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라이프]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 글 | 김상연(기쁜소식북부산교회)
  • 승인 2021.04.19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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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호 기쁜소식
보배와 질그릇

 

 하나님이 내 삶에 베푸신 크신 은혜를 생각하면 너무 감사하다. 나의 죄뿐만 아니라 내 인생의 모든 짐도 담당하신 예수님. 그 사랑 안에서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행복을 누리며 산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늘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소 장사를 하셨던 아버지와 귀가 안 들리는 큰 오빠와 둘째 오빠가 자주 심하게 다퉈서 밥상을 엎어버리곤 하였다. 가끔 밤중에 느낌이 이상해서 일어나보면 엄마는 대문 밖에 앉아서 달빛 아래 울고 계셨다. 엄마는 여러 번 “너희들만 아니면 지금이라도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고 싶다”라고 말씀하셨다.
가족과 도저히 함께 살 수 없었던 엄마는 셋째 오빠와 남동생과 나를 데리고 윗마을 친척 집 외양간 입구에 솥을 걸어놓고 그곳을 부엌 삼아 밥을 해 먹었고, 나는 그것이 창피해 늘 고개를 숙이고 학교에 다녔다. 6학년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설상가상으로 집에 불이 나면서 집안 형편은 더 어려워졌다.

내 인생이 한없이 초라하고 처참해보였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일 때 셋째 오빠가 고등학교에 입학해야 했기에 다음 해에 휴학할 수밖에 없었다. 열다섯 살에 돈을 벌어야 했고, 엄마는 5남매 중 하나밖에 없는 딸을 사회로 보내며 많이 우셨다. 나는 돈을 많이 벌어 엄마를 도와드려야겠다 다짐했고, 이후 양산 통도사에 있는 삼성전관 하청업체에 취직했다. 공부할 수 없는 것이 한이 되어 독학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1년 뒤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삼성전관에 입사했다. 그곳에는 잘 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가족 때문에 생긴 대인공포증으로 직원들이 지나갈 때마다 늘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처음에 내게 주어진 작업은 정밀하게 화면을 조정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시력이 안 좋아서 아교를 다루는 일을 하며 고무 녹이는 냄새를 맡아야 했다. ‘나는 왜 이렇게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얼굴도 못생기고 시력마저 좋지 않아서 냄새나는 이런 일밖에 못 하지?’ 내 인생이 한없이 초라하고 처참해 보였다. 이런 생각이 진행되자 죽고 싶었다. ‘어디서 죽지? 어떻게 죽을까?’ 하며 산중으로 다니다가 연못에서 죽어야겠다 결심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신변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반장님에게 그만둔다고 말씀드렸다. 반장님은 내가 심상치 않다고 느끼셨는지 교회에 열심히 다니던 리더 언니와 상담할 수 있게 해주었다.

기도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졌지만, 현실로 돌아가면 죄가 괴롭혔다
언니를 따라 처음으로 회사 내 성우회에 나갔다. 죽을 마음을 가졌을 때 만난 예수님은 내게 큰 위로와 위안이 되었다. 일을 마치고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성경과 종교 서적들을 읽기 위해 커피를 마시며 밤을 새우곤 하였다. 신약 성경은 거의 외울 정도로 많이 읽었고, 늘 엎드려 기도하다 잠이 들었다. 열심히 하다 보니까 총무도 맡고, 모임에서 사회도 보았고, 수요예배나 일요예배는 회사 근처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렸다.
신기한 것은 성경을 알면 알수록 몰랐던 죄들을 알고 깨달으면서 자주 회사 근처에 있는 감림산기도원에 올라가 회개 기도를 했다. 때로는 연탄불이 꺼져 차가운 마룻바닥에 앉아 3~4일씩 금식기도도 했다. 회개 기도를 하다 보면 옆에서 누가 내 기도를 들을까 봐 산에 올라가 목청껏 회개 기도를 했다. 기도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졌지만, 현실로 돌아가면 나도 모르게 올라오는 미움, 시기, 질투 같은 죄가 나를 괴롭혔다. 내가 주님을 위해 뭔가를 했을 때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돌아가셔서 내 죄를 씻어놓으셨다고 말은 했지만 내 마음에는 여전히 죄가 많았다.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나를 보며 남들은 다 ‘착하고, 천사 같다’고 말하지만 내 마음에는 점점 죄가 많았다.
주위에서 사역의 길을 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잘 다니던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신학교에서 권위 있는 목사님이 계신다는 교회에 나갔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다가 목사님의 안내로 야간 신학교에 다녔다.

