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값없이 의롭게 되는 길
[설교] 값없이 의롭게 되는 길
  • 글 | 김종호(미얀마, 기쁜소식양곤교회 선교사)
  • 승인 2022.12.16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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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호 기쁜소식
CLF 강연 | 율법의 행위와 값없는 은혜_4강(마지막 회)

 

우리는 ‘율법의 행위’와 ‘값없는 은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인간에게 행위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율법이 요구한 대로 살아서 의롭게 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로마서 3장 21절에서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율법대로 살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절망뿐인 인간에게 24절에서 놀라운 소망이…
로마서 3장 23절과 24절은 굉장히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23절은 인간의 행위에 대한 결론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천국에 갈 수 없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원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는 인간은 불쌍한 존재일 뿐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24절에서 절망뿐인 인간에게 놀라운 소망과 희망이 생깁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24절은 예수님이 이루신 구속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구속救贖이란, 죄 값을 지불하고 구원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지은 죄의 값을 예수님이 대신 지불하게 하셨습니다. 그 은혜로, 우리는 아무 값도 지불하지 않고 의롭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마지막으로 “다 이루었다!” 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죄 값을 다 지불해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는 일을 다 이루었다는 말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CLF에 참석한 목회자들이 팀별로 활동하고 있는데, 제가 팀장으로 있는 우리 팀은 어제 점심에 외식을 했습니다. CLF 진행부에서 점심값을 지원해 주겠다고 하여, 음식 값을 제가 카드로 결제했습니다. 저와 동행한 목사님들은 점심을 먹고 돈을 내지 않았습니다. 제가 다 계산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 값을 다 지불하셔서 우리가 지불해야 할 죄의 값이 없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서는 우리가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24절에서 대역전극이 일어나 우리가 의롭게 되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눅 16:16)
율법은 요한의 때까지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죄와 사망의 법으로, 율법 아래서는 누구나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죄의 삯인 사망을 당해야 합니다. 율법 아래서 죄 때문에 고통하고 심판 때문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인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은 존재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요한의 때까지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이후로는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천국으로 침입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구속은 인간에게 복음, 즉 한없이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일을 받아들인 사람은 천국에 들어갑니다. 천국에 가길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복음 쪽으로 침입하면 됩니다.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
신앙생활은 우리가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
하나님이 우리에게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값을 이미 다 지불했으니 그냥 가져가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사 55:3)
우리가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우리 영혼이 삽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영원한 언약으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인의 영역에 있느냐, 의인의 영역에 있느냐?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인의 영역에 있으면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힘들고 어렵습니다. 죄인의 영역인 로마서 3장 23절에서 의인의 영역인 24절로 넘어와야 신앙생활을 비로소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23절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은 죄인인 것이 맞고, 죄 때문에 괴로워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성경의 한 부분만 믿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있는 24절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일을 마음에 받아들여서 천국으로 침입해야 합니다. 
침입할 때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 없이 값없이 사서 자기 것으로 취하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은혜의 세계입니다. 이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안타깝게 지금도 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로마서 3장 24절로 침입하지 않아서입니다. 24절에 들어가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속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게 됩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려고 애써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값없이 의롭게 되었지만, 우리 죄를 씻기 위해 예수님이 대가를 지불하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경건치 않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은혜의 길
로마서 4장은 율법이 있기 전에 살았던 아브라함이 어떻게 의를 얻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롬 4:2~3)
아브라함이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기근이 찾아오자 애굽으로 도망갔고, 그곳에서 아내를 동생이라고 속였다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경건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경건하게 살아서 의롭게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롬 4:4)
일한 사람에게는 그 삯이 은혜가 아니라 빚입니다. 마땅히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살아서 의롭게 된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마땅히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을 하지 않고 경건치도 않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은혜의 길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를 보고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5)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 죄가 다 씻어져서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 모든 죄가 씻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서 나타났고, 십자가에서 우리 모든 죄가 끝났습니다. 이제 율법의 행위에 머물러 있지 말고, 행위에서 벗어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없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서, 유대의 율법주의자들은 안디옥 교회까지 찾아와서 예수님을 믿은 성도들에게 할례를 행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기 전에 의를 얻었습니다.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그런즉 이를 어떻게 여기셨느뇨?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롬 4:9~10)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것은 창세기 17장에서이고, 의를 얻은 것은 15장에서입니다. 아브라함은 할례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무엇을 행해서가 아니고, 율법을 지켜서도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이야기하는 로마서 4장은 이렇게 마칩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예수님은 우리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장사되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로마서 4장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예수을 믿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그냥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셨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알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에 대한 벌을 받으셨습니다. 우리 죄에 대한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 죄에 대한 대가가 다 지불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우리 죄에 대한 심판이 끝나 우리가 의롭게 되었음을 확증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짓고 3년 형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수감되면 그곳에서 3년 동안 지내야 합니다. 3년이 지나면 교도소에서 나옵니다. 죄 값을 다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처럼 예수님이 우리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해 죽음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죄 값이 다 지불되어서 더 이상 죽음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나오신 것은 우리 죄가 완전히 해결되어서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죄가 하나라도 남아 있다면, 그 값을 지불하기 전까지는 예수님이 부활하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우리 죄가 다 끝이 났으며, 우리를 죄와 상관없는 자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는데 죄가 남아 있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셨는데 죄가 남아 있다고 말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죄를 씻으신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영원히 해결하셔서 우리를 영원히 의롭게 하셨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 10:12)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


세상 죄를 지고 간 하나님의 어린양
이사야 53장 6절은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먼저 인간이 어떻게 행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사람은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다고 했습니다. 탕자처럼 제 길로 가서 멋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많이 지은 죄인이었습니다. 심판을 받아야 할 존재였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성적표입니다. 그 결과는 저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은 죄의 책임을 우리에게 묻지 않고, 우리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담당시키셨다고 했습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죄는 우리가 짓고, 그 책임은 예수님이 지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 전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책임지기 위해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우리 죄를 그 몸에 짊어지고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우리 죄의 값을 다 지불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가 해결되어서 다시는 죄를 씻기 위해 속죄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8)
우리가 이 복음을 들었고, 또한 믿었습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으니”(엡 1:13)
신앙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다 씻으신 것을 듣고 믿는 것입니다. 그때 약속하신 대로 성령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서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확증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으십시오. 십자가에서 세상 죄가 끝났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자신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지 말고 성경 말씀대로 믿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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