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하늘에서 이루어진 영원한 속죄
[설교] 하늘에서 이루어진 영원한 속죄
  • 글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2.07.02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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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호 기쁜소식
믿음에 이르는 길_레위기 제사 강해 제4권 6편

 

왜 땅에 성막을 짓게 하셨는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받아 내려왔을 때, 시내산에서 지낸 40일 동안 하늘나라에 있는 성전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하늘나라에 있는 성전을 모세에게 한 부분 한 부분 자세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 성전에 법궤가 있고, 향단이 있고, 떡상이 있고, 등대가 있고, 물두멍이 있고, 번제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가 본 모양 그대로 이 땅에 성막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출 25:8~9)
모세가 광야에서 성막을 만들었습니다. 구약 시대에 있었던 성막은 하늘에 있는 성전을 보고 그대로 만든 모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성막에서 양을 잡고 소를 잡아서 드리는 제사 또한 모형이었습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히 10:1)
성전은 두 개입니다. 하나는 하늘에 있고, 하나는 땅에 있습니다. 어느 것이 먼저 있었습니까? 하늘에 있는 성전입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성전에 부족함이 있었습니까? 온전합니다. 온전한 성전이 있는데 하나님은 왜 땅에 또 성막을 만들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죄를 씻는 것도 중요하지만, 죄에 눌려 있는 우리 마음을 죄에서 해방시키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이 보는 데에서 속죄제물로 죽으셔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 세월 동안 속죄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죄를 어떻게 사함 받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와서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죽으면 ‘아,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처럼 우리가 인간의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깨닫고 우리 마음이 죄에서 해방받길 원해 이 땅에 성막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하늘나라 성전에서 드려진 속죄제사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히 9:23)
여기에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 땅에 세워진 성막을 말하고, 이어 나오는 ‘이런 것들’은 양이나 염소나 송아지의 피를 가리킵니다. 그 뒤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하늘나라에 있는 성전을 가리킵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성전은 양이나 염소나 송아지의 피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다시 정리해 보면, 이 땅에 모형인 성막이 있고 거기서 드려진 제물은 양이나 염소나 송아지 등이었습니다. 하늘나라에는 참 성전이 있고, 거기서 드려지는 제물은 이 땅에서 드린 제물보다 더 좋은 제물이어야 합니다. 그 제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히 9:24)
하나님의 어린양인 예수 그리스도는 참 것의 그림자요 모형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시지 않았습니다. 참 하늘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속죄제물로 드려질 때, 예수님의 피가 이 땅에 있는 모형 성막에 뿌려진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있는 성전에 뿌려졌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우리를 이 땅에 영원히 있지는 않게 하려고 땅에 제한을 두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시간에 제한을 받고, 공간에 제한을 받습니다. 그처럼 제한이 있는 이 땅을 ‘시간 세계’ 곧 ‘시간계時間界’라고 부릅니다. 이 땅과 달리 하나님이 계신 곳은 영원한 곳입니다. 이 땅에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금도 변하고, 다이아몬드도 변합니다. 경주박물관에 가보면 신라 시대에 만들었던 금관이나 금 장신구들이 녹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금이 안 변한다는 것은 조금 덜 변한다는 것이지, 이 땅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변하는 것은 결국 사라져 가는 것입니다. 
땅과 달리 천국은 영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나라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 효력이 영원합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
예수님은 당신의 피를 가지고 하늘나라 성전에 올라가셨습니다. 그 성전 제단 뿔에 당신의 피를 바르시고, 속죄소에 당신의 피를 뿌리셨습니다. 이 땅에서 드리는 속죄제사는 효력이 유한하지만 하늘나라에서 드린 속죄제사는 효력이 영원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속죄제사를 두 번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드린 속죄제사가 영원한 제사가 아니었다면, 구약 시대의 양이나 염소처럼 예수님도 이 세상에서 자주 죽임을 당하는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고난을 당하시지 않습니다. 영원한 하늘나라 성전에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히 9:25~26)

영원한 속죄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
이 땅에서 드린 속죄제사와 예수님이 이루신 영원한 속죄에 대하여 조금 더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히 10:10~11)
구약 시대에 드린 속죄제사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지은 죄에만 효력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은 시간계로 시간의 제한을 받기 때문에, 오늘 드린 속죄제사가 내일 지을 죄까지 씻지는 못했습니다. 오늘 드린 속죄제사는 오늘 지은 죄를 씻고, 내일 짓는 죄는 내일 다시 속죄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서 드린 속죄제사는 사람을 언제든지 죄가 없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 10:12)
죄를 영원히 씻으려면 하늘나라에서 씻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의 피를 하늘나라 성전의 제단 뿔에 바르시고 속죄소에 뿌리셨습니다. 영원한 속죄가 아니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죄를 씻음 받아도 다시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속죄가 아니면, 우리가 죄를 지으면 다시 죄인이 되어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죄의 삯으로 멸망을 당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속죄는 영원한 속죄뿐입니다. 영원한 속죄 외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매일 죄를 씻는다 해도 또 죄를 짓기 때문에 다시 죄인이 되고, 그러면 결국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영원한 속죄가 이뤄져야만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원죄를 씻었고, 자범죄는 우리가 씻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지난 죄는 씻었지만 앞으로 짓는 죄는 우리가 씻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없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더러운 우리가 어떻게 죄를 씻습니까? 죄는 예수님이 씻어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씻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씻어 주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영원히 씻으셨습니다. 모든 죄가 영원히 씻어졌습니다. 그러니 죄를 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죄 문제를 마음에 짊어지고 고민하거나 고통하지 마십시오. 다만, 예수님이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사실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영원히 씻으셨다는 사실을 마음에 받아들이십시오. 이 믿음을 가지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예수님이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을 믿어 죄 사함을 받으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그 어떤 것도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십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 
구약 시대에 여러 속죄제사가 계속 드려졌습니다. 제사장들이 번제단에서 양을 잡고 염소를 잡고 소를 잡고, 그 피를 뿌렸습니다. 번제단에서 제물이 타는 연기가 구름처럼 올라갔고, 양이나 염소나 소의 피가 제단에서 강물처럼 흘러내렸습니다. 그 제사는 언제까지 계속됩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까지입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은 매일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제사는 지은 죄만 씻기 때문에 죄를 지을 때마다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매일 서서 섬겨야 했고, 자주 같은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번 제사를 드린 후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원수들이 예수님의 발등상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드리신 제사는 영원한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은 매일 서 있었지만 예수님은 앉아 계시고,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은 같은 제사를 자주 드려야 했지만 예수님은 다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8)
예수님은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에 그 효력이 영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서 흘리신 피의 능력은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앞으로 천 년이 더 흘러도, 만 년이 흘러도 그 능력은 영원히 계속됩니다.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우리가 죄를 지은 적이 있고, 씻은 적이 있습니다. 죄를 깨끗하게 씻으면 죄를 짓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죄를 안 지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눈보다 더 희게 씻었습니다.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라 성경이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되었다고 증거합니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
예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고, 영원히 온전케 하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아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온전케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온전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속죄제의 참된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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