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미운털이 자랐다
어느 날, 미운털이 자랐다
  • 송근영
  • 승인 2021.04.13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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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키즈마인드
생각하는 동화

 

 

이슬이촉촉이 내려 싱그러운 풀 내음이 가득한 아침, 활짝 펼친 로리의 날개 사이로 햇살이 흘러내려요. 아침 일찍 일어나 기지개 를 켠 로리는 기분 좋게 주변을 둘러보았지요. 오늘은 친구들과 맛있는 열매를 따 먹으러 가기로 약속한 날이거든요.

 

유난히 깃털 색이 고운 로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언제나 인기가 최고였어요.
“아, 오늘은 또 얼마나 즐거운 하루를 보낼까? 난 정말 행복한 새야!”
로리는 약속 장소에 가기 전에 거울을 보다가 머리 위에 깃털 하나가 솟아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응? 이게 뭐야?”
예쁜 깃털 사이로 쭈글쭈글하고 시커먼 미운털이 한 가닥 자라나 있는 게 아니겠어요? 깜짝 놀란 로리는 미운털을 얼른 뽑으려고 잡 아당겼어요.
“아야야야!”
하지만 아무리 당겨도 미운털이 뽑히지 않았지요. 당황한 로리는 가위로 잘라보려 했지만 가위로도 잘리지 않았어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왜 깃털이 뽑히지도, 잘리지도 않는 거지?”
할 수 없이 로리는 미운털을 그대로 둔 채 약속 장소로 갔어요.

 

그곳에는 먼저 온 친구들이 모여 열매를 따 먹으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얘들아, 미안. 아침에 일이 생겨서 조금 늦었어!”
“어, 로리! 어서 와. 어? 그런데 너, 머리에….”
로리의 가장 친한 친구 메리가 로리의 머리에 난 미운털을 쳐다보았어요.
“어? 아, 이거?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런 게 자라 있지 뭐야. 뽑으려고 해도 잘 안 돼. 방법이 있겠 지. 신경쓰지 마.”

 

그때였어요. 평소에 로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랄라가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소리쳤어요.
“세상에! 로리! 머리에 그게 뭐야? 맨날 착한 척하더니 무슨 못된 짓을 해서 그런 깃털이 생긴 거야?”
“착한 척? 로리가 착한 척이라니?”
랄라의 말에 다른 친구들이 웅성대기 시작했어요.
“어머, 너희들 몰랐구나? 로리가 저렇게 얌전해 보여도 속으로 얼마나 잘난 척하고 질투심이 많은데? 저 미운털 좀 봐. 난 지금까지 저렇게 흉측한 깃털은 본 적이 없어! 아주 못된 짓을 한 게 분명하다고!”
“뭐? 랄라,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
로리는 화가 나서 랄라에게 소리쳤어요.

“알지도 못한다니? 네 머리에 난 미운털이 그렇게 말해주는 걸? 안 그러니, 얘들아?” 랄라도 지지 않고 더 당당하게 말했어요.
“그러고 보니 나도 지난번에 로리가 고맙다고 한 후에 돌아서 서 삐쭉거리는 걸 본 것 같아.”
“너한테는 고맙다고 했어? 내가 애벌레 줬을 때는 고맙다는 말도 안 했는데.”
“어머, 그럼 랄라가 한 말이 사실인가 봐!”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로리를 향한 친구들의 불만이 튀어나왔어요. 즐거울 거라고 생각했던 날이 로리에게 최악의 날이 되었지요.

 

엉망이 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온 로리는 너무 슬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미운털은 여전히 로리의 머리 위에 달려 있었지요. 로리는 미운털을 다시 한 번 힘껏 잡아당겨 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빗으로 빗어 넘겨보려 해도 다시 일어서고 다람쥐에게 튼튼한 이빨로 갉아달라고 해도 미운털을 없앨 수가 없었어요. 하루아침에 외톨이가 된 로리는 미운털이 너무 원망스러웠어요.
“이게 뭐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로리는 친구들과 다시 친하게 지내기 위해 노력했어요. 먼저 다가가 인사도 하고 맛있는 애벌레 쿠키도 만들어서 나눠 먹자고 했지요. 하지만 친구들은 로리의 미운털을 보며 로리를 피할 뿐이었어요.

 

로리는 먼발치에 쓸쓸히 혼자 앉아 친구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바라보았어요. 그런데 그때, 친구들과 놀던 메리가 로리에게 다가왔어요.
“메, 메리야.” “로리야.”
메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어요.
“로리야, 내가 너의 미운털을 보고 잠시 너를 미워했어. 그런데 우리 모두 예쁜 깃털만 있는 건 아니잖아. 이것 봐. 내게도 혼자 거울로만 보는 미운털들이 많아. 미운털이 많은 내가 너를 멀리 한다는 게 너무 웃기더라고. 또 네가 없으니까 너무 심심하기도 하고.”
메리가 날개를 펼치자 날개 안쪽에 구겨지고 못 생긴 깃털들이 삐죽삐죽 자라 있었어요.

 

“메리야….”
로리는 자기에게 다가와 준 메리가 고마워서 눈물이 핑 돌았어요. “이번 일로 내가 너의 예쁜 깃털만 보고 너를 좋아했다는 걸 알게 됐어. 미운털이 없는 새는 없는데 말이야.”
“메리야, 나는 이 미운털이 너무 원망스러웠어. 그런데 생각해 보니 친구들이 말한 대로 그동안 내가 예쁜 깃털을 가졌다고 우쭐하며 지낸 게 맞더라고.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야. 그리고 미운털 덕분에 친구들이 어떤 모습이든지 모두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어.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줘서 정말 고마워.”
그때였어요. 그렇게 없애려고 애를 써도 안 떨어지던 미운털이 스르르 떨어졌어요. “와!” 로리와 메리는 서로를 보며 기뻐했어요. 그리고 두 손을 꼭 잡고 친구들을 향해 날아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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