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시글락이 불탔지만 하나님이 인도하셨듯, 코로나 시대에 온 세상에 복음을…
[라이프] 시글락이 불탔지만 하나님이 인도하셨듯, 코로나 시대에 온 세상에 복음을…
  • 글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1.09.09 0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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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호 기쁜소식
땅끝까지 복음을, 끝날까지 주님과 _260 | 박옥수 목사 간증

내 인생에서 1962년이 가장 어려운 때였다. 집에 돈이 없어서 학교에 다닐 수 없었고, 내일에 대한 소망 없이 산다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어느 날 신문에서 광고를 보고 기술하사관에 지원서를 냈고, 얼마 뒤 대구육군병원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으라는 통지를 받았다. 신체검사를 받던 날 다른 과 검사는 다 잘 통과했는데, 마지막 치과 검사에서 치과 과장이 내 카드에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이상한 암호를 기록했다. 나는 불합격인 것을 알았다. 당시 내 앞니가 아주 조금 깨졌기 때문이다. 사관학교가 아닌 기술하사관학교에 지원했다가 나는 실격했다. 내가 열아홉 살 때였다. 
1951년 9월에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한 달 뒤에는 형님이 군대에 입대하셨고, 아버지는 전쟁을 뒷받침하는 일을 하러 가셨다. 행복하던 우리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 형님 어른 세 분이 한 달 사이에 다 떠나셨다. 큰누님이 열다섯 살, 작은 누님이 열세 살, 내가 여덟 살, 동생이 네 살 때였다.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다. 집에 남은 넷이 모여서 자주 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오셨고 형님도 제대해서 오셨지만, 사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나는 학교에 다닐 수도 없고 직장을 구할 수도 없었다. 당시 나는 도둑질을 많이 했다.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이다.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의 소원은 하나였다. ‘우리는 굶더라도 자식들은 굶지 않게 하자’는 것이 꿈이었다. 
마지막으로 기대를 가지고 1962년 5월에 기술하사관에 지원했다가 앞니가 조금 깨진 것 때문에 불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 내 인생에서 모든 것이 깨졌다. 안 돼도 그렇게 안 될 수가 없었다. 나는 거짓말도 많이 했지만 고픈 배를 채우려고 도둑질을 많이 했다. 친구들과 함께 남의 밀밭에서 밀 이삭을 꺾어서 불에 구워 먹고, 남의 과수원에 몰래 들어가 사과나 감도 많이 따먹었다. 그렇게 죄를 짓고 가책이 심해서, 매일 새벽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인생이 너무나 어두웠다. 

구원받고 내 삶에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
1962년 10월 7일, 그날도 새벽기도회 말씀이 끝나고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간 뒤 나는 혼자 남아 지은 죄를 하나하나 고백하면서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얼마 후 기도를 끝내고 일어섰는데, 마음이 가뿐해졌다. 내 죄가 다 씻어졌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날부터 나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다니던 장로교회에서 사람들에게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교회에서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었고, 따돌림을 받았다. 하지만 성경을 읽으면서 내가 받은 죄 사함이 더욱 확고해져 감사 속에서 살았다. 
그 해 11월에 대구에 있는 선교학교에 입학했다. 선교학교에서 배우는 성경 말씀이 정말 놀라웠다. 나는 매일 새벽 다른 학생들보다 두 시간 일찍 일어났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혼자 기도했다. 기도하는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 
1963년에 선교학교 훈련을 마치고 압곡동에 가서 9개월을 보냈고, 다시 거창 장팔리에 가서 1년 반 동안 복음을 전했다.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교회에 나와 함께 예배를 드렸다. 교회가 가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1965년에 군대에 입대했다. 보병 훈련을 받은 뒤 통신병이어서 통신 교육을 다시 받았다. 그때도 내 삶 속에 하나님이 일하심을 경험했다. 한번은 통신훈련소에서 동기 둘과 식사하러 가다가 훈련소 소장님을 만났다. 우리는 큰 소리로 “충성!” 하고 경례를 했다. 소장님이 지나가다가 뒤돌아서더니 우리를 부르셨다. “너희들 경례를 너무 잘했다.” 하며 표창해, 4박 5일 휴가를 갈 수 있게 해주셨다. 얼마 뒤 내가 주일에 예배를 인도하고 있는데 소장님이 예배 장소에 들어오셨고, 나에게 같이 예배당을 짓자고 하셨다. 
