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죄와 은혜
[설교] 죄와 은혜
  • 글 | 오세재(기쁜소식울산교회 목사)
  • 승인 2023.02.10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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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호 기쁜소식
CLF 강연 | 성막에서 드린 제사와 그리스도의 구속_제2강

 

구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성경 내용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우리 눈에 선명하게 보이고, 그것이 신약 성경과 연결될 때 우리는 참된 신앙의 길을 발견하게 된다. 그 길은 쉽고 분명하며, 하늘의 놀라운 축복을 부어주어 우리 마음을 기쁨과 감사로 채운다. 한국 CLF(Christian Leaders Fellowship) 컨퍼런스에서 오세재 목사가 ‘성막에서 드린 제사와 그리스도의 구속’을 주제로 목회자들에게 강연한 내용을 요약하여 5회에 걸쳐 소개한다. 

 

구약 시대에 제사장 외에 성막에 자주 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죄를 많이 지은 사람입니다. 스스로 죄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죄를 사함 받으려고 성막에 가는 것입니다. 이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진정한 변화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야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변화를 받았습니다. 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 새로워졌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결심이나 의지에 의한 변화가 아니라,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변화였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변한다면 예수님이 필요 없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우리가 노력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가 나옵니다. 이 여자는 음란한 마음에 이끌려 간음했고, 돌에 맞아 죽어야 했습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간음한 여자를 바꿀 수 없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너, 왜 간음했어? 하지 말았어야지!” 정도입니다. 그리고 더러운 죄를 지은 여자를 율법대로 돌로 때려서 죽이는 것이 전부입니다.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여자를 죄와 죽음에서 건져주셨고, 여자의 마음에 구원에 대한 감사가 가득차면서 여자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죄인이며, 스스로는 죄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한두 가지만 지은 것이 아니고, 앞으로도 죄를 안 지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죄에 빠진 상태로 태어나 죄를 짓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믿고 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마르틴 루터였습니다. 루터가 아버지의 뜻을 따라 법학대학에 다니다가, 어느 날 같이 가던 친구가 벼락을 맞고 죽었습니다. 루터는 ‘벼락이 계속 치는데 다음은 내 차례구나!’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땅에 엎드려서 살려주시면 신부가 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다행히 루터는 벼락을 맞지 않았고, 그 후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수도원에서 지내며 루터는 죄로 인해 굉장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겉으로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죄 때문에 너무 괴로웠습니다. 당시 수도사들은 지은 죄를 사제에게 고백했기 때문에 루터도 죄를 해결받고 싶어서 자신의 죄를 사제에게 낱낱이 고백했습니다. 하루에 여섯 시간씩 고백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죄를 고백하고 돌아섰다가 고백하지 않은 죄가 기억나 다시 사제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죄를 고백하는 사람도 힘들지만, 여섯 시간씩 그 고백을 듣는 사람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루터는 로마서를 연구했는데, 로마서를 계속 읽다가 어느 날 ‘하나님의 의’가 선물로 주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 나오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에서 복음을 깨달았습니다. ‘아,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다 씻어서 우리를 의롭게 해놓으셨구나! 이것을 믿기만 하면 되는구나!’ 예수님의 보혈은 인류의 죄를 2천 년 전에 완벽하게 해결했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자기 생각이나 양심 등에 묶여 자신이 죄가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
사람은 다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를 짓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무엇이 나옵니까?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 7:21~23)
사람은 속이 더럽습니다.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을 때 그냥 선악과를 먹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을 사탄이 장악해서, 인간의 마음을 통해 악을 행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 속이 더럽습니다. 
여러분이 나무를 한 그루 심었는데 그 나무가 자라서 사과가 열렸습니다. 그러면 그 나무는 사과나무입니다. 이듬해에 나무에 어떤 열매가 열리겠습니까? 바나나가 열립니까? 사과가 열립니다. 우리 마음에 어느 날 죄의 열매가 열렸다면 그 다음에도 죄가 열립니다. 죽을 때까지 죄악이 열립니다. 죄의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그만큼 악한 것이 아니라, 속에 악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악이 어떤 때에는 생각으로 끝나고, 어떤 때에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행동으로 옮긴 것만 문제를 삼습니다. 마음으로 누군가를 미워한다고 교도소에 보내는 법은 없습니다. 
창세기 6장에서 하나님은 인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사람에게서 올라오는 생각이 선하거나 옳은 것도 있고 악하거나 잘못된 것도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이 항상 악할 뿐임을 하나님이 보셨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17장에서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내 마음이 그렇게 썩었다고? 내가 볼 때에는 착한 부분도 있는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성경은 우리 마음이 심히 부패했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에 악한 영인 사탄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동안 사탄은 우리 마음을 통해 우리를 속이고 하나님을 거스르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체질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체질입니다. 
로마서 7장에서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고 했습니다.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않고 도리어 원치 않는 악을 행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선을 행하기 원하는데 원치 않는 악한 생각이 일어나서 악을 행하도록 마음을 이끌어간다는 것입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18~20)
사람은 밝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어둡고 더럽게 사는 이유는 악한 영이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세계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잘 모릅니다. 악한 영이 자신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쳐서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지 아는 사람이 드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참 빛인 예수님 앞에 서야
사람은 죄를 짓고 살면서도 자신이 그래도 선하고 바르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그랬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그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예수님 앞에 끌고 와서 물었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자신들은 깨끗하고 그 여자는 더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그들이 양심에 가책을 받아 다 돌을 내려놓고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빛이라고 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요 1:9)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자신들은 선하고 세리나 창기나 간음하다 잡힌 여자는 악하다고 생각한 것은, 그들이 어두움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두우면 얼굴에 더러운 것이 묻어 있어도 볼 수 없습니다. 밝은 빛 앞에 오면 그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그것처럼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빛이신 예수님 앞에서 자신들도 더럽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타인이나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이 나라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밝은 빛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죄악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다른 사람과 비교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 빛인 예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양심의 가책을 받았던 사람들처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로마서 11장에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롬 11:32)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잘 됩니까? 잘 안 됩니다. 여러분이 목회하면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문제는, 목회자인 여러분도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순종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셨는데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하면 되겠습니까? 번번이 실패합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부족해서, 자신이 악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애를 씁니다. 가슴을 치며 괴로워하고,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순종하려고 합니다. 아무리 해도 안 되면 ‘나는 택한 백성이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왜 불순종 가운데 가두어 두셨습니까?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12)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께 값을 지불하고 받은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은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도 은혜고, 산소도 은혜고, 물도 은혜고, 비도 은혜입니다. 어떤 것도 값을 받지 않고 그냥 주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사함 받아 하늘나라에 가는 것도 은혜입니다. 

죄를 지은 인간이 하나님과 다시 화목할 수 있는 길은 은혜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뒤 마지막에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주 슬픈 일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죄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다 씻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예수님이 이루신 것을 받아들여 값 없이 죄에서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죄를 지은 인간이 하나님과 다시 화목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은혜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인간을 속여, 은혜로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는 마음을 넣어 주었습니다. 사탄은 인간을 속여서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었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을 다시 속여서 은혜에서 떠나게 했습니다. 은혜에서 떠난 사람들은 자신이 잘하려고 하고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을 불순종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이 죄를 짓고 살면서 자신이 실수로 그렇게 한 줄 압니다. 인간은 어쩌다 실수로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이 항상 악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몇몇 가지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악한 우리가 짓는 모든 죄를 용서받아야 합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짓는 모든 죄를 용서받지 않고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짓는 모든 죄를 씻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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