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왜 예수님을 믿지 않고 너 자신을 믿나?”
[라이프] “왜 예수님을 믿지 않고 너 자신을 믿나?”
  • 글 | 오영신(독일, 기쁜소식프랑크푸르트교회)
  • 승인 2021.04.0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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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호 기쁜소식
선교사 수기 (4회)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서 가장 축복 된 시간과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LA 교회에서 지냈던 시간은 내 인생에 지울 수도 없고 잊을 수도 없는 시간이었다. 내가 한 일은 어리석고 미련하고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일뿐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은 나 자신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나 자신에게서 돌이키게 해 주셨다.

 

‘안 된다’는 소리는 도대체 무엇이었지?’ 
나는 미국 LA 교회에서 부사역자로 6년 반 동안 있었다. 순간순간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도 받고, 또 하나님이 주신 간증도 있었지만 내 마음 중심에는 평안함이 없었다. 마음은 어두워가고 피곤해져 갔다. 왜 그런지 몰랐다. 이런 마음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도록 이런저런 생각들이 얽혀있었다. 그로 인한 많은 증상이 내 삶에 계속 나타났다.
1997년에 결혼했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임신하면 얼마 안 가 유산되고 말았다. 그런 일이 세 번 있었다. 너무 절망스러웠다. ‘나는 안 돼’라는 소리가 매일 들려왔고, 그 소리가 내 마음에 가득찼다. 우리는 아이를 가지지 못할 것 같았다.
어느 날 박옥수 목사님이 대전도집회를 인도하러 LA에 오셨는데, 집회 도중 우리 부부를 부르셨다. “왜 자네들은 아이가 없는가?” 하고 물으시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셨듯이 자네들에게도 아이를 주실 거야.” 라며 기도해주셨다. 그리고 저녁 집회 때에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자식을 낳게 된 말씀을 전해주셨다. 아내는 목사님이 교제해주신 말씀과 그날 저녁 집회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여보, 내 눈에는 자식이 없지만, 하나님의 종의 눈에는 벌써 우리 아이가 있어. 하나님이 약속대로 곧 아기를 주실 거야.”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몇 달이 지나자 아내가 임신했고, 건강한 딸을 낳았다. 정말 신기했다. 아내가 하나님의 종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아기를 낳으면서 내 마음에 큰 도전이 되었다. ‘안 된다’는 소리는 도대체 무엇이었지?’ 때로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 같은데 때로는 정말 믿지 못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LA 교회에 있으며 딸을 셋 낳았다. 

사역하는 것이 너무 피곤하고 짐이 되었다
하나님은 내 마음을 드러내는 일을 계속하셨다. 한번은 형제들과 바닷가에서 고동을 잡다가 경찰에게 걸렸다. 미국은 라이센스가 있어야 고동을 잡을 수 있는데 그런 것도 모르고 눈앞에 널린 고동을 신나게 잡다가 잡은 수만큼 벌을 받았다. 그리고 이 일이 신문에 큼지막하게 기사로 나가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나는 교회를 돕는 자가 되고 싶었지만 내가 손을 대는 것은 다 엉망이 되었고, 모든 것을 방해하고 거스르는 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유를 몰랐다. 여전히 나는 사람을 원망하고 형편을 탓했다. 목사님들이 나를 제대로 이끌어주지 못해서 내가 힘들고 어렵다는 마음이 컸다. 더는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마음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원망, 불평, 음란한 마음, 될 대로 되라는 마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 등 걷잡을 수 없는 생각들이 나를 끌고 다녔다. 내 마음이 육으로 강하게 흘러갔다. 나는 정말 양의 가죽을 뒤집어쓴 이리였다. 사역하는 것이 너무 피곤하고 짐이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더 열심히 하라는 말씀으로 들었다
한번은 집회를 마치고 한국으로 가시는 박 목사님을 새벽에 찾아갔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부끄럽지만, 목사님에게 내 어두운 마음을 조금 표현했다. 목사님은 딱 한 마디를 해 주셨다.
“자네는 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네 자신을 믿나?”
나는 목사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더 열심히 무엇을 하라는 말씀으로 들었다. 그래서 박 목사님이 다음에 미국에 오실 때까지 정말 나를 낮추고 마음으로 복음의 일들을 하며 살았다. 일찍 일어나서 성경을 읽고, 또 종일 허튼짓 하지 않고 전도하고, 심방을 다니며 성실하게 살았다. 이렇게 사는 것이 나를 믿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생각했다.
몇 달 뒤에 박 목사님이 다시 오셨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마음을 다 쏟아서 복음을 전하고 심방하고 성경을 읽으며 부지런하게 살았는지 간증했다. 그러나 목사님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나를 믿고 있다고 다시 책망하셨다. 그리고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하셨다. 그 모습을 보니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았다. 더 일찍 일어났고 더욱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밤늦은 시간까지 복음의 일에 마음을 쏟았다. 하지만 박 목사님은 계속 나 자신을 믿는다고 책망하셨다. 나는 더는 나를 낮출 것이 없다 싶을 만큼 낮추어 일했다. 더 열심히 하라면 더는 못할 것 같았다. 

