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이제 주님 안에서 웃는다
[라이프] 이제 주님 안에서 웃는다
  • 글 | 김숙연(기쁜소식강남교회)
  • 승인 2020.11.25 1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0년 11월호 기쁜소식
보배와 질그릇

 

 

삶을 사는 동안 고생이 많았다.
3년 전, 47년 만에 보고 싶던 아들을  만났다.
마음의 한은 풀렸으나 마음은 여전히 답답했는데, 
일흔셋에 예수님을 만나 ‘뻥’ 뚫렸다.

 

나는 해남의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프셔서 어머니가 혼자 어렵게 농사를 지으셔야 했다. 형편이 어려워 나는 학교에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나와 동생은 할머니 손에 자랐다. 어느 날 우리 동네에 처음으로 교회가 지어졌다. 어린 나이지만 좋아서 같이 흙을 날랐던 기억이 난다. 나는 어린 시절에 교회에 다녔다. 
나는 철부지 나이에 아들을 낳았다. 친정어머니는 내가 아이를 키울 수 없을 거라며 입양을 보내자고 하셨다. 아들은 미국으로 입양됐다. 내가 낳은 자식을 키우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언젠가 먼 훗날 멀리서라도 얼굴을 한 번 볼 수 있다면…’ 하고 생각했다. 
성인이 되어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을 만났다. 남편은 딸을 덴마크로 입양을 보냈다고 했다. 우리는 결혼하여 딸 하나를 낳고 살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남편은 3년 전 폐암으로 돌아가셨고, 딸은 지금 마흔일곱 살, 나는 일흔셋이다.

아들이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2017년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입양 기관이었다. 아들이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했다. 47년 전에 입양 보낸 아들, 세월이 오래되어 잊고 지낸 아들을 만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너무 놀라서 마음이 조급하고 불안했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입양 보낼 당시 친정 엄마는 당신의 주민번호와 연락처를 남겨놓으셨다. 그리고 언젠가 아들이 나를 찾아올 거라고 하셨는데, 그날이 온 것이다. 내가 소통할 수 없으니 딸이 아들과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다행히 아들이 아는 분 중에 한국 분이 있어서 아들 대신 딸과 통화를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말했다. “엄마, 오빠한테서 연락이 끊어졌어요. 연락을 주던 한국 분이 이사를 가서 오빠를 못 만난대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아들과 연락할 수 있을지 애만 탔는데 얼마 뒤 다시 연락이 와서 너무 감사했다. 한국으로 나오려고 했는데 양아버지가 아프셔서 바로 나올 수 없겠다고 했다. 
당시 남편도 폐암 말기로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세상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았는지 남편은 집에 있고 싶어했다. 나는 식당 일을 하면서 남편을 간호해야 했다. 너무 힘들었다. 남편은 음식 냄새를 싫어해서 음식을 잘 먹지 못했다. 나도 남편에게 잘해주려고 했지만 식당 일도 해야 해서 그러지 못해 미안했다. 남편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내게 소망의 말을 남기고 갔다. “당신, 오래 살면 아들을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교회에 나가.”라고 했다. 

