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예배당
[라이프]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예배당
  • 월간 기쁜소식
  • 승인 2022.03.08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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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호 기쁜소식
해외교회 | 미국, 기쁜소식덴버교회
정대철 선교사 인터뷰

 

최근 미국의 기쁜소식덴버교회가 대지 2천 평에 건평 530평의 예배당을 구입했다. ‘미국은 작은 교회들도 모두 예배당을 사라.’고 하신 하나님의 종의 음성이 마음에 심긴 뒤 7년여 만의 결실이다. 예배당을 사기까지 하나님이 이끄신 간증을 정대철 선교사에게 듣는다. 

 

Q 선교사님, 안녕하십니까? 미국에서 선교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이제 9년 되었습니다. 2013년 3월에 미국에 와서 그해 10월에 덴버로 첫 파송을 받았습니다. 

Q 기쁜소식덴버교회를 소개해주십시오. 
기쁜소식덴버교회는 2002년에 시작되었습니다. 현재는 30명의 성도가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Q 이번에 예배당을 사셨는데, 이전에는 어디서 예배를 드리셨습니까? 
주로 다른 교회들을 빌려서 드렸습니다. 예배당을 빌리는 것도 비싸기 때문에 이곳저곳을 많이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예배당이 없을 때는 집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Q 이번에 예배당을 사게 된 과정을 자세히 이야기해주십시오.
2016년에 박옥수 목사님이 미국에 오셨을 때 젊은 사역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당시 기쁜소식오클라호마교회가 예배당을 샀을 때인데요.“작은 교회들도 모두 예배당을 사게. 예배당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일세. 자네들도 다 살 수 있네.”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예배당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형편은 너무 암담했습니다. 예배당 가격이 너무도 비쌌습니다. 덴버가 있는 콜로라도주는 2012년부터 대마초가 오락용으로 합법화되었습니다. 그후로 많은 사람이 콜로라도로 몰려들었고 건축 붐이 일면서 예배당 건물이 나오면 건축업자들이 현금으로 사서 교회를 허물고 아파트나 상가를 지었습니다. 매물로 나오는 예배당들은 너무 비쌌고 그마저도 건축업자들이 바로 샀기에 우리의 조건으로는 아무것도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예배당을 목사님에게 보여드릴 때마다 목사님은 저에게 예배당 가격과 상관없이 사라고 하셨습니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조건으로는 5억짜리도 살 수가 없는데 목사님에게 10억짜리를 보여드려도 사라고 하시고, 20억짜리를 보여드렸을 때도 사라고 하시는 것을 보면서 제 마음에 ‘예배당을 사는 것은 우리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이뤄지는구나. 하나님이 이 예배당을 허락하시면 우리가 살 수 있는 거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계속 건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한 집을 계약하고 살고 있으면, 괜찮은 예배당이 나왔을 때 계약을 해지하고 바로 나오는 것이 어려워서 이곳저곳으로 자주 이사하다 보니, 그동안 7번 이사하고 7번 예배당을 사려고 했는데 안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방 두 칸짜리 아파트에서 모임을 가지며 지냈습니다. 그다음은 백인 할머니 집 지하에서 살았고, 그다음은 자동차, 베트남인 교회 사택 지하, 부인 자매님과 빌린 일반 집, 형제님의 누나 집 지하, 우연히 알게 된 한국인 할머니 집 지하 순서로 살았고, 마지막으로 한 멕시코인 아저씨 집에서 함께 지냈습니다. 

