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갖지 말고
[라이프]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갖지 말고
  • 글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1.10.08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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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호 기쁜소식
땅끝까지 복음을, 끝날까지 주님과 _261 | 박옥수 목사 간증

 

 

마가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모아 무전 전도 여행을 보내신다. 사람들은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거나 직장에서 돈을 벌어 살지만 복음 전도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기 때문에, 어느 곳에 맨손으로 가서 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나도 구원받고 복음을 전하면서 돈을 벌지 않았기 때문에 여비가 떨어지거나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둘씩 보내면서,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갖지 말고 가라고 하셨다. 그래야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나도 선교학교에서 지낼 때 그런 훈련을 받았다. 무전 전도 여행을 여러 번 했는데, 초기에 대구에서 청도를 거처 밀양까지 다녀왔던 경험이 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들으신다고 알고 있었지만 그런 경험을 실제로 해보진 않았기에, 두 사람이 팀을 이루어 떠나면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당히 궁금했다.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준비하셨다고 생각하니…
우리는 청도로 가기 위해 철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얼마 뒤 기차가 지나가다가 커브길이어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지나간 뒤 보니 쇳덩어리가 떨어져 있었다. 기차 브레이크의 일부분이 깨져서 떨어졌던 것이다. 브레이크를 잡은 상태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열이 나서 뜨거워 새끼 토막을 주워 묶어서 들고 가다가 엿장수를 만나 엿과 바꿔 먹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주셨다고 생각하니 감사했다. 
우리는 밀양까지 가서 전도하다가 다시 청도로 와서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전도했다. 시골이라 저녁 7~8시경이면 모두 불을 끄고 잠을 자기에 그 시간이 지나면 집에 찾아다니며 전도할 수 없었다. 우리는 잘 곳이 없었기 때문에 ‘혹시 누가 자고 가라고 하지 않을까?’ 하며, 저녁이 되기 전까지 여러 집에 찾아가 전도했지만 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누가 낯선 사람을 집에 재우고 싶겠는가? 
밤이 되어 더 이상 전도할 수 없게 되자 우리는 청도를 떠나 경산까지 국도를 따라 걸어가기로 했다. 종일 굶었기 때문에 많이 지치고 피곤했다. 지금은 그 도로에 차들이 굉장히 많이 다니지만 당시에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가로등도 없어서 캄캄한 밤길을 동행한 형제와 함께 걸었다. 찬송을 불렀다가, 힘들면 아무 말 없이 걷다가…. 그렇게 한참 걷다가 깜짝 놀랐다. 아스팔트 위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가까이 가서 보니, 노인 분이 술에 취해 쓰러져 있었다. 길을 가다가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할아버지, 일어나세요.”
어르신이 몸을 일으켰다. 
“집이 어디세요?” 
“경산.”
어르신이 술에 취해 비틀비틀하며 바로 걷질 못했다. 우리도 너무 지쳤기에 그분을 모시고 가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그대로 두고 갈 수 없어 둘이 양쪽에서 어깨동무를 해 모시고 갔다. 경산까지는 4km를 더 가야 했다. 그냥 걸어도 한 시간이 걸리는데 어르신까지 모시고 가려니 얼마나 힘들던지, 그냥 두고 가고 싶었다. 더 화가 나는 것은, 한참 가다가 어르신이 “내 신” 해서 보면 한쪽 신이 벗겨져 있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캄캄한 길을 더듬어 겨우 신을 찾아 신겨 드렸다. 그런데 얼마쯤 가다가 또 “내 신” 하는데, 화가 나서 한 대 때리고 싶었다. 
한 시간 이상 걸어 경산이 가까워지자 어르신이 술이 깨 정상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경산에 들어서자 동네 입구에 가로등이 있고, 그 아래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우리가 가까이 가자 가로등 아래서 한 사람이 갑자기 뛰어나오더니 “아버지! 어디 갔다가 이제 오십니까?” 하였다. 어르신이 청도 장에 갔다가 술을 드시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쓰러져 잠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가 어르신을 모시고 온 이야기를 하자 아들이 너무 고마워했다. 
