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라이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 글 | 장동기, 구옥분(기쁜소식강남교회)
  • 승인 2023.03.16 1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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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호 기쁜소식
보배와 질그릇

내 마음에 예수님이 찾아오신 이후로 나의 삶은 절망에서 소망으로 원망에서 감사함으로 놀랍게 바뀌었다. 내 삶을 절망에서 졸업하게 하시고 참된 평안을 주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에게 감사를 드린다.

 

나는 4남 1녀의 장남으로 경남 창원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우리를 부족함 없이 키우셨고, 경제적으로 어려움도 없었다. 나는 시골에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으로 부모님의 자랑거리였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서울에 올라와서 학교에 다녔고 대학을 다니며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부모님의 귀여움을 독차지한 막내 여동생도 서울에서 공부하길 바라시는 부모님이 서울에 집을 얻어 주셨다.
내가 스물아홉 살이 되던 1988년 2월 어느 날, 부모님이 오토바이를 타고 장에 다녀오시던 길에 덤프트럭과 부딪혀서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와 막내 여동생은 소식을 듣자마자 급히 시골로 내려갔지만,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설상가상으로 돌아가신 부모님이 오히려 가해자로 바뀌어 억울함까지 겪게 되었다. 
부모님은 사고 전날 군대에 간 넷째 동생을 면회하고 오셨던 터라, 동생은 부모님 소식을 듣고 슬픔과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덤프차 운전자를 잡아 죽이겠노라며 탈영하여 행방불명이 되었다. 다행히 열흘 만에 동생을 찾았고, 정상이 참작되어 무사히 군복무는 마칠 수 있었다. 우리 오 남매는 부모님을 잃은 슬픔에 빠져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나는 공부를 포기하고 동생들을 뒷바라지했고, 알고 지내던 식당 주인의 소개로 결혼했다. 우리는 잠실에 있는 새마을 시장에서 가게를 시작했다. 제사용 부침개를 만들어서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아서 판매했는데, 장사가 너무 잘됐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했고 하루에 4시간 이상 잠을 자본 적이 없을 정도로 정말 바쁘게 살았다. 가장 바쁠 때는 직원을 20여 명을 두고 일한 적도 있었다. 

죄책감과 상실감은 점점 깊어갔다
동생들이 하나둘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막내 여동생도 결혼했다. 열심히 살고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 줄 알았다. 바쁘게 살다가 2017년 9월,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다. 장이 파열돼 병원에서는 모두 죽는다고 했는데 다행히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여동생이 자살했다는 기막힌 소식을 들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막내 여동생은 내가 특히 더 아꼈던 동생이었다. 막내가 결혼할 때 부모님이 남겨 놓으신 재산을 아끼지 않고 다 주었는데 동생은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다. 가정 안에 일어난 문제들을 견디지 못하고 너무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과 부모님께 불효했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좌절감과 상실감은 점점 깊어만 갔다. 동생이 세상을 떠난 후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다. 

자동차 사고는 우연이 아니었다
나는 결혼 초기부터 아내에게 경제권을 주었다. 살림하고 아이를 돌보려면 돈을 써야 하니까 아내를 믿고 맡겼고, 나는 오로지 가정을 위해 열심히 일하며 살아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동생이 세상을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 와중에 아내가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이혼소송을 걸어왔다. 너무 큰 충격이었다. 2018년 10월경, 가정법원에서 소장을 확인하고 너무 화가 나서 차를 몰고 근처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사서 병째로 마셨다. 그리고 다시 운전하여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후진했는데, 뒤차를 받는 사고가 일어났다. 화가 나서 술을 마신 상태여서 정신이 없었다. 차에서 흰머리의 회장님과 운전자가 내리더니 상황을 살피고 내가 차를 제대로 정차하도록 정리해 주었다. 나에게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고는 괜찮다고 하며 가라고 하셨다. 흰머리 회장님의 인상이 너무 인자하여서 내심 ‘용서해 주지 않으실까?’ 하는 기대를 잠시 했지만, 차 수리비가 너무 많이 나올 것 같아서 한참 골머리를 앓았다.
3일 후 당시 운전했던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10월 22일에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에 있는 SK핸드볼 경기장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내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하고, 차 수리비를 깎아달라고 빌어야겠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약속 장소에 가서 보니 그곳은 ‘박옥수 목사 성경세미나’가 열리는 체육관이었다. 체육관 2층에 가서 앉아 있는데, 합창단이 찬송을 불렀다. 찬송 소리가 아주 편안했다. 큰 화면에 흘러나오는 찬송가 가사를 보는데, 내용이 참 좋고 감동적이었다.
합창단의 공연이 끝나고 난 뒤에 한 분이 소개되어 나오셨다. 순간 깜짝 놀랐다.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보았던 흰머리의 회장님이셨다. 나는 그분이 큰 회사의 회장님이신 줄 알았는데 목사님이셨고, 성경세미나 강사셨다. 사고가 난 날에 운전을 했던 분도, 지금은 선교를 가신 민웅기 목사님이셨다. 
박 목사님의 설교가 마치자, 민웅기 목사님이 내게 말씀을 전해주셨다. 민 목사님은 교통사고를 당해 한쪽 팔과 남편, 그리고 다섯 아이까지 잃고 혼자 살게 된 한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너무 큰 슬픔에 빠져 있던 부인이 말씀으로 위로를 받고 예수님을 만난 후 다시 밝은 삶을 살게 된 이야기였다. 마치 내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너무나 꼬여버린 내 인생을 생각하니 너무 슬퍼서 한참 울었다. 이어서 목사님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그때 흘린 보혈로 세상 죄가 다 씻어져서 우리가 의롭고 거룩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나는 죄가 많아서 이렇듯 내 삶에 고통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로 내가 의롭고 거룩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받아들인 후 마음에 자유와 평안을 얻었다. 내 마음에 예수님이 찾아오신 날이었다. 