너무 기뻐서 고함을 치며 시장 골목을 뛰어다녔다
하루는 거리에서 전도하다가 한 자매님을 만났다. 나는 친구삼아 지내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 대화를 나눴는데 자매님은 내게 ‘죄가 있느냐? 성령을 받았느냐?’고 했다. 나는 ‘죄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반박했다. 나는 성경을 많이 안다고 생각했기에 자매님이 성경 이야기를 하는 것이 듣기 싫었다. ‘이 사람이 바로 말로만 듣던 이단이구나’ 하며 무시했다.
그런데 자매님은 끈질기게 내가 다니던 교회로 찾아왔고 심지어 교회 안에 들어와서 나를 불러내었다. 만나자는 약속을 계속 어기는 게 미안해서 6개월쯤 지나 기쁜소식동부산교회에 따라갔다. 그리고 한 형제님과 상담했다. 나는 말씀을 굳게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형제님은 내가 기쁜소식동부산교회 중학생보다 성경을 더 모른다고 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지만, 며칠 동안 성경 공부를 계속했다. 어느 날, 요한복음 1장 29절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말씀을 보았다. 세상 죄 속에 내 죄도 다 이미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회개 기도로 죄가 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이 내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내 죄가 이미 다 씻어진 사실을 비로소 알았다. 그날 나는 너무 기뻐서 자정이 다 되는 시간인데도 고함을 치며 시장 골목을 뛰어다녔다. 
나는 다니던 교회 목사님의 은혜로 신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주일학교 교사를 맡으며 나와 연결된 초등학생이 있었기에 교회를 분리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구원받고 난 후 다니던 교회에서 처음 예배를 드릴 때 장로님이 “이 죄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라고 할 때 더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지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후로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기쁜소식동부산교회에 나가면서 어려움이 많았다. 너무 오랫동안 잘못된 신앙을 배웠기에 내 생각을 내려놓기가 너무 어려웠다. 정통 고신파에 소속되어 있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온 나로서는 모든 부분이 어렵게 느껴졌지만, 교회에서는 이런 나를 받아주었고 보살펴 주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고된 노동을 하며 살았지만 매일 저녁 말씀을 들으면 피로가 싹 풀렸다.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가족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다
교회의 인도로 결혼하고 남편을 따라 기쁜소식북부산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구원받은 후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 가족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다. 한 날은 자정이 넘어 남동생에게 몇 번 전화가 왔다. 술에 잔뜩 취해 인생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남동생은 독을 품고 돈을 벌려고 애를 썼다. 이유는 엄마가 사촌오빠에게 보증을 섰다가 사촌오빠의 사업이 망하자 엄마가 욕을 먹고 지내시는 것을 보며 돈이 없으면 무시를 당한다 생각하고 돈을 벌려고 애를 쓰고 살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술을 마셨고, 그때마다 우리 집으로 전화를 한 것이다. 
얼마 후 동생은 자전거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나서 부산에 내려와 지내다가 창원에서 집회할 때 구원받았다. 동생의 직장 친구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로 인생의 회의를 느끼다 소책자를 보고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읽고 싶어 기쁜소식창원교회에 갔다가 상담하며 구원받아 지금 기쁜소식창원교회에서 집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 조카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도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며 교회와 연결되어 구원받게 하셨다.
가족이 한 명 한 명 구원받으며 감사했다. 그런데 나는 그 누구보다 고생을 많이 하신 엄마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절에 다니시는 엄마는 큰집 장손인 조카가 구원받자 내가 보기 싫다며 내가 집에 갈 때마다 절로 피하셨다. 구원받은 남동생 부부와 조카 부부, 그리고 우리 부부는 엄마를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거의 매번 수양회에 모시고 갔다. 수양회에서 엄마는 의외로 잘 적응하시고 식사도 잘하셨는데 말씀은 듣기 싫어하셨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면서 목사님들과 여러 번 상담을 받다가 예수님이 당신의 죄를 다 씻어놓으신 사실을 받아들이셨다. 어머니가 구원받으셨을 때 너무 기쁘고, 감사했다. 지금 어머니는 아흔두 세이신데, 아직 총기가 있으셔서 ‘예수님이 내 죄를 다 가져가셨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오랫동안 엄마는 나를 향해 죄인 된 마음을 갖고 있어 자주 우셨다. 나는 엄마에게 하나님이 나를 어려운 길로 이끄신 것은 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말씀드렸고, 엄마는 하나님으로 위로를 받으셨다. 지금 어머니와 나는 연인 사이처럼 아주 가까워졌다.
자녀를 키우는 부분도 우리 부부는 잘할 자신이 없었는데 아들이 교회 안에서 자라며 2011년에는 콜롬비아로 단기선교를 다녀왔고 지금까지 교회의 인도를 받고 있어 정말 감사하다.

