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감사하며
[라이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감사하며
  • 글 | 김성원(기쁜소식강남교회)
  • 승인 2023.01.2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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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호 기쁜소식
보배와 질그릇

장로교단에서 열정적으로 목회하신 아버지 아래서 율법에 매여 50여 년간 신앙생활하던 나인데,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 안에서 나와 가족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다. 우리 가족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삼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님은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에 폐결핵을 앓으면서 가족과 격리되어 입원해 있는 동안 많은 환자들이 주검이 되어 실려 나가는 것을 보며 ‘병이 나으면 목회자가 되겠다’고 서원기도를 하셨다. 병에서 완치된 후 아버님은 교사를 그만두고 부산의 신학교에 입학하셨다. 부산에서 열정적으로 목회를 시작하신 아버님은 수년 후 서울에서 목회하다가 교회를 개척하셨는데, 이후에 등록 교인이 2만여 명인, 장로교단에서도 몇 번째 순위에 드는 초대형교회가 되었다. 

‘이렇게 기도하면 정말 죄가 없어질까?’
아버님이 목회하시는 것을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신앙생활은 열심히 해야 하는 거구나’ 하는 마음을 가졌고, 노력도 많이 했다. 하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 어려웠다. 특히 새해가 되면 ‘올해는 새벽기도를 빠지지 말아야겠다. 한 달에 한 번 성경을 완독하겠다.’라는 식으로 작심했지만 그런 각오가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삶을 살았다. 
아버님은 자주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으로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려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아서 천국에 간다.”라고 설교하시면서도, 요한일서 1장 9절 말씀으로 “우리는 매일 죄를 짓기 때문에 죄를 용서받기 위한 기도를 계속해야 한다.”라고 가르치셨다. 어릴 때부터 그런 기도를 정말 많이 했는데, 20대가 되고 30대가 되고 40대가 되자 ‘이렇게 기도하면 정말 죄가 없어질까? 예배 시간에 수천 명이 한꺼번에 일주일 간 지은 죄를 고백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이 어떻게 일일이 들어보고 용서해주시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혹시 죄를 짓고도 회개기도를 못 하면 지옥에 갈까봐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를 모두 용서해 달라’는 기도도 많이 했다. 요한일서 1장 9절이 죄를 해결해서 평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문제만 증폭시켰다. 
그러나 내 마음에서 풀리지 않는 이러한 신앙적인 문제를 꺼내놓고 얘기할 수가 없었다.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면 ‘믿음이 없다. 담임목사 아들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가 있나?’ 하는 비난을 받을 것이 분명했고, 아버님께도 폐를 끼치게 될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그래! 회개기도 하면 죄를 용서하신다고 했으니 그냥 마음대로 죄를 짓자! 교회 가서 회개기도 하면 되잖아!’ 그렇게 생각하니까 편리했다. 언젠가부터는 그런 마음으로 살았다. ‘목사 아들이 이렇게 신앙생활을 해도 되나?’라는 생각을 수없이 많이 했지만, 꼬박꼬박 십일조 잘 내고 교회에서 맡긴 부서의 책임자로 나름으로 일을 잘했기 때문에 아버님은 나의 신앙이 어떠한지 한 번도 물어보거나 간섭하지 않으셨다. 또한, 교회 안에 다른 목회자들이 수십 명이 있었고 장로들도 백 명 이상 있었지만, 그 어떤 분도 나의 신앙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교회와 집이 있는 곳에 치과의원을 개원하여 운영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상관없이 편리한 삶을 살았다. 

어떻게 해서든 문제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그렇게 살던 내게 어려운 일들이 찾아왔다. 2011년 무렵이었다. 둘째 아들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여러 일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아버님은 은퇴를 수년 앞둔 시점에서 교회에 생긴 어려운 일들 때문에 파킨슨병에 이어서 언어장애가 생겨 설교뿐 아니라 통상적인 목회 활동을 전혀 하실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어려움이 없었던 병원 운영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해결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아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갔다. 어려움을 모르고 살던 내게 해결이 안 되는 일들이 한꺼번에 터지자 밥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 소화도 되지 않았다. 어디에도 빠져나갈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문제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당시 기쁜소식강남교회에 다니는 자매님이 우리 병원에서 실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내가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다가 기쁜소식강남교회의 목사님에게 상담을 받아보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처음에는 ‘우리 교회에도 목사님이 수십 명이 있는데, 왜 내가 다른 교회의 목사님을 만나서 상담을 받는단 말인가?’ 하며 무시했다. 더욱이 실장님은 전부터 내게 자주 의료봉사도 소개하고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에도 초청했는데, 장로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기쁜소식선교회를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부해왔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한편 마음에서는, 평소에 실장님과 이야기하다 보면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반드시 그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서 매번 말씀으로 해결받는 것을 보면서 나와는 너무나 다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신선하고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말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그렇게 사는 게 참된 그리스도인이겠다’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다 보니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앞에 놓이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님을 만나기로 했다.