그 집에 함께 가자, 술에 취한 아버지를 모시고 왔다고 그 밤에 우리를 위해 밥을 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너무 피곤했지만 그래도 선교학생이니까 주인에게 복음을 전했다. 내가 말씀을 전하는 동안 동행한 형제는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내가 너무 피곤해서 형제를 툭툭 치면 형제가 말씀을 전하고 나는 졸고. 그렇게 하고 있는데 밥상이 들어왔다. 말할 수 없이 감사했다. 종일 굶었기 때문에 접시를 다 비우다시피 먹었다. 그 가족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온 것을 진심으로 고마워해 우리를 마음으로 대접해 주었다. 우리가 어르신을 그냥 두고 왔으면 무슨 일을 당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밥을 다 먹고 이불을 펴주어 밤 1시경에 자려고 누웠다. 누워서 그날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았다. 할아버지가 술에 취해 길에 쓰러져 있고, 우리가 만나서 모시고 오고, 그 집에서 복음을 전하고, 밥을 얻어먹고 자고….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준비하셨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감사하고 놀라웠다. 
이튿날 아침에도 밥을 잘 차려 주어서 먹고, 말씀을 전하고 그 집에서 나왔다. 어르신 아들이 우리와 함께 나와 기차역에서 대구 가는 기차표를 두 장 끊어 주었다. 


하나님이 준비하셨지만 내가 다른 자리에 있었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처럼 우리를 지키고 돌보신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고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직장이 없거나 돈이나 쌀이 없으면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예수님 안에서 살면서 어려움을 많이 만났다. 거창 장팔리에서 복음을 전할 때, 한번은 대구 선교 본부에 가야 했지만 차비가 없어서 애가 탔다. 선교 본부에 가야 하는 월요일이 되어, 차비는 없지만 아침에 버스정류소로 걸어갔다. 정류소로 가는 길에 우리 교회에 나오는 형제님이 사는데, 그분은 거창여고 교사고 아내는 문방구를 경영하기 때문에 그 집에는 대구 갈 차비 정도는 늘 있었다. 내 마음이 계속 그 집으로 향했다. ‘그 집에 들어갈까? 가서 뭐라고 하지?’ 하며, 펼쳐질 일들이 상상이 되었다. 내가 그 집에 들어가면 교사인 형제님이 나를 보고 “전도사님, 아침에 웬일입니까? 참, 오늘 대구 가시지요? 여비 있습니까? 없으면 미리 말씀하시지 그랬어요.”라고 하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그 집에 가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 다른 생각이 일어났다. 한번은 아침 그 무렵에 내가 자전거를 타고 그 집 앞을 지나갔다. 그때 형제님이 가게에서 세수하고 그 물을 흙으로 된 도로에 먼지가 나지 말라고 뿌리다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나를 보고는 “전도사님, 아침에 어디 가십니까? 들어와서 커피 한 잔 하고 가시죠.”라고 했다. 
그 집에 가지 않기로 마음을 정하자 그 일이 생각나면서, 내가 지나갈 때 마침 형제님이 세수한 물을 뿌리러 나왔다가 나를 보고는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는 광경이 상상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내가 나 자신 밖으로 나와서 내 모습을 보니 너무 초라해 보였다. 내가 직장에 다니면서 돈을 벌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일은 계속 일어날 것이었다. 마음을 정했다. ‘평생을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대구에 못 가더라도 하나님만 의지하겠다.’ 그래서 그 집 앞으로 가지 않고, 골목길로 들어가 둘러서 지나갔다. 
골목에서 다시 도로로 나오자, 유리창에 ‘대구’라는 글자가 붙은 버스가 정류소에서 나와 내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오고 있었다. ‘저 버스를 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뭇머뭇하고 있는데 버스가 내 앞에 서더니 문이 열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어서 ‘이건 타라는 거다’ 하고 올라탔다. 그러자 버스 안에서 “박 전도사, 이리 와요.” 하고, 대구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부인 자매님이 나를 불렀다. 자매님은 고향이 거창 ‘마리’로, 그곳에 친정어머니가 살고 계셨다. 자매님은 친정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다. 
