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변화의 시작 ‘목사님을 한번 믿어보자’
[라이프] 변화의 시작 ‘목사님을 한번 믿어보자’
  • 글 | 오영신(독일, 기쁜소식프랑크푸르트교회)
  • 승인 2021.02.0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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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호 기쁜소식
선교사 수기 (2회)

 

문제 많았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오영신 선교사는 몇몇 교회에서 예배당 건축 봉사를 하는 자신을 보며 믿음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 1995년에 선교학교에 입학해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데,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둘째 아들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음을 깨닫자 그의 마음에 말씀이 들어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태복음 25장에 열 처녀의 비유가 나온다. 그 중에 다섯은 지혜롭고 다섯은 어리석었다. 어리석은 처녀들도 외형을 보면 지혜로운 처녀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모든 것이 비슷했다. 하지만 그들이 들고 있는 등에 기름이 없어서, 밤에 신랑이 왔을 때 어둠을 이길 빛이 없어서 신랑을 만나지 못했다. 나는 교회 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어리석은 처녀들처럼 신앙의 모양만 배우고 흉내를 냈다. 그래서 어두운 형편을 만날 때마다 넘어졌고 고통 받았고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그 이유를 전혀 몰랐다.

문제 많았던 학창 시절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난 후 나는 빠르게 세상으로 빠져들었다. 한창 세상에 호기심이 많을 나이였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셔 보고, 또 토요일이면 대구 중심에 있는 디스코장에 가서 신나게 놀았다.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고 친구들과 어울려서 다니는 것이 그렇게 재미가 있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출석만 부르고는 담을 넘어 도망가서 종일 당구장에서 놀다가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갔다. 문제 많은 아들 때문에 어머니는 자주 학교에 불려가셨다. 나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자주 들었고, 여러 번 각오하고 다짐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루는 아버지 추도예배를 위해서 박옥수 목사님이 서울에서 대구까지 일부러 오셨다. 그날 나는 당구장에서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다가 추도예배 시간이 지나버렸다. 누가 봐도 형편없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대학 입시 시험에서 떨어졌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대전에서 사역하시던 박 목사님이 나를 부르셨다. 기쁜소식한밭교회에 있으면서 예배당 을 건축하는 교회에 가서 봉사했다. 기쁜소식동해교회와 기쁜소식동울산교회 예배당을 지을 때 가서 봉사하고, 대덕수양관을 건축할 때도 함께했다. 학창 시절과 비교해 내 삶이 많이 안정을 찾고 좋아졌다. 또 교회 일을 하니 보람도 있었다. 나도 이제는 믿음이 있는 형제라고 생각했다. 

어렵기만 했던 군대 생활
1992년 10월에 군에 입대했다. 강원도 고성에 있는 전방 부대였다. 박옥수 목사님이 군대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신 일들을 자주 이야기하셨기 때문에, 입대하면서 나도 군대만 가면 그렇게 될 줄 알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26개월의 군 생활이 무척 힘들었다. 작전이나 체력 훈련이 많아서 힘든 것도 있었다. 나는 주특기가 기관총이었는데, 총 무게가 10킬로그램이었다. 무거운 총을 어깨에 메고 강원도의 산들을 오르내리면서 육체의 한계도 많이 느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었다. 고참들이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엄청나게 괴롭혔다. 매도 많이 맞았고 괴롭힘도 당하고 욕도 많이 얻어먹었다. 정작 문제는 내 마음이었다. 생전 처음 그런 특수한 상황에서 어려움을 당하는데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참는 것밖에 없었다. 계속 참다 보니 주체할 수 없는 화가 올라왔다. 겉은 그리스도인인데 속에서는 온갖 미움과 어두운 마음 때문에 괴로웠다. 어렵게 군 생활을 마치고 다시 기쁜소식한밭교회에서 생활했다.

“저 녀석 빈 깡통에 
콩알 두 쪽 들었네”