 

Q 자동차 안에서 살았던 때는 언제였고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많이 불편했을 텐데 씻는 것이나 추위는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2016년에 5월부터 5개월 정도 자동차에서 지냈습니다. 당시 백인 할머니 집 지하에 살았는데 집주인 할머니가 김치 냄새도 안 좋아하고 다른 여러 문제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사역자모임이 있어서 LA에 갔습니다. 그때 박영국 목사님이 
‘네 명의 문둥이’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여러분, 네 명의 문둥이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지혜는 그저 성문 밖에서 사람들한테 구걸하면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받았을 때 그들로서는 할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는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제가 젊은 사역자들을 보면 물론 형편이 어려운 것은 알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 담대하게 살아도 됩니다.”라고 교제해주셨습니다. 
모임을 마치고 덴버로 돌아왔을 때 할머니가 갑자기 다음 달부터 집세를 거의 2배로 올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래도 거기 살고 싶었습니다. 그곳의 집세가 다른 곳보다 쌌거든요. 그때 네 명의 문둥이 말씀이 생각이 나면서 ‘아, 이게 내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지혜구나. 내가 여기에 있으면 언젠가는 망하겠구나. 그러면 내가 하나님을 의지해서 나가자.’ 그래서 할머니에게 한 달 뒤에 나가겠다고 말하고, 한 달 동안 기도하면서 집을 구했는데 구해지지 않았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하나님이 분명히 집을 주신다. 우리가 그때까지 무전전도여행을 하자.’는 마음으로 그 집을 나와서 자동차 안에서 살았습니다. 그때는 한 살짜리 큰아이만 있었습니다. 주로 미국의 월마트라는 대형 슈퍼마켓 주차장에 차를 대고 그 안에서 잤습니다. 사람들이 없는 새벽에 상가 화장실에서 아이를 씻기고, 새벽에 추울 때는 시동을 걸고 히터를 틀고 지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제 사역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Q 선교회에서나 주변 교회에서는 당시 상황을 몰랐습니까? 
제가 백인 할머니 집에서 나가기 전에 박영국 목사님에게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이 어디에서 지낼 건지 물어보셨는데, “하나님이 숙소를 주실 때까지 차에서 지내겠습니다.”라고 하니까 목사님이 생각하시더니 저에게 한마디를 해 주셨습니다. “그래, 자네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자네를 반드시 도우실 걸세.” 그때부터 무전전도여행을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새벽에 시동을 걸어 히터를 틀고 성경을 보는데 사도행전 16장 말씀이 마음에서 풀어졌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고 눈을 떠보니까 감옥이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을까?’ 저는 그전까지 그 상황이 이해가 안 됐습니다. 그런데 그때 ‘바울과 실라는 형편을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믿었구나. 지금 보이는 형편은 우리가 차에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반드시 복된 곳을 허락하시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형편에서 벗어나서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그 뒤로 하나님이 놀랍게 일하셨습니다. 온종일 교회를 방문하면서 목회자들을 만나고 전도했습니다. 하루는 델가도라는 목사님을 만나서 우리가 무전전도여행 중이라고 간증했습니다. 이분이 깜짝 놀라면서 그날 저녁 모임 때 간증을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간증하고 나자 목사님이 ‘지금까지 이렇게 사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며 ‘정 선교사 부부에게 헌금하고 싶은 사람은 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날 그 교회에서는 저희에게 헌금으로 모은 80만 원을 주셨고, 한 부부는 우리가 잘 수 있는 호텔을 잡아주었습니다. 다른 부부는 우리에게 자기 집을 일주일간 내주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교회에서 간증하는 동안 하나님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지내게 해주시고, 돈도 공급하시면서 5개월 동안 굶지 않고 복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해에 덴버에서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도 했습니다.

