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설교]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 글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1.06.0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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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호 기쁜소식
믿음에 이르는 길_레위기 제사 강해_소제(4편)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은 성도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세상이 부패하는 것을 막고, 참된 맛을 느끼게 해줍니다. 성도 또한 하늘의 맛을 보면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행복하게 복음을 위해 삽니다.

 

‘되리라’와 ‘되라’의 차이
레위기 2장 13절에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소제를 드릴 때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길,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는 식으로 읽습니다. 더 발전해서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 되자. 빛이 되자.”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는 말과 ‘소금이 되라’는 말에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되라’와 ‘되리라’에는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그리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되라’에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의미가 들어 있고, ‘되리라’에는 누군가가 그렇게 해준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즉, ‘되라’에는 우리 의지가 포함되어 있고, ‘되리라’에는 예수님의 의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 갓(I got)’ 과 ‘유 갓(You got)’ 
전투기에는 두 사람의 조종사가 탑승합니다. 물론 한 사람만 탑승하는 전투기도 있습니다. 두 사람이 조종석에 앉는 전투기는, 조종사들이 각기 자기 스틱을 잡고 조종합니다. 두 사람이 다 조종하는 것은 아니고, 한 사람이 ‘내가 조종하겠다’는 의미로 “아이 갓(I got).” 하면 그 사람 혼자 조종합니다. 그때 다른 조종사는 스틱을 놓아야 합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네가 조종해라’는 의미로 “유 갓(You got).” 하면 그때부터는 옆 사람이 스틱을 잡고 조종합니다. 물론 먼저 조종하던 사람은 스틱을 놓습니다. 한쪽 스틱을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다른 편에 있는 스틱도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왼쪽으로 움직이면 다른 스틱도 똑같이 왼쪽으로 움직입니다. 
비행기를 조종할 때 ‘아이 갓’이냐 ‘유 갓’이냐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만일 한 사람이 “아이 갓” 하면 다른 한 사람은 쉴 수 있습니다. 그 후에 일어나는 조종에 관한 모든 책임은 “아이 갓” 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반대로 “유 갓” 하고 스틱을 넘기면, 그 후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스틱을 넘겨받은 조종사의 책임으로 돌아갑니다. 
성경을 읽어 보면, 성경에도 ‘아이 갓’이 있고 ‘유 갓’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이 갓’은 예수님이 ‘내가 하겠다’는 말이고, 예수님이 ‘유 갓’ 하시면 ‘네가 해라’는 소리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하셨다면, 그것은 ‘유 갓’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런데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것은, 예수님이 ‘아이 갓’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로 전도하는 사람이 되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내가 너를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게 하겠다. 흠 없이 서게 하겠다.”라고 약속하셨다면, 조종간을 잡은 분이 우리가 아니고 예수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손에 볼펜 한 자루도 쥐지 말고 다 내려놓고 빈손으로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의지하는 신앙입니다. 

예수님께 맡기고 평안히 쉬는 신앙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아이 갓’ 하신 것입니까, ‘유 갓’ 하신 것입니까? 예수님 당신이 우리를 소금이 되게 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성경에는 착한 일을 많이 하라고 쓰여 있는 줄로만 알고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애를 씁니다. 죄를 짓지 않고 선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신앙생활인 줄 압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나면, 이전의 신앙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아이 갓” 하시는데 우리도 “아이 갓”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조종간을 잡으셨는데 우리도 조종간을 잡았으니 신앙이 잘될 리 없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께 맡기고 쉴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문제 앞에서도 예수님이 “아이 갓” 하셨으면, 우리는 즉시 “유 갓” 하면서 그 문제에서 손을 떼고 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부터 일들이 정말 아름답게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내 죄를 사해 주셨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욕심이 얼마나 많으신지, “아이 갓” 하고 스틱을 잡으신 뒤에는 놓으실 줄 모릅니다. 그 스틱을 잡으신 채로 하늘나라로 올라가셨는데, 지금까지도 놓지 않고 계십니다. 하늘에서도 “아이 갓” 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할 일이라고는 ‘예수님이 하십시오’ 하면 됩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 신앙의 조종간을 잡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폭풍우가 닥치거나, 구름이 잔뜩 끼어서 앞이 보이지 않거나, 비가 거세게 내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거나, 안개가 자욱하면 누가 조종합니까? 예수님이 하십니다. 설령 사고가 나도 예수님이 다 책임지십니다. 

