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 치로
겁쟁이 치로
  • 김신용
  • 승인 2022.03.24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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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키즈마인드
생각하는 동화

남부 아프리카의 칼라하리 사막은 건조하고 모래바람이 부는 황량한 곳입니다. 비는 거의 오지 않고 한낮 기온이 40도가 
넘지만 많은 동물이 살고 있습니다. 그중 미어캣은 서른 마리 정도가 무리를 지어 굴속에 삽니다. 이들은 낮에는 굴 밖에 
나가 앞발을 들고 꼿꼿이 서서 햇볕을 쬐고, 적이 오지는 않는지 감시해서 ‘사막의 파수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치로는 태어난 지 석 달 된 미어캣입니다. 
또래 미어캣들은 어른들에게 사냥하는 법을 배우고 나뭇가지 위에 올라가 보초 서는 법도 배우는데, 치로는 도무지 굴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굴속에 있다가 변을 볼 때만 잠깐 나갔다 옵니다. 

 

“치로야, 나가서 친구들과 좀 놀다 오렴.” 
“싫어요.”
엄마 미어캣의 말에 치로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대답했습니다.
“치로야, 놀자! 오늘 우리 형이 전갈 잡는 방법 알려준다고 했어.” 
“난 나가기 싫어. 그냥 여기 있을 거야.”
치로는 친구들이 불러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야! 우리 형이 그러는데, 전갈은 꼬리에 독침이 있어서 잡을 때 조심해야 한대. 그런데 전갈은 독침 때문에 톡 쏘는 맛이 있다고 하더라고.” 
친구들이 즐겁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와도 치로는 꼼짝하지 않고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에이, 겁쟁이. 치로는 겁쟁이래요.” 
“저 겁쟁이는 놔두고 우리끼리 가자.” 
친구들은 치로와 같이 가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너희들이 아무리 말해도 난 나가지 않을 거야. 밖에 나가는 건 독수리한테 ‘날 잡아가세요’ 하는 거나 마찬가지거든.” 
치로는 멀어지는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치로의 친구들은 함께 지내는 무리를 위해 번갈아가며 나뭇가지에 올라가 보초를 섭니다. 하지만 치로는 도무지 굴 밖에 나가려하지 않아 보초를 선 적이 없습니다. 치로가 이렇게 굴속에서만 지내게 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치로가 태어나 두 달째로 접어들던 어느 날 있었던 일입니다. 치로는 친구들과 함께 굴 밖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치로의 형이 와서 벌레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치로와 친구들을 풀숲으로 데려갔습니다. 치로의 형은 치로보다 여섯 달이나 먼저 태어나 어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형이 수풀 사이로 지나가는 딱정벌레를 보고 재빨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딱정벌레를 다시 수풀에 놓아주며 치로에게 잡아보라고 했습니다. 치로가 정신을 집중해 딱정벌레를 잡으려는 순간 갑자기 ‘휙’ 하는 소리와 함께 형이 사라졌습니다. 어디선가 독수리가 날아와 치로의 형을 낚아채 간 것입니다.
그날 치로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형이 독수리에게 잡혀간 것도 충격이었지만 바로 옆에 있던 자기도 그런 일을 당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에 더 
무서웠던 것입니다. 엄마, 아빠가 아무리 따뜻하게 보살펴주고 위로해줘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독수리는 굴 안에 들어오지는 못해. 그러니 굴 안에 있는 게 제일 안전하다고.’
치로는 언젠가는 자신도 독수리의 먹이가 될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굴 밖에 나가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낮에 모두 사냥하러 가고 치로만 혼자 굴 안에서 자고 있는데, 먹잇감을 찾던 코브라 한 마리가 혀를 날름거리며 슬며시 굴속으로 기어왔습니다. 굴 밖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미어캣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경계 신호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치로는 자다가 늦게야 소리를 듣고 눈을 떴는데, 저만치에 커다란 코브라가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코브라는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치로를 향해 오다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치로의 가족과 친구들이 한꺼번에 굴 안으로 몰려와 코브라의 꼬리를 물어뜯으며 공격을 퍼부었기 때문입니다. 코브라는 먹잇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버텨보았지만 
스무 마리 가까운 미어캣 무리가 소리지르며 달려들자 당해내지 못하고 결국 달아났습니다. 
“안심해라, 치로야. 우리가 코브라를 쫓아냈어. 이제 괜찮아.” 
치로의 아빠가 우는 치로를 꼭 껴안아주었습니다. 
“아빠, 너무 무서웠어요.”
치로는 아빠의 품에 안기자 마음이 좀 편안해졌습니다. 
“치로를 위해 모두 위험을 무릅쓰고 싸워줘서 정말 고마워요.”
치로 아빠가 둘러선 미어캣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자 치로도 입을 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치로의 말에 미어캣들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함께 있어줄게.”

 

그날 밤 잠들기 전, 치로는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빠, 굴 밖에는 절대 나가지 않으려고 했어요. 독수리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굴속에만 있었던 건데….”
“치로야, 위험한 일은 어디에서나 일어난단다. 굴 밖이 위험하다고 굴속에만 있는 건 어리석은 거야. 아빠가 저번에도 말했는데 기억나? 우리 미어캣들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일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혼자 있기보다 함께하면서 서로를 보살펴주잖니. 두려워하지만 말고 다른 미어캣들과 함께 굴 밖에서 놀고 사냥하고 보초도 서다 보면 지금보다 더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아까 모두가 네게 말했잖아. 너와 함께 있어준다고.”
“네, 아빠.”
치로는 눈을 감으며 생각했습니다. 
‘내일은 오랜만에 친구들과 나뭇가지에 올라가서 햇볕을 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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