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40일간 돌들의 여정,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었다
[라이프] 40일간 돌들의 여정,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었다
  • 글 | 오영신(독일, 기쁜소식프랑크푸르트교회 선교사)
  • 승인 2021.10.08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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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호 기쁜소식
선교사 수기 (10회)

나는 훌륭한 선교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가장 미련하고 어리석 고 바보 같은 사람으로 계속 드러내신다. 나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끊어질수록 반 대로 하나님께 대한 소망과 믿음이 일어났고 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아무것도 아 닌 나를 던질 수 있었다. 말씀 앞에 나를 던질 때마다 하나님은 놀랍게 돕고 이끄 시는 것을 경험했다. 

 

“자네가 알아서 결정하게” 
독일에 온 지 3년쯤 되었을 때였다. 내가 사는 루드빅스하펜에서 다시 월드캠프를 하려고 하다가 하루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월드캠프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월드캠프 장소를 프랑크푸르트로 옮기면 좋겠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던 터라 기왕이면 좀 더 큰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는 게 맞겠다 싶었다. 프랑크푸르트는 루드빅스하펜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아주 큰 도시로 사람들이 많이 살기에 그곳에서 행사하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곳으로 이사도 가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곳에 우리가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러 날 갈등하다가 확신이 서지 않아서 한국에 계신 박옥수 목사님에게 여쭤보았다. 
“목사님, 이번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월드캠프를 하려고 합니 다. 목사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그리고 그 도시로 이사도 가고 싶은데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네가 알아서 결정하게.” 
전화를 끊고 더 갈등했다. 내가 보기에 아주 중요한 일이라 목사님이 결정해 주면 좋겠는데 나에게 맡기시니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며칠 동 안 성경을 읽으면서 목사님의 마음을 조금 알 수 있었다. 중요한 일을 내게 결정하라고 하신 것은 나를 보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다. 목사님은 내 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어디를 가든지 또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계셨다. 인도자의 마음을 발견하니 결정할 수 있었다. 나는 다른 것은 잘 몰라도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내가 예수님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 내가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해도 주님이 나를 도우시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그해에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월드캠프를 하기로 결정했다. 

20명이 40일간 무전 전도여행 
우리는 틈나는 대로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행사 장소를 알아보았다. 유럽에 있는 우리 교회가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큰 호텔과 그에 딸린 행사장이 있어서 대관했다. 그리고 그라시아스합창단이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할 수 있도록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큰 야훈데어트할례 공연장을 대관했다.
2월 말쯤 단기선교사 14명이 독일에 왔다. 몇 주간 학생들을 훈련하며 기본적인 독일어와 댄스를 가르치고 캠프를 준비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에 가기로 했다. 단기선교사 14명과 독일 사역자 6명 총 20명이었다. 그런데 프랑크푸르트에 아는 사람도 없고, 인터넷으로 아무리 검색해도 숙소를 구할 수 없었다. 걱정스러웠다. 다른 목사님들은 아침에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온종일 홍보하고 저녁에 교회로 돌아오자고 했다. 그렇게 하면 시간을 대부분 차 안에서 뺏길 것만 같았다. 아예 모든 짐을 싸 가서 캠프를 준비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가 거처할 곳은 전혀 없었다.

‘누구의 손에서 출발했느냐?’
일요일 새벽이었다. 다음 날이면 프랑크푸르트로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40년이 걸렸고 광야에서 모든 시간을 보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 인구는 2백만 명가량이었다. 2백만 명이 40년을 광야에서 보내다니, 참 신기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이 광야에서 40년을 지낼 수 있었을까?’ 하나님의 능력과 돌보심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갑자기 우리가 생각났다. 우리는 20명이고, 월드캠프가 시작하는 날까지를 계수해보니 정확하게 40일이 남았다. ‘하나님이 2백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지키고 보호하셨는데 우리는 인원이 20명밖에 되지 않고 기간도 40일인데 하나님이 왜 우리를 지키지 않고 보호하지 않으시겠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능히 먹이고 재우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사역자들과 단기선교사들과 함께 무전여행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말씀이 기억났다. 다윗의 돌이었다. 
다윗이 던진 물맷돌이 골리앗의 이마를 정확히 때려 그를 눕힌 말씀이었다. 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몰랐지만 돌이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은 돌에게 조건이 있지 않고 믿음의 사람 다윗의 손에서 출발했기에 가능했다. ‘누구의 손에서 출발했느냐?’가 중요했다. 프랑크푸르트가 골리앗 같았고 우리는 돌과 같았다.  우리는 앞으로 40일 동안 어디서 자야 할지 어떻게 전도해야 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분명 예수님 안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냥 가서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이끄시는지를 보고 싶었다. 

