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범죄하기 전에 땅의 경작
[설교] 범죄하기 전에 땅의 경작
  • 글 | 김재홍 (기쁜소식인천교회 목사)
  • 승인 2020.11.12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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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호 기쁜소식
옳음에서 벗어나 영의 세계로 (18편) _마지막 회

신앙 안에서 나의 선한 마음도 악한 것이기 때문에 버려야 하는데, 많은 성도들이 자신이 보기에 옳다는 마음이 들면 버릴 줄 모릅니다. 내가 볼 때 아무리 옳아 보여도 내게서 나온 것은 다 가시와 엉겅퀴 같은 것으로 악합니다. 땅에서 가시와 엉겅퀴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작자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이 범죄하고 난 이후의 경작’입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창세기 2장에서의 경작입니다. 

창세기 2장에서의 경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창 2:4~5)
여기서 밭에 채소가 나지 않은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두 번째는 경작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장에서의 땅은 범죄하기 전의 땅이기 때문에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경작자가 필요합니까? 이것은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창세기 2장의 땅의 모습은 범죄하기 전의 인간의 모습으로, 범죄하기 이전의 인간에게도 경작자가 있어야 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의 경작은 얕은 단계의 경작이고, 창세기 2장에서의 경작은 깊은 단계의 경작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창세기 3장의 경작처럼 자신에게서 나온 마음이 가시와 엉겅퀴인 것을 알고 버릴 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깊은 단계의 경작은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경기도 이천에 비닐하우스 농사를 하는 분이 있는데, 한 번씩 교회로 연락해서 채소를 뽑아가라고 합니다. 부인 자매들이 가서 청경채, 열무, 상추 등 여러 가지 채소를 트럭에 가득 실어 와서 교회에서 잘 먹습니다. 때로는 비닐하우스 한 동에 있는 채소를 다 뽑아서 오기도 합니다. 팔 수 있는 채소들인데 왜 뽑아낼까요? 농사를 짓다 보면 채소 가격이 폭락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채소를 출하해 봐야 인건비나 운반비도 안 나오기 때문에 빨리 갈아엎고 다른 채소를 심어야 합니다. 쌀값은 일정하지만 채소 값은 폭락할 때도 있고 폭등할 때도 있어서 때로는 밭을 갈아엎거나 다 뽑아내도 괜찮다고 합니다. 
가시와 엉겅퀴여서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먹을 만한 유용한 채소인데 뽑아냅니다. 아무리 쓸 만한 채소라도 뽑아내지 않고 새로운 씨앗을 뿌릴 수는 없습니다. 그냥 뿌리면 새로운 채소가 싹이 나고 자라는 것을 이미 있던 채소들이 방해합니다. 새 씨앗을 뿌리려면 좋은 채소라도 뽑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기 2장에서의 경작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는 땅에서 나오는 것이 가시와 엉겅퀴여서 경작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장에서는 악하기 때문에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깊은 단계의 경작은, 선한 것인데 버리는 것입니다.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영의 인도를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행 16:6~10)
사도 바울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성령이 막았습니다. 그리고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지만 성령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은 사탄이 하는 일 아닐까요? 사람들은 보통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면 그것이 사탄이 방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에서는 성령이 그렇게 했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0장 15절에서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라고 한 것처럼 복음을 전하러 가는 길과 발걸음은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버려야 했습니다. 성령의 새로운 인도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성령은 사도 바울이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려는데, 바울은 아시아 땅들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했지만 영의 새로운 인도를 받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려고 하는 것, 비두니아로 가려고 애쓰는 것 등이 영적인 일을 하는 것이라 해도 다 제해야 합니다. 얼마 전까지 영적인 것이었다 해도 새로운 영의 인도가 나타나면 그 인도를 따라가야 합니다. 실제로 바울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마게도냐로 갔고, 하나님이 그 지역의 첫 성인 빌립보에 루디아라는 여자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루디아가 구원받을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 가서 복음을 전해주어야 하기에, 하나님이 바울을 마게도냐로 보내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아시아에서 복음 전하는 일을 막으셨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왜 자꾸 길이 막히지? 사탄이 이렇게 하는가 보다’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오히려 성령이 이끄신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려는 길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아시아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새로운 영의 인도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도 영적인 일이지만 그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영의 인도를 받을 때 빌립보에 가서 루디아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가족이 구원을 받고, 이어서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가서 간수가 구원받고, 그 가족이 구원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마인드교육’을 하라는 영의 새로운 인도 앞에서 
깊은 단계의 경작을 배우지 못하면 주의 인도를 한두 번 받은 뒤 거기에서 멈춥니다. 새로운 영의 인도를 계속 받고 주님의 음성을 계속 듣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지난날 영의 인도를 받았던 것이 오히려 새로운 영의 인도 받는 것을 방해합니다. 