내 죄를 씻어주신 주님이 내 병도 낫게 해주시겠다
가족의 구원뿐 아니라 하나님은 나의 건강도 교회 안에서 책임져주셨다. 나는 시력이 아주 좋지 않아서 거의 눈뜬 봉사에 가까웠다. 1미터 앞에 있는 물체도 잘 안 보여서 더듬거리고 살았다. 일반 안경도 사용할 수 없어 렌즈를 맞춰 끼다 보니 눈이 자주 충혈이 되었다. 한 번은 사모님이 눈을 수술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이미 몇 번이나 수술을 알아보았는데 눈 상태가 안 좋아서 수술해도 시력이 0.5밖에 나오지 않고, 비용도 많이 들어 수술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보니 처음에는 사모님이 말씀하셔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모님이 세 번이나 수술을 말씀하셨다. 더는 거부할 수 없었다. 기대하지 않은 채로 장로님이 하시는 안과에 갔다. 몇 차례 검사 후 기존의 수술 대신 수정체를 바꾸는 수술을 할 수 있었고, 생각지도 못하게 1.0이라는 시력을 얻었다.
‘내가 다 알아봤어요. 나는 안 돼요.’ 하면서 내 생각을 계속 믿고 사모님의 인도를 끝까지 거부했다면 나는 지금도 눈뜬 봉사로 살았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 정말 감사했다.
또 한 번은 직장에 나간 지 며칠이 안 되어 갑자기 가슴이 꽉 조여왔다. 숨쉬기가 곤란하고 다리가 퉁퉁 부어 계단도 오르지 못했다. 평소 건강검진을 받았던 병원에 가 보니 근육통이라며 마사지를 해주고 항생제를 처방해줬다. 하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큰 병원에 가서 유명한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내 증상을 보고 자가면역질환인 루푸스나 베체트병 같다며 평생 누워 지내야 한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 그런 병에 걸린 내가 안타까우셨는지 누워있더라도 햇빛이 있는 곳에 있어야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거라고 위로했다.
다시 이 문제를 들고 교회 앞에 나갔다. 더 좋은 다른 의사를 찾고 싶다고 이야기를 드리자 하나님 마음보다 의사를 더 크게 여긴다며 호통을 치셨다. 그때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처럼 이제 나는 평생 누워있어야 할 것 같았는데, 그 생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사모님은 아침마다 교회에 와서 성경을 읽는 시간을 가지라고 하셨다. 하루는 성경을 읽다가 시편 103편 3절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말씀을 보았다. 내 죄를 씻어주신 주님이 내 병도 낫게 해주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먹고 있던 약을 끊었다. 그 후 증세가 가끔 나타났지만, 지금은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내 생각으로 형편을 보는 것에 익숙했던 나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을 통해 성경 말씀이 실상인 세계를 한 부분 한 부분 가르쳐 주셨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합격하고 대학교에 갈 것입니다
나는 배움이 짧고 대인공포증이 있어 소심한 부분에 많이 매여 있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셨는지, 목사님이 검정고시를 보라고 하시며 예배 시간에 
“한 자매님이 올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합격하고 대학교에 갈 것입니다.”라고 공표하셨다. 너무 놀랐다. ‘어떻게 하지?’ 당시 내 나이 55세였다. ‘공부에 손을 뗀 지 30년이 흘렀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때 한 가지가 생각이 났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결성되고 초창기에는 많이 부족했는데 박옥수 목사님이 세계 최고의 합창단이 될 것이라고 하셨을 때 박은숙 단장님이 ‘그럼 어떻게 해야 되지?’ 하며 ‘연습을 많이 했다’고 하셨다. ‘그렇구나. 나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바로 책을 사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해 4월에 중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당시에 교회에 여러 일이 많아서 무척 바쁘고 정신없이 보냈는데 그런 가운데에서도 공부했다. 8월에는 목사님의 말씀대로 고등학교 검정고시까지 합격했다. 그리고 지금은 사이버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이 또한 내 생각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종의 마음을 받았을 때 하나님이 그대로 이루시는 것을 보며 감사했다. 

