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하나님이 되찾아 주신, 교회를 떠났던 사람들
[라이프] 하나님이 되찾아 주신, 교회를 떠났던 사람들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1.03.06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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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호 기쁜소식
땅끝까지 복음을, 끝날까지 주님과_254 | 박옥수 목사 간증

나는 1962년 10월에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았다. 죄 사함을 받은 후 내 죄가 사해진 이야기를 큰누님에게 처음으로 말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누님은 깜짝 놀랐다. 6·25전쟁이 일어나고 다음해인 1951년에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 누님이 15살이었고, 나는 8살이었다.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한 달 뒤 형님이 군대에 가고, 아버지는 전쟁 보급 물자 나르는 일을 하느라 집에 계시지 않았다. 그래서 누님이 우리 가족을 돌봐야 했다. 우리는 배가 많이 고팠다. 음식이 생기면 누님이 우리에게 주고 자신은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다. 
그렇게 살다가 내가 죄 때문에 고민하던 중에 죄 사함을 받았다. 나는 누님에게 내 죄가 사해졌고 내가 의롭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누님이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옥수야, 곡식이 익으면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교회 목사님도 죄인이라고 하시고 장로님들도 다 죄인이라고 하시는데, 네가 의인이라면 말이 되냐?”
그 후 나는 선교학교에 갔고, 누님이 죄 사함을 받았다. 이어서 작은누님과 형님이 구원을 받았고, 동생이 구원받았다.

“영준아, 너 수양회에 오거라.”
박영준 형제는 형님의 맏아들로, 형님이 처음에 딸을 낳고 이어서 영준이가 태어나 너무나 기뻐하셨다. 그런데 영준이가 자라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형님은 영준이 때문에 마음 아파하셨다. 형님은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세상을 떠나셨고, 얼마 안 되어 영준이가 군에서 제대했다. 
나는 조카 영준이 때문에 염려를 많이 했다. 제대한 영준이를 내가 이끌 자신이 없었다. 영준이가 봄에 제대한 후 곧 여름이 되어 영동 솔밭에서 수양회가 시작되었다. 솔밭에서 가진 수양회는 처음에는 100여 명이 모여 가졌는데, 다음해에 200명 그 다음해에 400명 등 해마다 수양회에 참석하는 사람의 수가 늘었다. 나중에는 1,000명을 넘어 1,500명이 모여서 수양회를 했다. 솔밭에서 갖는 수양회가 정말 좋았다. 수양회를 앞두고 영준이에게 전화를 했다. 
“영준아, 너 수양회에 오거라.”
뜻밖에 영준이가 오겠다고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영준이는 문제가 생겨서 잠시 피할 곳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수양회에 참석했던 것이다. 그 수양회에서 영준이가 구원을 받았다. 구원이 너무나도 놀라웠다. 날마다 술을 마시고 싸움질을 하며 문제가 많았던 영준이가 기쁜소식구미교회에서 지내면서 삶이 정말 변화되었고, 아주 귀하게 자랐다. ‘형님이 하늘나라에 가 계시면서도 아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고 계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면 형님을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영준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복음을 위해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나를 떠나고 나를 대적했다
영준이는 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랐다. 전도를 잘했고, 말씀을 전하면 은혜로웠다. 그래서 영준이가 나에게 주는 기쁨이 정말 컸다. 형님은 살아 계실 때 영준이를 위해 기도하시고 염려도 하셨지만, 나는 영준이를 위해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영준이가 복음 안에서 아름답게 자랐다. 귀한 복음의 일꾼이라고 생각되었고, 내 마음에 소망이 넘쳤다. 
그런데 어느 날 영준이가 교회를 떠났다. 나에게는 엄청난 고통이었다. 만나서 이야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때 영준이뿐 아니라 몇몇 전도자들이 교회를 떠나면서 문제가 되었고, 공교롭게도 나도 사람들로부터 모함을 받아 재판을 받아야 했다. 가슴이 아팠다. 
영준이 처는 암에 걸려 시달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나는 부산에 자주 내려가서 영준이 처도 만나 믿음을 갖도록 교제했다. 그런데 믿음을 갖지 못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지만 사람은 다 변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나와 가까이 지내던 사람이, 나와 같이 복음을 위해서 일하던 사람들이, 내가 사랑했고 정성 들여 가르쳤던 사람이 나를 떠나고 나를 대적했다. 사람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나는 생각했다. 
‘하나님이 내 마음을 낮추고 계시는구나. 내가 마음이 높았구나.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낮추시는구나.’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영준이가 돌아오고, 여러 사람이 교회로 돌아왔다
2020년이 되어 연초에 남미 4개국에 가서 대전도집회를 했다.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4개국의 대통령을 모두 개인적으로 만났다. 네 분의 대통령께서 거의 한 시간씩이나 귀한 시간을 내주셨고, 모두 구원을 받으셨다. 감사했고, 놀라웠다. 또한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는 귀한 역사가 일어났다. 미국에서 신학교를 개교해 수많은 학생들이 입학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영준이가 돌아왔다. 꿈만 같았다. 영준이 마음이 정말 순수했다. 같은 기간에 이정도 형제, 장선우 형제 등 여러 사람이 교회로 돌아왔다. 아침에 일어나 교회에 가면 꿈을 꾸는 것 같았다. ‘하나님이 보내셨구나! 하나님이 나를 긍휼이 여기셨구나!’ 장선우 형제는 입만 열면 눈물을 흘렸다. 그의 마음이 정말 순수했다. 이정도 형제도 너무나 변했다. 모든 것이 꿈같았다. 

사도행전 시대와 똑같은 역사가 피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피지는 우리가 2016년부터 전도한 나라다. 피지 감리교회 목사님들이 많이 구원받았고, 그분들이 우리를 향해 마음을 열었다. 피지에는 1,500개의 감리교회가 있으며, 이강우 목사와 김성훈 목사 두 사람이 피지에 가서 그 교회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다. 정말 놀라웠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후로도 피지에 가서 남은 1,400개의 교회에 모두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박영준 목사와 이정도 목사 두 사람을 보냈다. 
피지는 코로나 청정 국가여서 외부인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가 박영준 목사 부부와 이정도 목사 부부, 통역까지 여섯 명을 보냈는데, 총리실에서 도와주어서 입국할 수 있었다. 피지에 간 사람들이 두 팀으로 나누어 교회들을 찾아다니며 복음 전도 집회를 했는데 그 소식이 너무나 놀라웠다. 박영준 목사와 이정도 목사가 성령의 역사를 보면서 감격스러워했다. 우리 선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그 소식을 접하고 감격했다. 하나님께서 놀랍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바울이 전도했을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똑같은 역사가 피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도행전이 피지에서 이어지고 있구나!’ 감사했다. 교회를 떠나 방황하는 다른 형제들도 영준이처럼, 이정도 형제와 장선우 형제처럼 교회로 돌아와서 성령의 역사에 참예하게 되길 바란다. 영준이를 보내 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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