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심판이 끝난 죄
[설교] 심판이 끝난 죄
  • 글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2.06.07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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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호 기쁜소식
믿음에 이르는 길_레위기 제사 강해 제4권 5편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구원’입니다. 마태복음 1장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천사가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의 꿈에 나타나,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예수 곧 ‘여호와의 구원’이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하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봉사하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닙니다. 세례를 받고, 집사가 되거나 장로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여호와의 구원’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구원이라는 단어가 여러 모양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감옥에서 나오는 것도 구원으로 표현되어 있고, 병에서 낫는 것도 구원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구원은, 우리가 죄에서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뇌관이 제거된 지뢰, 심판을 받은 죄
지뢰나 수류탄은 그냥 쇳덩어리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죽음이나 큰 부상을 가져다주는 폭탄으로, 피해야 할 무섭고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지뢰나 수류탄에서 뇌관을 제거하면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쇳덩어리일 뿐입니다. 뇌관을 뽑아낸 지뢰는 아무리 때려도 터지지 않기 때문에 아무 위험이 없어서 피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죄가 그와 같습니다. 사람이 어떤 죄를 지었든지 그 죄는 반드시 멸망을 불러옵니다. 또한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담이 되고, 문제와 어려움을 가지고 옵니다. 그런데 그 죄가 심판을 받으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심판을 받은 죄는, 죄는 죄지만 우리를 멸망시키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저주와 고통과 두려움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창고에는 사랑도 있고, 긍휼도 있고, 축복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창고에서 긍휼을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사랑을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창고에는 심판도 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이 왜 심판하십니까? 심판은 두렵고 싫은데…. 우리가 지은 죄는 심판하지 않고 놔두면 저주와 멸망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심판하십니다. 심판 받은 죄는 뇌관이나 화약이 제거된 지뢰나 수류탄과 같습니다. 겉모습은 지뢰요 수류탄이지만 절대로 폭발하지 않기 때문에 이제 그것은 쇳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간에 그 죄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지면 이제 그 죄는 우리를 절대로 두렵게 만들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지도 못하고, 저주와 멸망을 불러오지도 못하며, 고통과 어려움을 주지도 못합니다. 
우리가 저지른 죄는 어떤 죄든지 심판을 거치지 않으면 절대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냥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언젠가는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 지뢰나 수류탄과 같습니다. 죄의 기능을 없애는 방법은 오직 하나입니다.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죄는 심판해야만 죄로서의 힘을 잃습니다. 
손톱만 한 죄라도 심판을 받지 않으면 죄의 기능이 살아 있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를 고통으로, 저주로, 멸망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러나 어떤 죄든지 일단 심판을 받고 나면 그 죄는 죄로서의 기능을 상실합니다. 분명히 살인했지만, 간음했지만, 도둑질했지만 더 이상 영향력을 갖지 않습니다. 심판이 끝난 죄는 죄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죄에 대한 심판을 끝낸 십자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심판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도둑질을 했든지, 간음을 했든지, 살인을 했든지, 그 죄의 심판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셨습니다. 물론, 여기서 심판 받은 것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남의 물건을 훔치는 죄를 지으면 이 세상 법에 의해서도 벌을 받아야 합니다. 세상 재판 자리에 가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사함 받아서 죄가 없기 때문에 받을 벌도 없습니다.”라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이 세상 법에 의해서도 벌을 받지만, 하나님의 법에 의해서도 벌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법을 따라 우리에게 내려질 심판을 받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 세상 법을 어긴 죄에서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우리 대신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우리 죄에 대한 심판이 예수님이 못박힌 십자가에서 끝이 났습니다. 그래서 죄도 끝이 났습니다. 예수님이 달린 십자가는 우리에게 임할 저주를 그치게 했고, 심판을 마치게 했습니다. 