버스가 시내를 벗어나 달리기 시작하자 차장이 차표를 들고 와서 차비를 내라고 했다. 내가 자매님을 쳐다보고 웃자 자매님이 차비를 대신 내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매님은 대구에서 한복 바느질을 하는데,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해도 조금 여유 있게 살 만큼은 되었다. 자매님이 이따금 친정에 가서 보면, 농촌에서는 돈 나올 곳이 없어서 돈이 귀했다. 그래서 친정을 떠날 때면 대구 갈 차비만 남겨놓고 돈을 다 털어서 어머니에게 드리고 왔다. 그날도 어머니와 함께 차 타는 곳까지 걸어 나와 차를 기다리다가, 차가 오자 어머니에게 돈을 드리려고 지갑을 열었다. 그런데 자기가 자꾸 돈을 지갑 안으로 밀어넣더라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돈을 주지 않고 그냥 버스에 올라타니까 어머니가 멍하니 딸을 쳐다보았다고 한다. 
자매님이 버스 안에서 ‘내가 왜 어머니에게 돈을 주지 않고 그냥 왔지? 나이가 들면서 인색해졌나?’ 생각하고 있는데, 버스가 거창 정류소에서 나오면서 내가 가방을 들고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박 전도사 대구 가는 게 틀림없다!’ 하고, 운전수에게 “저기에 같이 갈 사람이 있어요!” 하고 차를 세웠다고 했다. 
거창에서 대구까지 요즘 같으면 한 시간도 안 걸리겠지만, 그때는 도로도 안 좋고 사람이 손을 들면 다 태우다 보니, 이른 아침에 출발했는데도 대구에 도착하니 점심때가 조금 지나 있었다. 자매님이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가서 점심을 잘 준비해 주어 맛있게 먹었다. 밥을 다 먹자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나갔다 오는데, 돈을 빌려온 것 같았다. 고생이 얼마나 많냐고 하며 내 주머니에 동전을 한 주먹 넣어주었다. 
그날 밤 대구 선교 본부에서 잠자리에 누워 기도하면서 그날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아침에 거창에서 교사 형제님 집에 들어갔으면 하나님이 자매님을 통해 준비한 버스는 그냥 지나갔을 것 같았다. 하나님이 준비하셨지만 내가 다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랬다면 나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기도해도 안 돼.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면서 평생 믿음 없이 살았을 것 같았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모르고 그냥 지냈다면 지금도 믿음 없이 살았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어렵고 힘들어 하나님을 의지할수록 하나님이 도우셨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둘씩 보내며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갖지 말라고 하셨다. 제자들이 빈손으로 갔던 것처럼 나도 빈손으로 나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경산에서 할아버지를 만나게 하여 밥과 잠자리를 주시고 대구 가는 기차표도 주셨고, 한 자매님을 통해 대구 가는 차비도 주셨다. 하나님이 내 삶을 한 부분 한 부분 돕고 지키시는 것을 보았다. 
만약 내가 인간적으로 생각했다면, 그런 일을 한 번 두 번 겪으면서 ‘하나님이 나는 안 도우시는구나’ 하고 믿음으로 사는 것을 포기하고 인간적으로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무전 전도 여행 때나 대구에 가는 일 앞에서 마음이 하나님을 믿는 쪽으로 기울어진 뒤 하나님이 틀림없이 나를 도우셨다. 세월이 많이 흘러 우리나라 경제가 좋아져서 지금은 좋은 아파트에 살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음식을 먹는다. 지금도 나는 식사하는 것이 정말 즐겁고 감사한 것이, 옛날에는 상상도 못했던 음식을 먹기 때문이다. 
내가 복음 안에서 살면서 어렵고 힘들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했고, 하나님을 의지할수록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는 것을 보았다. 너무나 놀랍고 감사해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싶고, 감사를 드리고 싶다. 
요즘은 내가 쓴 책들이 출간되면서 받는 저자 인세가 상당히 되어 복음의 일을 하는 데 귀하게 쓰고 있다. 내가 책을 써서 수입이 생긴다는 것은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복음을 전하는 동안 하나님이 정말 생각지 못했던 많은 길들을 열어 주셨다. 요즘은 온라인으로 해외의 장관들도 만나고, 대학 총장들도 만난다. 그렇게 만나서 하루에 두세 분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분들이 복음을 받아들여 변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감사하다. 
특별히 2020년에 이어 2021년에는 인터넷을 통해 복음이 전 세계에 전해져 수많은 사람들이 죄 사함을 받았다.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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