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라이프]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 글 | 오영신(독일, 기쁜소식프랑크푸르트교회 선교사)
  • 승인 2021.12.08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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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호 기쁜소식
선교사 수기 12회(마지막회)


내가 지금까지 복음 안에서 큰 복을 받고 사는 이유가 있다면 내가 예수님과 연결되었고, 또 교회와 하나님의 종과 연결되었다는 이유 하나밖에 없다. 주인을 배반하고 도망간 오네시모가 바울과 연결되면서 유익한 자가 되었듯 교회 안에 성도들도 내가 받은 복을 받기를 바란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프랑크푸르트 선교센터 건물을 살 즈음이었다. 몇 년간 루드빅스하펜에서 프랑크푸르트를 오가며 여러 차례 행사하면서 나는 아내와 함께 자주 ‘프랑크푸르트로 이사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다가 당시 우리 형편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한화로 20억이 넘는 지하 1층 지상 7층 건물을 계약하기로 했다. 일을 진행하는 내내 무척 두려웠다. 이런 일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고, 독일의 부동산 관련 법이나 건물 구매 시스템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혹시나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다윗이 왕이 되고 가장 먼저 한 일
그 무렵 박옥수 목사님이 아프리카 전도여행을 다녀오면서 터키 이스탄불을 경유하셨다. 박 목사님은 반나절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머무는데도 ‘목회자 모임을 하자.’라고 하셨다. 우리는 호텔을 모임 장소로 빌리고, 터키와 인근 불가리아에 있는 목회자들을 초청했다. 박 목사님은 목회자들에게 두 차례 말씀을 전하셨고, 나는 오전 말씀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박 목사님 숙소로 찾아갔다. 
박 목사님은 베냉에서 받으신 훈장을 보여주며 “이건 우리 거야.” 하고 목에 걸어보라고 하셨다. 나는 훈장을 목에 걸고 사진을 찍고 난 뒤, 목사님에게 독일에서 선교하면서 겪는 여러 가지 부족한 부분을 말씀드렸다. 목사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사무엘하 5장을 펴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윗이 여부스 성을 정복하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설명해주셨다.
다윗이 왕이 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여부스 성을 정복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다윗은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였기에 여부스 성에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다. 그런데 여부스 성은 산성이었다. 산성을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고 다윗 시대까지 약 400년이 흘렀지만, 산성을 정복한다는 것은 정말 부담스러운 일이었기에 아무도 도전하지 못했고, 여부스 거민은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과 마음을 합친 다윗은 왕이 되자마자 가장 먼저 올라간 곳이 바로 여부스 성이었다. 여부스 주민들은 이런 다윗을 향해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면서 조롱하고 비웃었다. 다윗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뜻만 있었기에 모든 형편을 무시해 버리고 군사들에게 수구로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을 치라고 명했다. 군사들은 다윗의 명을 따라 수구로 올라가서 마침내 성을 정복했다. 그리고 그곳에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다. 그 성이 바로 지금의 예루살렘 성이다.

 

‘하나님의 뜻 앞에서는 무너지겠구나’
박 목사님은 이 말씀으로 교제해 주면서 ‘나도 하나님과 마음을 합쳤다. 하나님의 뜻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날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박 목사님을 지켜보며 자랐다. 목사님의 삶을 보고 간증을 들으면서 왜 그렇게 사시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내 눈에 비친 목사님은 항상 사람들이 보기에 무모해 보이는, 부담스럽고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한 일들에 주저하지 않고 뛰어 들어가서 하나님의 역사를 끌어내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우리에게 수없이 보여주셨다. 나는 자주 의심하고 믿음이 연약하여 시험에 들 때도 있었지만 박 목사님의 삶을 보고 간증과 말씀을 들으면 도저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인할 수 없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날 나는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목사님이 왜 그렇게 살 수 있으셨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목사님은 당신의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과 합하셨기에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으셨고, 항상 하나님의 뜻만을 앞세워 사셨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후로도 계속 목사님의 교제가 마음을 울렸다.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내가 사는 유럽도 그 뜻 안에 있구나. 그럼 박 목사님은 유럽도 복음으로 덮고 정복하기를 원하시겠구나. 내가 아는 유럽은 복음을 전하기 쉽지 않은, 비록 여부스 산성과 같은 곳일지라도 하나님의 뜻 앞에서는 무너지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시니 
그리고 수구로 올라간 다윗의 군사들이 생각났다. 몇 년 전에 이스라엘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나를 수구로 데려다주었다. 수구는 10미터 아래에 흐르는 기혼 샘물을 퍼 올리는, 한국의 우물보다 조금 더 큰 규모의 수직 통로였다. 외부에서 적이 침입하면 성문을 닫고 수구를 통해서 기혼 샘물을 길어 마셨기에 그곳은 항상 병사들이 주둔해 있는 곳이었다. 수구로 올라가면 기다리는 여부스 군인들에 의해서 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윗의 군사들은 다윗의 말만 믿고 그대로 행했다. 수구로 올라가면 죽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큰 승리를 거두고 성을 정복해버렸다. 그 이유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라고 성경은 이야기한다. 다윗의 작전이 무모해 보이고 불가능해 보여도 만군의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시니 승리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내 마음에 가장 큰 부담은 바로 선교센터 건물을 사는 일이었는데 이 말씀이 내 마음에 큰 힘을 주었다. ‘유럽을 복음으로 덮고 정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구나.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교센터 건물을 구매하는 데에도 승리하게 하시겠구나.’ 믿음으로 발을 디뎌 부딪쳐 가기 시작했다. ‘설령 내가 실수하고 잘못하고 다 이루지 못한다 해도 나를 이어서 또 다른 사역자가 와서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밀고 나가자. 하나님이 돕고 이루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다윗의 군사라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내가 찾고 있던 건물이다’
선교센터 건물을 구매한 뒤 프랑크푸르트로 이사해야 하는데 루드빅스하펜 건물이 팔리지 않아 고민했다. 몇 년째 부동산 에이전트에게 맡겼는데도 우리 건물을 살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사해야 할 때가 다가오는데 건물이 팔리지 않으면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루는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 딸이 학교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놀다가 친구에게 ‘우리 아빠가 이 건물을 판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친구가 “그게 사실이야? 우리 아빠가 이렇게 큰 건물을 사려고 하는데 건물이 없어서 못 사고 있어.”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바로 친구 아빠에게 연락했고 친구 아빠는 즉시 와서 우리 건물을 보더니 ‘내가 찾고 있었던 건물이다.’라면서 바로 계약했다. 좋은 값에 건물을 팔고 우리는 프랑크푸르트로 이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셔서 건물을 사고파는 일도 한 부분 한 부분을 도우셨다. 프랑크푸르트 선교센터는 지금 유럽 선교본부로 사용하고 있다. 