47년 만에 만나다
2017년 중순경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나도 병이 났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자지 못했다. 살이 엄청 빠져 바지가 헐렁해질 정도였다. 산책하는데 옆구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어 참을 수 없었다. 동네 병원에 갔더니 암인 것 같다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정밀 검사를 하고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하면 된다는 말에 너무 감사했다. 7월 28일에 수술하기로 예약했다. 
그 무렵 아들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한국에 올 수 있겠다고 했다. 아들이 오는 날, 나는 딸과 지하철역으로 마중을 나갔다. 나는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서 지하철역 밖에서 기다리고 딸이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 딸이 아들과 함께 지하철역에서 올라왔다. 딸이 아들에게 나를 가리키며 저분이 어머니라고 하는 거 같았다. 그러자 아들은 가방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달려와서 나를 안았다. 아들은 마흔일곱 장년이 되어 돌아왔다. 나는 그저 마음이 덤덤했다. 처음에 연락을 받았을 때 한번 크게 놀랐기 때문인 듯했다. 아들은 나를 만날 생각에 설레어 잠을 못 자고 행여나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했다. 
아들은 내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엄마, 우리 유전자 검사 안 해도 되겠어요. 우리 아주 똑같이 닮았어요. 너무 똑같아요.”
한바탕 웃었다. 아들과 함께 집에 가서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통역하는 사람이 같이 와서 다행이었다. 한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많이 걱정했는데, 아들은 한국 음식을 정말 좋아했다. 신기할 정도였다.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다시 온 아들
아들은 한 달 가량 한국에 있을 거라고 했다. 아들에게 걱정을 주지 않으려고 암 수술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술 날짜를 8월 4일로 미뤘다. 아들이 미국으로 돌아가고 수술했다. 다음날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아들이 한국에 다시 온 것이다. 더 놀란 것은, 아들이 이번에는 한국에서 살려고 짐을 싸서 왔다고 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한국에서 살고 싶어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원래 딸이 와서 간호해주기로 했다가 손녀가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오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들이 대신 나를 간호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어려울 때 아들이 와서 간병을 해주다니 너무 고마웠다. 아들은 피곤하면 내 침대 옆 간이침대에 누워서 눈을 붙였다. 나는 화장실에 갈 때면 아들이 깰까봐 조심했는데,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벌떡 일어나서 나를 부축했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서 하는 아들이 너무 기특하고 고마웠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친구 집에 있던 아들은 내가 퇴원하면서 우리 집으로 왔다. 아들은 한국에서 살기 위해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번은 내가 물었다.
“한국말 공부하는 거 어때?”
“한국말 어려워요. 골때려요.”
어려우면 미국에 가서 살라고 하니까 한국이 좋다고 했다. 아들과 지내며 몇 번이나 다시 미국에 가라고 했지만 아들은 그런 말이 듣기 싫다며 그만 말하라고 한다. 그때부터 나도 말하는 것을 내려놓았다. 몇 개월 후 아들은 한국에 있는 외국계 회사에 취업했다고 했다. 

 

고마운 양부모 가족
2019년 5월에 미국에 계신 양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들과 함께 미국에 갔다. 양아버지는 교사였고, 양어머니는 회계사였다. 누나가 있었는데, 부모님이 바쁘실 때에는 누나가 아들을 잘 돌봐주었다고 했다. 다 너무 좋은 분들이었다. 특히 양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어릴 때 자주 무릎에 앉혀놓고 “하나님, 이 아이는 나의 태양입니다. 이 아이는 나의 희망입니다.”라고 하셨다고 한다. 아들에게 큰 사랑을 베풀어주신 가족이 너무 고마웠다. 아들은 미국에 있는 일주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나를 데리고 다니며 자신의 추억이 담긴 곳을 소개해 주었다. 
나는 평소 텔레비전에서 입양 가족이 만나는 프로그램을 유심히 보았다. 행여 우리 아들이 나를 찾으러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입양 가족이 우리처럼 만나서 같이 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덴마크로 입양 보낸 남편의 딸도 전에 한두 번 한국에 와서 아버지를 만나고 갔다. 만나는 경우는 많지만 서로 떨어져 사는데 아들은 한국에 와서 살겠다고 하는 것이 남달랐다. 이 소식을 어떻게 알고 한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를 찍자고 연락이 왔다. 인터뷰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미국에 양부모님을 만나러 갈 때도 동행했다. 아직도 취재가 이어지고 있다.

