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왔다
[설교]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왔다
  • 글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1.05.06 08: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1년 5월호 기쁜소식
이 달의 설교

 

얼마나 먼 길인지 알 수 없지만, 탕자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탕자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분명히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넘쳐서 잘 먹고 잘살 수 있는데, 탕자는 왜 돼지우리에서 굶주리고 있었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아버지 앞에 서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면 그는 돼지우리에서 주려 죽어야 한다. 
이런 부담은 사탄이 준다. 탕자가 정말 아버지 집으로 가고 싶지만, 자신이 잘못한 일들을 생각하면 아버지 앞에 서는 것이 너무나 부담스럽다. 탕자가 돈이 다 떨어져서 기생집에서 쫓겨났을 때 곧바로 아버지 집으로 갔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러나 부담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부담스러운 길을 간 사람들
사람은 누구나 부담을 피하고 싶어한다. 눈먼 소경이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께서 그의 눈에 진흙을 발라 주시면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다. 실로암으로 가는 것이 소경에게는 너무나 부담스럽다. 길도 모르고, 앞이 보이지 않으니까 위험하기도 하다. 특히 못에 가서 씻는 것이 소경에게는 너무 두렵다. 실로암 못에 가서 발을 헛디뎌 못에 빠지기라도 하면 어느 쪽으로 나가야 할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런데 소경은 실로암 못으로 갔다. 
중풍병자를 메고 간 사람들은 예수님이 계신 집의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뚫고 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달아 내렸다. 그들이 침상에 누운 병자를 침상째 들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갔을 때, 그 집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문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때 그들은 생각했다. ‘어려움이 많지만 친구가 예수님 앞에 가면 낫는다.’ 그 믿음이 지붕을 뚫고 친구를 침상에 누인 채로 예수님 앞에 달아 내리게 했다. 
이처럼 부담 너머에는 정말 좋은 것이 있지만, 사탄은 우리 마음에서 느끼는 부담을 이용해서 축복된 길을 모두 가로막는다. 사도 바울이 결박된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가는 것은 너무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로 말미암아 수많은 로마 시민이 구원을 받았다. 그리고 로마를 통해 전 세계로 복음이 전해졌다. 

산딸기가 있는 곳에 뱀도 있다고 언니는 그러지만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사탄은 항상 부담을 주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산딸기가 있는 곳에 뱀도 있다고 언니는 그러지만 나는 안 속아”라는 가사의 동요가 있다. 언니가 산딸기를 따러 갈 때 동생을 데리고 가는 것을 싫어한다. 산이 험하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동생과 함께 가면 어떤 때에는 동생을 업고 산길을 내려와야 한다. 그래서 언니는 동생에게 산딸기가 있는 곳에 뱀도 있다고 말한다. 그래야 동생이 뱀이 겁나서 따라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동생이 그 사실을 알았다. “산딸기가 있는 곳에 뱀도 있다고 언니는 그러지만 나는 안 속아. 내가 따라가려고 할까봐 언니가 그러는 거야.”
사탄은 우리를 속인다. 우리가 부담스러운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우리가 축복을 받기 원해서 무엇을 하려고 하면 사탄은 항상 부담을 주어서 못 하게 한다.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 너무나 복된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계속해서 둘째 아들에게 말한다.
‘네가 가면 아버지가 너를 미워할 거야. 너를 쫓아낼 거야.’ 
마지막에 탕자는 생각한다. 
‘그래, 아버지가 나를 내쫓으면 내가 품꾼이 되면 돼. 그래도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많아.’ 
둘째 아들이 그렇게 부담을 넘었을 때 아버지 집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돌아가서 보니 아버지의 사랑이 너무나 컸다. 둘째 아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왜 아버지 집으로 일찍 오지 않고 돼지우리에서 고생했나? 그때 돼지가 먹는 걸 먹지 않아도 됐는데 부담스런 마음이 그렇게 만들었구나.’

부담을 넘는 것이 제일 큰 산을 넘는 것
성경에 나오는 모든 축복은 부담 뒤에 있다. 사탄이 항상 하나님의 축복 앞에 부담을 놓아서 우리가 축복을 받지 못하게 한다. 복음 전도자가 부담을 넘는 것이 축복을 받는 데 있어서 제일 큰 산을 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산을 넘지 못해서 축복을 받지 못하고 주님과 멀어진다. 나도 압곡동에 처음 갈 때, 그리고 장팔리에 처음 갈 때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그때마다 기적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사랑해서 날마다 기다렸다. 옆에서 다른 아들이 그런 아버지를 위로한다. “아버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놈은 고생이 되면 당장 달려와요. 아직 사는 것이 괜찮으니까 안 오는 거예요.” 그래도 아버지 마음에서는 둘째 아들에 대해 안심이 되지 않아 오늘은 돌아오려나 문밖에서 기다린다. 
나는 1987년에 위장이 아주 좋지 않아서 고생을 많이 했다. 3개월 동안 체중이 7킬로그램이 빠졌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마가복음 11장 24절을 생각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이 말씀대로 하면 아픈 위장이 낫는 것이 너무 쉬웠다. 기도하고 받은 줄로 믿으면 그대로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위장을 고쳐 달라고 기도한 뒤 나았다고 믿으면 김치도 먹고 고추장도 먹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내 위장은 조금만 자극적인 음식을 먹어도 설사가 났기 때문에 매운 음식을 먹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나는 성경을 믿지 않는 나를 보았다. ‘이 말씀대로 믿으면 낫겠구나.’ 하면서도, 다 나았다고 믿어서 어떤 음식이든지 먹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그렇지만 믿었다. 아픈 배를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받은 줄로 믿었다. 내 배가 다 나았다고 믿었다. 그래서 김치도 먹고 매운 음식도 잔뜩 먹었다. 그렇게 믿고 하루가 지난 다음날 아침 내 배가 깨끗해졌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위장이 아주 튼튼하다. 

부담을 넘는 과정 없이는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없다
부담을 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다. 우리에게 축복된 일이 많은데, 구원받은 사람들이 사탄이 주는 부담 때문에 그 길 가는 것을 주저한다. ‘나중에, 나중에’ 하고 미루다가 주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고 육신에 빠져서 신앙생활조차 하지 못하는 불쌍한 길을 간다. 
 복음 전도자가 믿음을 가지려고 부딪치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나는 압곡동에서, 장팔리에서, 돈 한 푼 없이 군대에서, 그리고 김천에서 누구의 도움 없이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갔다. 어려움이 없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서 신앙이 이론이 아닌 축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 자신의 노후를 위해서나 내일을 위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로 보람된 삶을 산다. 
부담스러워서 피하면 결국에는 믿음에서 멀어지고 타락한 삶을 맞아야 한다. 누구나 자신의 사사로운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며 삶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전도자가 된다. 그러나 부담을 이기지 못하면 영광스런 자리에서 떨어져 나간다.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다가 교회를 떠나 비참하게 사는 사람이 많다. 믿음으로 부담을 이기지 못하면 그렇게 된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든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부담을 이기면, 그는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경험하면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능력의 일꾼으로 성장한다. 
부담을 넘는 과정 없이는 절대로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없다. 이 과정을 믿음으로 넘으면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고, 영광스런 하나님과 매일 함께 일하는 복되고 귀한 일꾼이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