2012년 겨울 수양회 기간에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들의 대륙별 훈련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봉사단원들을 위한 복음반을 맡았습니다. 김천 수양관으로 가던 중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박옥수 목사님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고 연락을 드리자, 목사님이 ‘수양회에 참석한 성도들을 대상으로 마인드교육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내용을 진행을 맡은 목사님에게 말씀드리자, 그 목사님이 “내가 박 목사님께 김 목사님은 복음반을 해야 한다고 말씀드릴게요.”라고 했습니다. 사람 마음은 두 가지 부담스러운 일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덜 부담스러운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복음반은 자주 했고, 마인드교육은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며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기에 제 마음이 복음반 쪽으로 기울어졌습니다. 그런데 박 목사님께 다시 전화해 통화하면서 목사님에게 마인드교육을 꼭 하려는 마음이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양회에 참석한 성도들에게 알리기 위해, 마인드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고민하면서 문구를 작성하고 적당한 이미지를 넣어 포스터를 만들었습니다. 그 포스터를 수양관 계단에 붙이고, 피피티PPT 자료를 만들어서 ‘이렇게 마인드교육을 하니 참여하라’고 광고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마인드교육입니다. 
굿뉴스코 훈련을 받는 학생들에게 마지막 훈련인 대륙별 훈련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아직 구원받지 못한 학생들이 있기에 복음반에서 복음을 정리해 주는 것은 영적으로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것을 다른 분에게 맡기고 내가 하려는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그것이 ‘마인드교육을 하라’는 새로운 영의 인도를 가로막습니다. 
복음을 위하고 주를 위한 일이라 할지라도, 분명히 옳고 영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버리는 것, 이것이 깊은 단계의 경작입니다. 비닐하우스에서 먹을 만한 채소요 상태가 좋은 채소인데도 뽑아내는 것은 시세에 따라 다른 채소를 심어야 판로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좋은 채소지만 빨리 뽑아내고 새로운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 목사님의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마인드교육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복음반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제하지 않고 그냥 있었다면 마인드교육을 하면서 받은 복을 어떻게 받았겠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그 복을 받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받았을 것입니다. 내 생각을 버리고 말씀을 받아들이자 복음의 새로운 장이 열린 것입니다. 

30배, 60배, 100배 결실하는 마인드교육
처음에는 마인드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 채 시작했기에, 수양회 때 겨우겨우 시간을 채웠습니다. 그런데 마인드교육 장소에 사람들이 가득 찰 정도로 인기 있는 수양회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그 후 박 목사님이 마인드교육 전문 강사를 훈련하라고 하셔서 강사를 양성했습니다. 새로운 씨앗을 계속 뿌려서 오늘날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이루는 것을 봅니다. 
제가 중국의 한 도시에서 마인드교육을 시작했습니다. 경제개발특구로 지정되어 있어서 기업의 본사들이 많고 엘리트들이 많은 도시였습니다. 그곳에 구원받은 대학교수나 교사들이 있었지만 학생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한마디도 할 수 없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싶어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이야기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인드교육을 배우고 나서는 ‘야, 이런 이야기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얼마든지 해도 되겠다!’ 하고 소망을 가졌습니다. 제가 한 마인드 강연을 듣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는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해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베트남에 마인드교육을 하러 가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공산당 간부의 자녀들이 다니는 특별 학교에 갔는데, 전에 그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사상 교육을 시킨 뒤 전국 지방으로 보내서 반정부 활동 등을 감시하게 했다고 합니다. 베트남이 개방 정책을 펴면서 지금은 그런 활동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공산당 간부들의 자녀들만 들어가는 학교였습니다. 그곳에서 마인드 강연을 했는데, 600~700석 되는 학교 강당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학생들이 가득 찼습니다. 마인드교육이기에 베트남 공산당 중심부에 들어가서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필리핀은 ‘마인드교육과 복음을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에 대한 답을 준 나라입니다.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유일한 가톨릭 국가로, 인구가 1억 명이 넘기에 교황청에서 특별히 관리하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교황이 방문하면 ‘몇 년 만에 교황이 방문했다’고 야단이지만 필리핀은 교황이 꼭 방문하는 나라입니다. 그런 까닭에 선교하기 어려운 나라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개신교는 가난한 자들의 교회’라고 무시하고, 개신교에서 행사를 한다고 하면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인드교육을 통해서 현직 교사들을 가르치고, 이어서 복음도 마음껏 전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성경을 믿기 때문에 성경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마인드교육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마인드 강연에서 시작해 한두 시간이 지난 후에는 복음을 전하는 장소로 바뀌었습니다. 너무 재미있고, 정말 감사했습니다. 