박 목사님께 믿음이 없어서 군 생활이 힘들었다고 솔직히 말하면 되는데 말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의 모양을 흉내내며 살았다. 기억에 남는 것은, 당시 공군 장교인 형제님이 퇴근하고 교회에 오면 평일에도 주일학교 학생들을 모아놓고 찬송을 가르치고 말씀을 전했다. 너무 부러웠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기쁘게 복음의 일을 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나는 항상 시키면 마지못해 하는 사람이었기에 형제님의 모습이 특별히 아름답게 보인 것이다. 나도 모르게 그 옆에 가서 같이 주일학교 일을 했다. 나는 그렇게 열심히 흉내내면서 사는 게 믿음인 줄 알았다.
1995년에 선교학교에 입학했다. 박 목사님 밑에서 열심히 훈련을 받으며 바쁘게 또 감사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열심히 하면 당연히 사역자로 파송받을 줄로 생각했다. 그런데 파송받을 시기가 되었을 때 박옥수 목사님이 수업 시간에 들어오셔서 계속 나무라셨다. 
“여러분은 선교학교에 와서 파송을 받아 전도자가 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아무도 믿음을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러 번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때마다 주위를 힐끗 쳐다보면서 ‘도대체 누구야? 누가 믿음을 배우는 데 관심이 없고 파송에만 관심이 있어서 목사님을 불편하게 만드는 거야? 정말 열받네.’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다가 마침내 내 모습이 드러났다. 모든 선교학생들이 파송을 받기 전에 박 목사님과 개인 면담을 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목사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너무 궁금했다. 목사님과 개인 면담을 하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하나님이 자네에게 일하신 것이 있으면 이야기해 보게.”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면서 무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하나님이 일하신 것? 뭘 말해야 하지?’ 짧은 순간에 수많은 생각을 했지만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말이 나왔다. 
“예, 전에 제가 병에 걸렸을 때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낫게 하셨습니다.” 
있지도 않은 일이었다. 나는 몸이 건강해서 병에 걸린 적이 없다. ‘감기도 병이잖아.’ 하면서 날 위로했다. 목사님은 내 대답을 단호하게 자르셨다.
“그런 것 말고, 자네 인생에 ‘이것은 정말 하나님이 하셨다’ 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이야기해 봐.” 
더 당황이 되었다. ‘이게 아니면 뭘 말해야 하지?’ 도대체 하나님이 나에게 하신 일이 기억나질 않았다. 
“제가 전에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하나님이 도우셔서 그 사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 다시 기억에도 없는 이야기를 했다. 목사님은 다시 단칼에 자르셨다.
“그런 것 말고 자네 인생에 
‘이것은 정말 하나님이 하셨다’ 하는 것 있으면 이야기해 봐.” 
결국 나는 목사님께 사실대로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없습니다.” 
너무 부끄러워서 방을 빠져나가는데 목사님이 뒤에서 “저 녀석 빈 깡통에 콩알 두 쪽 들었네.”라고 하셨다. 빈 깡통이면 차라리 조용할 텐데 거기에 콩알이 두 쪽 들었으니 얼마나 요란하겠는가? 그런데 뚜껑을 열어 보니 아무것도 없는 모습이 바로 나였다.

왜 나를 잘못되게 하시겠어?
원하던 전도사로 파송받지 못하고 재훈련을 받았다. 너무 충격적이었고, 너무 부끄러웠다. 나는 한 번도 내가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교회에서 외형만 좇은 사람이지 교회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세계에 대하여는 눈이 가려진 영적 소경이었다. 그런 나를 박 목사님이 작정하고 간섭하셨다. 
며칠이 흘렀다. 마음에서 절망과 어두움의 소리만 계속 올라왔다. ‘나는 안 되겠다. 내가 과연 구원을 받기나 했을까? 정말 하나님은 살아 계신 것일까?’ 수많은 의심과 어두운 생각만이 가득 찼다. ‘이제는 끝났어’라는 생각에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밤에 빈방에 가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기도를 하다가 잠이 들고, 새벽에 깨어 방에 들어가곤 했다. 재훈련을 받는 다른 사람은 잘될 것 같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될 것 같았다. 갈수록 박 목사님의 꾸중은 더 강해졌다. 도대체 목사님이 왜 날 그렇게 책망하고 몰아세우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박옥수 목사님을 멀리서 또 가까이서 보고 자랐는데, 내가 아는 목사님은 절대로 남을 해롭게 하시는 분이 아니었다. 
‘그래, 목사님이 남을 해롭게 하시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목사님이 왜 나를 잘못되게 하시겠어? 목사님을 한번 믿어보자. 목사님이 시키시는 대로 한번 해보자.’ 
순간 내 모습이 조금 보였다. 나는 오랫동안 목사님이 전하시는 말씀을 많이 들었다. 그때마다 ‘말씀이 좋다. 박 목사님은 참 하나님의 종이고 훌륭하시다.’라고만 생각했지, 뒤돌아서면 내 생각대로 내 방식대로 살았다. 그 길에서 돌아서기로 했다. ‘어차피 내게는 길도 없는데 이번에는 목사님을 믿고 따라보자.’라고 생각했다.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면서 찾아온 변화
나에게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박 목사님이 전하시는 말씀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까지 내가 듣던 말씀과 달랐다. 목사님이 왜 그 말씀을 하시는지 조금씩 보였다. 그리고 말씀이 내 마음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한번은 대전도집회 때 박 목사님이 누가복음 15장의 둘째 아들 이야기를 하셨다. 그 말씀이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아버지를 떠난 아들은 모든 일에 자기가 주인공이 되어 일하는데, 일하면 할수록 망했다. 더 버틸 수 없자 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아버지가 일하셨고, 아버지가 일하기 시작하면서 아들이 변한다는 말씀이었다. 정말 많이 들었던 말씀이었는데, 둘째 아들이 바로 나였다. 내가 둘째 아들처럼 살았던 것이 아주 분명했다. 그때까지 내가 기도하려고, 성경을 읽으려고, 죄에 안 빠지려고, 유혹을 이기려고 애쓰고 노력했다. 그래서 내 신앙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면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외형적인 모양만 보고 살았던 나에게 그런 마음의 변화는 처음이었다. 말씀이 점점 내 마음을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내 마음 안에서 변화가 시작되고, 내가 했던 모든 것이 실패라는 마음이 드니까 내 마음의 방향이 하나님께로 옮겨져 갔다. 신기하게도 들리는 말씀이 내 마음 안에서 일했다. 마음을 꺾는 것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었다. 말씀이 들어와 내 마음을 꺾어 주었고, 자존심도 버리게 했고, 내가 나를 지키려는 마음도 하나 둘 내려놓게 하였다. 
나를 인도하시는 박 목사님을 향해 마음을 조금 열었을 뿐인데 그 사이로 말씀이 비집고 들어와서 26년 동안 교회 안에 있었어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경험하게 하였다. 처음으로 형편과 상관없이 약속의 말씀을 믿기로 했다.