무엇이 다른지 보이기 시작했다
한번은 뉴욕에서 가진 사역자 모임 때 간증하며 박 목사님 앞에서 또 다시 거절을 당했다. 마음이 무너졌다. ‘하나님, 저는 도대체 목사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마음 중심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더 이상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정말 내게 남은 것은 하나님의 긍휼 외에는 없었다. 
다음날 사역자 모임에서 목사님이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말석에 앉으라...”(눅 14:10)는 말씀으로 간증하며 모임을 시작하셨다. 말씀을 들으며 절망 속에 있던 내 마음에 작은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목사님이 간증을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려고 하시는지가 들렸다. ‘말석에 앉으라’는 말씀이 목사님의 삶을 평생 이끌어 가신 것을 보았다. 그때 박 목사님 마음과 내 마음이 무엇이 다른지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많은 말씀으로 은혜를 입고, 하나님이 일하신 것을 본 적도 있었지만 내 마음 안에서는 말씀이 그 순간만 머물 뿐 시간이 조금만 흐르고 나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계속되는 목사님의 간증과 말씀을 들으며 차이가 더욱 분명하게 보였다. 참된 믿음이란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머무는 것인데 내 속에는 말씀이 오래 머물지 못하고 잠시 머물다가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그것은 하나님의 눈에는 참 믿음이 아니었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의문이 일어났다. ‘왜 내 마음속에서는 말씀이 쉽게 사라져버리는 거지?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말씀을 믿지 않았으면 무엇을 믿은 거지?’ 그 순간 하나님이 내 마음의 눈을 밝혀주셨다. ‘그렇구나.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믿었구나. 그래서 말씀은 내게 늘 소망을 이야기했지만, 형편 앞에만 서면 다시 절망에 빠지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살 수밖에 없었구나.’ 나에게는 문제가 없고, 늘 앞선 목사님들이 나를 제대로 이끌어 주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였는데 이 모든 것이 내 생각을 따라간 결과였다. 내 마음에 올라오는 생각들에 너무 쉽게 끌려다니면서도 나는 복음의 일들을 한다고 생각했고 좀 더 열심히 하면 될 것이라고 믿었다. ‘박 목사님은 내 행위를 지적하신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믿고 따라가는 것을 보시고 지적하셨구나.’ 
그제야 내 모습이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내게 이런저런 어려움과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함께하시고 도우신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그 말씀을 믿은 것이 아니라 형편 앞에서 요동치는 내 생각을 믿었기 때문에 내 삶이 요동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말씀을 버리고 내 생각을 따라간 결과
그동안 목이 터져라 간절히 외치시던 박 목사님의 권고가 떠올랐다.
“여러분, 참된 신앙은 내 생각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는 것입니다.”
‘이 설교와 가르침을 도대체 내가 얼마나 많이 들었나?’ 그런데도 내가 말씀을 버리고 생각을 따라가는 사람인 것조차 알지 못했다. 물론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말씀만을 믿은 것이 아니라 내 생각도 믿고 말씀도 믿었다. 한 번도 내 생각을 다 버려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아니었고, 박 목사님이 우리에게 전해 주시려는 믿음이 아니었다. 말씀이 내 마음 안에 밀려들어 오면서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나는 구원받은 사람인데 왜 이렇게 신앙이 어렵고 힘들지? 나는 사역자고 선교사인데 왜 이렇게 인생이 고통스럽지? 왜 내게는 항상 두 가지의 모습이 나타나지?’
내 인생의 풀리지 않았던 부분들이 선명하게 보았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시 107:10~11)
내가 곤고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내 생각을 따라간 결과였다.

