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잔치에 오소서
[라이프]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잔치에 오소서
  • 글 | 이상육, 노윤선 (기쁜소식광주교회)
  • 승인 2023.01.25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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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호 기쁜소식
성도 간증 | 예배당을 건축하며 _기쁜소식광주교회

지난해 2월 예배당 건축을 시작한 기쁜소식광주교회가 11월 20일에 준공식을 가졌다. 예배당을 지으며 약속의 말씀이 일하는 세계를 경험한 이상육 장로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배운 노윤선 자매의 간증을 만나본다.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잔치에 오소서

글 | 이상육(기쁜소식광주교회)

처음에 광주선교센터를 건축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광주 지역에 있었던 3개 교회(송정, 제일, 은혜 교회)가 통합되어 같이 건축하니까 적당히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현장 관리 담당자로 세워지자 건축이 마음에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건축 현장을 관리하려면 다른 일을 할 수 없고 교회 건축에만 전념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정을 돌보는 일이나 경제적인 부분에 어려움이 많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갈등하고 있을 때, 박옥수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다. “사울은 자기가 자신을 지키려고 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했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고 사는 동안 하나님이 모든 것을 도우셨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내 삶에 필요한 것들을 해결해 주시겠구나.’ 하며 나의 일을 접고 전폭적으로 교회 건축 현장 일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가장 좋은 곳을 주셨다
건축을 시작하면서 김기성 목사님은 임금님의 혼인 잔치 말씀을 전해주셨다. “성경에서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오소서 하라.’(마 22:4)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어 놓고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건축을 하든 무엇을 하든 모든 것을 완벽히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나도 ‘건축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셨다’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예배당 부지를 구입하면서 960-3번지 땅은 주인을 몰라 수소문 끝에 사위 전화번호를 알았는데, 주인의 딸이 전화를 받고는 ‘땅을 팔 생각 없으니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며 냉정히 끊었다. 며칠 후 전화했을 때에도 단호히 거절했지만, 사위가 전화해 자신이 중재하겠다고 하여 그 땅을 살 수 있었다. 960-1번지에 살던 할머니도 죽기 전에는 팔지 않겠다고 했다가 마음이 바뀌어 땅을 살 수 있었다. 그 두 필지가 그때까지 예배 장소로 사용했던 곳 바로 옆에 있어서, 예배 장소로 사용했던 곳에 자재를 쌓아둘 수 있어서 작업하기 수월했다. 처음에 사려고 했던 땅은 두 블럭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주인이 땅값을 올리는 바람에 그렇게 새 부지를 매입한 것이었다. 사고 나서 보니 하나님이 가장 좋은 곳을 주셨다는 마음이 들었다.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하나님이 도우셨다
내가 맡은 일은 각 공정에 문제가 없도록 하고, 자재를 관리하고 조달하는 일이었다. 건축할 때 자재를 조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자재상과의 거리가 중요하다. 감사하게도 몇몇 자재를 제외하고는 자재상이 차로 15분 거리 안에 있어서 수월했다. 
그리고 철근 기술자가 없었는데, 한 사장님이 오셔서 봉사하러 온 자매님들을 데리고 공정에 차질이 없도록 철근 작업을 해주셨다. 2월에 공사를 시작해 날씨가 추웠지만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할 때면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서 양생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벽돌을 쌓을 때에는 적벽돌 5만 장, 시멘트 벽돌 4천 장, 시멘트 250포, 모래 75톤을 2층과 3층에 올려야 했다. 그때 하이랜더라는 장비를 알게 되어 반나절 만에 올렸을 뿐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위치에 자재들을 배치할 수 있었다. 가격도 80만 원에 처리되어 손쉽게 일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자재가 조달되지 않아서, 장비가 제시간에 오지 않아서, 다른 문제가 있어서 공사가 멈춰진 적이 없었다. 장마철에도 우리가 일하는 시간을 피해 밤늦게 또는 새벽에 비가 내려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하나님이 도우셨다. 또한 처음 만난 업체가 계약금도 받지 않고 공사를 마무리하기까지 일해 주었다. 아직 대금을 다 주지 못해서 한 번씩 업체들에서 전화가 오지만 이야기하면 기다려 주시는 것이 감사하다. 
세 개의 교회가 합해 건축하면서 처음에는 서로 서먹하기도 했는데 같이 일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며 마음이 하나가 되어가는 것이 참 좋았다. 낮에는 자매들이 주로 일하고 저녁이면 형제들이 퇴근한 후에 와서 온 마음으로 같이 일하면서 교회가 건축되는 것이 아름다웠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복만 주시는 분이다
우리집은 어머님, 아내, 딸과 아들 둘 모두 여섯 식구다. 지난해에 막내아들이 링컨중학교에 입학했고, 어머님은 6월에 소천하셨고, 큰딸은 8월에 결혼하는 일들이 있었다. 하나님은 내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주셨고, 하나님이 나를 복되게 하셨다. 건축하는 동안 교회에서도 돈을 주었지만 정부에서도 많은 보조금이 나와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어머님은 2022년 4월부터 음식을 삼키지 못하고 물만 드셔서 아내가 어머님을 수발했다. 어머님은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셨고, 자주 “내가 지금 하나님께 가고 싶다.” 하셨는데, 괴로워서가 아니고 그곳이 너무 좋아서 하시는 말씀이었다. 전에는 뼈 마디마디가 아파서 잠을 못 주무셨는데 두 달 동안은 통증 없이 너무 평안히 지내셨고, “내가 살아 보니 복음밖에 없더라.”라고 한 번씩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돈과 시간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복음을 위해 드리셨다. 
돌아가시기 3일 전, 어머니는 복통으로 병원에 가셨다. 위천공으로 복막염 판정을 받으셨는데, 수술할 수 없는 상태셔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니 “다 이루었다. 하나님이 새롭게 하셨다.”라고 말씀하셨다. 더 듣고 싶어서 나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없냐고 여쭈니, “너는 알잖아. 네 형이나 누나 가족 모두에게 ‘다 이루었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하셨다. 우리 아이들이나 나에게는 “복음을 위해 살아라.” 말씀하시고 소천하셨다. 하나님 앞에 너무 감사했다. 
가족들이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마음을 다 열었고, 어머니를 하나님이 붙들고 계셨다며 감사해했다. 장례를 마치고 가족들이 우리에게 고생했다며 돈을 줬는데 약 2,000만 원이 되었다. 그때 큰딸 결혼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겠다 싶어서 그 돈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달이 안되어서 딸이 손명오 선교사와 선을 보았다. 그리고 8월에 결혼해 중남미 니카라과로 선교를 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한 부분 한 부분 준비해주시고 또 복음을 위해 살아갈 수 있게 하시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복만 주시는 분이다.