Q 자동차에서 살면서 어떻게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준비하셨습니까?
10월에 있을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까지 한 달이 남은 시점이었습니다. 그때 이동옥 선교사님 부부와 단기선교사 3명이 덴버에 와서 함께 준비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거할 곳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공연을 준비할 수 있는 교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부엌과 샤워 시설이 있는 곳이 필요했는데, 그런 곳을 찾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0일이 흘렀습니다. 형편은 막막했지만 하나님이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기뻐하시니까 우리의 거처를 마련해주시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루는 이동옥 선교사님 부부가 베트남인 교회에 갔습니다. 이 선교사님이 왜 베트남인 교회에 가려고 하는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이 선교사님은 2기 베트남 단기선교사여서 베트남어로 이야기하자 교회 분들이 마음을 활짝 열었습니다. 우리의 상황을 설명하자 그 자리에서 바로 교회를 사용하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기에 너무 좋은 부엌과 샤워장이 있었고, 기적적으로 칸타타를 준비해서 2천 명이 넘는 시민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Q 그 후로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해주셨습니까?
계속 예배당을 알아보았는데 잘 되지 않았습니다. 가장 어려웠을 때가 2020년도였습니다. 그때 정말 살 수 있을 것 같았던 예배당이 있어서 살던 집에서 나와 어느 형제님의 누님 댁 지하에서 3개월 정도만 잠시 살 계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예배당마저 결국 건축업자가 샀고, 영주권을 신청했는데 영주권마저 떨어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나를 돕지 않으시는가?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지 않나?’ 싶어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예배당이 아닌 집을 알아보려 했습니다.
하루는 박옥수 목사님의 주일말씀을 듣는데 목사님이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종종 잠에서 깨어나듯이 문제에서 나와서 하나님의 눈으로 문제를 바라봐야 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보고 있는 형편은 너무나도 암담하고 안 될 것 같고 하나님이 돕지 않을 것 같은데, 정말 하나님의 눈으로 문제를 보니까 ‘하나님이 이 일을 허락하셨다면 하나님이 이 일을 해결하시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 무렵 박영국 목사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정 선교사, 자네 영주권 심사에서 떨어졌다고 들었네. 그렇다고 절대 포기하지 말게. 다시 변호사를 선임해서 끝까지 진행하게. 다른 사역자들은 다 해외에 나가는데 자네 부부만 못 나가면 내가 마음이 아플 것 같네. 그리고 자네가 예배당이 아닌 집을 산다고 들었는데, 나는 반대일세. 자네가 집을 사면 박옥수 목사님이 덴버에 오셔도 목사님이 머무실 곳이 없지 않겠나? 어려워 보여도 예배당을 사게.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하고 마음을 정하면 하나님에 자네가 필요한 물질을 모두 주실 걸세.” 
말씀을 듣는데 처음에는 부끄러웠습니다. 그동안 예배당을 알아보면서도 덴버에 박 목사님이 오실 것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종과 교회가 보기에는 덴버가 목사님이 오실 만한 도시였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님이 오실 만한 일들을 하나님이 허락하시겠다.’라는 마음이 들면서 제 마음이 절망에서 소망으로 완전히 바뀌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성도들에게 “여러분, 박 목사님이 덴버에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집을 안 사고 다시 예배당을 알아볼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비하신 예배당이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찾기 시작했습니다. 
2021년 6월에 박옥수 목사님이 정말 덴버에 오셨습니다. 계획에도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덴버에서 박 목사님이 가장 큰 스페니쉬 교회에서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날 오후에 공화당 연방 하원의원이신 켄 벅 의원님이 1시간 동안 목사님과 만나면서 구원받고 “목사님, 제가 오늘 죄인으로 왔다가 이제 의인이 되어서 돌아갑니다.”라고 간증하셨습니다.
목사님이 덴버에 오시는 것을 보고 ‘정말 하나님의 종의 약속대로 교회의 믿음대로 목사님이 덴버에 오셨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분명 우리에게 예배당을 주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시 CLF 컨퍼런스를 열었던 교회를 사려고 했는데, 또 다시 다른 건축업자가 사면서 무산되었습니다. 그때도 박영국 목사님이 저에게 “정 선교사, 괜찮네. 하나님이 자네 교회에 더 좋은 건물을 주시려고 하는 거라고 하셨네. 절대 포기하지 말고 계속 찾게.”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형편은 더 이상 제 마음에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휴스턴에서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제가 알고 지내던 부동산중개업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1년 만에 연락이 와서는 ‘아직도 예배당을 찾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렇다고 하니까 ‘내가 보기에 이 예배당이 당신에게 딱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 미국 교회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더 이상 교회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예배당을 팔기로 결정하고 예배당을 수리해서 시장에 내놓으려는 상태였습니다. 그때 부동산업자가 우리에게 먼저 기회를 준 것입니다. 참 감사한 것은 그동안 우리가 예배당을 계속 알아보면서 하나님이 바로 계약금을 낼 수 있는 물질을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예배당을 보고 즉시 박영국 목사님에게 말씀드렸는데, 바로 진행하자고 하셔서 입찰을 했습니다. 
그리고 5일 뒤에 부동산업자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정말 축하한다. 사실 당신이 입찰한 뒤, 어떻게 알았는지 덴버에서 가장 큰 아파트 건축회사에서도 입찰을 했다. 그런데 그들은 현금으로, 당신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을 지불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래서 이 교회가 며칠을 회의했는데, 마지막날 금요일은 새벽부터 3시간 동안 회의를 했다. 그리고 ‘이 교회는 우리가 피땀 흘려서 지은 건물이다. 건축업자한테 넘기지 말고 교회로 지키자.’고 결정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계약서에 사인을 해주었습니다.

