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나를 넘어서
[설교] 나를 넘어서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1.03.12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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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호 기쁜소식
이 달의 설교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행 10:28~29)

하나님은 이방인의 때를 여셨지만
누가복음 21장 24절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이방인의 때’란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뒤 인간은 곧 죄에 빠졌고, 그때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죄에서 건지시려고 예수님을 보낼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창세기 12장에 들어서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셨다. 그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고, 그로 하여금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어서 복을 받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받는구나.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복을 받자.’라는 마음을 갖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 일을 위해 아브라함과 유대인을 먼저 택해서 복을 받게 하셨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예수님이 죽으신 후, 하나님은 예수님을 못 박은 유대인의 때가 아닌 이방인의 때를 여셨다. 이제 이방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여신 것이다. 구원받은 유대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잘 몰라서 이방인에 대해서 여전히 마음을 닫고 있었다. 

베드로의 마음을 열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신 하나님 
어느 날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해서 이달리야 군대의 백부장인 고넬료에게 복음 전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먼저 베드로가 기도하다가 비몽사몽 중일 때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을 내려 보내셨다.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었다.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베드로야, 잡아먹어라.” 
베드로는 그 말씀대로 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그러자 다시 소리가 들렸다. 
“하나님이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그 일이 있은 후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를 찾아와 함께 가기를 청했고, 베드로는 그들을 따라 고넬료의 집으로 갔다. 고넬료의 집에 도착했을 때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이렇게 말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하는 것이 위법인 줄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
베드로는 여전히 이방인에 대하여 마음을 열지 못했다. 그때 고넬료가 말했다. 
“나흘 전 제 9시에 기도하는데, 빛난 옷을 입은 한 사람이 내 앞에 서서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고 해서 사람을 보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하나님은 베드로의 마음을 열어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하게 하셨고, 그날 고넬료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베드로가 전한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 

자기 뜻을 좇아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생각은 항상 하나님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부인해야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일들을 경험하고 이것저것 배우면서 각기 나름대로 삶의 기준과 지혜를 갖게 된다. 그것을 바탕으로 누구나 자기 자신의 생각을 따라 자기 방법대로 인생을 산다. 그처럼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을 좇아 살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예수님 당시에 제사장이나 율법사들은 하나님의 뜻과 전혀 다른 자기 뜻을 따라 살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좇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서 왔지만 배척했다. 니고데모도 그러했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께로서 오신 것을 알면서도 자기 기준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성경에서 이러한 일들을 보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우리 선교회의 사역자들 가운데에도 자기 나름대로의 신앙을 가지고, 예수님과 다른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많다. 누구든지 내 생각을 버려야 주님의 길을 갈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믿었다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이 그에게 찾아가 말씀하셨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주여, 물이 동할 때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서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말도 안 돼. 내가 일어나 걸으려고 그동안 얼마나 애썼는데…. 나는 걸을 수 없어.’ 
이 생각이 병자의 마음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병자는 그런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걸으려고 했다. 그러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바로 그때 병자의 몸에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걸어갔다. 
이 병자는 자기 생각이나 경험이나 형편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더 귀히 여겼다. 사마리아 여자도 그랬다. 예수님이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여자는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을 믿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들었을 때 여자의 마음속에서 ‘저분이 주는 물이 어떤 물이기에 영원히 목마르지 않아? 그런 물이 어디 있어?’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여자는 자기 경험이나 생각을 다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모두 이렇게 믿었다. 자신의 경험이나 형편이나 생각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가 이처럼 어려운 듯
이 시대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만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믿는다. 자신의 경험이나 자신이 처해 있는 형편을 말씀보다 더 신뢰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는 말씀이 성경에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성경과 다른 자기 생각을 따라서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우리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로마서 3장 23절 말씀대로 우리가 다 죄를 범했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그런데 24절에 보면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예수님이 우리를 구속救贖하셨다. 우리가 지은 죄의 값을 다 지불하고 우리를 죄에서 건지셨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의롭다’고 하시는 것이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성경을 가지고 다니고 읽으면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의롭다고 하셨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죄인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가 이처럼 어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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