이번 전도여행의 제목은 ‘돌들의 여정’입니다 
주일예배 때 이 부분에 대해 말씀했다. “여러분 우리는 앞으로 40일 동안 하나님만 의지하여 프랑크푸르트로 무전전도여행을 가겠습니다. 이번 전도여행의 제목은 ‘돌들의 여정’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재우고 먹이시는지 보겠습니다.” 
돈과 카드도 챙기지 말고 짐도 최대한 줄이자고 했다. 단기선교사 중에는 교회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게 지금 무슨 일인지 전혀 파악을 못 하고 어리둥절했다. 저녁에 한 남학생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탈북 청년으로 한국에서 대학에 다니다 온 학생이었다. 자기는 북한에서 군 생활을 오래했는데 중요한 작전에 투입되는 것처럼 긴장된다며 근심어린 눈빛으로 “목사님,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잠을 잡니까?”라고 물었다. 나도 하나님 외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걱정하지 마라.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신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실 거다.”라고 했다. 
월요일 아침에 눈을 떴다. 순간 ‘내가 미쳤지. 이게 말이 되냐? 20명이 어떻게 40일 동안 프랑크푸르트에서 보낼 수 있지?’ 하고 정신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결정이 끝났기에 나도 내 감정과 생각을 버려야 했다. 
모두 각자의 짐을 차에 싣는 데 한 학생이 유난히 큰 가방을 싣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작은 가방을 가져가는데 왜 그렇게 큰 가방을 가져가지?” 하며 가방을 열었더니 빵이 잔뜩 들어 있었다. 이게 뭐냐고 하자 “목사님, 앞으로 40일 동안 뭘 먹습니까? 빵이라도 가져가야 지요.”라고 하는 것이다. 학생 은 우리가 돈 없이 40일을 지내 기로 한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여러 대의 차에 짐을 나누어 싣고 프랑크푸르트로 출발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어디에서 자동차를 멈춰야 하는지도 몰랐다.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차 안에서 기도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빵과 고기를 먹으며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도중에 어떤 선교사님에게 전화가 왔다. 프랑크푸르트에 아는 신부님이 있어서 우리 사정을 이야기했는데 신부님이 일단 자기 성당으로 오라고 하셨다고 했다. 오늘 짐을 풀고 머물 곳이 생겼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 
성당에 도착하자 신부님이 지하에 있는 넓은 방 두 개를 내주면서 그곳에서 짐을 풀고 지내라고 하셨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자 다음 날 아침 5시 30분에 새벽 기도회가 있는데 참석할 수 있냐고 물었다. 독일 교회에서 새벽 기도회를 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참석하겠다고 하고 그곳에서 첫날 밤을 보냈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회에 참석하러 가자 벌써 교인 수십 명이 나와 있었다. 우리도 서둘러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다. 알고 보니 부활절을 앞둔 특별 예배였다. 신부님은 교인들에게 우리를 소개해 주었고, 우리는 일어서서 인사도 했다. 
기도회를 마치자 신부님이 준비한 식탁에서 같이 아침 식사를 하자고 했다. 깜짝 놀랐다. 나는 신부님에게 우리가 먹을 것이 없다고 말한 적이 없었는데 우리에게 아침 식사를 제공하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모두 식탁에 앉았고 독일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서 빵을 가져다 주고, 커피, 우유, 치즈, 햄을 계속 날라다 주었다. 한 말씀이 기억났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시 78:19) 말씀처럼 광야의 식탁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이곳 광야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식탁을 준비하시랴? 고기를 예비하시랴?’라고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여행의 시작부터 하나님이 준비하신 빵을 먹게 하셨다. 내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다음 날은 신부님이 학생들이 너무 예쁘다면 서 바비큐 파티를 해주셨다. 너무 신기했다. 우리 는 이렇게 하나님이 준비하신 빵을 먹고 고기를 먹으며 돌들의 여정을 시작했다. 