마치 옛날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교회 안에서 참 신기한 일들을 많이 본다. 평생 남들 앞에서 서는 것은 못할 것 같았고, 더군다나 내가 남들 앞에서 춤을 추거나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지금 실버대학에서 레크리에이션을 담당하고 있다. 나는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다. 재밌는 이야기도 내가 하면 재미없어지는데 노래방도 가본 적이 없고 노래와 춤에 흥미를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내 모습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내게 이 일을 맡기셨다. 웃음치료반에 가서 배우고 강사님들에게 코치를 부탁드렸다. 무대에 서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어색한 나머지 실수해서 당황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실버 분들과 많이 가까워져서 나도 즐겁게 진행하고 실버 분들도 즐겁게 참여하고 마음이 열려 복음을 들으신다. 그동안 여러 분이 죄 사함을 받아 감사했다. 
요즘에는 CLF에 목회자들을 초청하고 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물러 있다가 자매님들에게 배워서 교회에 직접 찾아가서 목회자들을 만나고 있다. 목회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부담스러웠지만, 막상 발을 내디디자 감사한 일들이 많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예배를 드리지 않는 곳도 있었고, 교인들이 교회에 많이 나오지 않아 염려하는 사모님도 있었다.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방언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분들을 보면 마치 옛날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어떤 곳은 설교하는 소리가 마당 철문까지 들리길래 문을 열고 들어가니 교인 한 명을 앉혀 놓고 설교하고 있었다. 
하루는 한 교회에 막 도착했을 때 문을 닫고 가시려는 목사님을 만났다. 전단지를 드리며 초청하러 왔다고 하자 그분은 10년 전에 인터넷과 책을 통해 박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접하셨다고 했다. 내가 일반 교회에 수년간 열심히 다녔지만,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기쁜소식선교회를 만나 해결되었다고 말하자 “그렇지, 그렇지, 해결된 게 맞아!” 하며 공감하셨다. 수고가 많다고 다음에 또 만나자고 약속했다. 또 다른 교회에서도 목사님과 앉아서 내가 구원받은 간증을 하고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다음을 기약하고 나왔다.
많은 목회자에게 카드뉴스로 CLF 소식을 보내고 있고, 우편으로 주간 신문을 교회들에 보내고 있다. 몇 년째 보내지만 거부하지 않고 받아 보시는 분들이 많고, 그분들에게는 박 목사님 책자도 보내드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CLF가 잘될 거라는 목사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마음이 들고 소망스럽다.

형편없는 나를 품으셨다
하나님이 박 목사님을 세워주셔서 우리가 복음을 듣고 신앙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 박 목사님이 어렵고 힘든 믿음의 길을 걷지 않으셨다면 나는 지금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무시하며 죄를 사해달라고 소리치고 있었을 것이고, 복된 교회 안에 사는 오늘의 나는 없을 것이다. 내게 일어난 일들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느꼈다. 내가 만약 정상적인 가정에 태어나고 정규 과정을 거쳐 공부했다면 내가 과연 복음을 들었을까? 아마 하나님도 모르고 살고, 복음을 만날 기회가 와도 무시했을 것 같다. 전에는 왜 나를 비참한 환경 속에 두셨는지 알지 못해 하나님을 원망했는데 이제는 안다. 나를 세상 가장 밑바닥에 두신 것은 나를 구원하기 위함인 것을.
수많은 나라의 정상들을 만나며 복음을 전하시면서 마음의 위치는 겸비한 가운데 두시는 박 목사님의 말씀 가운데 특히 ‘말석에 가서 앉으라’가 많은 은혜가 되었다. 내가 세워지지 않고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아서 시험에 들 때가 많았는데,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이 내게 인도하시는 자리가 가장 복된 자리임을 알았다.
내게는 실버 분들과 함께할 마음, 목회자들을 만나서 초청할 마음이 없지만, 교회에서 마음을 넣어주시니 내가 갈 수 없는 길을 많이 걷는다.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겔 16:6) 형편없는 나를 하나님이 품으셨다. 그냥 버려두면 버려질 수밖에 없는 나를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또한 영화롭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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