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설교]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 글 | 임민철(기쁜소식부산대연교회 목사)
  • 승인 2022.03.23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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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호 기쁜소식
갈라디아서 강해(16편)

 

갈라디아서 4장 21~31절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땅에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고, 땅에 빛이 임하면서 빛과 어둠으로 나뉘었습니다. 우리 마음이 혼잡스럽거나 곤고하거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일어나는 것은 말씀의 빛이 비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그 빛이 혼돈된 마음을 정리해서 맑고 분명하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해줍니다.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갈라디아서 4장 21절 이하의 말씀은 우리에게 ‘율법이냐, 약속이냐’를 분명히 정돈해 줍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은 물론, 구원받은 성도의 마음에서도 ‘율법이냐, 약속이냐’라는 부분이 정확히 정돈되어야 합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율법과 약속이 뒤섞여서, 율법을 지켜야 하는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야 하는지 분명하지 않아 많은 혼란을 겪었습니다.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갈 4:21)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율법 아래 있고자 했습니다. 율법대로 살면 좋습니까, 안 좋습니까? 그것이 나쁘면 버릴 텐데 좋기 때문에 붙잡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대로 살지 못하면 저주를 받고, 우리 가운데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율법 아래 있는 것은 저주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율법을 못 지키는 경우는 생각하지 않고 지키는 경우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율법대로 살면 복이 임하니까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을 지배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율법대로 살아서 복을 받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누구도 율법대로 행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댈 사람이 있습니까? 누가 억지로 5리를 함께 가자고 하면 10리를 동행하고, 돌려받을 마음 없이 돈을 빌려줄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율법 아래 있으려고 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간 두 사람, 바리새인과 세리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이여! 나는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또,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세리는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고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선하게 살았다고 하는 바리새인을 하나님이 ‘의롭다’ 하신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서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는 세리에게 ‘의롭다’ 하셨습니다. 
여기서 바리새인은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이고, 세리는 하나님의 약속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의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과 하나님의 약속으로 의를 얻는 사람을 성경은 정확히 구별해 놓았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에게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은 율법사 또한 율법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데도 말씀대로 살아서 복을 받겠다며 율법 아래 가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 가운데에도 마음이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이 있고 약속 아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이 약속 아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 아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신이 율법을 지켜서는 의롭게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정확히 아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소경이 구걸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을 사람에게서 찾으려고 합니다. 잘하면 복을 받고 잘못하면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율법 아래 있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그의 죄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이 그에게 하시려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우리가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를 복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마음이 약속 아래 있는 사람은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소망을 가지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은 문제 앞에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내가 잘못 살아서 그래.’ 하거나, “너에게 그런 일이 생긴 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네게 잘못된 게 있기 때문이야.”라고 합니다. 자신도 율법 아래 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율법을 전합니다. 교회에는 이처럼 율법을 전하는 사람이 있고, 약속을 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율법 아래 있습니까, 약속 아래 있습니까?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
성도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 곧 하나님의 약속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속여서 자꾸 율법 아래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 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갈 4:21~23)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계집종에게서 육체를 따라 난 아들 이스마엘과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약속으로 말미암아 난 아들 이삭입니다.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갈 4:24~26)
바울이 말한 대로 계집종인 하갈(하가)은 율법을 나타냅니다. 젊고 건강한 하갈은 자기 힘으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와 달리 경수가 끊어져서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아들이 이삭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갈 4:28)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약속을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고 영원히 온전케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믿으면 누구든지 의롭고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약속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고 “그래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지요.”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지만, 그 길을 따라가면 하나님의 의에 결코 도달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약속을 믿을 때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온전해집니다. 


약속 아래 있었던 기브온 사람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해 들어갈 때, 가나안에 살던 여섯 족속이 싸우려고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기브온 거민들은 절대 이길 수 없다며 항복하자고 했습니다. 꾀를 내어, 사신들이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낡아서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곰팡이 난 떡을 가지고 이스라엘 진으로 찾아갔습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어디서 온 누구냐고 묻자, 그들이 ‘하나님이 애굽과 요단 동편에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듣고 약조를 맺기 위해 먼 곳에서 찾아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떠날 때 가져온 떡이 지금은 마르고 곰팡이가 났으며, 신발과 옷과 가죽 부대는 낡고 찢어졌다고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 말을 듣고 그들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살려고 거짓말을 했고,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속아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언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수 9:15)
언약을 맺고 3일 뒤에 그들이 가나안 땅에 사는 족속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하여 제 삼일에 그들의 여러 성읍에 이르렀으니, 그 성읍은 기브온과 그비라와 브에롯과 기럇여아림이라.”(수 9:17) 거짓말로 약조를 얻어낸 기브온 사람들을,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너희들이 거짓말했으니 그 약속은 무효다.”라고 할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족장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깨뜨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회중 족장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한 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지 못한지라….”(수 9:18)
약속을 얻어내면, 기브온 사람들이 어떠하든지 그 약속은 바뀌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약속을 맺으면 우리가 어떠하든지 그 약속이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리석어도, 교만해도, 악해도 약속은 바뀌지 않습니다. 민수기 23장에서, 하나님은 야곱의 허물을 보시지 않고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약속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약속을 바꾸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온전케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결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적한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온전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탄은 ‘야, 네가 어떤 사람인지 너 자신을 좀 알아라.’라고 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약속의 말씀을 떠나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 넘어지고 맙니다. 
우리가 자기 판단을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있어야 합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거짓말한 것이 드러난 뒤 어떻게 했습니까? 가나안의 다른 족속들이 배반자라며 그들을 치러 오자 여호수아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거짓말한 주제에 어떻게 도와 달라고 하지?’라는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그들은 여호수아에게 사람을 보내 “당신의 종들 돕기를 더디게 마시고 속히 우리에게 올라와서 우리를 구조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정말 멋있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약속 아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약속 아래서 담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둡고 악하고 거짓되게 살았을지라도 하나님은 약속대로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우리 마음이 율법 아래로 내려가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 매이고 형편에 매여 힘을 잃고 맙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 마음이 약속 아래로 가야 합니다.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하나님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라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이삭처럼 하나님의 약속으로 태어난 약속의 자녀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갈 4:28~29)

사라가 이삭을 낳았을 때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과 열네 살 차이가 났습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이 젖뗀 어린 이삭을 희롱했습니다. 사라가 그것을 보고 아브라함에게 말했습니다.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창세기에서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지금도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약속의 자녀가 겉으로는 부족하고 연약해 보여,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희롱합니다. “너, 삶이 왜 그 모양이야? 말씀대로 바르게 좀 살아.” 성도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자꾸 율법 아래로 끌려갑니다. 자신이 바르게 살아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 삶이 완벽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 아래 서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스스로 온전하게 살려고 하지 말고 온전하다고 하시는 하나님 앞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갈 4:30)
우리가 무엇을 해서 온전해지려고 하는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계집종의 아들입니다. 그것을 내쫓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서 하나님의 은혜나 복을 받으려는 마음을 우리 안에서 쫓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약속을 믿는 마음을 세워야 합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갈 4:31)
구원받은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 약속의 자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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