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는 선한(?) 사람들
[설교]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는 선한(?) 사람들
  • 글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3.01.18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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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호 기쁜소식
믿음에 이르는 길_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6편

 

성경에 많은 인물들이 나옵니다. 노아, 아브라함, 야곱, 다윗, 베드로, 바울…. 어떤 사람은 짤막하게 나오고 어떤 사람은 길게 나옵니다. 성경은 여러 인물들을 통해서 우리 마음의 모양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는 나아만 장군처럼 자기 생각이 강한 사람도 있고, 38년 된 병자처럼 마음이 다 무너진 사람도 있습니다. 또 떡을 얻어먹으려고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사람들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빗물이 낮은 데로 흘러가 내를 만나고, 냇물을 따라 흘러가 강을 만나고, 강을 지나 바다로 갑니다. 그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흘러가는 길이 있어서 그 길을 따라 흘러갑니다. 성경에는 사람들의 마음 모양이 자세히 그려져 있으며, 각기 다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길로 흘러가는지도 정확히 그려져 있습니다. 

마음에 선한 것이 쌓여 있는 바리새인들
마태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서 먹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만난 사람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 부류는 예수님을 판단하고 대적한 사람들이고, 한 부류는 예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판단하고 헐뜯고 시험한 서기관이나 율법사, 바리새인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그들은 ‘내가 금식했다, 언제나 십일조를 드렸다, 선을 행했다’ 등등 내세울 것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죄가 없었습니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마음에 선한 것이 쌓여 있었습니다.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니까 남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서 어떤 일을 할 때가 있습니다. 예배당을 건축할 때 전세금을 빼서 헌금하고 사글세로 바꾸었는데 예배당이 잘 지어지면, 자신이 거기에 기여했다는 마음이 듭니다. 불쌍한 사람이나 고아를 도운 사람도 있고, 40일 금식기도를 하거나 교회에서 봉사를 많이 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것들이 마음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잘못한 일들은 기억나지 않아도 남을 도왔거나 자신이 희생한 일 등은 마음에 오래도록 깊이 남아 있습니다. 
사람은 다 죄를 짓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더러운 죄인으로 서면 은혜를 입기 쉽습니다. 그런데 죄인인데 선한 사람이 되면 은혜를 입기 아주 어렵습니다. ‘내가 죄인이긴 하지만 불쌍한 사람들을 많이 도왔어.’ ‘난 죄인이긴 하지만 금식기도를 오래 하고 봉사, 전도, 헌금도 많이 했어.’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힘들어 신앙생활이 아주 어렵습니다. 

