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라이프]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 글 | 이현지(기쁜소식강남교회)
  • 승인 2021.11.19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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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호 기쁜소식
보배와 질그릇

 

내 삶에 가장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지금, 내가 만약 하나님 밖에 
있었다면 얼마나 더 고통하고 절망했을지.... 하나님을 멀리 
떠났던 나를 당신 안으로 인도해주신 것이 너무 감사하다.

 

중학생 때 당시 동대구교회에 언니를 따라서 갔다가 복음을 듣고 구원받았다. 신앙 상담이 끝나고 목사님이 기도해 주셨는데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나의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감당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크고 감사해서 집에 돌아오는 내내 울었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원의 기쁨은 옅어 갔고 교회에 가다 말다를 반복하다가 대학생이 되면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교만한 생각으로 교회를 떠났다.
나의 20대는 방황의 연속이었지만 서른을 훌쩍 넘긴 늦은 나이에 착하고 성실한 남편을 만나 경제적, 정신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았다. 세 아이를 키우며 직장에 나가야 했기에 나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어제와 오늘이 똑같고, 오늘과 내일이 똑같은 일상의 반복 속에서 목적지 없이 무언가에 질질 끌려다니는 것 같아 많이 지치고 힘들었다. 직장 생활, 세 아이 양육, 집안일 중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었지만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는 무거운 현실 앞에서 무엇을 위해 내가 열심히 살고 있는지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하는 삶이 너무 싫었다. 아이들이 다 크면 내 삶도 좀 편해질까 생각해 보았지만 나의 미래는 내 앞에 보이는 직장 상사의 모습이었고 나날이 늙어가시는 부모님의 모습이었다. 오히려 우리 인생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는 더 무거워진다는 사실을 그들의 삶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교회에 연락하라는 마음을 주셨지만 
삶이 지치고 힘들 때면 구원받고 기쁘고 감사했던 기억이 자꾸 떠올랐다. 그때마다 다시 한번 복음을 듣고 기쁨을 누려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일어났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교회에 돌아가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교회에 선뜻 연락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직장에서 폴란드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휴직하고 폴란드로 갈 준비를 했다. 폴란드에 가면 교회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쁜소식선교회 홈페이지에서 주소록을 찾아보니 감사하게도 폴란드에 교회가 있었다.
2019년 1월, 우리 가족은 폴란드로 갔고, 낯선 나라에서 삶이 시작되었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수도 바르샤바에 살았고, 남편은 회사가 바르샤바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작은 도시에 있어서 우리는 주말부부로 지냈다.
나는 몇 년 전에 갑자기 어지럼증으로 응급실에 간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밤 세 아이가 자는 모습을 보면서 ‘그때처럼 몸이 또 아프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나를 도와줄 남편도 가족도 곁에 없었기 때문에 두려움은 더 컸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나에게 교회에 연락하라는 마음을 주셨지만 ‘교회를 떠날 때는 언제고 마음이 힘드니까 다시 오냐?’라고 나무랄 것만 같은 생각 때문에 하루하루 미루고 연락하지 못했다. 
어느 날 밤에 자다가 배가 너무 아파서 고생했다. 진통제로 밤을 보내고 아침에 근처 병원 응급실에 갔다. 이런저런 검사를 받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하고 진통주사만 맞고 집으로 왔는데 다행히도 다시 아프지 않고 괜찮았다. 하지만 또 다시 아플 수 있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더 이상 교회에 연락하는 것을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교회에 전화했다. 폴란드에 온 지 1년이나 지나고서야 교회와 연결이 되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폴란드에도 코로나가 심해졌다. 유럽 교회는 온라인으로 연합 모임을 자주 했는데 복음도 다시 듣고 은혜로운 말씀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코로나로 힘들어할 때 나는 말씀으로 마음의 양식을 쌓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매님들이 남편과 함께 신앙생활 하는 것이 무척 부러웠다. 온 가족이 교회 안에서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사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아이들도 복음을 듣고 구원받으니 아빠를 걱정했고 우리는 매일 남편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몸이 좋지 않아 병원으로 가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검사 결과 뇌종양이라고 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동안 들었던 말씀이 절망으로부터 나를 지켜주었다. 남편은 말없이 많은 생각에 잠기면서 지난 삶을 되돌아보았다고 했다. 마인드 강연에서 들었던 말씀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 살면서 한 번쯤 겪게 되는 시련, 그거 좋은 거야.” 그리고 누가복음 12장 25절의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라는 말씀과 함께 우리의 걱정이 우리 삶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해 주었다. 남편이 미소를 지으며 “그래, 맞다. 그런데 당신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마음이 많이 강해졌네.”라고 말했다. 그동안 들었던 말씀이 남편에게 위로가 되는 것을 보고 참 감사했다. 
마침 키즈 캠프 기간이어서 아이들이 영국 오영도 선교사님 말씀을 듣고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선교사님이 정말 좋은 분이니 한번 만나보면 어떻겠냐?’ 교제를 권했다. 남편은 썩 내키지 않는 기색으로 그러자고 했고 선교사님과 온라인에서 만나 복음을 들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남편에게 상담을 권했을 때 거절했는데 ‘하나님이 그 마음을 낮추어 주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너무 감사했다.
선교사님이 남편에게 어떻게 교제할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 물으셨다. 남편은 그동안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았는데 이런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대답했다. 선교사님은 너무 좋아하면서 그런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다면 반은 구원받은 거라면서 복음을 전해주셨다.
선교사님은 남편에게 로마서 3장 23~24절의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와 히브리서 10장 10절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라는 말씀을 보여 주면서 아주 쉽게 복음을 전해 주셨다. 남편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정말 기쁘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아이들도 아빠가 구원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어주셨다면서 기뻐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남편이 병원에 있는 동안 유럽에서는 여름 수양회를 하였는데 나는 김진수 선교사님에게 상담을 받았다. 선교사님이 이사야 38장 17절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라는 말씀과 하나님께서 내게 더 큰 믿음을 가르쳐 주고 싶어서 이런 일을 허락하셨다고 말씀해 주셨다. 내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다. 이 일로 나는 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
폴란드 선교사님이 박옥수 목사님과도 연결해 주셔서 몇 차례 통화했고 목사님이 남편을 위해 기도도 해 주셨다. 박 목사님이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겁니다.”라고 로마서 8장 28절 말씀을 해 주셨는데 말씀 하나를 가슴 깊은 곳에 새기고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 

