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문둥이가 되어
[라이프]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문둥이가 되어
  • 글 | 안병주(기쁜소식강남교회)
  • 승인 2023.02.17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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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호 기쁜소식
성도 간증

 

2022년 말에 있던 1차 강릉수양회에 참석하면서 어린 시절 친구가 생각나서 초청했다. 친구가 오겠다고 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웠다. 친구도 교회에 다니며 직분도 갖고 있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경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자범죄에 대해 말하며, 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자살했는지 내게 물었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성경에 마귀가 가룟 유다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고 나오잖아. 그런데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판 것이 자기가 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네가 짓는 자범죄도 마찬가지야. 자범죄는 네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만일 죄를 네가 지었다고 생각하면 네가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거야. 성경에는 사탄이 우리에게 죄를 짓게 했다고 했어. 성경이 맞는지 네 생각이 맞는지 생각해봐.” 
이어서 야곱과 에서에 대한 말씀도 이야기하고, 선한 사마리아인과 강도 만난 자 이야기도 했다. 친구가 말씀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준 것이 감사했다. 
다음날은 강릉 수양관에 가서 아침식사를 하고 말씀을 듣기로 했다. 그런데 점심 배식 봉사 인원이 부족하니 함께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친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오전 말씀을 듣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나중에 친구에게 말씀을 듣고 마음이 어떤지 물었다. 친구는 ‘이 말씀을 우리 형님이 들으면 좋겠다’고 했다. 형님은 인생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어두운 마음으로 살고 계신데, 친구가 말씀을 듣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친구는 일이 있어서 다음날 헤어졌지만, 친구를 초대할 수 있어 기뻤다. 
1차 수양회를 마치고 돌아와서 송구영신 예배에 참석해서 신년 말씀을 들었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왕하 7:9) 
신년 말씀이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나는 장로교회에 다니다가 구원받았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어서 입을 열면 우리 교회를 이단시하는 시선 때문에 마음이 눌려서 말씀을 잘 전하지 못했다. 그런데 신년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이 올해 내게 복음 전도의 발걸음을 내딛게 하신다는 소망이 생겼다. 
며칠 뒤 78세인 당숙이 췌장암 수술을 받고 몇 개월째 누워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척이라도 얼굴만 알지 댁에 가서 인사드린 적도 없어서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신년 말씀이 내 마음에 힘을 주어서 당숙에게 연락을 드리고 찾아갔다. 막상 당숙을 만나려 하자 종교에 관심 없는 분에게, 더군다나 병으로 고통하는 분에게 죄가 있으면 지옥에 간다고 이야기하려니 부담스러웠다. 발을 내디뎌 당숙 댁에 갔다. 당숙모님이 먼저 “아, 그렇지 않아도 주위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놀라웠다. 
당숙에게 말했다. “혹시 여기에 제가 안 오고 예수님이 오셨다면 예수님이 당숙의 병을 고치실 수 있을까요?” 당숙은 고칠 수 있다고 하셨다. 내가 이어서 말했다. “마음에 죄가 있으면 하나님이 역사를 못 하십니다. 그 죄를 씻어야 합니다.” 하고 담대하게 말을 꺼냈다. 그리고 30분 정도 말씀을 전하고 나왔다. 교회로 돌아와서 장로님에게 그다음 발걸음은 어떻게 내디뎌야 할지 여쭈었다. 장로님은 당숙의 마음이 병으로 많이 낮아졌으니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 
실버회 담당이신 박병남 목사님에게 부탁해 함께 당숙 댁에 갔다. 목사님이 누워 계신 당숙에게 복음을 전하셨고, 그날 당숙과 당숙모가 구원받으셨다. 목사님이 복음 전하시는 것을 처음으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내가 구원받을 당시 ‘진짜 고수는 쉽게 가르치는구나.’ 했던 것이 생각났다. 복음은 정말 쉽고, 전하려고 하면 쉽게 전할 수 있는데, 내가 그동안 너무 마음이 눌려 있었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지?’가 아니라 내가 이미 듣고 알고 있는 말씀을 이야기하면 되는 거였다.
또 한번은 내가 운영하는 치과병원에 일본에서 선교사를 한다는 손님이 오셨다. 갑자기 강도 만난 자와 선한 사마리아인 말씀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분에게 “혹시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살고 있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그분이 “저는 선한 사마리아인은 아니에요. 선한 분은 하나님밖에 없어요.”라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맞습니다.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아니고 강도 만난 자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이고 우리는 강도 만난 자입니다. 우리가 그 마음의 위치에 가야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성경을 읽으실 때 강도 만난 자의 위치에서 한번 읽어보세요. 그럼 전혀 새롭게 느껴질 겁니다.”라고 했다.
그분이 내게 “대단하네요.”라고 하셨다. 교회에서 늘 듣는 말씀, 내가 말씀을 들으며 느낀 부분을 이야기하면, 그것이 복음의 씨앗이 되어 안수 복음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오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복음을 전하려고 하다 보니 복음 들을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을 본다. 그동안 내가 너무 잠잠히 있었다는 마음이 든다. 성문 어귀에 앉아 있는 문둥이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는 문둥이가 되고 싶다. 나를 통해 일하실 하나님을 소망하니 정말 기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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