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성령을 좇아 행하라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설교] 성령을 좇아 행하라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 글 | 임민철(기쁜소식부산대연교회 목사)
  • 승인 2022.06.07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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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호 기쁜소식
갈라디아서 강해(19편)

 

 

갈라디아서 5장 16~26절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성경을 읽고 자기 자신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성경은 우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말씀 앞에서 자기 자신이 떠오르면 말씀이 짐이 되고
갈라디아서 5장 후반부에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에 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 5:19~21)
이런 말씀을 읽으면 ‘나에게 이런 육체의 일들이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이어서 성경을 읽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 5:22~23)
이 말씀을 읽고도 ‘나에게 이런 열매들이 맺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말씀을 읽고 육체의 일에도 마음이 걸리고 성령의 열매에도 마음이 걸립니다. 육체의 욕망에서는 벗어나지 못했고 성령의 열매들은 아직 맺히지 않은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마음에 자유와 평안과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부담을 가져다줍니다. “성경 말씀은 좋은데 나는 말씀대로 사는 것이 안 돼.” 하는 성도가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의 모든 열쇠는 예수님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육체에서 일어나는 욕망이라 금방 이해되지만, 성령의 열매는 우리에게서 맺히는 것이 아니어서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하는 교회들이 있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인 ‘오래 참음’에 대해 생각해 보면, 사람은 오래 참지 못합니다. 참고 참다가 폭발합니다. 참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오래 참을 수 있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사랑이든 화평이든 충성이든, 말씀 앞에서 자기 자신이 떠오르면 성경 말씀은 짐이 됩니다. 제가 전에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대로 내가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했을 때에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말씀 앞에서 예수님이 떠오르면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사랑하게 하시겠구나.’ 하며 말씀이 우리 마음에 소망을 가져다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위해 자신을 부인하려고 해도 ‘나를 믿으면 안 돼, 안 돼’ 하다가 포기하고 맙니다. 우리는 자신을 믿지 않고 살 수 있는 위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살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죄를 씻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지은 많은 죄를 어떻게 씻지?’ 하면 마음이 기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죄를 씻으라고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내 죄를 씻어 주시겠네요.’ 하면 소망스럽습니다. 
어떤 말씀이든지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어렵습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을 때, 니고데모는 자신이 거듭나야 하는 줄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다시 태어나지? 늙은 내가 모태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와야 한다는 건가?’라고 생각하니, 거듭나야 한다는 말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거기 갇혀 니고데모는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고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이 그 말씀을 이루실 거라고 믿는 사람은…
신앙은 내가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선택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를 것인지, 육체의 욕구를 따를 것인지’ 마음에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발견하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떠올립니다. 
창세기에서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쌍둥이 동생으로 태어나 장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야곱이 ‘어떻게 복을 받지?’ 생각하다 형 에서가 사냥하러 갈 때 팥죽을 끓였습니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와 배가 고팠던 에서가 팥죽 냄새를 맡고 야곱에게 팥죽을 달라고 하자, 야곱이 그 값으로 장자의 명분을 팔라고 했습니다. 에서가 배가 너무 고파 장자의 명분을 팥죽과 맞바꾸었습니다. 야곱은 그만큼 복을 받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아버지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려 할 때,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에게 ‘네가 복을 받아라’ 하자 야곱은 자신이 털이 많은 에서와 달리 매끈매끈해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두렵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조건으로 복을 받으려고 하니까 부담스러웠습니다.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그 말씀을 이루실 거라고 믿는 사람은, 들은 말씀이 마음에 소망이 됩니다. 반대로 자신이 이루려고 하면 말씀이 마음에 부담이 됩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의롭게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 대부분 자신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목사님은 죄를 안 짓습니까?”라고 되묻습니다. ‘사람이 죄를 안 짓고 어떻게 살아?’ 하며 자기 안에 있으니까, 의롭게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기쁜 것이 아니라 화가 납니다. 

