다.”라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저 목사가 지금까지 나에게 거짓된 말씀을 전했네요. 진리를 전하시는 분은 박 목사님이시네요. 나, 구원받았어요. 죄가 없어요. 의인이 됐어요.” 하며 너무 행복해하셨다.
그날 저녁 말씀을 마치고 화상 앱으로 전도사님과 상담하셨다. 교제하는 중에 궁금한 것을 여쭤보면 전도사님이 성경을 펴서 설명해 주셨다. 아주머니가 너무 행복해하셨다.
아드님은 목사님과 교제하고 나서 “정말 내 죄가 없습니다. 거룩해졌습니다. 의롭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너무 기쁘고 행복해서 그때가 밤 11시 30분이었는데 아주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아드님도 구원받으셨습니다.” 하고 전했다.
“동생, 나 성경 읽고 있었어요. 나 30년 동안 교회에 다니면서 ‘하나님, 이 죄인 용서해주십시오’ 하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기도했지만 내 죄가 사해지지 않았어. 그래서 진리를 찾았어. 그런데 동생을 통해서 진리를 만나서 정말 감사해. 그런데 아들까지 구원해 주셔어서 정말 감사해. 이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도 너무 행복했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같은 병실에 있는 환자에게도 복음을 전해 그가 구원받았다. 정말 감사했다.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시는 것이 꿈만 같았다. 이 기쁨과 영광을 하나님께 드린다. 

 


 

30년 넘게 교회에 다녔지만 
이제야 의롭게 되었다

 

글 | 이원분(기쁜소식강남교회)

 

8월 9일 아들이 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 어느 날 병원에 가자 아들이 염연화 자매님을 나에게 소개해주었다. 염 자매님은 내게 ‘저는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다’고 간증하고 로마서 3장 23절과 24절 말씀을 전해주었다. 지금까지 교회에 다니면서 죄인으로 살았는데 성경에는 의롭다고 하신 말씀이 있는 것이 신기했다. 말씀을 더 들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자매님이 8월 19일부터 여름캠프를 한다며 같이 말씀을 듣자고 했다. 나는 자매님의 집에 가서 박옥수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다. 목사님은 죄 사함에 대해서 아주 쉽게 말씀해 주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내 죄가 모두 씻어졌다는 사실과 그래서 우리는 거룩하고 온전하다는 말씀이 그대로 믿어졌다. 며칠 후에 가진 실버캠프 말씀도 계속 들었다. 매시간 감격스럽고 감사하고 평안했다. 
나는 30년 넘게 순복음교회와 장로교회를 다녔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봉사하고 매일 눈물을 흘리며 회개 기도를 했지만, 마음에는 여전히 죄가 남아 있었다. 목사님도 열심히 회개하라고만 말씀하셨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우리 죄를 다 씻어놓으셨다고 했는데 왜 기성교회 목사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열심히 회개하라고만 말하는지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나는 요즘 밤 11시가 넘어서도 성경을 읽고 있다. 전에는 한 번도 늦은 시간까지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는데, 하나님이 성경 읽고 싶은 마음도 주시고 전에 없던 평안한 마음도 주신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너무 사랑해서 기쁜소식선교회를 만나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히브리서 10장 14절의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말씀처럼 나도 내 아들도 영원히 온전케 되었다. 주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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