소망 가운데로 내 마음을 옮기게 하셨다
얼마 전에 한 형제님이 나에게 물었다. “건축하는 동안 가장 어려웠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그때 어떻게 넘어갔습니까?” 내 마음을 더듬어 보았다. 건축하는 동안 어려움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일은 많았고 바빴다. 어느 정도 바빴는지 이야기하자면, 큰딸의 결혼 날짜가 잡혔는데 그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딸이 결혼하는구나.’ 하는 것 이상으로 마음이 가질 않았다. 건축 현장에 일이 많아서 내 마음은 건축 현장을 담고 있어야 했다.
하나님이 내 마음 안에 당신을 향한 소망을 주셔서, 문제나 어려움이 찾아오거나 부족한 내 모습이 보일 때면 마음이 그곳에 머물게 하지 않고 하나님이 일하실 것에 대한 소망 가운데로 마음을 옮기게 하셨다.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오소서.” 하라고 하신 것처럼, 내 마음이 하나님께로 옮겨져 그곳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이 갖추어 놓은 일들을 펼쳐가시는 것을 보며 너무 감사했다. 전에는 힘들고 ‘어렵다’는 단어를 마음에 품고 살았는데 지금은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어렵다는 단어를 지워버리셨다.
앞으로 광주 선교센터를 통해 하나님이 복음의 지경을 넓혀가실 텐데,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복음의 일들을 위해 달려갈 수 있도록 이끄신 것을 생각하면 소망이 넘친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르쳐 주시려고