구약 성경 민수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죽었습니다. 원망하다가 죽고, 간음하다가 죽고, 이렇게 해서 죽고 저렇게 해서 죽고…. 죽는 이야기가 계속 나옵니다. 그것이 죄와 더불어 사는 인간의 운명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운명을 끝내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원망한 사람이 한두 명이겠습니까? 도둑질한 사람이 없겠습니까? 간음한 사람이 없겠습니까? 다 죽어야 할 사람들인데,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에서 그 모든 죄에 대한 심판이 끝났습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미칩니다. ‘그래, 내가 죄를 지었지만 이 죄는 나를 멸망으로 끌고 가지 못해! 이 죄에 대한 심판은 예수님이 이미 받으셨어!’ 하고 기쁨이 넘칩니다. ‘내가 저주를 받고 멸망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이 나 대신 저주와 멸망을 받으셨어!’ 하고 감사가 넘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뒤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사함 받으면, 그래서 마음의 죄가 눈처럼 희게 씻어지면, 변하기 싫어도 변합니다. 자신이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느끼든지 느끼지 못하든지 구원받은 사람은 더 이상 이전의 자신이 아닙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놀라운 일을 이루시려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고, 예수님으로 하여금 우리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이 둔해서 죄가 어떻게 사해졌는지 깨닫지 못할까 봐 레위기 4장에 나오는 속죄제사 등으로 죄가 씻어진 사실을 성경에 자세히 설명해 놓으셨습니다. 그래도 우리 마음이 높아서 복음을 깨닫지 못할까봐 범죄나 삶 속에서 만나는 어려움들을 통해 마음을 낮추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처럼 우리를 인도하셔서 우리가 죄를 사함 받고 의롭게 되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찬송하며 삽니다. 

사탄의 마지막 일터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에 다니면서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교만하게 어떻게 우리가 의인이라고 할 수 있나? 겸손하게 죄인이라고 해야지.”라고 말합니다. 우리 죄가 다 씻어져서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의롭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하는 것이 겸손한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런 줄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성경 내용도 잘 모르고 믿음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저를 보고 의롭다고 하시니 제가 의로운 줄 알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서 제 죄를 다 씻었다고 하시니 다 씻은 줄로 믿겠습니다.’
이렇게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주여, 믿씁니다!” 하고 힘주어 소리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마음에서는 우리 죄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끝났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자신이 일할 장소가 인간의 마음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압니다. 우리 마음이 사탄의 마지막 일터입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사탄이 교묘하게 속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로
레위기 4장에 기록된 속죄제사에서, 제사장이 제물의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서 번제단 뿔에 발랐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피를 흘리고 죽으셨습니다. 못박힌 손과 발에서, 채찍으로 맞은 자리에서, 그리고 창으로 찔린 옆구리에서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그 피가 하늘나라 성전에 있는 번제단 뿔에 발려졌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의 심판을 받아서 죄의 효력을 다 없애셨고, 당신이 흘리신 피를 단 뿔에 발라서 죄의 기록을 다 지우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 죄를 심판하시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죄를 기억하시지도 않습니다.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히 10:17)
전에는 하나님이 제단 뿔을 보시면 인간의 죄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단 뿔에서 아무것도 보실 수 없었습니다. 대신 피가 잔뜩 발려 있었습니다. 어린양 예수의 피였습니다. 그 피가 하늘나라에 있는 우리 죄에 대한 기록을 전부 지웠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인간의 마음판에 있는 죄의 기록입니다. 그 기록들은 ‘내가 죄를 지었지만 예수님이 못 박히신 십자가에서 해결되었다.’라고 믿을 때 사라집니다. 죄를 지은 기억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더 이상 아무 효력이 없는 죄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하늘나라 번제단 뿔에 발려진 후 하나님은 인간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여셨습니다. 죄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인간을 향해 마음을 닫으실 이유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만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예수님의 보혈이 이룬 일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 편에서도, 우리 편에서도 죄는 아무 데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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