Q 정말 감사합니다. 예배당 규모와 가격은 어땠습니까?
예배당 건물은 530평이고, 땅은 2천 평입니다. 가격은 한화로 13억입니다. 예배당은 250석 규모고, 건물 내에 방이 14개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봤던 건물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Q 13억은 어떻게 준비하셨습니까? 
신기하게도, 계약하고 나서 하나님이 만방으로 도우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교회 베트남인 청년 형제의 형이 우리가 예배당을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연락해 왔습니다. 우리가 예배당을 사면 자기가 주중에 실버센터를 운영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소예배당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된다며 교회에 방해되지 않는 시간에 운영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분의 제의는 제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예배당을 살 때 1억 7천만 원을 도왔고, 매달 170만 원의 임대료를 내기로 했습니다. 그가 실버센터를 운영하면 노인들께도 복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예배당을 계약하고 나니까 다섯 군데 교회의 목사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당신이 예배당을 산다고 들었다. 너희 교회 주일예배에 방해 안 되는 시간에 우리가 예배를 드려도 되겠느냐?’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섯 교회를 다 받을 수 없어서 그 중 두 곳을 받기로 했습니다. 
두 교회 중 한 교회의 안토니 목사님은 저에게 간증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연락하기까지 1년 동안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자신들은 상가를 임대해서 쓰는데, 상가 주인이 ‘더 이상 교회에 건물을 빌려주지 않을 테니 비워 달라’고 한 상태였습니다. 안토니 목사님이 1년 전, 우리가 예배당을 구입한 교회의 목사님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예배당을 임대하고 싶다’고 하자 그 목사님은 ‘이 건물이 팔리면 새 주인에게 이야기하라’고 해서 1년을 기다렸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받아주면 우리는 어떤 시간도 괜찮고, 어떤 장소도 괜찮습니다. 당신 교회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제 아들이 전기기술자인데, 예배당을 리모델링할 때 아들이 맡아서 할 수 있고, 예배당 의자 300개와 카페트를 후원받았으니 필요하면 다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과 함께 복음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간절히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리고 임대료는 한 달에 270만 원을 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상가 주인은 월세로 600만 원을 달라고 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너무 감사해 하고 계셨습니다. 
다른 교회의 제시 목사님은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통해 우리와 알고 지낸 지 4~5년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이후에 교회가 문을 닫으면서 다시 교회를 개척하셨습니다. 그분도 이벤트 센터를 임대해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우리가 예배당을 산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하셨습니다. 