진짜 소금과 가짜 소금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라.” 하신 것이 아니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 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어느 곳에 있든지 세상의 소금입니다. 
만약 우리가 소금이 되려고 노력한다고 해봅시다. 아마 자신이 조금이라도 소금다워야 소금이 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소금과 가장 비슷하게 보이는 것이 차돌이라고 해봅시다. 차돌이 소금처럼 보이려면 모양이 작고 네모나게 깎여야 하겠지요? 차돌을 잘 깎아서 그런 모양을 간신히 만들었다고 합시다. 이제 겉모양은 소금과 어느 정도 비슷해 보입니다. 그런데 짠맛이 나지 않습니다. 스스로는 짠맛을 내지 못하니까 맛을 내기 위해 소금물에 담갔다가 꺼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맛을 보니 짠맛이 느껴집니다. 모양도 소금 같고 짠맛도 나니 이제는 제법 소금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습니다. 소금은 물에 넣으면 녹는데 차돌은 녹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소금을 어떻게 만듭니까? 어떻게 그 맛을 낼 수 있습니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부패를 방지하고 참된 맛을 내주는 소금
소금이 하는 일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소금은 먼저 부패를 방지합니다. 물고기를 잡아서 소금을 뿌려두면 썩지 않습니다. 소금이 음식물을 썩지 않게 한다는 말은, 음식물 속에서 곰팡이나 세균들이 살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소금이 부패할 수 있는 조건들을 죽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마 5:11) 거짓말을 꾸며서 핍박하고 대적할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사탄이 성도를 미워하기 때문에 대적하는데, 정상적인 방법으로 싸우면 안 되니까 거짓말을 지어내서 대적하는 것입니다. 악한 말로 모함하고, 비난하고, 핍박합니다. 
이 말씀에 이어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어디에 들어가서 아무 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면 그것은 소금이 아닙니다. 소금이 들어가면 반응을 일으킵니다. 첫 번째 반응은 부패를 막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빛이요 소금이기 때문에, 아무 말도 안 할지라도 어둠에 속한 사람들이 부담을 느끼는 것이 정상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고 하셨기 때문에 성도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입니다. 구원받은 여러분이 있는 직장, 동네, 가정에서 여러분이 세워짐으로 말미암아 썩는 일이 중단되기 때문에, 썩어져 가는 세상이 여러분을 거북스럽고 부담스럽고 불편하게 느낄 것입니다. 
소금이 두 번째로 하는 일은 맛을 내는 것입니다. 욥기 6장 6절에 보면, 욥이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음식 재료 가운데 음식 맛을 가장 내주는 것이 소금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들어오면, 음식에 소금이 들어간 것처럼 말씀의 맛을 좋아지게 합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없는 사람은 성경을 읽어도 소금기 없는 싱거운 음식을 먹는 것처럼 말씀의 맛을 느끼지 못합니다.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면 맛이 나듯이, 우리 삶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우리 인생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맛본 것처럼 성도가 하늘나라의 맛을 보면 삶이 또 달라집니다. 천국을 보지 못하고 이 세상만 본다면 세상에 매력을 가질지 모르겠지만, 그 나라를 한 번이라도 보면 세상에 있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미련을 두고 사는 이유는 그 나라를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늘나라 관광단으로 모집되어 하늘나라를 한 달쯤 여행하고 오면 마음이 바뀔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 문제는, 다시는 이 땅에 오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이 미국에 가려고 비자 신청을 하는데,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는 다 내주고 싶다고 합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미국에 가서 안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돌아온다는 확증만 있으면 비자를 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늘나라 비자를 아예 안 주시고, 올 사람은 바로 불러들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세상만 아니까 이 세상에 미련이 많겠지만, 하늘나라를 한 번만 다녀오면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어질 것입니다. ‘답답해서 못 살겠는데 먼저 가자’ 하고 천국으로 가버릴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세상의 소금으로 약한 자 같으나 강한 자요, 아무것도 아닌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평안을 깨뜨리는 모든 조건들을 예수님이 막아 주실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기뻐하며 만족할 수 있고,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친히 이루시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영광스런 일에 쓰임 받는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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