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이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글 |김신이(기쁜소식안양교회)
  • 승인 2021.02.14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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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호 기쁜소식
보배와 질그릇

아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세계를 만나지 못했다. 8년의 고민과 방황 끝에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고, 나는 마침내 진리를 만났다.

나는 어릴 때 할머니가 끌어주시는 유모차를 타고 저녁 예배에 다녔다고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일요일마다 헌금으로 드릴 동전 몇 개를 가지고 교회에 갔던 기억이 있다. 엄마는 교회에 다니지 않으셨지만, 교회에서 목사님이 심방을 오시는 날이면 가게 여는 시간도 미루고 청소를 하고 집에 없던 과일을 깎아내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목사님은 크신 분이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목사님은 가시기 전에 늘 나에게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단다.”라고 말씀해주셨는데, 높으신 분 같은 분이 매번 그 말씀을 해주시니 진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학년이 되면서 자연스레 교회에 가지 않았고, 성인이 되어서까지 잊고 지냈다.
물론 가끔 절실히 하나님을 찾기도 했다. 중요한 시험을 보기 직전과 이후 발표 날, 비행기 안에서 난기류를 만났을 때, 출근길 지하철에서 10초 이내에 화장실에 가지 않으면 대참사가 날 것 같은 그런 순간 등 누구나 기도하게 되는 그런 순간에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누구에게 어떤 기도를 했던 것인가 싶다.

선한 일을 하면 하나님 나라의 티켓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어린 시절에 나는 나만의 생각으로 좋은 사람이 되려고 바르게 살았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셨으니, 내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착한 일을 하고 살면 때때로 힘들 때 하나님이 도와주시겠지?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도 사랑하고, 악한 마음 저리 가라 외치면서 선한 일들을 하면 그것들이 칭찬 스티커처럼 쌓이고 쌓이겠지. 죽음 뒤에 하나님 나라가 있다면 이것으로 하나님 나라의 티켓을 받을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정말 그럴듯해 보였다. 나는 그렇게 착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며,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고,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고, 어려움 없이 자랐다.
그렇게 평안하게 살던 나는 8년 전 결혼하면서 기쁜소식안양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시댁 식구들은 모두 구원받은 분들이셨고, 내게 바라는 것이 전혀 없으셨다.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구원받고 하나님 안에서 생활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게 뭐길래 며느리에게 바라는 것이 없으신 거지? 교회에 가는 것을 강요하지도 않으시고?’ 처음에는 서울 신혼집에서 시부모님이 계시는 안양까지 매주 교회에 가야만 하는 것에 대한 내적 갈등이 있었지만, 교회에 다니지 않는 나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환영해주신 마음이 감사해서 일주일에 한 번 효도하는 마음으로 다녀왔다. 아무도 주지 않은 칭찬 스티커를 나 자신에게 또 붙여가며 말이다. 
시댁 가족들 모두가 교회 안에 계셨기 때문에 새로운 가족이 된 저를 교회 분들이 항상 관심 있게 봐주셨고, 반면에 그분들을 모르는 나는 유령처럼 교회에 왔다 갔다만 했다. 교회 분들이 따듯한 눈빛으로 “빨리 구원받아야지.” 하며 나의 구원을 소망하여 주셨다. 분명 부담스럽지 않은 따듯함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도 변함없는 나의 모습에 점차 죄책감이 더해졌다. 모든 분들의 바람대로 빨리 구원받아서 모두에게 기쁨이 되고 나 자신에게 칭찬 스티커를 하나 줘야 하는데 방법도 몰랐기에 답답했다.

예수님의 피로 나의 죄가 모두 씻어진 사실은 알았지만…
8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기쁜소식안양교회에 계셨던 두 분의 목사님과 사모님으로부터 복음을 듣고, 박옥수 목사님의 설교도 들으면서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예수님의 피로 나의 죄가 모두 씻어져서 내가 죄가 없는 의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8년 동안 복음을 들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구원인지, 이것을 믿는 것이 구원인지, 아니면 그 이상 무엇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채로 몇 년이 흘렀다. 마음에 해결되지 않는 점 하나가 있었지만, 그때까지는 모른 척할 수 있었다. 구원받은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는 것도 아닌 채로 몇 해를 지내면서 목사님의 설교와 여러 사람의 간증을 수없이 들었다. 
“하나님을 찾게 하고자 저에게 어려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는 저를 붙잡기 위해 이러이러한 시련을 주심을 깨달았습니다.”
“고통스러움 속에 몸부림치다가 드디어 하나님의 뜻을 만났습니다.”
많은 간증의 중심이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을 느껴 감사하다는 마음이었다. 분명 그분들의 마음은 기쁨과 감사로 가득 차 보였지만, 나는 그보다도 과정 속에 있었던 고통이 마음에 더 크게 남았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힘든 시련의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건가? 내가 하나님을 먼저 찾지 않으면 나에게도 그런 시련을 주시는 건가? 고통은 두려운데 다른 방법은 없을까?’
첫 번째 들었던 의문이었다.
‘내가 무엇을 빨리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시련을 통해 당신의 모습을 나타내시는 건가?’라고 이해했는데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몰랐다.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면 분명 나를 이렇게 내버려두지 않을 텐데, 언젠가는 하나님이 당신을 찾게 할 텐데, 내가 노력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함에 진노하여 나를 시련을 통해 알게 하시면 어떻게 하지?’ 하는 마음에 두려웠다. 평온한 삶에 잃을 것이 많아서였다. 고단한 방법 말고 친절한 하나님, 자상한 하나님은 안 계실까? 사람도 여러 가지 모습이 있는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더 많은 모습이 있지 않으실까? 막연한 생각으로 그때부터 마음에 한 가지를 두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저에게 오실 때에는 친절한 하나님, 자상한 하나님으로 와 주세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렇게 기도했다.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 6:14)