Q 필요한 금액이 어떻게 다 채워졌습니까?
2,500만 원 정도가 모자랐습니다. 지난 12월 댈러스 겨울수양회 직전에 한 한국인 아주머니가 연결되었습니다. 당시 아주머니는 남편이 이혼하자고 해서 불면증으로 굉장히 고통하고 있었는데 겨울수양회에 참석하고, 박 목사님에게 안수기도를 받고 불면증과 우울증에서 다 벗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수양회 말씀을 듣고 구원을 확신하셨습니다. 
수양회 이후에 예배를 마치고 밤 10시쯤에 자매님이 저희 집 문을 두드리셨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이 제게 이 마음을 주신 것 같아요. 저는 한 번도 이런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하면서 2,500만 원을 헌금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금액을 하나님이 다 채워주시는 것을 보면서 꿈을 꾸는 것같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Q 참 감사한 일이로군요. 덴버교회 성도들의 마음은 어땠습니까?
예배당을 사려고 일곱 번 발걸음을 내디뎠지만 사지 못했습니다. 그때마다 사탄이 저와 성도들 마음에 동일한 생각을 넣으려 했습니다. ‘거 봐, 이번에도 안 되잖아. 집을 살 돈도 없는데 무슨 예배당이야? 포기하는 게 나아.’ 사탄이 수도 없이 이야기하면서 많은 분들이 포기하고 싶어 했습니다. 심지어 교회에 안 나오려는 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회와 하나님의 종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셨습니다. 이번에 예배당을 계약할 때도 우리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발을 들이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해결하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믿지 못했던 우리 마음을 돌이킬 수 있었고, 하나님이 복음 앞에 달려나갈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새 예배당에서 처음으로 주일예배를 드릴 때 성도들이 간증하는데 다 같이 울었습니다. 

Q 덴버에서도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하며 CLF 활동도 해왔지요?
예. 2019년에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준비할 때는, 콜로라도 목회자협회CMC 분들을 만났습니다. 임원 한 분이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에 계속 참석하고 구원받아서 저희를 많이 도와주신 분이라서 저를 목회자협회 임원으로 추천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도 콜로라도 목회자협회 임원으로 한 달에 한 번씩 회의도 하고 복음의 일들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덴버에서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합니다. 협회 분들께 말씀드리니까 정말 기뻐하셨습니다. 그분들과 함께 공연을 준비하면 하나님이 힘 있게 일하시리라 생각합니다. 

Q 마인드교육과 관련해서는 진행하고 계신 일이 있습니까? 
예. 뉴욕에서 만든 마인드교육 교재를 출판했는데, 하나님이 이 책을 통해서 미국 전역에 놀랍게 일하시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덴버에서는 작년에 박 목사님이 오셨을 때 덴버 시 교도소 채플린 호세아 캐넌 목사님이 연결되었습니다. 그분이 마인드교육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 교육이야말로 우리 재소자들에게 필요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덴버 시에서 운영하는 교도소가 두 곳이 있는데, 재소자가 1,500명 정도입니다. 저희 교회 성도 15명이 교도소 교육에 필요한 인터뷰를 다 마치고 모든 준비가 끝나서 이제 책을 들고 원하는 시간에 가서 교육할 수 있습니다. 성도 2명당 재소자 15명에게 마인드교육도 하고 복음도 마음껏 전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 예배당에서 실버센터를 운영하는 분이 지역 행사를 많이 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덴버 시와 덴버에서 가장 큰 뉴스채널인 나인뉴스와 협력하여 행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을 초청할 예정입니다. 그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것을 생각하니 정말 감사합니다. 

 

 

Q 예배당을 사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마음에 대해 이야기해주십시오.
저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말씀보다 형편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종은 그 어떤 형편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하셨습니다. 포기하고 싶었을 때도 많았고 ‘안 되겠다’라는 마음을 받아들여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습니다. 제 마음을 내려놓고 교회와 하나님의 종이 갖고 계시는 믿음을 받아들였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예배당만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주셨습니다. 내가 부족하고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을 갖고 계신 교회와 하나님의 종과 마음을 합하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세계를 알게 해주셨습니다. 교회 앞에 감사합니다. 

