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설교]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1.03.0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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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호 기쁜소식
믿음에 이르는 길_레위기 제사 강해_소제(1편)

 

하나님은 하나의 밀알이 껍질이 벗겨지고 부서져서 고운 가루가 
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깨지고 부서져 고운 가루가 되어서 
하나님이 마음껏 역사하실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고운 가루
레위기 1장에 나오는 번제의 규례에서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송두리째 불타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구원받기 위한 우리의 마음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2장에 나오는 소제는 ‘우리가 구원받고 난 뒤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이 받으실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가져야 할 마음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레위기 2장 1절은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레위기 2장에는 ‘고운 가루’라는 말이 아주 많이 나옵니다. 소제의 재료는 고운 가루입니다. 고운 가루는, 밀이 껍질이 벗겨지고 알갱이가 다 부서져서 자신의 형체를 전부 잃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 속에서 밀의 형체를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부서진 상태, 네 토막이나 여덟 토막 정도로 부서진 것이 아니라 손으로 비벼도 덩어리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부서진 상태가 고운 가루입니다. 그 가루에 기름을 부어 반죽해서 빵이 만들어졌을 때 이전 밀의 형체와 전혀 다른 새로운 형체가 만들어지는데, 그것을 소제물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혹은, 고운 가루에 기름을 붓고 유향과 소금을 더해서 소제물로 드립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교회 안에서 자신의 주관이나 성품, 의지나 경험 등이 버려져야 합니다. 만일 그러한 부분들이 교회에서 드러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고운 가루가 된 것이 아닙니다. 고운 가루가 되지 않았다면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소제물로 드려질 수 없습니다. 

우리 생각을 무너뜨려야
오래 전에 기쁜소식선교회에서 어느 도시에 교회를 개척하려고 했습니다. 예배당으로 쓸 건물을 세로 얻으려고 하다가 적당한 건물이 없어서 터가 넓은 집을 샀습니다. 거기 있는 건물을 개조해서 예배당으로 잠시 사용하다가 예배당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굴삭기가 들어와 집을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지붕의 기와를 부수고, 유리창을 부수고, 기둥을 부수고….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부수었습니다. 그 집이 쓸 만했지만 안방도 부수고 건넌방도 부수었습니다. 집 뒤편에 있는 상추와 쑥갓을 심어놓은 좋은 밭도 뒤집어엎었습니다. 그렇게 터를 깔끔하게 닦은 뒤, 거기에 붉은 벽돌로 예배당을 멋지게 지었습니다. 
집이 좋아서 아깝고, 유리창도 새 것이어서 아깝고, 집안에 도배도 새로 깨끗이 했지만, 굴삭기는 전혀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모든 곳을 큰 버킷(바가지)으로 퍽 치면 와지직 하고 무너졌습니다. 그렇게 해야 그곳에 좋은 집을 새로 지을 수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뜻과 전혀 다른 생각의 집을 우리 마음에 지어 놓았고, 우리는 오랫동안 그 집에서 살았습니다. 이제 그 집이 부서져야 합니다. 밀알의 껍질이 벗겨지고 고운 가루가 되듯이 우리 속에 있는 생각들이 다 부서져야 합니다. 나쁘고 더럽고 부정한 생각만 아니라 좋고 깨끗하고 바른 생각도 다 부서져야 합니다. 아무리 깨끗하고 좋아 보이는 생각도 육신에서 나온 것은 육입니다. 우리 생각은 이미 사탄에 의해서 오염되었기 때문에 모든 생각이 버려져야 합니다. 완전히 부서져 고운 가루가 되어야 합니다. 고운 가루가 되었을 때 반죽할 수 있고, 그것으로 빵을 만들 수 있습니다. 원하는 대로 네모난 빵도 만들 수 있고, 둥근 빵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제물이 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해 자신의 육신에서 올라오는 생각들을 다듬으려고 합니다. 나쁜 생각을 덜 하고, 좋지 않은 습관들은 줄여가려고 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삶을 하나님의 생각에 맞추어 가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마치 새로 지을 좋은 빌딩의 설계도를 앞에 두고, 그 땅에 있는 초라한 집을 빌딩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과 같습니다. 벽돌을 한 장 더 얹고, 유리창을 새로 갈고….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이사야 55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사 55:6~7)
악인이 그 길을, 불의한 자가 그 생각을 ‘고칠’ 수 있다면 하나님이 왜 ‘버리라’고 하셨겠습니까? 고쳐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생활을 하려면 우리 생각을 고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송두리째 버려야 합니다. 