교회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 많이 울었다
남편이 급하게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우리는 서둘러 귀국을 결정했다. 아픈 남편과 세 아이를 함께 데리고 나올 수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폴란드 사모님이 먼저 아이들을 돌봐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너무 죄송하고 염치없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서 아이들을 교회에 맡기기로 했다. 아이들을 교회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교회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 많이 울었다.
귀국하고 2주간 격리하는 동안 남편 상태는 더 안 좋아졌다. 종양이 커지면서 뇌압이 높아지니 어지럼증으로 힘들어했다. 입원하는 날까지 기도하며 약으로 버티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격리가 해제되는 날 입원을 예약하고, 드디어 자정에 격리가 해제되어 병원으로 가려고 서둘러 준비했다. 그런데 12시 10분쯤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다. 구급차를 불러서 병원으로 갔다. 만약 격리 기간 중 남편이 쓰러졌다면 곤란한 상황에 부닥칠 뻔했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한 순간이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격리 해제 시간까지 남편을 붙잡고 계셨네요.’ 

힘든 시간이었지만 말씀과 기도의 힘으로 잘 보낼 수 있었다
수술을 받는 날 남편을 수술실로 들여보내고 많이 울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하면 마음이 힘들다가도 ‘아니지, 이 일로 남편이 구원받았지!’ 생각하면 다시 감사했다. 남편이 수술받는 동안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싶어 기쁜소식강남교회로 갔다. 교회에 도착하고보니 마침 부인회가 있는 날이어서 자매님들이 예배당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부인회가 끝나고 한 자매님이 다가와서 이것저것 물으며 박옥수 목사님과 상담을 권했다. 전화로 만났던 목사님을 처음 직접 뵈었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목사님은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남편을 위해 기도해 주셨다.
수술이 끝나고 입원실에서 다시 남편을 만났다. 왼쪽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다시 절망에 빠졌다. 수술 후유증으로 왼쪽 편마비가 온 것이다. 재활 치료를 열심히 하면 괜찮아진다는 의사 말을 듣고 퇴원 후 재활병원에 입원했다. 남편은 재활병원과 대학병원을 오가며 항암 치료와 재활 치료를 병행했다.
치료를 받는 시간 외에는 쉬는 시간이어서 병원에 있는 동안 많은 말씀을 들었다. 남편은 특히 이한규 목사님의 복음반 말씀을 달게 들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말씀과 기도의 힘으로 잘 보낼 수 있었다. 수술 직후 남편은 혼자서 일어설 수조차 없었는데 3개월쯤 지나니 정상인처럼은 아니지만 걸을 수 있었다. 정말 감사했다. 걸을 수만 있으면 통원 치료가 가능해서 4개월 만에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그토록 기다렸던 일상 속으로 다시 돌아왔다. 내 삶에 큰 문제가 없었을 때 당연하게 여겼던 그 일상은, 실은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어야 할 시간이었다. 그것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깨닫다니 나는 참 어리석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남편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퇴원 후 병원 치료만 믿고 있을 수는 없어서 암 치유 관련 서적을 읽어 보았다. 음식, 운동 방법 등 남편의 건강 회복을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해야 나중에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하루 24시간을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며 살다보니 하루하루 지쳐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하나님, 하나님께로 돌아왔는데 제 삶에는 왜 여전히 쉼이 없나요?’ 
남편은 정기적으로 MRI 촬영 검사를 받는다. 그런데 지난 7월 검사 결과 종양 세포가 재발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나님이 남편을 지켜 주실 거라 믿고 믿음의 간증도 했는데 이런 결과를 들으니 절망스러웠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제 끝났구나. 이제부터 저주인가 보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동안 남편을 위해 내 몸 생각하지 않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내 노력이 모두 허사로 돌아가 버리니 너무나 허탈하고 아무 잘못 없는 남편이 미워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어둠속에 갇혀 살았다. 남편도 나도 힘든 시간이었다. 하나님은 내가 얼마나 무익한 존재인지, 남편을 위한 나의 노력이 얼마나 헛된지,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악한 사람인지 내 모습을 신랄하게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내가 오로지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길 바라시는데 나는 하나님을 믿는 마음 반, 나를 믿는 마음 반으로 살았던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악한 마음인지 그제야 알았다. ‘하나님, 제가 정말 악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 남편을 구원하셨는데 제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제가 남편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남편과 아이들과 나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잘 지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수고하는 삶을 사는 동안 하나님이 내 삶에 일하실 수 없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지 못하거든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욥기 25:5~6)
‘주님!’이라고 부르지만 진작 내 마음의 주인은 나였던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는 벌레 같은 존재인데 ‘나는 19살 때 구원받기 전, 내 생각대로 살면 망한다는 걸 분명히 알았다.’고 하시던 박 목사님 말씀이 생각나면서 지금부터라도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만을 의지하며 살기로 마음을 정했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복음을 전해야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내 형편에서 빠져 나오니 마음에 쉼이 찾아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 마음이 복음을 향해 옮겨졌다. ‘그래,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복음 전해야지. 우리 가족들에게,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더 늦기 전에 복음을 전해야지.’라는 마음으로 가득 찼다.
최근에 목사님이 ‘복음을 위해서 삽시다.’라고 절규하듯 말씀하시는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하나님의 종의 마음을 받아야 하는데’라고 늘 생각하면서도 말씀을 흘려보낸 적이 많다. 목사님을 하나님의 종이라 하면서도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정말 악하고 교만한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나는 처절한 그리스도인과 복된 그리스도인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얼마 전 목사님께서 아합과 이세벨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에 믿음의 선을 긋는 일을 해 주셨다. 나도 내 마음을 표현했다. 
“그동안 형편에 매여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살았습니다. 목사님은 항상 우리에게 믿음으로 나아가라고 외치시는데 목사님의 마음을 받지 않고 흘려버린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동안 제게 들린 음성을 따라 조금씩 내디뎌 보겠습니다. 무시당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지만 예수님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하셨기에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3)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등 하나님이 주신 전신갑주를 입고 복음을 위해 나아가겠습니다.” 

