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누룩을 넣지 말라
[설교] 누룩을 넣지 말라
  • 글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1.05.10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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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호 기쁜소식
믿음에 이르는 길_레위기 제사 강해_소제(3편)

 

누룩을 섞어서는 안 되는 소제, 누룩을 제하는 무교절은 거짓된 인간의 생각이 제해지고 말씀만 좇아 사는 그리스도인의 순수한 삶을 나타냅니다. 성도가 어떻게 죄에서 벗어난 삶을 사는지 설명합니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의 누룩, 외식
“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레 2:11)
소제를 드릴 때에는 소제물에 누룩을 넣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누룩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한번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그 말씀의 뜻을 모르고 처음에는 ‘우리가 떡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했다가, 나중에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교훈을 조심하라는 말씀인 줄 알았습니다. 
누룩은 빵을 부풀게 하는 효소입니다. 누룩을 넣은 빵을 유교병有酵餠, 넣지 않은 빵을 무교병無酵餠이라고 합니다. ‘삭힐 교酵’ 자와 ‘떡 병餠’ 자를 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밀가루 반죽에 누룩을 넣어 빵을 부풀려 부드럽게 만들어서 먹었지만, 누룩 넣은 빵을 먹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유대 달력으로 1월 14일이 유월절이고 이어서 1주일 동안 무교절이 이어지는데, 무교절에는 누룩 넣은 빵을 먹어서 안 되며 집안에 누룩을 두어서도 안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교훈을 조심하라고 하시지 않고, 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을까요? 그들의 교훈이 작은 것을 크게 부풀리는 누룩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교훈 속에 실제와 다른 부풀린 말이 들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교훈을 삼가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어떤 교훈일까요? 
인간 가운데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누룩을 섞으면, 조금 부풀리면 율법을 잘 지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은 율법을 잘 지키는 척하며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성경에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일, 야곱이 실수한 일, 다윗이 범죄한 일,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일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완전했거나 다윗에게 허물이 없었다면, 우리가 ‘나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겠구나!’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족하고 허물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을 보면서 ‘나 같은 사람도 은혜를 입겠구나!’라는 마음이 듭니다. 
목회자가 성도를 인도할 때 온전한 위치로 끌어올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기 때문에 은혜를 입는 위치로 인도해야 합니다. 목회자 자신도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죄를 짓지 마십시오. 제가 40일 금식 기도를 했더니 죄의 유혹이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라고 하는 등 부풀려서 말하는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성도들은 부담을 갖거나 좌절합니다. ‘저런 신앙은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하지, 나 같은 사람은 안 돼!’ 그렇지 않으면 외식하는 사람이 됩니다. 겉으로만 깨끗한 척하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이것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이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행위와 상관없이 구원받은 성도가 잘못하면…
유월절은 우리가 죄에서 건짐을 받는 구원을 나타내고, 누룩을 제하는 무교절은 거짓된 인간의 생각이 제해지고 하나님의 말씀만 좇아 사는 그리스도인의 순수한 삶을 나타냅니다. 
이 이야기 전에 우리가 의롭게 되는 이야기를 먼저 해보겠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선하게 살아서 의롭게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가르침을 따라 선하게 살아서 의롭게 되려고 합니다. 그런데 해보면 안 됩니다. 성경 말씀대로 살아서 죄를 전혀 짓지 않는 사람, 행위가 온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이 분명히 말씀하기를, 우리 행위로는 절대 의에 도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길을 만들어 놓았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길은, 자신의 행위가 어떠하든지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 기차를 타고 간다면 내 자동차가 아무리 고물이라도 상관없는 것처럼,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믿어서 의롭게 된다면 자신의 행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행위로 구원받았다면 행위가 나쁘면 구원을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받은 구원은 행위와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구원받아서 의롭다”고 하면, 행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에 교만하다고 하며, 이단이라고 몰아세우기까지 합니다. 
어떤 죄를 지었든지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받아들인 사람은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다 그렇게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행위와 상관없이 구원받았기 때문에 성도가 여전히 행위가 온전하지 못해 잘못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써야 합니까, 아니면 죄를 지어도 괜찮습니까? 