내 삶 속에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 한번은 교육장교님이 나를 부르더니 예배드릴 장소로 교실을 쓸 수 있게 해주셨다. 나는 16주 동안 통신 교육을 받으면서 주일마다 교육생들을 모아 예배를 인도했다. 정말 감사했다. 
교육을 다 마치고 졸업하던 날, 아침 일찍 교육장교님이 일하는 사무실 앞에 가서 기다렸다. ‘그동안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많은 것을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기 위함이었다. 얼마 후, 교육장교님이 차에서 내려 사무실로 오시기에 경례를 했다. 
“충성! 교육장교님, 저 오늘 졸업합니다. 그동안 감사했다고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그분이 나에게 “박 일병, 잠깐만.” 하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가 박 일병을 수경사나 502장통단이나 군수기지사령부 같은 좋은 부대로 보내주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박 일병이 나와 같이 있으면 내 신앙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 부대 교육부에서 근무하도록 조치했으니 나와 같이 일합시다.”
“예, 감사합니다.” 
나는 인사를 하고 통신 벙커로 뛰어갔다. 그곳은 내가 항상 기도하는 장소였다. 벙커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부대에서 16주 동안 주일마다 후배 교육생들을 모아서 예배를 인도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정말 감사했고, 그 일은 꼭 계속되어야 했다. 그래서 졸업을 앞두고, 구원받아 함께 지내던 송순종, 김창원과 함께 이야기했다. 
“우리 중 한 사람은 이 부대에 남아서 예배를 계속 인도해야 돼.”
우리 셋은 그 일을 이루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다. 
나는 그 부대에서 제대할 때까지 주일마다 180명의 교육생 앞에서 말씀을 전했다. 예배를 마친 후에는 개인 상담을 하며 복음을 전했다. 28개월 동안 교육장교님, 그리고 훈련소장님의 도움을 받으며 통신훈련소를 거쳐간 수많은 교육생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아말렉 소년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다윗을 인도해서
다윗이 시글락에 있을 때였다. 한번은 남자들이 전쟁터에 갔다가 돌아와서 보니, 처자들이 모두 사로잡혀가고 집은 전부 불타고 재만 남아 있었다. 다윗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울 기력이 없을 때까지 울다가, 처자를 찾으러 가자고 하며 떠났다.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몰라 그냥 길을 가고 있는데, 길에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그에게 음식을 먹이자 그가 정신을 차린 뒤 말했다. 
“나는 애굽 소년이요 아말렉 사람의 종이더니, 사흘 전에 병이 들매 주인이 나를 버렸나이다. 우리가 그렛 사람의 남방과 유다에 속한 지방과 갈멜 남방을 침로하고 시글락을 불살랐나이다.”
그 소년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다윗과 사람들을 인도해,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을 쫓아가 죽이고 처자를 모두 찾아왔으며 큰 재물도 얻었다. 그리고 시글락이 불타 있을 곳이 없어서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했고, 사울이 죽은 후 유다로 가서 왕이 되었다. 
내가 1962년에 죄 사함을 받고 난 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항상 함께하셨다. 구원받고 60여 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어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항상 함께하며 우리 가운데 일하셨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었다.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로 전 세계가 난리다. 그런데 그런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항상 우리 길을 인도하시고 우리를 도우셨다. 
아말렉 소년이 없었다면 다윗이 어떻게 처자들이 사로잡혀 간 곳을 알고 찾을 수 있었겠는가? 거듭난 사람은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이 같이 계셔서 항상 이기고 승리한다. 코로나로 인해 어려울 때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이 열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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