하루 종일 배회했다
나는 몇 년 전, 남편이 돌아가시기 전에 동네 교회에 나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교회에 가면 이상하게 속이 답답했다. 설교를 들어도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듣지 못해 갑갑했다. 누구도 하나님에 대해 예수님에 대해 가르쳐주는 이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예배 시간에 말씀을 듣는 게 아니라 졸다가 왔다. 목사님에게 마음을 의지했지만 그분이 러시아로 선교를 나가시면서 교회와 멀어졌다. 교회에서 연락이 와도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럴 즈음 아들을 만났고 암 수술을 했다. 모든 것이 잘 진행되었고, 건강도 좋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만은 계속 답답했다. 몸이 힘들어 식당일도 접었다. 할 일이 없어지니 더욱 그랬다. 답답함을 달랠 길이 없어 아침에 가방 하나를 들고 집을 나갔다. 서울 시내를 여기 저기 돌아다녔다. 그러면 속이 좀 시원한 거 같았다. 그렇게 하루 종일 배회하다 저녁에 집에 오곤 했다. 
한날은 운동장을 돌며 산책하고 있는데, 갑자기 입에서 찬송가가 튀어나왔다.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피는 것을 볼 때에/ 구속함의 노래 부르며 거룩한 길 다니리/ 저기 거룩한 그 길에 검은 구름 없으니/ 낮과 같이 맑고 밝은 거룩한 길 다니리”<찬송가 242장,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라 요한복음 3장 16절”<주일학교 찬
송>의미도 모르고 부르기 시작했다.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렸다
얼마 지나 동네에서 노점상을 하는 이미라 자매를 알았다. 낮에 돌아다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만나면 내게 안부를 물어주었다. 추운 날에는 노점에서 장사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내가 따뜻한 꿀물도 타주고 커피도 타다 주면서 인연이 되었다. 얼마 뒤 이 자매가 작은 가게를 얻었다. 낮에는 시내를 돌아다니다 저녁에 가게에 매일 들렀다. 그것이 내 일상이 되었다. 마음이 통하니 내가 살아온 이야기, 아들 만난 이야기도 했다. 그동안 마음을 나눌 친구를 사귄 적이 없는데 신기하게도 자매에게는 내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한날은 내 마음의 답답함을 토했다. 이 자매는 내 마음이 답답한 것은 마음에 죄가 있어서 그렇다며 같이 교회에 가자고 했다. 나는 마음이 안정이 안 되어서 교회에 못 가겠다고 했다. 
그날도 자매가 내 이야기를 듣다가 또 말했다.
“모친님, 그 답답한 마음 우리 목사님 만나면 다 해결돼요.”
“그래? 목사님 만나면 해결된다고?”
그래도 교회에 같이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운동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모친님, 빨리 가게로 오세요.”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서 갔더니 기쁜소식강남교회에서 전도사님이 오셨다고 했다. 전도사님이 성경을 펴서 말씀을 전해주시려고 했다. 내가 공부를 안 해 글을 잘 모른다고 하자, 전도사님은 노트북을 꺼내 그림을 보여주며 말씀하셨다. 어린양이 제사장 앞에 끌려가는 그림이었다. 구약시대에는 죄를 씻기 위해 제사장에게 흠 없는 양을 끌고 가서 제사를 드렸다. 그런데 그 제사는 또 죄를 지으면 다시 양을 잡아야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예수님이 어린양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내 죄를 영원히 씻으셨다고 하셨다. 전에 다녔던 교회에서는 들어보지 못했던 말씀이었다. 
‘아,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구나! 내가 아들을 버린 죄, 남편에게 잘 해주지 못한 죄, 내 인생에서 지은 모든 죄가 다 씼어졌구나!’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렸다. 
이튿날은 이미라 자매가 다시 말씀을 전해주었다. 복음을 전하는 자매의 눈이 어찌나 빛나던지 놀랐다. 수십 번 반복해서 말해주니까 복음이 확실하게 내 마음에 심겨졌다. 구원받으니 내가 무심코 불렀던 찬송가의 가사가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예수님이 내 죄를 씻으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구나. 그래서 내가 영생을 얻었구나.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이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다
구원받은 후 이 자매가 매일 말씀을 들어야 한다며 내 휴대폰에 굿뉴스티비 앱을 설치해 주었다. 하루에 한 번은 박옥수 목사님의 주일 말씀이나 복음반 말씀을 듣는다. 8월에는 여름캠프 말씀도 들었다.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예수님의 공로로 내가 죄 사함의 은혜를 입은 것이 감사하고 감사했다. 이 자매가 자주 성경 이야기를 해주어 듣는데 그것도 내 마음에 하나 하나 담고 배운다.
복음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교회에 다닌다는 옆집 아줌마에게도 이야기했다. “아주머니,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셨대. 그래서 내 죄가 다 씻어졌어.” 아들에게도 이 복음을 전하고 싶어서 아들이 집에 오면 무조건 박 목사님의 말씀을 틀어주고 있다. 박 목사님이 말씀하시면 옆에 있는 목사님이 이어서 영어로 통역해 주니까 아들도 말씀을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아들도 만나고, 몸도 건강해지고,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제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다. 
사람들이 교회를 10년 20년 다니지만 예수님이 우리 죄를 십자가에서 다 씻어준 사실을 모르고 산다. 그래서 죄를 짓고 하나님께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고, 또 죄를 짓고 용서를 빌고 울부짖는 것을 보았다. 내가 죄 사함을 받고 나니 그런 사람들이 너무 안타깝다. 나는 살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나 형편을 원망하는 마음은 없었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살았다. 하지만 내가 진작 구원받았다면 그 어려움을 예수님으로 이기고 힘들지 않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든다. 이제라도 하나님이 내 인생을 불쌍히 여겨서 미라 자매를 만나게 하시고 구원받게 해주신 것이 감사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