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작은 천국이 된 안동 산골 과수원
[라이프] 작은 천국이 된 안동 산골 과수원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0.11.12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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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호 기쁜소식
땅끝까지 복음을, 끝날까지 주님과_250 | 박옥수 목사 간증

자매님의 믿음 까닭에 내가 이 산 속을 찾아오게 되었구나
하루는 선교학생들과 함께 교회 버스를 타고 경상북도 청송에 있는 기쁜소식청송교회로 갔다. 교회 헌당 예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헌당 예배를 마친 뒤 기쁜소식안동교회로 가서 저녁 예배를 드린 뒤 서울로 올라올 일정이었다. 기쁜소식청송교회에 가서 보니, 정성을 들여서 예배당을 지었음을 알 수 있었다. 헌당 예배를 마친 후 예배에 참석한 형제 자매들 모두와 함께 떡을 먹으며 기뻐하고 감사해했다. 
이제 기쁜소식안동교회로 가서 저녁을 먹은 뒤 예배를 드리려고 출발하기 위해 버스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안동교회의 김영교 목사님이 다가와서 ‘안동으로 가는 중에 산길로 조금만 가면 사과 농사를 짓는 부부가 있으니 들러서 기도해 주시고 가면 좋겠다’고 했다. 남편의 몸이 많이 불편하다며 꼭 들렀다 가시길 간곡히 부탁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버스를 타지 않고 다른 승용차를 타고 출발했다. 사과 농사를 짓는 부부 중 아내 되는 자매가 청송에 와 있어서, 그 자매가 운전해 가는 차를 따라 그 과수원으로 갔다. 
산이 아주 험했다. 깊은 산속에서 부부가 사는데 남편은 누워서 꼼짝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경운기를 운전하다가 산에서 굴러 다쳤다고 했다. 그날 아침에 아내가 남편에게 “오늘 박옥수 목사님이 이리로 지나가시는데 잘하면 목사님을 모시고 올 수 있으니 기다려요.” 한 뒤, 헌당 예배에 참석하고 이야기해서 우리가 그곳에 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 남편을 보았을 때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38년 된 병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내가 있고, 또 그 아내는 죄 사함을 받고 예수님의 피로 거룩하게 된 거듭난 하나님의 딸이라는 사실이었다. 아내 된 자매님은 산 속에서 소망 없이 살다가 안동 교회를 만나서 복음을 듣고 죄 사함을 받아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은 거듭나거나 죄를 사함 받는 부분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서 부부 사이에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그 과수원에서 ‘하나님을 믿는 자매님의 믿음 까닭에 내가 이 산 속을 찾아오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편 되는 분에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죽음이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었고,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다 씻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에 대해 전해주었다. 한 시간 정도 이야기했는데 그분이 마음에 믿음을 가졌다.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죄 속에서 고통하며 지내다가 죄 사함을 받은 것이다. 남편의 얼굴이 기쁨과 감사로 가득 찼다. 그분이 마음으로 표현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모두 주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저녁 예배를 드리러 서둘러서 안동으로 떠났다. 