사탄의 무기인 육신의 욕구
사탄이 우리를 속이는 아주 중요한 무기가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이 뱀을 저주하실 때 “너는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하셨습니다. 흙은 인간의 육신을 가리킵니다. 사탄은 우리 육신을 양식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육체를 위해 주는 것처럼 하는 것이 사탄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우리 육체를 힘들게 만드는 것으로 보이게 합니다. 말씀을 믿는 것을 우리가 바보가 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말씀을 믿으면 삶이 엉망이 될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사탄이 그렇게 역사하기 때문에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무너져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비로소 우리 마음에 세워집니다. 
예수님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 즉 육체의 욕구를 만족시켜 가면서 예수님을 따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절대로 육체의 소욕과 겸하여 얻을 수 없습니다. 어떤 교회들은 육체의 소욕과 영의 소욕을 같이 만족시켜 주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육체의 욕구만을 채워줄 뿐 영적인 부분은 전혀 채워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속아서 영적인 것을 얻고 있다고 여길 뿐입니다. 

자신의 껍질이 벗겨지고 고운 가루가 되었는가?
구원받은 뒤, 교회에 못 배우거나 교양 없는 사람이 있어서 함께 섞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라는 덩어리가 깨지지 않은 상태에서 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고상하고 잘난 것처럼 여기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아무 쓸모가 없는 덩어리일 뿐입니다. 고운 가루가 되지 않았기에 빵을 만드는 데에는 쓰지 못합니다. 
“나는 구원받았지만 자식은 내 뜻대로 키워야 해.”
“나는 구원받았지만 결혼만은 내 뜻대로 할 거야.”
“나는 구원받았지만 목사님이 전하는 성경 말씀을 그대로 듣고 살다가는 망할 것 같아. 지혜롭게 가려서 들어야 해.”
지혜로운 것 같지만, 지혜롭게 사탄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뒤로도 사탄에게 속아서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려고 하고, 누가 봐도 뛰어나거나 훌륭한 신앙인이 되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욕망들을 우리 마음에서 제거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빼앗으신 뒤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귀한 것을 다시 들려주십니다. 그 은혜와 축복을 맛보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는 쪽으로만 달려갑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가난하게 만드셔서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게 하십니다. 그 마음이 만들어지면 많은 돈을 주셔서 사용하게 하십니다. 때로 우리를 낮추셔서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가식적인 삶을 벗게 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를 높이십니다. 자신이 버려져서 고운 가루가 된 성도들은 많은 축복을 누리며 삽니다. 그것들은 자신이 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손에 들려주신 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키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서 마음이 편하고 자유롭습니다. 때때로 일들이 계획한 대로 안 되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 삶을 인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습니다.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서 사는 것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이끌려 사는 것은 말할 수 없이 다릅니다. 마음에 욕망이 세워지면, 인간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이루려고 애를 씁니다. 때로는 거짓말도 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사람을 미워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비워지면 그렇게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들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쉽니다. 슬픈 일을 당해도 원망하지 않고 지내면 그 일이 아주 은혜롭게 변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 생각을 깨뜨리고 계시는 하나님
성령께서 일하시는 데에 기대를 두지 않고 자신이 노력해서 바른 신앙인이 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술이나 담배를 끊으려고 하는 사람, 자신이 목회나 설교를 잘하려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자기 뜻을 세우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이 무언가를 이루려고 애쓰는 동안에는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부서져서 고운 가루가 되지 않고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자신이 부서져 가루가 되면, 그 사람은 자신이 어떤 일을 이루려고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이루어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백 살이 되어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다는 믿음이 없어서 자기가 아들을 낳으려고 버둥거렸지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이스마엘을 낳은 일이 그러했습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아내 사라를 통해서 아들을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아들을 낳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고, 그 믿음대로 백 세에 아들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들 이삭을 죽여서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을 때에도,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삭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이 태어날 줄 믿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평안과 자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레위기 2장에 나오는 소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하나님은 하나의 밀알이 껍질이 벗겨지고 부서져서 고운 가루가 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들어 쓰시기 전에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그를 깨뜨리셨습니다. 바울도, 요셉도, 야곱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도 깨뜨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깨지고 부서져 고운 가루가 되어서 하나님이 마음껏 역사하실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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