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설교]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 글 | 임민철(기쁜소식부산대연교회 목사)
  • 승인 2022.05.19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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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호 기쁜소식
갈라디아서 강해(18편)

갈라디아서 5장 2~18절
우리가 받은 구원의 가치와 능력은 너무 놀랍습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구속의 은혜는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했고, 율법에서 자유롭게 했으며, 또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던 데에서 자유롭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구원받은 성도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하여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게 해놓으신 것입니다. 

성도가 누려야 할 자유를 빼앗기지 말라
갈라디아 교회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교회에 들어와 성도들에게서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이방인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피를 믿는 것 외에 ‘우리가 무언가 해야 하는구나’라는 마음이 틈타고 들어왔습니다. 그처럼 성도들이 법에 매여 지내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구속의 은혜는 구원받은 우리를 모든 데에서 자유롭게 했으며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게 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 마음에 ‘내가 부족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불어넣습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든 매이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죄와 율법에서 자유롭게 하고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데에서 자유롭게 하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사함받기 위해 한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율법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기 위해 한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이 이루신 구속의 은혜로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가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넣습니다. ‘내가 이 부분만 조금 잘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입히실 텐데…’ 하며, 자신이 게으르거나 미련하거나 연약해서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을 사탄이 넣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은혜는 우리를 어디에도 매이지 않게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가 누려야 할 참된 자유를 빼앗기지 말라고 갈라디아 교회에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 말씀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자유를 누리도록 이끌어 줍니다.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뒤 할례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이것으로 바울을 공격했습니다. “하나님이 할례를 받으라고 하셨는데 왜 할례를 전하지 않느냐?”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는 데 있어서 어떤 조건에도 매여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형편없는 내가 구원받은 게 맞아?’ ‘내가 이렇게 약하고 부족한데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 게 맞아?’ 이런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가 잘못할 수 있지만 “이런 네가 어떻게 구원받았다고 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습니다. 그 어떤 것도 구원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참된 신앙에서 떠나게 하려고 계속 어딘가에 얽어매는 일을 합니다. 갈라디아 교회에서는 유대인들이 성도들에게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갈 5:2)
갈라디아 교회에서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말했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음을 다시 율법에 매이도록 끌고 가려고 한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부족함이나 연약함이 있으면 인정하지만, 그것이 구원을 흔들 수는 없습니다. 제가 구원받은 뒤 하나님은 내가 얼마나 약하고 악한지 알게 하셔서 ‘내가 율법의 행위로 의를 얻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속의 은혜로 의를 얻었구나.’라는 사실을 더욱 깊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도들이 구원받은 학생 자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너, 구원받은 거 맞아? 구원받은 사람이 이렇게 살아?” 그러면 아이가 바르지 못한 자기 행위를 보면서 자신이 구원받았는지 흔들립니다. 
‘나는 아무래도 구원받지 못한 것 같아.’ 이런 마음을 가져 은혜에서 멀어집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유대인들이 들어와서 성도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 할례 받았어요?”
“아니오.”
“그러면 잘못된 거예요.”
갈라디아 교회에서 구속의 은혜와 할례의 규례로 인해 자꾸 충돌이 생겼습니다. 오늘날도 교회에서 은혜와 행위로 인해 충돌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교회에 윤리적이나 도덕적으로 바르지 못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가 구원받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고, 곁눈질 한 번 하지 않을 만큼 깨끗하고 반듯하게 살았다고 해서 그가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 5:4)
율법대로 살아서 자신의 행위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만일 무엇을 하면 믿음이 좋은 것 같고 못 하면 믿음이 없는 것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더듬어봐야 합니다. 행위로 의를 얻으려는 마음, 그것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는 마음으로 발을 내디뎌서 놀라운 일이 이루어지면, 교회에서 ‘목사님은 믿음이 있으니까 하나님이 저렇게 도와주시지. 나는 믿음이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구원받을 때 하나님이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을 주셨습니다. 그 사실을 믿고 발걸음을 내디디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려면 믿음을 새로 가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탄이 자꾸 그렇게 속입니다. ‘나는 성경도 안 읽고 기도나 전도도 하지 않고 육신에 끌려다니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을 거야.’ 우리 마음을 구속의 은혜에서 행위로 자꾸 몰아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하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에는 오직 믿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5~6)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가 달음질을 잘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갈 5:7~9)
누룩은 조금만 들어가도 전부를 부풀게 합니다. 신앙도 은혜가 아닌 행위가 조금만 들어가도 신앙 전체에 영향을 줍니다. 사람들은 ‘이왕 신앙생활 할 것,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쉽게 합니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바로 적은 누룩입니다. 이 누룩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마음으로 나 자신도, 가족이나 성도들도 대해야 합니다. 잘못한 사람에게 “왜 그랬어요? 그렇게 살려면 교회에 오지 마요.” 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행위에 얽어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9절에서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예수님의 은혜 아래서 담대해야 합니다. 완벽한 행위가 우리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는 사실을 이야기한 뒤,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라고 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3)
성도는 예수님의 은혜 외에는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육체의 기회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술을 마셔도, 담배를 피워도 예수님 안에서 의롭게 되었다.” 이 말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가지고 “술을 먹어도 돼. 담배를 피워도 돼. 세상을 즐겨도 돼.”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행위와 상관없이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육체의 기회로 삼게 합니다. 예를 들어 이야기하면, 자신이 부족하니까 부족하게 사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은혜로 주어진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 부족함을 문제 삼지 않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족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데 있어서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런데 여전히 부족하게 사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부족한데도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못난 것은 예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는 조건이 될 수 없지만, 여전히 못난 채로 산다면 그것은 예수님과 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육체에 매여서 성도가 가진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에게서 약함이 드러날 때 
“내가 이런 사람인데 어쩌라고요?”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런 사람이니까 예수님을 의지해서 살게요.”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가진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좇아 복음을 위해 사는 종이 되면 얼마나 복된지 모릅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지만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기지 않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가진 자유로 종이 되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예수님이 표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도가 걸어가야 할 길은, 먼저 성도는 어디에도 매이지 않습니다. 못난 것에도 어리석은 것에도 연약한 것에도 매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 데에도 매이지 않는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않습니다. 자신이 못났다는 생각 속에서 사는 것은 방탕하게 사는 것과 똑같습니다. 성도가 가진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못나고 미련하고 모자란 우리를 불러 예수님과 교제하게 하셨습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9)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하면 못난 것도, 미련한 것도, 연약한 것도 그리스도를 힘입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자랑거리를 다 빼앗으셨습니다. 원래 못나고 어리석고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랑할 것이 없게 하셨습니다.
그런 우리를 불러서 지혜로운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8~29)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으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 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못나고 어리석고 연약한 우리가 지혜롭다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셔서,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을 우리 것으로 삼아 살게 하셨습니다. 삶에서 그리스도를 힘입는 것이 신앙의 참 지혜입니다. 우리가 가진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아 못나고 연약한 대로 살지 않고 예수님을 의지한다면, 하나님이 우리 삶 속에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고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이 주신 자유를 빼앗길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강하게 책망해, 교회에 들어오는 적은 누룩을 제해서 교회가 순수하게 복음을 전하도록 이끌려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구원받은 우리가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담대해야 합니다. 또한 자신이 못난 것이나 연약한 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주신 자유를 그처럼 육체의 기회로 삼아 방종하는 길을 간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을 비워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위해 살며 서로 섬길 때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은혜를 나타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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