글 | 노윤선

나는 공사 현장에 매일 출근하는 상시조에서 목공팀, 설비팀과 함께했다. 현장에서 접한 모든 일이 나에게는 낯설었고, 다뤄야 하는 장비나 도구들도 위험한 물건이었다. 처음 들어본 용어들이 많아서 익숙해질 때까지 메모하고 녹음하고 영상을 찍어 외우고 공부도 했다. 
‘현장 봉사가 처음이니까 쉬운 일부터 시키겠지?’라는 내 생각과 다르게 현장 분위기는 완전히 스파르타식 그 자체였다. “반장님, 이거 못 하겠는데요. 너무 어려워요!”라고 말하면 “못한다는 생각은 오늘부터 지우세요. 현장에서 ‘못 한다’는 없습니다!”라고 하셨다. 무슨 일이든지 다 해내야 하는 상황들이 너무 힘들어 화장실에서 남몰래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일하는 방법을 잘 몰라 많이 다치기도 했다. 망치질을 하다 손을 때려 손톱이 빠질 뻔도 했고, 무거운 걸 들다 발목 인대를 다쳐 다리에 깁스를 하기도 했다. 여름에는 땀띠로, 추운 날엔 손발 동상으로 고생하면서 몸이 성한 날이 없었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집안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어린아이들까지 돌보느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쉽지 않았다. 신경이 예민해지자 남편과 사소한 걸로 다투고, 아이들이 그런 모습을 보면서 불안해했다. 부부 사이에 골이 깊어져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을 목사님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광주의 세 교회가 통합되면서 교회 분위기가 어수선해 목사님에게 찾아간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혼자 ‘내가 왜 이렇게까지 어려움을 감당하면서 현장에서 일해야 하지? 대가를 받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이 시간에 나에게 투자라도 하면 남는 거라도 있지.’라고 생각했다. 마치 나의 한계를 테스트하듯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내 능력 인정받으면서 돈 벌 수 있는데 왜 봉사하고 있지? 그래, 내일은 정말 안 나갈 거야!’라고 굳게 다짐하고 휴대전화도 꺼놓고 잠이 들지만, 다음 날 아침에 습관처럼 현장에 갈 준비를 하고 있는 내가 내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왜! 왜? 왜?’라고 물어도 답을 못 찾았다.

최고로 행복한 현장에 오세요
김기성 목사님은 매일 “행복한 현장에 모두가 함께해 주세요”라고 문자를 올리셨지만, 나는 ‘목사님은 지금 거짓말하고 계셔! 행복은 무슨 행복? 이렇게 힘든데 무슨 행복이야?’ 하며 믿지 않았다. 오히려 목사님을 향해 더 불신을 갖게 됐다. 몇 개월이 지나 현장 공사가 어느덧 마무리 시점에 있을 때 처음으로 김 목사님의 말씀이 들렸다. 목사님은 “세상 사람들은 보인 대로 말하는 것을 정직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보이는 대로 말하는 것을 대적자라고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럼 나는?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말하고 있지?’라는 질문 또한 처음으로 하게 됐다. ‘이래서 안 되구요! 이래서 힘들어요! 안 되고 힘든 게 사실이었지만 보이는 대로 말하는 게 대적자라고?’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난 단 한번도 나를 대적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목사님의 설교 말씀에는 내가 본 대로 말하는 걸 대적자라고 하셨다. 나는 내 말이 맞다는 걸 정말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내가 본 걸 주장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나’라는 정체가 조금씩 보였다. 김 목사님이 “행복한 현장에 오세요”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 일을 하나님이 돕고 계시고, 그래서 이 일은 잘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목사님은 믿으셨기 때문이다. 보이는 형편이 아니라 믿음의 세계를 우리에게 매일 말씀해 주셨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됐다.

하나님을 믿지 못한 사람이었다
이번 일을 통해 나의 근본 악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나의 근본은 죄를 짓는 것밖에 없음을 보았다.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불쌍한 사람은 자기 눈을 갖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늘 불평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눈을 바꿔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대적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내리려고 이미 계획하셨고, 하나님이 내리신 축복을 우리가 돌이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내리신 것이 사실이니 자신이 본 것을 말하지 마십시오.”
나는 내가 볼 때 안 되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행복해야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미 이루어진 세계를 믿지 못했다. 어려운 것만 보았지 그 일을 통해 일하실 하나님은 믿지 못했다. 몸이 아플 때에도, 부부 사이가 안 좋을 때에도 난 어려워하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지,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으로 이루실 걸 믿지 않았다. 늘 잘하려는 생각이 앞섰고, 내가 무언가 해보려 하니 힘들었던 거였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데 ‘안 됩니다, 못 합니다’라고 말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나는 교회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사탄의 속임수에 속고 있었다. 교회는 나보고 무엇을 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는 자리에서 함께 영광을 누리자고 했는데, 나는 잘하고 싶은 마음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 마음이 바뀌니 어려운 형편들이 하나하나 풀리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것도 행복으로 찾아오고, 남편의 도움으로 가정의 평화도 되찾고, 아이들의 웃음도 되찾았다. 남편은 건축이 마무리될 때까지 최고의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걸 준비해두셨다. 
하나님이 내 마음을 매인 곳에서 풀어 자유케 하려고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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