“이 아들이 효자입니다!”
처음 목사님을 만났을 때에는 병원에 초청해 병원 운영의 어려움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목사님은 상담해주시며 케냐에 의료봉사를 갔다 오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두 번째 만날 때에는 둘째 아이의 진로를 상담하고 싶어 아이를 데리고 아내와 교회로 찾아갔는데, 목사님은 긴긴 말씀 끝에,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강렬한 한마디를 하셨다. 
“이 아들이 효자입니다.” 
‘예? 뭐라고요? 얘가 효자라고요?’ 너무 당황스러웠다. 아이 진로 이야기는 전혀 안 하시고, 장로교회에서 20분 정도의 설교를 듣던 내게 1시간 이상 설교하신 것도 이해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은 둘째 아이의 표정을 보면서 좌불안석인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해결되는 일들이 하나도 없었지만, 목사님의 권유는 따라야겠다는 마음에 2011년 여름, 둘째 아이와 함께 아프리카로 의료봉사를 하러 갔다. ‘열악한 곳에 가면 아들이 뭔가 느끼는 게 있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갔는데, 아프리카에서의 아들 모습도 실망스러웠고, 돌아와서는 공항에서 바로 가출해서 몇 달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혹을 떼려다가 더 붙인 격이었다. 마음이 더 답답하고 어려웠다.

그날, 가장 풀리지 않던 문제가 해결되었다
케냐 의료봉사를 다녀온 지 2주 만에 다시 아이티로 의료봉사를 가는 것을 두고 다시 강남교회 목사님에게 상의하러 갔다. 목사님은 로마서 7장 15절~21절 말씀으로 교제해주셨다. 그날은 목사님의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 
아이티와 도미니카 의료봉사 후 9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는 목사님이 아내와 함께 오라고 하셔서 아내를 억지로 데리고 찾아뵈었다. 그날 목사님이 다시 로마서 7장으로 복음을 전해주셨다. 아내는 케냐 의료봉사를 다녀온 둘째 아이가 오히려 가출해버린 일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날 나는 마음에서 가장 풀리지 않던 문제가 해결되면서 죄에서 벗어나는 큰 은혜를 입었다. 로마서 7장 15절에서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라고 알려주는 것을 모르고, 줄곧 둘째 아들에게 “너는 도대체 왜 그러니? 네 친구들은 공부가 좋고 즐거워서 교실에 앉아있는 것 같니? 그냥 참는 거야! 그것도 공부야! 세상에 쉬운 건 없는 거야!” 하며 아이를 몰아세웠다. 그러면 아들이 늘 하던 말은 “아빠, 나도 참아보려고 애를 쓴단 말이야. 수업 끝날 때까지 자리에 앉아있어 보려고 노력한단 말이야. 그런데 안 되는 걸 어떻게 해!”였다. 이러한 사실이 성경에 이미 다 적혀 있었다는 것과, 아들이 본인의 의지로 말썽을 부린 게 아니고 마음에 죄가 들어와서 어쩔 수 없이 끌려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로마서 7장 20절에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라고 적혀 있는데 그것을 모르는 나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아이를 윽박질렀던 것이다. 그날 목사님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먹으면서 사람에게 죄가 들어왔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는 죄에 맞설 수 없고 끌려갈 수밖에 없으며, 죄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예수님밖에 없다.”라고 교제해주셨다. 
아이를 끌고 가는 죄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 죄가 아이뿐 아니라 나도 지금까지 죄의 길로 끌고 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날 죄 사함을 깨달았다. 아이 문제로 교제 받은 말씀이 나를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까지 나의 죄를 대신한 예수님의 죽음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죄에 끌려서 여전히 회개기도를 반복하던 삶이 끝났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서 나는 죽었고, 나를 의롭다 하려고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거듭났음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둘째 아이를 어떻게 해보려고 했던 마음도 끝이 났고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매여 있던 마음도 풀어졌다. 목사님이 ‘아들이 효자’라고 말씀하신 이유도 알았다. 아들 문제가 아니었다면 나는 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님과 만날 일도 없고 복음을 들을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말씀을 들으며 두 번째 알게 된 것은, 기쁜소식선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가르치는 교회라는 사실이었다. 의료봉사를 가기로 정한 뒤로 오전에는 강남교회를, 저녁에는 장로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날 이후로 나는 다니던 장로교회와 완전히 분리했다. 더 이상 이중생활을 할 이유가 없었다. 