목사님의 대답은 너무 쉽고 간단했다
몇 년 전에 나는 독일 비자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비자를 신청할 때 서류를 잘못 작성하는 바람에 
1억이 넘는 벌금을 내든지 선교회 법인을 닫고 추방을 당하든지 해야 했다. 처음에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5천만 원 정도 벌금을 냈다. 추가로 벌금 8천만 원이 또 나왔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비자 문제가 일 년 넘게 시간을 끌면서 모든 방법을 다 알아보았지만 다른 길이 없었다. 그러나 더는 벌금을 낼 수 없었다.
나는 박 목사님이 독일에 방문하셨을 때, 비자 문제를 자세히 설명드렸다. 목사님의 대답은 너무 쉽고 간단했다. “그게 무슨 문제야? 담당자를 찾아가서 솔직하게 모든 것을 말하고 은혜를 구하면 되지. ‘내가 실수로 서류를 잘못 작성했습니다. 나는 독일에 복음을 전하러 왔습니다.’라고 해.”
박 목사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시고 다음 날 바로 담당자를 찾아갔다. 담당자는 나에게 누군지 물었고, ‘오영신 목사’라고 하자 담당자는 내 사건을 어떻게 할지 고심 중이었는데 마침 내가 찾아 왔다면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비자 문제를 다 덮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독일 영주권도 받게 해주었다. 정말 감사했다. 
나에게는 길이 없어서 목사님이 말씀해 주신대로 솔직하게 내 잘못을 시인하고 은혜를 구했는데, 그것이 담당자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었다. 지금은 영주권을 받아서 더는 비자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일 없이 마음껏 유럽 전역을 다니면서 복음의 일을 하고 있다. 

‘나를 살리신 하나님의 종의 마음이 젊은 사역자도 살리시겠구나.’ 
박 목사님을 모시고 월드캠프를 할 때였다. 박 목사님이 첫날 저녁 말씀을 전하고 숙소로 올라가신 뒤, 나도 한 분과 상담을 마치고 목사님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방 안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목사님이 누군가를 크게 책망하시는 소리였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목사님이 유럽의 한 젊은 사역자를 훈계하고 계셨다. 나는 구석에 앉아서 소리를 죽이고 조용히 지켜보았다. 목사님은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저녁 말씀을 전하며 시차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였기에 빨리 주무셔야 하는데도 그 시간에 젊은 사역자를 향하여 마음을 다해 꾸짖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에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미국에서 사역할 때 목사님은 미국에 오실 때마다 나를 꾸짖으며 ‘자네는 왜 예수님을 안 믿고 너 자신을 믿나?’라고 하면서 싸워주시던 일이 생각났다. 
한번은 박 목사님이 멕시코 집회를 마치고 LA 교회로 오셨다. 한참 훈련을 받고 있었던 나였기에 ‘목사님을 만나면 하나님이 일하시겠다.’라는 설레는 마음으로 식당으로 갔다. 이미 박 목사님과 많은 손님이 앉아 계셨다. 문에 들어서면서 인사를 드리고 조용히 한쪽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런데 앉자마자 박 목사님이 큰 소리로 나를 지적하며 책망하셨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모두 말없이 조용히 밥을 먹었다. 나도 눈물을 흘리면서 밥을 먹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가 이런 분위기를 다 깨뜨려서 어색하게 만들고 싶을까?’ 박 목사님은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지 않으시고 그 순간 내 영혼만을 생각하셨다. 그렇게 내게 아버지의 사랑이 밀려왔던 적이 있었다. 
‘나를 살리신 하나님의 종의 마음이 젊은 사역자도 살리시겠구나.’ 하며 정말 감사했다. 그리고 심장이 멎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심폐소생술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다른 사람은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아무리 해도 안 되면 힘들어서 ‘나도 할 만큼 했다.’ 하며 포기할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다. 아들이 살아날 때까지 할 것이다. 교회와 하나님의 종은 나를 향해서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4:14~15) 
이 마음이 바로 교회의 마음이고 나를 살린 마음이다. 나는 나 자신을 교회의 한 성도라고 생각했지만, 교회는 나를 향해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나 혼자 신앙을 잘해보려고 하고 어려움을 이겨내려고 했을 뿐, 교회와 상관없이 오랫동안 부끄럽고 어리석게 살아왔다.