 

 

“영신아, 하나님을 찬양해라”
하루는 새벽 시간에 박 목사님이 나를 부르셨다.
“영신아, 하나님을 찬양해라.”
갑작스런 말씀에 당황스러웠다.
“성경을 읽어봐. 시편을 누가 적었지? 다윗이야. 시편은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한 글이다. 그런데 다윗이 시편을 언제 적었는지 알아? 평안하고 형통할 때가 아니었다. 사울 왕이 자기를 죽이려 하고, 수많은 대적에 둘러싸여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때 절망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했어.”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지나가셨다.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나는 형편이 좋아지면 하나님을 찬양하려고 했다.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목사님은 그런 내게 다윗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가르치려고 하셨다. 다윗은 형편이 좋아져서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 아니었다.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내게 기름을 부으신 분은 하나님이야. 하나님이 나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운다고 약속하셨어. 그럼 나는 죽을 수 없어.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나를 지키고, 이 어려움에서 건져내고 구원하실 거야.’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하나님이 어떤 형편에서도 자신을 반드시 구원하실 것을 믿었다. 또 구원받은 뒤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 아니라 ‘어차피 하나님이 구원하실 건데 구원받은 뒤 찬양하지 말고 지금 찬양하자.’라는 마음을 가졌다. 박 목사님이 시키신 대로 하고 싶었다. 나는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이런 마음의 세계를 가져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때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형편과 상관없이 약속의 말씀을 믿기로 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찬양했다. 토요일 저녁에 몇몇 형제들과 함께 대전역에 가서 기타를 치면서 찬송을 불렀다. 나는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남 앞에 드러나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박 목사님이 시키신 대로 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내 곁에 다가오시는 것이 느껴졌다. 하나님이 내 마음에 일하시기 시작했고, 하나님이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 일이 있은 뒤 나는 결혼하고 개척교회로 파송을 받았다. 하나님이 하시니 모든 것이 복으로 변했다. 너무 신기했다. 
박 목사님과 면담할 때, 목사님이 하나님께서 내게 하신 일이 있으면 이야기해 보라고 하셨던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때 내가 스물여섯 살이었다. 교회에서 태어나 26년을 지냈지만, 하나님이 일하시는 믿음의 세계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알지 못한 나였는데, 선교학교에서 재훈련을 받으면서 하나님이 내게 일하셨다. 처음에는 부끄럽기만 했고, 박 목사님이 나를 왜 그렇게 꾸중하시는지 몰랐는데, 그 모든 것이 나에게 하나님이 일하시는 세계를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목사님이 이 세계를 나에게 얼마나 가르쳐주고 싶으셨을지 생각되었다. 그렇게 믿음의 세계를 향해 첫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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