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생각
[설교]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생각
  • 글 | 김종호(미얀마, 기쁜소식양곤교회 선교사)
  • 승인 2022.10.05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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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호 기쁜소식
CLF 강연 | 율법의 행위와 값없는 은혜_2강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유대에서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에 와서 ‘할례를 행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성도들을 가르쳤습니다. 정말 잘못된 가르침이지만, 당시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교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인간의 그럴 듯한 이야기에 휩쓸릴 수 있습니다. 마침 안디옥 교회에 사도 바울이 있어서 말씀에서 벗어난 잘못된 것과 싸워 교회를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로 조율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과 하나로 합하지 못하는 사람, 곧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롬 1:18) 
진리인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말씀을 가로막는 불의가 무엇입니까? 바로 인간의 생각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가로막은 나아만의 생각
열왕기하 5장에 나아만 장군이 나옵니다. 그가 문둥병에 걸려서 고통을 당하다가,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아온 계집종으로부터 ‘사마리아에 있는 엘리사 선지자에게 가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계집종이 아주 분명하게 말해 나아만도 자기 병이 나을 거라고 믿고, 선지자에게 줄 선물을 많이 챙긴 뒤 부푼 가슴을 안고 이스라엘로 떠납니다. 
나아만이 드디어 엘리사 선지자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얼굴도 보이지 않고, 그의 사환이 나와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낫는다’는 선지자의 말을 전했습니다. 나아만이 화가 났습니다. 엘리사가 아람(시리아)의 군대장관인 자신을 극진히 맞이하고, 정성을 쏟아 병을 고쳐 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단강에 가서 자기 종들이 보는 앞에서 옷을 벗고 문둥병에 걸린 모습을 다 드러내고 씻으라니…. 그리고 요단강에서 몸을 씻으면 문둥병이 낫는다는 것 자체도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요단강에서 씻는다고 병이 나아? 그럴 것 같으면 요단강보다 훨씬 깨끗한 우리나라 다메섹에 있는 강에서 씻으면 되겠다!’ 나아만이 화를 내면서 그냥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나아만이 아무도 고치지 못하는 문둥병에서 낫고 싶어서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 먼 길을 왔지만, 엘리사의 태도나 전해들은 말이 자기 마음에 맞지 않아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사환이 전해준 엘리사 선지자의 말씀을 따르면 병이 낫는데, 나아만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가로막았습니다. 그의 생각이 말씀을 밀어냈습니다. 그 생각이 부인되지 않으면 나아만은 결국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나아만이 자기 생각을 계속 고집했다면 그냥 다메섹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다행히 같이 온 종들이 옆에서 지켜보다가 ‘선지자가 어려운 일을 시켰어도 했을 텐데 요단강에 가서 씻는 것을 왜 못 하겠느냐?’고 권해, 자기 생각을 버리고 말씀대로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어 문둥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아하시야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일하길 원하시고, 은혜 베풀길 바라십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 삶을 새롭고 복되게 변화시켜주려 하십니다. 
열왕기하 1장에는 아하시야 왕이 나옵니다. 어느 날 아하시야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심하게 다쳤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니 마땅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나아가야 하는데, 아하시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신하들을 에그론으로 보내, 그곳 신 바알세붑에게 자신의 병이 나을지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아하시야가 그렇게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아합과 이세벨이었습니다. 바알을 섬긴 이세벨은 이스라엘에 바알 사당을 짓고 하나님의 종들을 죽인 악한 왕비였으며, 이세벨의 영향을 받은 아합 역시 아주 악한 왕이었습니다. 아하시야는 그런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을 싫어하고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등지고 사는 아하시야에게 은혜 베풀길 원하셨습니다. 다락 난간에서 떨어졌으면 팔이나 다리가 부러지는 정도여야 하는데, 고치기 힘들 정도로 심한 병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처럼 아하시야가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 하나님을 찾으면 은혜를 베풀어 병을 고쳐주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하시야는 자기 생각을 믿고 다시 하나님을 등졌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에그론으로 가는 아하시야의 신하들을 만나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라고 했습니다. 