결심하고 각오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야
하나님은 구원받은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시려고 무교절 절기를 주셨습니다. 누룩 없는 빵을 먹는 무교절과 누룩을 섞어서는 안 되는 소제는 ‘우리가 어떻게 죄에서 벗어난 삶을 살게 되는지’에 대하여 설명해 줍니다. 
고린도전서를 보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교만해져서 죄에 빠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에 대해 책망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전 5:6~8)
이 말씀에서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고 한 부분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누룩이 없는 자인데 내버릴 누룩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구원받아 교회에 나오면서 계속 음행한다면 그 사람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실수한 사람을 받아들이는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그들이 죄에 빠진 근본 원인이 죄를 짓지 않으려는 결심이 부족했거나 노력을 덜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한 가지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뒤 범죄하는 성도들이 있는데, 그들은 자신의 잘못이 교회에 드러나는 것을 굉장히 부끄러워하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애를 쓴다고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음으로 죄를 이긴다는 것입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소매치기가 소매치기 조직에 속해 있으면서 그 일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소매치기를 안 하려면 각오나 결심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곳에 있으면서 소매치기를 하지 않으려고 눈물을 흘리면서 각오하고 결심하는 것은 무익한 일입니다. 우리가 ‘내가 죄를 짓지 말아야지!’ 이렇게 결심하고 각오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에서 벗어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우리 마음을 의인의 위치에 옮겨놓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우리 생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우리 죄에 대한 벌을 받으셨을 뿐 아니라, 죄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죄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장티푸스에 걸리면 열이 나는 것처럼, 죄의 병에 걸리면 거짓말하고 싶고 도둑질하고 싶고 간음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해결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끌고 다니던 죄의 힘에서도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리니
로마서 6장 14절에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죄가 우리를 주관하지 못한다는 이 말씀은 얼마나 놀랍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그날부터 모든 사람은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죄에 끌려다니면서 원하든지 원치 않든지 죄를 지어 왔습니다. 죄가 우리를 끌고 다니면서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고, 간음하고, 살인하고, 여러 죄를 짓게 했습니다. 사탄은 우리 삶에서 교묘하게 일들을 만들어서 우리를 죄악으로 끌어갑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까지 인간은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는 있어도 죄를 짓지 않을 자유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가 의롭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 마음을 이끄는 사탄의 세력을 없애 놓으셨기 때문에 죄가 더 이상 우리를 주관할 수 없습니다. 
들에 있는 처녀와 성읍 안에 있는 처녀
그래도 사탄은 우리를 속여서 죄 속에 가두어 두려고 합니다. ‘미운 마음이 일어나잖아. 훔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죄의 소욕이 일어나잖아.’라고 속삭입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그 이야기를 듣고 ‘맞아, 나는 아직까지 죄가 나를 끌고 있어.’ 하고 속는 것입니다. 
신명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남자가 다른 남자와 약혼한 처녀를 들에서 강간하면 그 남자는 돌로 쳐서 죽이고 여자는 죽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처녀가 소리쳐도 도와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읍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두 사람 다 죽이라고 했습니다. 처녀가 싫다면 소리를 질러서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기 전에 우리는 들판에 있는 처녀였습니다. 그래서 죄악이 우리를 끌어갈 때 소리를 지르고 발버둥을 쳐도 우리를 구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후에는 성안에 있는 처녀입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죄악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죄의 종이었지만 구원받은 후에는 동의해야 범죄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죄에 끌려다니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네가 구원받았지만 옛날과 달라진 것이 뭐가 있냐?’라고 합니다. 죄가 우리를 주관할 때와 똑같이 우리가 변화되지 않은 것처럼 우리를 속입니다. 거기에 속아 성도가 옛날과 같이 여전히 죄를 짓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난 범죄가 바로 그와 같은 경우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너희는 누룩이 없는 자들이다.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니까 묵은 누룩을 내버리면 된다.”라고 했습니다. 묵은 누룩, 구습들은 이제 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나기 전에는 죄가 우리를 강하게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후에는, 똑같이 죄의 유혹을 받지만 믿음에 서 있으면 죄가 우리를 더 이상 주관하지 못하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소매치기를 하지 않으려면 소매치기 소굴에서 벗어나야 하듯이, 우리가 죄를 짓지 않으려면 애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소매치기 소굴 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소매치기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단 소매치기 소굴에서 벗어난 사람은, 자기가 원해서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원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벗어나게 해주셨습니다. 또한, 죄의 세력에서도 벗어나게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세력에 묶여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죄에 끌려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성령에 이끌려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난 뒤에 삶이 밝게 변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성실하다거나 주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성령께서 그를 끌고 다니던 죄의 사슬을 풀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구원받고 난 뒤에도 여전히 죄악된 삶을 삽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이미 죄의 세력에서 풀어 놓으셨지만, 사탄에게 속아서 아직 죄에 매여 있는 줄로 착각하여 그냥 죄에 매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룩 없는 자임을 믿어야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거룩하게 살 수 있도록 해놓으셨습니다. 구원받고 아직 술을 끊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술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애쓰지 말고, 이미 거기에서 풀려났다는 사실을 깨달으십시오. 
유월절 양의 피로 구원받은 뒤 무교절이 이어지고, 소제물에 누룩을 넣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령에 이끌림을 받는 삶을 살면서 마음에 죄를 첨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으려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죄의 굴레에서 벗겨 주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죄에서 해방받아야 합니다.
유월절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을 당하셨습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전 5:7~8)
예수님이 죄와 싸워서 이미 승리하셨습니다. 죄악의 권세를 멸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이루신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죄가 더 이상 우리를 주관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 그 삶을 하나님 앞에 드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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