이제 내 생각 따라가고 싶지 않습니다
뉴욕에서 사역자 모임을 마치고 LA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하나님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셨다. 내 모습이 정확하게 보이니 내가 손댈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하나님을 바라볼 뿐이었다. 순간순간 내 생각은 계속 올라왔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이제 내 생각을 따를 수 없었다. 내 마음에 말씀이 너무 분명하게 들렸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라고.
몇 달이 흐르면서 형편이나 내 모습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특별한 변화가 없으니 다시 불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하나님은 내게 계속 물으셨다. ‘네가 이래도 나를 믿을래?’ 그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님 이제는 망해도 좋고 안 변해도 좋습니다. 이제 내 생각 따라가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만 믿겠습니다.’ 전에 같으면 불안한 생각이 올라오면 쉽게 불안에 휩싸였지만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하나님께 내 전부를 맡겼다. 그냥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가고 싶을 뿐이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마음이 참 평안했고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마음이 점점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어떤 일도 내가 손대고 싶지 않았다. 하나님 없이는 걸어가고 싶지 않았다. 

LA에서 하와이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다가 망하자’
2007년 9월 어느 토요일 저녁, 전도를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왔는데 아내가 선교회 홈페이지에 사역자 이동 공문이 올라왔다고 했다. 거기에 내 이름이 있었다. LA 교회 부사역자에서 기쁜소식하와이교회로 이동이었다. 이동 날짜는 월요일이었다. 일요일에는 짐을 싼다고 정신없이 보내고, 월요일 아침 비행기로 아내와 세 딸을 데리고 하와이로 향했다. 하와이 공항에 도착하자 단기선교사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사택에 가서 짐을 풀고 하와이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하와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했다. 전에 있었던 사역자가 어려워서 그만두면서 갑자기 내가 하와이로 온 것이었다. 형제 자매들도 몇 명이 되지 않았고 교회와 마음도 멀었다. 처음에는 자주 형편을 보면서 ‘이러다가 망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두려운 생각이 나를 잡으려고 했다. 하루는 기도 중에 LA 있을 때 박 목사님이 ‘자네는 망한 자야’ 하며 자주 교제해 주셨던 것이 생각났다. ‘그렇지. 나는 하나님의 눈에 하나님의 종의 눈에 벌써 망한 자지. 그런데 왜 내가 망할까봐 두려워하지?’ 내가 사단의 생각에 속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 지금까지 내 생각, 내 방법 따라가다가 망했는데 이제는 망해도 좋다.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다가 망하자.’ 하는 마음이 불끈 올라왔다. 나는 더 망할 것도 없는 존재였는데 사단이 나를 두렵게 하려고 넣어준 생각일 뿐이었다.
내 생각을 따를 수 없게 되자 이제는 교회에서 들었던 말씀들이 하나씩 나를 인도해 주었다. 하나님은 먼저 내 마음을 이끌어 주셨다. 전에는 이런 생각이 올라오면 그냥 수긍하고 받아들였을 텐데 이제는 그렇게 살 수 없었다. 열악한 것이 많았지만 하나님만 의지하고 싶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형편을 뚫고 나아갈 수 없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배워야 해”
하루는 아내가 장모님과 통화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가에서 몇몇 가족이 그동안 별로 도와준 것이 없었는데 우리가 독립하여 사역하니 이제는 좀 돕고 싶다고 얼마간의 돈을 보내려고 했다. 통화를 마치고 아내와 교제했다. 
“당신,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요. 장모님께 다시 전화해서 절대 우리를 돕지 말라고 전해줘요.” 아내는 이해하지 못했다. 
“여보, 우리는 지금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배워야 해. 가족들은 우리를 한 번 돕지 계속 도울 수 없어. 여기서 우리가 먼저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을 배우지 못하면 우리는 평생 사람의 도움을 바라보고 살 수밖에 없어.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가족들이 정말 우리를 돕고 싶다면 나중에 큰 예배당을 지을 때 도우시라고 해줘요.”
당시 내 마음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차 있었다. 지금 내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못 배우면 안 될 것 같은 마음뿐이었다. LA에서 보낸 6년 반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은 내가 얼마나 무익하고 어리석고, 부끄럽고, 더러운지 보여주면서 나 자신으로 더는 살 수 없는 마음을 주셨다. 아내는 곧 내 말을 따라 주었다. 이제는 내 주위에 나를 도울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다. 하나님은 그렇게 내 마음을 한 부분 한 부분 이끌어주기 시작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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