아하시야처럼 저도 ‘나는 허물과 잘못이 많아서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며 도와주시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잘못된 생각에서 저를 벗어나게 해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1~32)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알지 못해 오랫동안 사탄이 넣어준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오자, 말씀이 나를 자유롭게 하고 내 삶을 자유롭게 했습니다. 

이미 상해서 쓸모가 없는, 인간의 상실한 마음
많은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싶고 변화를 받고 싶지만, 나아만처럼 자신이 생각한 대로 은혜를 입으려 하고 자기 방법대로 변화를 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을 가지고 말씀을 들으면 그 생각이 말씀을 밀어냅니다. 우리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죄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는 ‘핫타트’로, 원래 뜻은 ‘빗나가다, 과녁을 맞히지 못하다’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빗나간 마음, 하나님과 다른 마음이 죄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과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상태를 ‘상실한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 1:28)
상실했다는 것은, 음식이 원래 상태를 잃고 부패한 것처럼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마음이 본래 모습을 잃고 부패했다는 것입니다. 부패한 음식은 다시 요리하지 않고 버립니다. 음식으로서는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마음도 이미 상해서 쓸모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에서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인간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잘 모릅니다. 자기 마음이 괜찮은 줄 알고 쓸 만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을 믿고 자기 마음을 따라서 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생각은 우리가 믿을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 대상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가까이하고 성경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마음에 자리 잡습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이 저절로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 있어서 잘못된 우리 마음을 이겨주면 신앙생활이 아주 쉽습니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이 강하게 살아 일합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 말씀이 자기 마음을 이겨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속은 자기 자신이면서 겉만 하나님으로 덮은 것입니다. 겉모양은 하나님을 믿는데 속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도 믿고 하나님도 믿고,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 생각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사 55:7)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에는 우리 길과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믿는 것을 가장 방해하는 것이 내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씨앗을 밭에 심으면서부터 변화가 시작되듯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인간을 통해 당신의 형상이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을 등지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어, 본래 형상을 잃고 마음이 부패해 더 이상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처럼 죄에 물든 인간을 위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 우리를 구원하는 일을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거듭나서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피조물로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우리 안에서 성령으로 역사하십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 

우리가 자신의 뜻과 성품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이들이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렇게 사는 것이 참된 신앙생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말씀이 우리 안에 자리 잡을 때 이러한 삶이 이뤄집니다. 
그런데 혼자서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말씀을 믿는 길을 가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제가 가장 감사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 다음으로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종을 만난 것입니다. 전에 저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며 산 것이 아니라 ‘인간 김종호’로 살았습니다. 저를 통해서 예수님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김종호의 인격과 성품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종은 그런 저에게 끊임없이 믿음을 가르치고 제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 주었습니다. 
씨앗이 있어도 농부가 밭에 심지 않으면 싹이 날 수 없고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씨앗은 살아 있지만 창고 안에 보관된 채로 있을 것입니다. 농부가 그 씨앗을 들고 나와서 밭에 심으면서부터 변화가 시작됩니다. 성경에 보관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들이 우리 마음에 심길 때부터 우리 삶에 변화가 시작됩니다. 
우리가 참된 신앙생활을 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고, 참된 교회를 만나야 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좇아 일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 안에서 성령의 역사를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수고로 우리 마음에 말씀이 세워질 때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농부가 땅을 갈아 흙을 곱게 만든 뒤 씨앗을 심으면 놀라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싹이 올라오고, 그 싹이 자라서 열매를 맺어 농부가 수확의 기쁨을 누립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기면, 말씀이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우리 삶에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열매가 맺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우리 결심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를 경외케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시 119:38)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세워질 때, 그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게 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몰라서 ‘내가 하나님을 섬겨야지!’라는 각오와 결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합니다. 
창세기 1장에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땅은 인간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 4:6) 사람의 마음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에 덮여 있습니다. 땅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처럼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밝게 할 수 없고 행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서 땅이 변한 것처럼,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올 때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합니다. 마음에 말씀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신앙생활을 잘하려고 하는데, 인간은 능력이 없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예리하지 못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잘 몰라 이것저것 뒤섞인 채로 살아갑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면, 그 말씀이 말씀과 다른 것들을 예리하게 베어내어 죄악이나 어두운 세상을 이기게 하며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합니다. 말씀이 일하는 것, 이것이 참된 믿음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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