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피를 볼 때에 넘어가리니
[설교] 피를 볼 때에 넘어가리니
  • 글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2.04.13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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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호 기쁜소식
믿음에 이르는 길_레위기 제사 강해 제4권 3편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바르면
죄는 사망이 지불되어야 해결됩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 주신 가죽 옷을 비롯해 성경에는 사망이 지불됨으로써 죄가 해결되는 이야기가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 하나가 출애굽기 12장에 나오는 유월절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실 때, 애굽에 내리는 마지막 심판으로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장자를 죽이기로 하셨습니다. 그런데 애굽 땅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유월逾越’, 곧 심판이 임하지 않고 ‘넘어가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로 어린 양의 피를 문의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2장에는 유난히 ‘어린 양’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거의 모든 절에 어린 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어린 양을 취할지니, 어린 양을 취하되, 어린 양에 대하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어린 양은 흠 없고….” 출애굽기 12장에 나오는 유월절의 주인공은 어린 양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흠이 없는 1년 된 어린 양을 준비해 두었다가 심판이 임하는 1월 14일 해질 때에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피를 양을 먹을 집의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그 피가 심판을 넘어가게 하는 표적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 12:13)
애굽 땅에 심판이 내려지던 날,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기도하고 있는 사람이나 착하고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 어린 양의 피를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른 사람입니다. 그 밤에 천사가 칼을 들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처음 난 아들과 처음 난 짐승을 다 죽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집에는 문설주와 인방에 피가 칠해져 있었습니다. 피가 칠해져 있다는 말은 누가 이미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천사가 피를 보고 ‘아, 이 집에는 심판이 지나갔구나.’ 하고 다시 심판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 집을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애굽 땅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집 안에 들어가 있으면 심판이 지나갑니다. 만약 ‘나는 정직하게 살았으니까 괜찮아.’ 하고 어린 양의 피를 바르지 않으면 그 사람은 죽임을 당합니다. 반대로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나는 오늘 심판을 받아서 죽을 거야.’라는 생각이 드는데,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자.’ 하고 문설주와 인방에 피를 칠한 후 집 안에 들어가 있으면 그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을 받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린 양의 죽음에 있었습니다. 죽임당한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습니다. 그 집에 사는 사람이 피를 보면서 ‘하나님이 피를 볼 때 넘어간다고 하셨어. 재앙이 임하지 않는다고 하셨어.’ 하며 믿음으로 평안히 있을 수 있었습니다. 심판하는 천사도 장자를 죽이려고 왔다가 피를 보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담이 됩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에게 내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죄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인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심판을 받아 피를 흘리고 죽으신 것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됩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가 있어! 이 피는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 내가 지은 죄의 심판을 다 받으셨다는 증거야. 내 죄는 다 심판받았기 때문에 이제 나는 깨끗하고 의로워졌어!’ 이렇게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죄의 담이 헐어져 우리가 하나님과 자유로운 관계가 되어서 복된 삶이 다시 시작됩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죄를 사함받으면, 사망이 우리를 찾아와서 보고는 “이 사람은 사망을 받은 흔적이 있네.” 합니다. 우리가 사망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이 죽으신 흔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홍역을 합니다. ‘홍역은 살아서 안 걸리면 무덤에서라도 앓는다.’고 사람들이 말합니다. 그런데 홍역을 앓고 나은 아이는 더 이상 홍역을 앓지 않습니다. 홍역에 걸린 아이들 틈에서 뛰어 놀아도 걸리지 않습니다. 홍역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무덤에 묻혔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망을 당하고 사망을 이기셨기 때문에 사망이 다시 찾아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떨어져 있을 때, 즉 ‘예수님은 예수님, 나는 나’일 때에는 우리에게 사망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예수님과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사망이 찾아올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하셨습니다. 나무와 가지는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사망을 통과하셔서 사망이 예수님에게 다시 찾아오지 않으면 우리에게도 찾아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가 되면, 예수님이 죄의 벌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 벌을 받을 수 없습니다. 
유월절 저녁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놓으면 어떤 효력이 있습니까? 천사가 집집마다 다니면서 장자를 죽이는데 피가 발린 집에는 죽음이 이미 지나갔습니다. ‘이 집에는 사망이 다녀갔음’ 하고, 죽음이 왔다 갔다는 표시로 문설주와 인방에 피를 칠해 놓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가 칠해진 집에는 죽음이 절대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노아 홍수 때에는, 방주 안에 들어가 있으면 심판의 물결이 그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 시대에 여리고 성이 멸망을 당할 때에는, 창문에 붉은 줄을 매달아 놓은 기생 라합의 집에 들어가 있으면 죽음이 절대로 찾아오지 못했습니다. 출애굽기 12장에서는, 어린 양의 피를 칠한 집 안에 들어가 있으면 그 사람에게는 죽음이 결코 찾아오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어 그 피가 마음에 발린 사람에게는 사망이 다시 찾아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어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여전히 죄 속에 빠져서 삽니다. 그 사람에게는 사망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죄와 심판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려고, 애굽 땅에 심판이 임할 때 어린 양을 죽여서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심판을 피하는 유월절을 허락하셨습니다. 또한 레위기 4장의 속죄제사에서 제물이 죽음으로써 죄를 사함받는 이야기를 기록하셨습니다.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어린 양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심판하시지 않지만, 사람들이 자기 죄가 사해진 사실을 알지 못하면 스스로 죄인이라고 여겨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닫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그 사람 사이에 마음이 흐를 수 없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어두운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 죄가 씻어진 사실도 중요하지만, 죄가 눈처럼 씻어졌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리시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 곳곳에 우리 죄가 사해지는 이야기들을 기록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이사야 53장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4~6)

죄를 지은 우리가 죄를 깨달으면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심판이 이미 끝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에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후 ‘이 어린 양이 나 대신 죽어 내 죄의 형벌을 받았구나!’ 하고 믿었듯이, 우리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나 대신 심판을 받으셨구나!’ 하고 믿으면 됩니다. 
예수님의 피로 우리 죄가 다 씻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로마서 3장 2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한 일이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죄가 씻어져서 우리가 의롭고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을 빼면
목회자가 복음을 정확히 알고 있어서 한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 목회자는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다 천국으로 인도하려고 하기 때문에, 교회에 백 명이 모이는 것보다 천 명이 모이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교회에 와도 죄를 사함받도록 인도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이 죄를 가지고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간다면, 백 명이 모이는 교회의 목회자보다 천 명이 모이는 교회의 목회자가 훨씬 불쌍합니다. 
교회에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어떤 선한 일을 하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죄를 사함받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가 의롭게 되어서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빼면 다른 종교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흠 없는 속죄제물이 되어 이 세상 사람들이 지은 모든 죄의 삯을 대신 치르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죽으셔서 우리가 받을 심판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미 심판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더 이상 심판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다 씻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의롭습니다. 이 사실을 믿을 때 죄에 종노릇하던 우리 삶이 끝나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놀라운 새 삶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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