내가 보기에 그 과수원은 에덴이 되어 있었다
그 일이 있고 여러 해가 지났다. 피지 대사님이 우리 교회 예배에 참석하시고 그 남편 분은 목사로 우리 교회에 와서 목회를 돕고 계신다. 아직은 한국말이 익숙하지 않아서 한 번씩 통역하는 사람과 함께 영어로 설교를 하신다. 피지 대사님이나 대사관 직원들이 한국의 지방을 방문하는 것을 좋아해서 얼마 전에 함께 어느 지방 도시에 간 적이 있었다. 그 후 ‘이번엔 어디로 모시고 갈까?’ 생각하다가, 안동에 있는 그 과수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과수원에서 사과를 따면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과수원에 가겠다고 하자 형제 내외가 너무나 기뻐했다. 도중에 대사관에 일이 생겨 대사님 가족은 갈 수 없게 되었고 우리만이라도 가기로 했다. 
과수원을 방문해서 깜짝 놀랐다. 옛날 그 과수원이 아니었다. 남편인 형제님은 걸어다니지는 못하지만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못 하는 일이 없었다. 정말 감사했다. 불편한 몸이지만 세상에 있는 기쁨과 감사를 그 부부가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가을 사과는 아직 익지 않았고, 여름 사과만 조금 남아 있었다. 우리가 따게 하려고 조금 남겨둔 것이다. 
먼저 내외가 준비한 아침을 먹는데, 그런 음식은 처음 먹는 것 같았다. 남편도 휠체어에 앉아 함께 식사를 했다. 전에는 부부가 신앙 문제로 갈등이 있어서 사이가 안 좋았지만, 남편이 죄 사함을 받고 난 뒤로는 문자 그대로 천국이었다. 나는 목사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지만, 이런 남편 같은 분이 말씀을 듣고 죄 사함을 받아 예수님 안에서 사는 것을 보니 말할 수 없이 감사했다. 
우리는 즐겁게 사과를 딴 뒤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형제님을 위해 다시 안수하며 기도드렸다. 감사하다는 기도와 또 몸이 더 좋아져서 자유롭게 걸어다니며 남은 삶을 예수님과 함께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형제님이 구원받은 뒤, 내가 보기에 그 과수원은 에덴이 되어 있었다. 집도 달라지고, 과수원도 계단식으로 다시 만들어 위험하지 않고, 나무에 달린 사과들도 크고 탐스러웠다. 그 일들에 대해 감사하면서, 우리가 다음에 올 때에는 몸이 더 좋아져서 뛰어다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또 그렇게 되리라고 믿었다. 

나를 통해 사람들이 구원받아 복되게 사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늘 죄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교회에 다니면서 친구들과 남의 과수원에서 사과도 따먹고, 감자도 캐먹고 했다. 그리고 매일 교회에 가서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나는 죄가 많아서 죽으면 분명히 지옥에 갈 것 같았다. 그렇게 지내다가 1962년 가을에 내 죄가 사해진 것을 처음으로 믿었다. 로마서 3장 23~24절 말씀에서 내 죄가 사해진 것을 확인한 뒤로 내 삶이 180도 달라졌다. 하나님의 은혜로 선교학교에 갈 수 있었고, 복음 전도자가 되었다. 나 같은 사람을 통해 사람들이 구원받아 밝고 복되게 사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누님이 구원받고, 형님이 죄 사함을 받고, 마지막에는 아버지가 거듭나셨다. 같은 누님이고 형님이고 아버지였지만, 거듭난 뒤 전혀 다른 새 사람이 되었다. 
목회를 하면서 때로는 수천 명, 수만 명이 모인 곳에서 말씀을 전해 내 마음에 감사가 컸고, 때로는 죄 때문에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다가 죄 사함을 받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병이 나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어서 너무나 감사했다. 

기쁨이 가득한 그 부부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가 예배를 마치고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던 중에 미국에 있는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딸과 이야기하는데 옆에 있던 형제님이 전화기 쪽으로 몸을 숙이더니 “그라시아스합창단 단장님! 합창단과 함께 안동에 오십시오!”라고 소리를 쳤다. 딸이 합창단원들과 함께였는데, 이들도 기뻐하며 두 곡의 노래를 그 자리에서 불렀다. 작은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와서 음색이 다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라시아스합창단은 달랐다. 함께 있던 사람들 모두 노래를 듣고 감격스러워했다. 과수원, 합창단, 그리고 우리 모두, 다 예수님의 작품이었다. 
형제 부부를 뒤에 두고 차를 타고 험한 산길을 지나 서울로 왔지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열흘이 지나도 그 감동이, 그 감격이 지워지지 않는다. 기쁨이 가득한 그 부부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다. 예수님만 나타내실 수 있는 사랑이요, 그에 대한 부부의 감사였다. 
누구든지 근심하고 불평하며 살아도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죄에서 벗어나고 새 사람이 된다. 그 일에 나도 작은 부분에 쓰임받게 되어 너무나 영광스럽다. 예수님은 쓰레기처럼 살았던 나 같은 사람도 쓰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신다. 예수님만 만나면 누구나 달라지고, 기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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