복음을 위해 마음을 쏟는 동안 내 마음은 평안과 행복으로 가득 찼다
그날 이후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한 발짝씩 내딛고 있다. 남편은 2주에 한 번 병원에 입원해서 항암주사 치료를 받는다. 병원에 가면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참 많이 본다. 첫 주사치료를 위해 병원에 갔을 때는 ‘도대체 내가 왜 또 병원에 입원해 있는 거야?’ 하며 형편을 원망했다. 그때 군대장관 나아만의 계집아이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래, 하나님이 복음 전하라고 나를 여기 보내셨구나!’ 요즘은 병원에 갈 때마다 <기쁜소식>지를 들고 가서 몇몇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유튜브에 나오는 설교 말씀도 알려 주곤 한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마음을 담은 편지와 함께 신앙서적도 보내고 그 가운데 몇몇 사람들에게 간증하면서 마음을 나누고 있다. 
가족들에 대한 마음이 가장 간절하지만 가족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이 나로서는 제일 힘들다. 폴란드로 가기 20일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임종의 침상에 누워 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 비참했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내가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면 아버지도 구원받고 돌아가셨을 텐데....’ 
긴 시간 동안 정죄에 빠져 힘든 날들을 보냈다. 아버지는 내가 교회를 떠나 있을 때 돌아가셨으니 어쩔 수 없지만 지금 교회 안에 있는데 가족들이 끝까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마음이 많이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라는 말씀을 마음 속 깊이 새기며 복음을 전하려 한다.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하나님은 내게 복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들과 또 각자의 상황에 맞게 복음 전하는 방법에 대한 지혜도 함께 주셨다. 요즘은 아이들과 유튜브를 이용해 복음을 전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신기한 것은 내가 복음을 위해 마음을 쏟는 동안 내 마음은 평안과 행복으로 가득 찼다. 창세기 41장 51절에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라는 말씀이 있는데 ‘므낫세’라는 이름의 의미는 ‘잊어버림’이라고 한다. 요셉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는 동안 하나님은 그에게 고통을 잊어버리는 선물을 주셨던 것이다. 나도 형편에서 나와 복음을 위해 마음을 쏟으니 내 삶의 고통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일을 겪었지만 너무나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나는 너무 행복하다. 이 일로 남편을 구원하시고 또 이런 시련을 통해 나를 단련시키고 믿음도 세워 주셔서 복음을 향한 마음으로 온전히 나를 지켜주시는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다. 앞으로 하나님이 내 삶에 나타나 일하실 것을 생각하면 기대되고 소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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