“아빠, 나 구원받았어요”
내가 구원받은 후 아내와 가족이 구원받는 것에서는 내가 일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티에 의료봉사를 하러 갈 때는 큰아이를 데리고 갔는데, 현지에서 활동하는 봉사단에 아들 마음이 열려 2012년에 칠레로 해외봉사를 갔고, 그곳에서 구원받았다. 어느 날, 큰아이로부터 “아빠, 나 구원받았어요.”라는 메시지를 받고 너무나 기뻤다. 가족 중에 혼자 구원받아 외로웠던 상황에 큰아이의 구원이 나에게 얼마나 큰 힘과 용기를 주었는지 모른다. 큰아이는 엄마와 동생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칠레 월드캠프에 가족을 초청했다. 나는 병원 운영 때문에 가지 못하고 아내와 둘째 아이만 갔다 왔다. 칠레에 다녀온 아내에게 ‘이제는 나와 같은 교회를 다니자!’라고 했는데, 그때부터 강남교회에 가기 시작한 아내는 그 무렵 있었던 가을 대전도집회에서 박옥수 목사님과 상담하며 구원받았다. 엄마와 함께 형을 보러 칠레에 갔던 둘째 아들 역시 칠레와 파라과이 교회에서 1년여 간 생활하면서 구원받았다.
2011년 여름에 일어난 일들은 당시에는 너무나 정신없었고 하나도 해결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내 눈에만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 하나님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구원받은 자매님을 병원에 근무하게 하신 것부터 시작해 나와 가족이 구원받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생각하면 너무나 치밀하고 계획적이어서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다.

나 중심의 관점에서 교회와 목사님의 관점으로 옮겨졌다
아내와 아들이 구원받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나와 아내가 집사로 임명되었다. 장로교회에서도 집사 직분을 받은 적이 있기에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집사 임명을 받은 다음 해에는 구역장으로 임명되면서, 집사로 임명을 받은 것과는 비교 불가할 정도의 부담감이 엄습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우선 우리 교회와 내가 아는 장로교회들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큰 차이는 우리 교회에는 구원의 복음이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모든 성도가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유롭게 마음을 얘기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교회에 와서 가장 놀랐고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이, 성경을 읽고 발표하는 모임이었다. 장로교회에서는 평신도가 말씀을 전하는 경우가 절대로 없었다. 교회마다 다른 건지 모르지만 아버님이 목회하시던 교회에서는 그랬다. 50세가 되도록 종교생활을 하면서 입을 꾹 닫고 살았던 나에게 목사님은 “아무 말이라도 자꾸 하라.”는 교제를 여러 번 해주셨다. 
또 다른 이유는, 나의 성격에 있다. 나는 일주일 동안 무인도에 있으라고 해도 심심하거나 외로워하지 않을 정도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비사교적인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구역 식구들의 마음을 살펴야 하는 구역장 직분을 도저히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줄곧 부담을 넘어야 하고 내 생각과 다른 곳으로 나를 인도하셨다.
지난해 5월에는 장로 안수를 받았다. 처음에 장로 안수를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스러워서 ‘왜 저를 장로로 세우십니까?’라고 목사님께 여쭈었는데, 목사님이 ‘교회의 모든 장로님이 기뻐한다’고 하셨다. 그런 답을 하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여태까지 교회에서 모든 일을 내 입장에서 보는 것이 옳다고 여기고, 어떤 일을 할지 말지를 내 판단대로 결정해 왔다. 그런데 내가 장로 안수를 받는 것이 ‘교회가 기뻐하는 일’이라는 말씀을 듣고, 비로소 나 중심의 관점에서 교회와 목사님의 관점으로 옮겨졌다.
처음에 교회 직분을 받을 때에는 ‘내가 좀 잘할 것 같아서 세워졌나?’ 하며 나에게서 자격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도무지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도 내가 좀 해보겠다고 애를 써보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좌절했다. 뭔가 내가 계획해서 진행하면 내가 예상하고 원하는 대로 일이 흘러간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아무 자격이 없는 사람인 것을 알게 하셨고, 내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하셨으며,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다.