어느 도의 교육감님은 어느 날 교육부로부터 ‘왜 교사들이 120명씩이나 한국에 가려고 하는지 보고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한국에 와서 마인드교육을 받을 교사들을 모집한 뒤 비자를 받기 위해 필요한 자료를 교육부에 요청해 교육부가 알게 된 일이기에, 교육감님에게는 보고할 자료가 없었습니다. 한국으로 가려고 하는 교사들에게 물으니 마인드교육을 받으러 간다고 하는데, 마인드교육이라는 말도 생소하고 그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교육감님은 직접 보고 와야겠다고 생각해 관계자 일곱 명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분들에게 마인드교육을 어떻게 설명할까 생각하다가 직접 보여드리자고 결론을 내리고 여덟 명 앞에서 마인드 강연을 했습니다. 강연을 한 시간 듣고, 두 시간 들은 뒤 교육감님이 마음을 활짝 열었습니다. “이거 정말 좋은 교육입니다! 우리 함께 일합시다.” 그 뒤 120명의 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마인드교육을 받고 돌아갔고, 이후에는 더 많은 교사들이 방한해서 교육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한번은 제가 교육감님의 초청으로 필리핀에 가서 교육을 하는데, 그 도에 있는 교육장 및 교장 및 장학사들이 참석했습니다. 700석 규모의 강당에 800명이 와 앉을 자리가 없는 분들은 계단에 앉아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강연이 이어졌습니다. 의자에 앉아서 하루 종일 강연을 듣기도 힘든데 계단에 앉아서 강연을 듣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시간에는 참석한 모든 분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대학의 교양 과목으로 채택된 마인드교육
박옥수 목사님은 앞으로 마인드교육이 정규 교과과정이 되고 우리가 만든 책이 교과서로 채택될 것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아프리카의 대통령들과 장관들을 만나시기에 그 일이 아프리카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필리핀에서 마인드교육이 활성화되면서는 ‘이곳에서 시작되려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교육제도가 엄격하고 까다로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마인드교육이 교양 과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 4년제 정규 대학에서 교양 과목으로 마인드교육을 채택한 것입니다. 3학점 과목으로, 제가 담당 교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수강 신청을 한 학생이 30명이 되지 않으면 강의가 폐지되기에 저는 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사람인데 누가 내 강의를 들으려고 신청하겠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50명이 신청하더니, 나중에는 100명, 200명, 300명을 넘어갔습니다. 다른 교수님들의 인기가 많은 과목도 이렇게 많은 학생이 몰리지는 않는데, 제가 하는 강의에 왜 많은 사람들이 수강하는지 저는 지금도 이해가 안 갑니다. 한 번은 학생 수가 600명이 넘어서 너무 많다고 교육부에서 두 반으로 나누라고 하여 두 반으로 강의가 진행되기도 했고, 매년 강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정부 초청을 받아 정부 차원의 마인드교육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 대통령에게도 마인드교육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일이나 수많은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복음반을 맡았다고 하면서 마인드교육을 하라는 새로운 영의 인도를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복음반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고집하고 하나님의 종을 통해 나타난 주님의 새로운 인도를 받지 않았다면 이런 하나님의 역사나 영광을 맛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깊은 단계의 경작이 되어 늘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길
내 속에서 올라오는 것은 전부 가시와 엉겅퀴 같은 것이기에 뽑아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때로는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라 해도 뽑아내야 합니다. 새로운 영의 인도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교회나 하나님의 종을 통해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 앞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생각이나 옳은 생각뿐 아니라 영적인 것이라도 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 11:8)라는 말씀대로 믿음의 삶을 시작했고,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히 11:12)라는 말씀대로 믿음으로 이삭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시고 싶은 믿음이 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약속으로 말미암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러 가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내고자 하시는 뜻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7~19)
만약 아브라함이 ‘이삭은 약속으로 말미암았는데 어떻게 번제로 드려?’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는 믿음을 어떻게 경험했겠습니까? 
창세기 2장에서의 경작처럼, 아무리 영적인 것이라 해도 새로운 영의 인도 앞에서 다 제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 안에서 형성된 영적인 생각이요 옳은 생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새로운 영의 인도를 가로막기 때문에 다 버리고 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 2장에서의 경작처럼 깊은 단계의 경작이 되어서 여러분의 삶에 늘 새로운 영의 인도가 있고,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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