 
누구보다 많은 복음의 은사를 받은 자

나는 복음의 일을 하면서 항상 ‘나에게는 은사가 없어.’라고 생각했다. 나는 특별히 잘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사역도 잘 못하고 힘있게 복음의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사역하는 동안 하나님은 내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주셨다. 내가 누구보다도 많은 복음의 은사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셨다. 복음의 은사는 노력이나 수고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타고난 은혜의 선물인 것이다. 내가 바로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값없는 선물을 받은 자였다. 그것은 바로 어릴 때부터 우리 기쁜소식선교회를 보고 또 하나님의 종을 곁에서 보며 그 말씀을 듣고 또 부딪히면서 살아온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요 축복이었다. 나는 수많은 목사님이 간증하고 말씀을 전하는 것을 들었고 또 사역하시는 것을 보았다. 어느덧 나도 모르는 사이 이런 것들이 내 속에 차곡히 쌓여있었다. 
마치 요셉이 애굽에서 전국의 양식을 사서 큰 성에 쌓아 두었을 때 사람들은 왜 요셉이 그렇게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7년 흉년이 왔을 때 그 양식이 온 애굽을 살렸듯이, 하나님은 내가 앞으로 유럽의 선교사가 될 것을 아셨고 온 유럽을 건질 수 있도록 내 속에 하나님의 온갖 신령한 은사들을 먼저 가득히 채워주셨다. 그것이 바로 내가 교회 안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이었다. 
사역하면서 많은 어려움과 문제를 만난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가 듣고 보고 배운 것들이 기억이 나서 내가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었다. 참 신기했다. ‘내가 어떻게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가? 내가 어떻게 나보다 더 훌륭하신 유럽 목회자들 앞에서 큰소리를 치고 성경을 이야기하고 이끌 수 있는가?’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 4:9)

 

내가 큰 복을 받고 사는 이유
올 한 해 <기쁜소식>에 간증을 연재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간증을 마치며 가장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복음 안에서 큰 복을 받고 사는 이유가 있다면 내가 예수님과 연결되었고, 또 교회와 하나님의 종과 연결되었다는 이유 하나밖에 없다. 그게 내가 복을 받은 이유이다. 
25년 전 선교학교에서 파송을 받지 못하고 재훈련을 받으며 ‘이제 나는 안 되겠다.’라는 마음이 가득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예배당 유아보호실에 가서 넋두리하듯이 여러 날 기도했다. 그때, 하나님이 은혜와 긍휼로 나를 찾아와 주셨다. 하나님은 지금껏 내가 가지지 못한 지혜를 하나 주셨다. 미련하고 어리석게 살아온 내게 ‘인도자를 믿어보자.’라는 마음을 주신 것이다. 나는 더는 길이 없어서 처음으로 나를 인도하시는 박 목사님의 말을 믿고 그대로 따른 적이 있었다. 이것이 내 인생의 축복의 시작이었다. 
그 후로도 나는 작은 은혜를 입거나 또 내 육체의 욕망을 따라서 쉽게 마음에서 하나님을 떠나고 교회와 하나님의 종을 떠났다. 그리고 잠시 뒤에 돼지우리에서 허덕이며 고통받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주님은 교회와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나를 다시 찾아와 주셨고 다시 건져 주셨다. 이것이 내 신앙이다. 

오네시모가 사도 바울을 만났듯
지금도 나는 똑같다. 쉽게 만족하고 자긍하고 나를 믿는다. 하지만 내 행위와 상관없는 하나님의 새 언약을 품으신 교회와 하나님의 종은 한결같이 나를 꾸짖고 또 이끌어서 더 넓은 믿음과 은혜의 세계로 인도해주신다. 
마치 자기 욕망을 따라서 주인을 배반하고 도망간 오네시모가 결국 감옥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바울을 만나고 바울과 연결되면서 유익한 자가 되었듯이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안에 모든 성도가 내가 받은 복을 받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주신 주님께서 끝날까지 나를 교회를 통해서 계속 이끌어주실 줄 믿으며 간증을 끝마치고 싶다.
이제 유럽의 복음화가 시작이라는 마음이 든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셨듯이 우리 교회가 나아가는 모든 전쟁에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승리하게 하실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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