직분을 통해서 믿음을 배워 신앙하게 하신 하나님
내 마음에는 또 하나의 구역이 있는데, 그것은 2015년경부터 맡게 된 기쁜소식강남교회의 진달래합창단이다. 대학교 때 합창부에서 활동했던 이야기를 들으신 목사님이 당시 공석이었던 합창단 단장을 맡기셨을 때에는 내가 할 만해서 시키셨겠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면서 목사님에게 나아가 더 이상 합창단을 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목사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를 장로로 세우시고 내게 합창단을 계속 맡기셨다. 나에게 합창단은 내가 섬겨야 할 또 하나의 구역이고, 합창단원들은 나를 신앙하게 하는 구역 식구들이기에 나를 “단장님” 하고 불러주는 단원들에게 늘 감사하다. 
교회가 내게 맡긴 구역과 합창단을 하면서 항상 기억하는 것은 성령의 인도대로 목회하신다는 목사님의 간증이다. 구원받고 가장 관심 있게 주시했던 부분이 ‘목사님은 목회를 어떻게 하시나?’였는데, 어느 날 목사님이 말씀 중에 당신은 교회 일을 절대로 조직하거나 계획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한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통상적인 표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후 실제로 교회의 일들을 그렇게 하시는 것을 보고 그것이 목사님의 믿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 역시 나에게 맡겨진 부분에서 그 마음을 받아서 하고 있다. 
하나님께 가장 감사한 것은, 직분을 통해서 믿음을 배워 신앙생활을 하게 하시고 나와 우리 가정이 교회에 있게 하신 것이다. 그렇게 해주시지 않았으면, 숨어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구원받고도 벌써 교회를 떠나서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비참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진달래합창단과 함께, 필자(맨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와 아내(합창단 앞줄 좌측에서 두 번째)

가장 감사한 것, 부모님이 구원받으신 것
구원받은 후 하나님께 가장 감사한 것은 부모님이 구원받으신 것이다. 아버님이 은퇴를 몇 년 앞두고 쓰러지시면서 언어장애를 겪으실 때에는 내 마음이 너무나 슬펐지만, 그것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기 위한 하나님의 큰 계획 가운데 일부였다. 아버님이 급성폐렴으로 장기간 입원하셨을 때 형님과 내가 번갈아 가며 밤샘 간호를 하면서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날 바로 구원받으셨다. 너무나 기쁘고 감사해서, 새벽 4시도 되지 않은 시각에 박 목사님께 카톡으로 기쁨을 전했다. 어머님은 한 해 앞서, 종양 제거 수술을 받고 입원하셨을 때 복음을 전했다. 전에는 반응이 없던 분이 로마서 3장 23절을 읽어드리자 바로 24절을 암송하면서 “나 죄가 없다. 의인이다.”라고 하셨다. 
아버님과 어머님이 구원받으신 것을 생각하면, 만약 아버님이 건강하게 은퇴하셨으면 두 분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 듣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또한 요즈음 기독교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확산시키고 있는 대형 교회 은퇴 목회자와 함께 아버님의 성함도 오르내렸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고 원로목사와 후임 담임목사의 구도에서 그룹 간의 이해관계에 얽혀 혼란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 가족 모두의 구원이 들어있음을 믿는다
하나님께 계속 기도하고 있는 것은, 형님과 동생 그리고 그 가족들의 구원이다. 형님은 한때 신학을 공부하기도 했는데, 복음을 얘기하려고 하면 피해버린다. 동생은 목회하다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교회 운영이 어려워져서 지금은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수년 전에 박 목사님께 상담 받은 적이 있는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가 보는 형님과 동생의 모습은 그러하지만, 지금까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나와 가족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남은 가족이 구원받는 일도 당신의 계획 안에 두셨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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