선한 죄인, 충성된 죄인, 정직한 죄인…
요한복음 9장에 눈먼 소경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침으로 진흙을 이긴 뒤 그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누가 침으로 진흙을 이긴 뒤 자기 눈에 바르려고 하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왜 이래요? 누군데 내 눈에 그런 걸 붙여요? 저리 가요!” 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소경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면서 마음이 보통 사람들보다 아주 낮아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소경의 눈에 진흙을 바른 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소경은 실로암 못이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연못에 갔다가 물에 빠지면 난감하기 때문에 소경은 물가에 가는 것을 겁냅니다. 그런데도 소경은 예수님 말씀대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었습니다. 
이야기의 방향을 조금 바꾸어 보겠습니다. 아람 나라의 장군 나아만은 군대장관이지만 문둥병자였습니다. 그가 문둥병을 고치러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 이스라엘로 갔습니다. 병이 나으면 사례하려고 많은 금과 은과 의복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는 병이 낫는 것에 걸맞는 대가를 지불하고 병을 고치고 싶었지, 은혜를 입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나아만의 그 교만한 마음에 함께할 수 없기 때문에 종을 시켜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하면 몸이 깨끗해진다’고 전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소경 같으면 “요단강에 일곱 번 목욕하면 됩니까? 일곱 번! 나, 갑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신나게 요단강으로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화를 버럭 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생각엔, 선지자가 내게로 나아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내 몸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에 있는 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병자도 급수가 있습니다. 나아만은 문둥병자지만 군대장관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세상에서는 군대장관이 금과 은과 옷을 주며 문둥병을 고치라고 하면 최선을 다해 고쳐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은혜를 입는 길밖에 없습니다. 
문둥병자지만 군대장관인 나아만, 이런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입니다. 죄인이면 그냥 죄인이어야 하는데 어떤 사람은 착한 죄인입니다. 선을 행한 죄인, 봉사를 많이 한 죄인, 구제를 많이 한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값 없이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죄인이 되면 은혜를 받기가 정말 쉽습니다. 반대로 죄인인데 선한 것이나 잘한 것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힘듭니다. 자신의 선함이나 잘함 때문에 말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은혜를 입고 복을 받은 사람들은 문둥병자, 38년 된 병자, 소경, 간음하다 잡힌 여자, 사마리아 여자…였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병이 있거나 죄가 있거나 문제가 있는데 해결할 길이 없었습니다. 죄만 있고 문제만 있고 병만 있는 사람이 되면, 예수님께 은혜를 입을 마음의 자세가 형성됩니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율법사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도 죄가 있었지만 자신이 선하다는 것도 마음에 가지고 있어서 은혜를 입을 마음이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판단하고 대적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서기관이나 바리새인 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선한 죄인, 충성된 죄인, 정직한 죄인…. 이런 사람은 죄인도 아니고 의인도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죄를 해결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 선을 행하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 말대로 하면 할수록 더 선한 죄인이 되고, 마음이 더 높아집니다. 그런 사람은 소경이나 38년 된 병자나 간음하다 잡힌 여자가 가졌던 마음을 절대로 갖지 못합니다. 
구원받은 성도에게도 자신이 잘했다는 마음이 종종 올라옵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자신이 잘했다는 마음 갖는 것을 정말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자신이 잘했다는 마음을 가지면 어려운 문제를 만납니다. 하나님이 ‘네가 잘하면 이것도 해결해 봐라’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처음에는 자신이 잘한다는 마음을 자주 갖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이 그것을 몹시 싫어하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 내가 잘했다’는 마음이 들면 깜짝 놀라 ‘하나님, 아닙니다! 죄만 짓던 제가 뭘 잘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고 당장 돌이킵니다. 
하나님은 교만을 왜 그토록 싫어하십니까? 잘난 것을 왜 싫어하십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부족한 사람들이 입기 때문입니다. 교만하고 잘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잘나서 예수님이 시들하게 보이기 때문에
죄인이라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고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울면서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드뭅니다. 죄인이면서도 점잖게, 교양 있게 지냅니다. 죄인은 죄인인데 선한 죄인, 잘난 죄인, 똑똑한 죄인이 된 것입니다. 죄를 지어도 ‘나만 이러나? 다른 교인들도 다 이렇게 사는데….’ 하고 죄에 대하여 점점 무감각해집니다. 죄를 깨우쳐 주려고 해도 마음이 높으니까 관심이 없습니다. 죄인이라고 지적해 주면 불쾌해하고 화를 냅니다. 
선한 죄인은 안 됩니다. 더럽고 악한 죄인,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죄인, 그런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자처럼 말할 것도 없이 죄인인 사람, 잘나도 아무 소용이 없고 이제 곧 죽임을 당할 사람에게 예수님이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38년 된 병자처럼 오랜 병치레로 마음이 다 무너진 사람이 예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멸시하고 헐뜯고 대적했습니다. 
마태복음 12장에서 서기관들이 예수님에게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나오는 한 편 손 마른 사람 이야기에서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송사하려고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죄인인데 은혜를 입고 죄를사함 받으려고 예수님에게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헐뜯고 대적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일하시는 것을 분명히 보았는데도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흠을 찾고 비난할 조건을 찾았습니다. 자신들이 잘나서 예수님이 시들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고상하고 멋있는 메시아를 원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각에 맞지 않는 예수님을 대적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똑같습니다. 지금도 교회에 잘난 죄인, 똑똑한 죄인, 고상한 죄인, 선한 죄인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처럼 자신이 무엇을 했기 때문에 하늘의 복을 받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죄인은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잊고 ‘나는 잘했으니까 하늘나라에 갈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가졌던 생각이 틀렸던 것처럼, 그 생각은 틀렸습니다. 

하나님, 더러운 이 마음을 깨끗이 씻고 싶습니다
사탄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듭니다. 그리고 죄에서 구원받지 못하게 하려고 사람들을 잘난 죄인으로 만듭니다. 죄인인데 선하고, 똑똑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사탄에게 속아 마음을 높여서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죄가 있으면 어떤 선한 일, 어떤 아름다운 일, 어떤 희생적인 일을 했어도 지옥행입니다. 
‘하나님, 내 마음이 더럽습니다. 속에서 늘 악한 마음이 솟아납니다. 이 마음을 깨끗이 씻고 싶습니다. 진정으로 죄를 씻음 받고 싶습니다. 거듭나기를 원합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긍휼을 베풀어주십시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죄 사함의 말씀을 들으면 모든 죄를 벗고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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