육체의 욕심을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성령의 인도를 따르면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우리가 육체의 욕망과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가면 육체를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일들을 하지 않으려고 해서 육체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 육체를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 17절에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라고 했습니다. 육체를 싫어하는 것이 성령이고, 성령을 싫어하는 것이 육체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살고 싶어도 우리 육체 안에 욕망이 있습니다. 그 욕망대로 살지 않으려고 우리가 육체와 싸우면 이기지 못합니다. 결국 넘어져 낙심하고 좌절하고 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육체와 싸워서 이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라고 합니다. 성령은 육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를 따르면 성령이 육체와 싸워 이긴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은 서로 대적하기 때문에 절대로 같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절대로 육체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신앙생활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않고 자신이 육체와 싸워서 이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결코 육체를 이길 수 없습니다. 성도는 각오하고 기도하고 마음을 돌이켜서 밝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육체의 소욕과 싸워 물리쳐 주십니다. ‘나는 안 돼, 나는 못 해’라고 하지 마십시오. 안되고 못해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성령을 따라가면 성령이 모든 것을 하십니다. 육체로 인하여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성령의 인도를 따르면 성령이 승리하게 이끌어 줍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소욕이 있는데 그것을 거절하고 육신을 쫓기 때문에 
성도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마음을 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성령을 따를 것인지 육체의 소욕을 따를 것인지 정하지 않기 때문에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기로 마음을 정하면 하나님이 그의 삶을 이끌고 주관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성령에게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소욕에 자신을 내줍니다. 육체를 따라 살면서 한쪽으로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자꾸 ‘나는 안 된다’는 말을 하게 됩니다. 
‘안 된다’는 말은 그리스도인이 하지 말아야 할 말입니다. 안 되거나 못 하는 이유는,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 자신이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다 자신이 하려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이제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 삶을 주관하고 이끄셔서 모든 싸움에서 이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롬 8:12)
우리가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 하나님이 성령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셔서,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게 하나님이 해놓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단지 성령을 따르면 이깁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않고 육체의 소욕을 따라갑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소욕이 있는데도 그것을 거절하고 육신을 좇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을 필요가 없다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사람은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니라.”(갈 5:18)
율법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하라고 합니다. “살인하지 마. 간음하지 마. 도둑질하지 마.” 성경에서 형제에게 욕하는 것이 살인한 것이고, 음욕을 품으면 간음한 것이며, 탐심을 품으면 도둑질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율법 아래 있으면, 우리가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따르면 성령이 육체의 소욕을 싫어하기 때문에 우리가 육신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우리가 율법 아래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갈 5:19~21)
육체를 따라가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교회에 있어도 육체를 따라가면 내일 방탕해집니다. 성령의 인도를 떠나면 세속적인 사람이 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 5:22~23)
이 열매들은 우리가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야 가능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려고 하면 위선자가 됩니다. 예수님이 누가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주고, 돈을 빌려 달라고 하면 받을 마음 없이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맺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어서, 예수님이 맺으신 열매를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제가 가끔 제 아내와 함께 해외로 전도 여행을 갑니다. 그때 제 아내는 너무 편합니다. 필요한 모든 일을 제가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공항으로 가는지, 비행기를 어떻게 갈아타야 하는지, 제 아내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만 따라다니면 됩니다. 저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안 그러면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그와 같습니다. 저는 죄를 많이 지었지만 죄가 없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그 중간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동안 예수님이 맺으신 열매가 우리 것이 되어서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사람이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하나님은 우리를 함께 못박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사탄에게 속아 십자가에 못박은 육체의 정과 욕심을 따라 삽니다.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육체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
신앙은 선택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를지 육체의 욕구를 따를지, 선택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르면 성령이 우리를 주관하고 이끌어 주십니다. 모든 문제를 성령이 해결해 주십니다. 사탄은 우리를 미혹해 넘어뜨리려고 육체의 정과 욕심을 따라 살려는 마음을 계속 불러일으킵니다. 감정이나 정욕을 일으키고 자존심이나 체면 같은 것들을 부추겨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에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죄와 싸우거나 육체의 소욕과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육체의 소욕을 이기게 해주십니다. 모든 성도의 마음에서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소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기 자신 때문에 신앙이 안된다거나 자신의 어떠함 때문에 믿음으로 살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지 성령의 인도를 따르면, 성령이 아름답고 복된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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