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수님을 나타내는 그림자, 율법
[설교] 예수님을 나타내는 그림자, 율법
  • 글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2.06.0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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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호 기쁜소식
이달의 설교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 3:19)

율법은 여러 가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예수님에 관하여 미리 이야기한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말하면 레위기 4장에 나오는 제사법이 그렇다. 제사법 규례에 보면,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그 죄를 씻기 위해 양이나 소나 염소를 잡아서 제사를 드린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신 뒤로는 더 이상 그런 제물이 필요하지 않다. 예수님 자신이 곧 하나님의 어린양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이 있는데, 안식일 또한 예수님을 나타낸다. 
골로새서 2장 16~17절에 보면,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라고 했다. 여기에 보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대해 문제를 삼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 그 이유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실제가 아니라 장래 일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림자가 있으면 몸이 있다. 그 실체가 있다. 그렇다면 안식일은 무엇의 그림자인가? 그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서 장차 예수님이 오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이야기하신 것이다.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 해가 지면 모든 짐을 내려놓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면 죄의 짐을 벗고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씻어 우리가 죄에서 온전히 벗어나는 것이다. 골로새서 2장 16절에서는 안식일뿐 아니라 절기나 월삭 등도 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라고 했다. 

율법을 따라 제사를 드리는 것은 실물이 아니라 사진과 같아서
히브리서 10장에서도 율법은 그림자라고 말한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히 10:1)
여기서 ‘율법’은 율법을 따라 드리는 제사들을 말한다. 구약시대에는 양을 잡아서 지은 죄를 씻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그처럼 예수님을 나타내는 그림자가 필요했다. 
옛날에는 결혼할 때 당사자가 직접 만나기 전에 중신아비가 예비 신부의 사진을 예비 신랑에게 가지고 가서 ‘이런 처녀가 있는데 결혼하고 싶지 않냐?’고 의향을 물었다. 사진을 보고 마음이 들면 서로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실제로 만나기 전에는 사진을 보고 그 사람을 상상하지만, 만난 후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 실물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율법을 따라 제사를 드려서 죄를 씻는 것은 사진처럼 실물이 아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인 예수님이 우리 죄를 씻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자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더 이상 율법을 따라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 절기나 안식일을 지키는 것 또한 필요하지 않다.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위해 새 언약을 쓰신 예수님 
요한복음 8장에서 한 여자가 간음하다가 잡혔다. 사람들이 그 여자를 돌로 쳐서 죽이려고 끌고 가다가, 도중에 누군가 ‘이 여자를 예수에게 데리고 가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묻자’고 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여자를 예수님 앞으로 끌고 와 물었다.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리려는 계략이었다. 돌로 치라고 하면 예수님이 죄인을 구원하러 왔다는 말이 무너지고, 치지 말라고 하면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무너뜨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뭐라고 대답할지 기다렸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고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쓰셨다. 그리고 일어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그러고는 다시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쓰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아무도 여자를 돌로 칠 수 없었다. 간음한 여자를 정죄하는 생각에 빠져 있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을 돌아보니 죄가 없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 돌을 내려놓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들이 다 떠난 뒤 예수님이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자에게 율법을 따라 말씀하시지 않았다. 율법을 따라 그 여자를 심판하면 여자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 여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예레미야 성경에서 말씀하신 대로 새 언약이 필요했다. 예수님은 여자를 살리기 위해 법을 바꾸셔야 했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쓰신 것이다.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첫 번째 글씨를 쓰신 것은 십계명이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시기 전에 ‘내가 주는 법을 다 지키면 복을 받고 어기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이 다 지키겠다고 약속해서 율법을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약속대로 행하지 않고 다 율법을 어겼다. 그 결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나중에는 이스라엘이 패망하고 사람들이 포로로 사로잡혀가야 했다. 
첫 언약인 율법으로는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새 언약을 세우셔야 했다. 예레미야 31장 31절에서 하나님이 새 언약을 세우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후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끌고 와 예수님 앞에 세운 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라고 물었다. 모세의 율법으로 여자를 재판하면 여자는 죽을 수밖에 없다. 예수님이 여자를 구원하실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십계명을 쓰셨던 것처럼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다시 쓰셨다. 하나님이 예레미야 31장 31절에서 말씀하신 대로 새 언약을 세우신 것이다. 
율법이 아닌 새 언약으로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재판하니 여자가 죄가 없었다. 예수님이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여자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그 형벌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율법에서 벗어나 은혜의 성령의 법 안에서
갈라디아서 3장에서는 율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 3:19)
성경은 율법이 약속하신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만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오시면 율법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때문이다. 
율법의 모든 규례들이 예수님이 오시면 의미를 잃는다.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계명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이 되면 모든 짐을 내려놓고 쉬었다. 그것처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와서 우리 짐을 대신 지셔서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죄의 짐을 벗고 너무나 복되게 산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여겨 율법 아래서 고생하는 것을 보면 불쌍하다. 율법은 예수님의 그림자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죄를 씻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사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실 때,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그들이 보지 못하도록 법궤 안에 넣으라고 하셨다. 돌판을 넣은 법궤의 뚜껑을 닫고 그 안을 절대로 들여다보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터에 법궤를 가지고 갔다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다. 그 뒤 블레셋 사람들이 법궤를 돌려보냈는데, 벧세메스 사람들이 법궤 안을 들여다보았다가 5만 70명이 죽임을 당했다. 
율법 앞에 서면, 우리 모두 죄를 지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율법이 아닌 새 법을 세우셨다. 히브리서 10장에서 하나님은 새 법을 우리 마음에 두고 우리 생각에 기록하겠다고 하셨다.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히 10:16)
우리가 ‘죄와 사망의 법’인 율법에서 벗어나 새 언약인 ‘은혜의 성령의 법’ 안에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를 사함 받고 죄에서 벗어나 주님과 함께 복되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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