“이제 기쁜소식강남교회에 나오세요. 그러면 됩니다.”
동생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으로 매일 술을 마셨고, 오후 서너 시경이 되면 나도 모르게 절로 술 생각이 났는데, 구원받고 나니 술이 보기도 싫어졌다. 마음이 안정되고 평안해졌다. 걱정했던 자동차 수리비에 대해서는 민 목사님이 “이제 기쁜소식강남교회에 나오세요. 그러면 됩니다.”라고 하셨다. 너무 감사했다. 
그때부터 나는 매주 기쁜소식강남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처음에는 박옥수 목사님의 말씀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아 어려웠다. ‘어떻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일 수 있지? 어떻게 말씀을 믿는다고 아픈 사람이 나을 수 있지? 박 목사님은 열아홉 살에 다 망하고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열아홉 살에 성경의 진리를 알 수 있었지?’ 
매시간 듣는 성경 말씀이 내게는 다 충격이었고 의문투성이였다. 중학생 때부터 교회에 다닌 적이 있고, 대학시절에는 성경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서 읽은 적이 있었는데, 박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 보면 내가 그동안 안다고 생각한 지식의 세계와 박 목사님이 전하시는 성경 말씀의 세계가 전혀 달랐다. 혼돈의 연속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는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세계였다. 매주 말씀을 듣는 동안, 하나님은 내가 말씀을 이해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다고 하면 그게 맞는 것이구나.’ 하며 박 목사님의 말씀을 한 부분 한 부분 마음에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목사님의 주일 예배 말씀이 내 마음을 이끌기 시작했다. 말씀이 너무 놀라워서 A4 용지에 그대로 받아 적었다. 한 말씀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에 가서 다시 읽고 중요한 대목은 밑줄을 그었다. 매주 듣는 목사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보화가 되었다. 
그 가운데 특히 다윗에 대한 말씀은 내게 큰 위로와 소망을 주었다. 삶에 어려움이 많았던 다윗은 시글락이 불탔을 때 모든 소망을 잃고 군급한 가운데 있었으나 여호와 하나님을 힘입어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세울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우리 생각으로는 다윗이 당한 상황이 좌절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너무 달랐다. 다윗의 삶을 보면서, 하나님이 나를 절망 가운데 가두신 것은 어렵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당신의 나라로 나를 옮기시기 위한 계획이었음을  알았다. 이혼을 당하고 사고가 난 것이 나를 저주하신 것이 아니라 축복으로 가는 길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알았다. 