창조주의 세계가 성경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불편했던 점은 사라지지 않고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삶은 평온한데 그 공간이 답답해서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만일 나의 인생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 절대 능력자가 계신다면,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을 먼저 알아보기로 했다. 내 죄가 씻어지고 내가 의인이 되었음을 알지만 ‘믿습니다’가 안 되니 하나님의 존재가 궁금했다. 하나님과 성경이 진짜라는 믿음이 생기면 마음속 공간도 해결될 것 같았다. 
그때부터 최근 2년 가량 성경과 함께 평소에 관심이 있던 우주물리학과 인류 기원, 지구 탄생,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특수상대성이론을 통해 시공간이라는 차원과 최근 밝혀지고 있는 양자물리학까지 다양하게 공부했다. 책도 읽고 영상도 보고 강의도 들었다. 신기하게도 공부하면 할수록 모든 것이 성경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얄팍한 일반상식만으로도 창조주 아니면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신기하게도 보면 볼수록 더 알고 싶고 궁금했다.
그 무렵 시어머님이 내 코트 속에 몰래 넣어주신 이한규 목사님의 저서인 ‘창조주를 기억하라’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작은 책 속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동안 공부하면서 느꼈던 창조주의 세계가 성경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우주과학뿐 아니라 인류학, 역사, 의학, 자연 모든 것들에 대해 성경에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 책에서 놀라움을 경험하고 나서 너무 신기한 마음에 기쁜소식안양교회에 다니는 시누이에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게 했더니, 불과 며칠 후면 이한규 목사님이 우리 교회로 오신다고 목사님을 뵙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한 번도 목사님과 상담해본 적이 없는 나는 1초 만에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내가 읽은 책의 저자인 목사님이 우리 교회 목사님으로 오시는 일이 그냥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만나 뵐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 책의 다음 과정이 너무 궁금한데 정확한 답을 해주실 분이 목사님밖에 없었다.
목사님과 상담하는 자리가 어렵지 않을지 걱정했는데, 그와 달리 목사님이 먼저 간증하며 내가 알고 싶어 했던 모든 궁금증을 풀어주셨다. 그동안 집필하신 원고들도 선별하여 주셔서 그것을 읽으면서 성경에 대한 믿음을 굳게 다져주셨다.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눅 24:45)

 