Q 선교사님은 언제 어떻게 죄 사함을 받으셨고, 복음 전도자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까?
저는 2009년에 라이베리아로 단기선교를 갔습니다. 저는 한 번도 교회에 다녀본 적이 없었습니다. 단기선교를 가기 전에 어머니가 갑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나시면서 제 인생에 회의가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일까?’를 찾다가 우연히 학교에서 해외봉사단 모집 포스터를 보고 연결되었습니다. 그리고 라이베리아에서 활동할 당시 최요한 형제가 전갈에 쏘여서 죽어갈 때 제가 요한이 형을 업고 선교사님과 함께 병원에 갔습니다. 저는 형이 죽겠다고 생각했는데 박 목사님과 교제하며 이사야 40장 31절 말씀을 받아들여서 살아나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고 말씀으로 일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복음을 듣고 구원받았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대학교를 다니며 IYF 활동을 하면서 복음 앞에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 히브리서 10장 39절 말씀이 제 마음에 찾아왔고, ‘나 같은 사람에게도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라고 한다면 하나님이 그 말씀대로 일하시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복음 전도자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습니다. 
 
Q 앞으로 예배당을 통해 많은 시민이 구원받고 하나님이 크게 일하실 것이 기대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 주신다면요?
저희가 예배당을 구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두 곳의 목회자협회에서 우리 예배당에서 모임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하나님 앞에 참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장소에서 기독교지도자모임CLF을 하며 목회자를 초청할 때마다 늘 우리 예배당에 목회자들을 초대하고 싶은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예배당을 향한 믿음이 없었지만 교회와 하나님의 종은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계셨고, 그 믿음을 따라갔을 때 하나님은 이곳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예배당을 허락하셨다면 하나님이 예배당을 통해서 놀랍게 일하시겠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 예배당을 통해 점점 타락해가는 콜로라도의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하여 그들이 구원받을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 앞에 감사합니다. 

 


성도 간증

                                                                          유혜순 자매

 

나는 덴버에서 20년째 살고 있다. 어려서부터 장로교회에 다녔고, 재혼을 하면서 미국으로 이민 왔다. 두 번째 결혼을 실패하고 싶지 않아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보겠노라’ 하고 무던히도 참고 버텨왔다. 마음의 병이 깊은 줄도 모른 채 최선을 다해 살았기에 또 가정이 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라도 해 본 적 없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다. 우울증을 오래 앓던 중 한 자매의 권유로 정대철 목사님을 만나 복음을 들었다. 때마침 달라스 수양회에 참석해 박옥수 목사님의 기도도 받고, 죄에서 벗어나 구원받고 의인이 되었다. 할렐루야!
 구원받고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광야를 지나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결국 하나님은 강도 만난 나를 선교회로 이끄셨고,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하셨다. 처음 예배를 드리러 간 날 정 목사님이 ‘드디어 예배당을 사게 되었다.’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셨다. 나는 ‘성도 수가 이렇게 적은데, 어떻게 그 큰 예배당을 사지?’ 하고 걱정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일정 금액이 머리에 떠올랐다. 처음에는 애써 지우고 지내려 했는데 수요예배를 드리다가 나도 모르게 두 배로 헌금을 작정했다. 내일이 오면 마음이 바뀔까 봐 그날 밤 교회에 가서 헌금하고 오는데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마음에 가득 찼다. 
나에게 닥친 어려운 현실은 큰 축복이었다. 어려움을 통해 살아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오,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2~3) 말씀 안에 나의 인생이 담겨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나에게 일하신 말씀이고 나의 간증이다.