‘새로운 곳으로 옮겨 주십시오’ 
2주간 성당에서 은혜를 입어 지냈다. 이제는 다 른 곳으로 옮겨가야만 했는데 갈 곳이 없었다. 월드캠프를 홍보하면서 마음은 계속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우리를 새로운 곳으로 옮겨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다가 말씀이 떠올랐다. 노아 시대 때 홍수는 방주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저주와 사망이지만 방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는 하나님의 인도였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모든 형편이 그렇다는 마음이 들었다. 예수님 밖에 있는 자들에게는 어려움이고 절망일지 몰라도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는 하나님의 인도라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를 새로운 곳으로 옮겨달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았다. 
월요일 아침, 그동안 성당에 풀었던 모든 짐을 챙겨서 차에 싣고 나왔다. 학생들은 대학교에 가서 전도하고 사역자들은 숙소를 찾기로 하고 저녁에 약속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목사님 한 분과 같이 온종일 다녔다. 하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우리 팀뿐 아니라 아무에게도 숙소를 찾았다는 연락이 없었다. 
어느덧 해는 저물어 가고 학생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되었다. 여러 번 유혹이 찾아왔다. ‘차를 타고 한 시간만 가면 루드 빅스하펜에 우리 교회가 있어서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 텐데….’ 그때마다 예수님은 내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도우신다는 마음을 일으켜주셨다. 4월의 독일 날씨는 아직은 쌀쌀하고 차갑기만 했 다. ‘차라리 우리가 이슬을 맞고 거리에서 밤을 지새우더라도 뒤로는 가지 말자. 우리를 도우실 하나님을 의지하자’라는 마음이 흔들리는 나를 순간순간 잡아주었다. 저 멀리 약속 장소에서 이미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웃고 떠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저렇게 천진난만 한 학생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나 싶었다. 
약속 장소로 걸어가고 있는데 옆에 있던 목사님이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우리가 머물 숙소가 생겼다며 너무 기뻐하셨다. 사연인즉슨, 전날 밤 어느 독일 교회에 방문하여 목사님과 교제하다가 우리 이야기를 했는데 목사님이 잠시 망설이다가 우리 선교회 홈페이지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여 독일어 홈페이지 주소를 알려주고 왔다고 한다. 그런데 방금 그 목사님에게 연락이 왔고, 홈페이지에서 박옥수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자신의 신앙과 똑같다면서 마음이 활짝 열려 우리 학생들을 받아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를 새로운 곳으로 옮기시는 하나님께 감사했다. 멀리 단기선교사들이 보였다. 우리를 믿고 따라주는 학생들이 너무 예뻐 보였다.
순간순간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우리는 40일간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살았다. 정말 기적 같았다. 처음에는 20명이 돌 들의 여정을 시작했는데 시간이 가면서 주변 교회 사역자들과 단기선교사들이 합류하여 숫자가 점점 불어났다. 그런데 누가 40명 가까운 사람을 자기 집에 받아 줄 수 있겠는가? 어떤 날은 밤 9시, 10시가 되어도 숙소를 마련하지 못해  순간 순간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을 찾는 동안 다시 우리 마음은 기쁨과 감사로 채워져 갔다. 
어떤 빵집에서는 우리의 사연을 듣고 그날 팔고 남은 빵을 전부 후원해 주어서 모두 배불리 먹었다. 오히려 빵이 남아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학생들이 하루종일 월드캠 프를 홍보하고 숙소에 돌아오면 샤워하고 싶어했지만 숙소에 샤워장이 없는 경우에는 간단하게 세수만하고 자야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남학생들은 캄캄한 밤에 동네 개울에 가서 샤워했다고 한다. 그렇게 지내다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숙소에 샤워장이 있으면 무척 기뻐하고 행복해 했던 학생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학생들은 불평 한마디 없이 끝까지 함께 해줬다. 

목사님, 올해는 70일간 여행하실 겁니까? 
40일이 지난 뒤 월드캠프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홍보하며 초청 한 사람들이 캠프에 참석했고, 우리는 기쁨 속에서 월드캠프를 마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한 단기선교사가 내게 와서 이야기했다. “목사님, 이런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면 저도 하나님을 믿고 싶어요.” 학생들도 지난 40일간의 여정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다음해에는 50일간 무전전도여행을 하며 월드캠프를 준비 했고, 그다음 해는 60일간 준비했다. 어떨 때는 전도여행 인원이 100명 가까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우리가 단 하루도 밖에서 잔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해마다 하나님은 신기한 방법으로 우리를 돕고 인도하셨다. 
그 다음해에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오 목사님, 올해는 70일간 여행하실 겁니까?” 그러나 그해에는 무전여행을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프랑크푸르트에 우리가 생각지 못한 큰 건물을 살 수 있게 하셔서 숙소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프랑크푸르트에 올 때는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서 박 목사님과 교제하며 얻은 마음을 좇아 ‘하나님이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를 도우시겠다’라는 마음으로 왔을 뿐이었다.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었지만 불과 몇 년 사이에 프랑크푸르트에 큰 건물을 사서 교회를 옮기면서 하나님이 유럽에 복음 전도 센터를 허락해주셨다. 앞으로 몇 년이 지난 후에는 우리가 또 어떻게 변해 있을지 생각하면 소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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