‘내가 모르니 하나님께 내 문제를 던져봐야 하는구나’
인간이 고작 300년 남짓 동안 알아낸 학문이 2000년 훨씬 이전에 성경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만드신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구나’ 하는 놀라움으로 창세기를 폈다. 몇 번을 읽으려고 시도했는지 모를 정도로 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1장의 둘째 줄 이후부터 이해되지 않던 그 어려운 성경이 읽혔다. 너무나 순식간에 거의 모든 말씀이 쭉쭉 읽혀 내려갔다. ‘아, 이것은 내가 읽는 것이 아니구나.’ 어떤 힘이 나를 도우시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또 다른 의문이 들었다. ‘성경은 진리고 하나님은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믿고 진짜 알겠고, 무려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어떤 이끌림으로 푹 빠져 읽었는데,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과연 교회에서 말하는 구원인가?’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 능력 있으신 분이 아들을 보내어 그의 피로 나의 죄가 씻어지고 내가 의인이 되었다 하심을 믿는데 그럼 구원인가? 고통 없이 알게 하시지 않았으므로 구원이 아닌가?’ 답답했다. 내가 무엇을 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박옥수 목사님이 쓰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라는 책이 있었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시아버님이 갖고 계시던 오래된 책인데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니 손이 갔다. 가벼운 마음으로 훑어보는데, 목사님이 말씀하신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하나님을 붙들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셔야 한다. 우리가 일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나를 비우고 하나님께 맡겨보라’라는 말씀이었다. ‘아, 내가 모르니 하나님께 내 문제를 던져봐야 하는구나.’
그때부터 기도를 바꾸었다.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기도했다.
“하나님, 저를 비우고 기다리겠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나타내주실 때 제가 하나님을 알아볼 수 있는 은혜로운 마음을 주세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
그렇게 기도하며 편안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가 세상 최고의 능력자시니 모든 것이 자유로워졌다 
그렇게 또 얼마가 지나고, 2020년 11월, 어느 날 TV에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보았다. ‘요한복음과 내용이 똑같을까?’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청했다. ‘영화 속 대사들이 성경에 있는 것일까?’라는 궁금증으로 성경을 폈는데 찾는 도중에 몇 가지 구절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4)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 14:18)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그때의 감동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내 기도에 정확한 답장을 해주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순간 나는 성경의 한 페이지 안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계시고, 세상 것과 같지 않은 것을 주신다는 것이다. 비로소 내가 죄가 없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의로운 자녀임을 느꼈다. 아담과 하와의 죄로부터 인간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아도 죄를 갖고 태어나고,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불쌍히 여기어 아무 행동 없이도 죄에서 구원될 장치를 마련해 놓으신 것이었다. 세상의 처음이고 세상의 끝이신 하나님은 시간의 밖에서 태초의 순간부터 그 끝까지 쭉 펼쳐서 모든 이들의 죄를 예수님의 피로 한순간에 세상에서 없애셨기 때문에 그 속에 속한 티끌보다 작은 나는 당연히 죄가 없는 것이었다.
‘우와, 나는 하나님의 자녀였다.’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것은 물릴 수도 바꿔버릴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나는 복도 많은 사람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가 세상 최고의 능력자시니 모든 것이 자유로워졌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이 짧은 구절에 이렇게 큰 뜻이 있다는 것에 감탄하였다.
8년의 세월 동안, 아니 그 이전부터 정확한 때를 계획하시고 나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했다. 그것도 나의 기도대로 친절하고 자상하신 모습으로 와주셨으니 더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다시 기도를 바꿨다. 
“하나님, 앞으로 제게 주실 복이나 시련 그 무엇이든지, 제가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는 지혜를 주세요.”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8)

 

‘아, 이래서 말씀하신 거구나’
내가 구원받은 후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정말 기뻐하고 감사해 하셨다. 전에 어머님이 자주 “하나님이 네 삶을 이끌어주시는 것을 알면 삶이 평안할 거야.”라고 하실 때, 나는 그 말씀의 의미를 전혀 몰랐다. 죄 사함을 받고 보니 ‘아, 이래서 말씀하신 거구나.’ 하며 시어머님의 말씀이 가장 먼저 기억났다. 그리고 아이들과 친정 부모님이 생각났다. 먼저 아이들을 주일학교에 보내기 시작했고, 친정 부모님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하기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시어머님은 여행하는 것이 자유로워지면 부모님을 모시고 ‘이스라엘 성지순례’에 다녀오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런 날도 마음에 그려보고 있다.
성경을 읽고 박옥수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한 가지 발견한 사실은, 성경은 오직 예수님 한 분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의 죄를 씻기 위해 이 땅에 오실 예수님과 이 땅에 오셔서 그 일을 이루신 예수님, 그리고 그 사실을 믿는 자들에게 의롭고 거룩하고 온전하다고 하신다는 사실이다. 요즘은 그동안 가족들에게 받았지만 조금 읽다가 말았던 박 목사님의 서적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른 여인들’도 읽고 있는데, 내 마음에 새롭게 다가온다.
출산과 함께 그만둔 직장에서 몇 달 전에 연락이 왔다. 두 아이를 둔 아줌마에게 다시 기회를 준다는 것도 흔하지 않은 일이라 복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포기해야만 했다. 무척 아쉽기만 했는데 지금은 아쉬운 마음에서 ‘이유가 있겠지? 하나님이 나에게 다른 계획이 있으시겠지? 때에 맞춰서 내게 맞는 것을 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바뀌어 평안하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크신 분이 계신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

기도해주고 말씀으로 인도해주신 분들께 감사하며
간증을 쓰기 전에 읽으시는 분들이 어떤 것을 느꼈으면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첫째는 당연히 아직 구원받지 못하신 분들이 구원받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사람은 참 설득력이 없다. 하나님을 만나는 영광스러운 과정에 내가 어떤 영향도 드릴 수 없음에 개탄스럽지만 하나님이 능력을 더해주실 것을 믿고 작은 바람을 적어본다. 
내가 처음 물음표 하나로 궁금증 하나로 하나님을 만났듯이, 그 무엇이든지 ‘왜?’ ‘그게 뭐길래?’ ‘진짜일까?’라는 어떤 물음표 하나라도 갖는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났던 과정처럼 물음표를 통하여 하나님이 계획하고 일하실 수 있지 않을까? 친절한 하나님, 자상한 하나님을 한 분이라도 더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간증을 쓰게 하신 하나님이 더 영광스러운 일을 계획하시기를 기도한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 시부모님과 가족들, 그리고 함께해주신 기쁜소식안양교회 형제 자매님께 감사드린다. 마음의 길을 잃을 때마다 복음의 말씀으로 인도하여 주신 박옥수 목사님과 이한규 목사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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