 

                                                                   김소희 자매

 

나는 2005년에 기쁜소식선교회를 만나 구원받았다. 사역자님과 마음이 흐르지 않으면서 2007년에 직장 동료가 다니는 미국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2013년에 정대철 전도사님이 새로 부임해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도사님을 만나 복음 교제를 하면서 다시 교회와 함께하였다. 그런데 2014년에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이 끝난 후, 다시 전에 다녔던 교회로 돌아가면서 기쁜소식선교회와는 완전히 인연을 끊기로 결심했다. 
시간이 흘러 2019년 12월,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덴버에 있는 모든 교회들을 다 다녀봐도 마음에 드는 교회가 없다며 내가 다녔던 기쁜소식선교회에 가 봤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을 모시고 기쁜소식덴버교회에 갔고, 지인은 복음을 듣고 구원받았다. 달라스 겨울수양회와 CLF에도 참석했다. 그러다 2020년 3월부터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고, 집회를 하면서 목사님들이 전하시는 복음을 들을 기회가 많았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으면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롬 10:17)
라는 말씀처럼, 말씀을 듣다 보니 믿음이 생기며 하나님께서 기쁜소식선교회를 통해 당신의 일을 하신다는 확신이 생겼다. 함께 복음의 일을 하고 싶어졌다. 지금은 정대철 목사님의 인도를 받으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덴버 교회는 예배당을 사려고 여러 번 시도를 했다. 교회 식구들 모두 예배당을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예배당을 살 기회를 여러 번 놓쳤다. 그러다 2022년 1월에 하나님께서 너무나 아름다운 예배당을 주셨다. 제일 좋고 아름다운 예배당을 주시려고 그동안 계약하려고 했던 예배당들을 모두 놓치게 하셨던 것이다. 또 예배당에 필요한 물건들을 이미 아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통해 놀랍게 공급하셨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린다.

 

                                                             한숙희 자매  

 

5년 전 남편과 함께 기쁜소식강남교회에서 기쁜소식덴버교회로 이사를 왔다. 처음에 와서 보니 강남교회의 한 구역보다도 작은 두 가정만 있었고, 목사님 부부는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고 계셨다. 당시 베트남인 교회 지하에서 누추하게 살고 계셨는데 나중에 듣기로 그곳에서 쥐도 나왔다고 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하나님, 우리에게도 예배당과 사택을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대철 목사님이 ‘박 목사님이 작은 교회들도 예배당을 사라고 하셨다.’며 ‘예배당을 알아보자.’고 하셨다. 여러 군데를 알아 보았는데, 형편은 어려웠지만 뒤로 물러나지 않고 믿음으로 계속 앞으로 발을 내딛는 목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함께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여러 번 계약이 성사되지 않아 실망에 빠질 때도 있었다. 꼭 될 것 같았는데 잘되지 않았다. 
그러나 목사님의 마음은 한결같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배당을 주실 거라고 믿고 또 나아가셨고, 주저앉으려는 내 마음을 일으켜 주셨다. ‘형편을 받아들일 것인가, 하나님의 종과 마음을 합칠 것인가?’를 놓고 결정해야 했고, 내 눈으로는 예배당이 보이지 않지만 연약한 우리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라면 가능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100% 하나님의 은혜로 마침내 우리는 예배당을 샀다. 돌아보면 우리 성도 중 그 누구도 믿음이 없었지만, 어려운 형편 앞에서도 뒤로 물러나지 않고 하나님과 종과 교회를 믿고 달려간 목사님이 계셔서 우리가 이 큰 은혜를 입을 수 있었다. 예배당을 사는 일 앞에 우리의 어떠함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에게 예배당을 주고자 하시는 주의 뜻만이 중요했다는 마음이 든다. 앞으로 이 예배당을 통해 하나님께서 많은 복음의 일을 하실 것을 생각하니 기대가 된다. 4월쯤에는 리모델링을 마쳐서 박 목사님을 모시고 헌당 예배를 드릴 것을 생각하면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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