하나님의 종의 인도를 따르는 것이 가장 복되구나 
이혼을 당한 뒤로 가게 일도 잘 되지 않아서 밤에는 물류센터 일도 겸했다. 그러나 형편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까지 발생해 더 어려워졌고, 두 달 정도 거의 굶고 지낸 적도 있었다. 하나님은 내 삶에서 기대할 것이 전혀 없게 비우는 일을 하셨다. 만일 그때 내가 조금이라도 의지할 만한 것이 있었다면 교회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내 길을 갔을 것이 분명하다. 돌아보면 하나님은 당신 한 분에게만 소망을 두어 당신의 세계로 이끄시려고 나를 망하게 하셨다는 마음이 든다. 
어느 날, 박 목사님이 새로운 일을 해보라며 청소 일을 추천하셨다.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라서 처음에는 주저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종의 인도를 따르는 것이 가장 복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박 목사님은 청소 업체 이름을 ‘어린양 클린’이라고 지어주셨다. 이미 청소업을 하고 있는 형제님들이 있어서 그분들이 가르쳐 주고 도와주셔서 감사했다. 전에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온종일 일해도 생활이 어려웠는데, 요즘은 새벽에 나가서 일하고 정오쯤 일을 마치는데도 생활에 어려움도 없고, 교회에서 갖는 저녁 모임에도 함께할 수 있어서 좋다. 
오랜 시간 나는 내 기준의 울타리를 쳐놓고 살아서 교회 형제들과 마음을 나누는 것이 서툴고 어색했다. 그런데 토요일 저녁마다 장년회에서 형제들의 간증을 듣다 보니, 형제들을 향해서도 차츰 마음이 열리고 가까워졌다. 각기 삶의 모양은 다르지만 그 마음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는 다 감동적이었다. 요즘은 형제들과 교류하고 교회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귀하게 느껴진다. 

내 인생을 절망에서 졸업시켜주신 하나님
작년 11월 17일에 교회의 인도로 만난 구옥분 자매와 결혼식을 올렸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마음으로 내 삶을 인도해주시는 목사님이 계신 것이 감사했다. 요즘 우리 부부는 하나님이 정해준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는 자체로 행복하다. 절망뿐이던 내 삶이 밝고 복된 삶으로 변했다. 내 인생이 소망 가운데로 옮겨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의 종 덕분이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내 인생을 절망에서 졸업시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의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

글 | 구옥분(아내)

 

열심히 살았지만, 인생이 풀리지 않아 너무 힘들었다. 서른여덟 살에 이혼하고 두 아들과 헤어져 살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직장에서 줄곧 나를 전도하던 언니가 있었는데 마음이 너무 어려우니까 언니를 따라 수양회에 가보기로 했다. 나는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성경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해 어려웠다. 수양회 셋째 날, 창세기 27장 말씀을 들었다. “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창 27:13)
야곱이 아버지 이삭 앞에 나갈 때 자기 양심의 소리가 아닌, 어머니 리브가의 마음을 받아서 나갔기 때문에 복을 받은 말씀을 들었다. 나도 내 양심의 소리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입혀주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내 모든 죄를 씻으셨다는 말씀이 믿어졌다. ‘내 죄가 다 씻어졌다니!’ 말로 형용할 수 없이 행복했다. 
구원받고 나서 직장 언니를 따라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하나님이 내 삶을 한 부분 한 부분 인도해주셨다. 이혼하며 헤어졌던 두 아들과도 같이 살 수 있게 되었다. 교회가 조금 큰 건물로 이사할 때는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해서 헌금도 드릴 수 있었다. 반지하 방에서 살 때에도 집을 위해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빌립보서 1장 6절의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말씀을 주시면서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아파트를 얻게 하셨다. 그때 온 교회가 기뻐했고, 그 집에서 얼마 전까지 18년을 살았다. 
하나님께 아들들의 장래를 위해 많이 기도했는데, 큰아들은 2003년에 월드캠프에 참석해서 구원받았고, 둘째 아들은 러시아로 단기선교를 갔다 온 후 그라시아스합창단 단원이 되는 은혜를 입었다. 아들이 복음을 위해 연주하며 은혜를 입고 사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 몇 년 전에는 합창단에서 귀한 아내를 만나 결혼했고, 며칠 전에 둘째 아이를 낳았다. 하나님이 복음 안에서 온갖 복을 준비하신 것이 감사했다. 
구원받고 교회에서 처음으로 맡은 것은 꽃꽂이였다. 전혀 해보지 않은 일인데, 교회의 음성을 따라 하나하나 배우면서 교회를 섬길 수 있어서 감사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의류 봉제 일을 해왔다. 그동안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살다 보니 일을 놓을 수 없어서 교회에서 봉사할 여유가 없었다. 하루는 그라시아스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칸타타와 부활절 칸타타에 필요한 의상을 만드는 일에 봉사하는 자매님에게서 도와줄 수 있는지 연락이 왔다. 시간을 내지 못해서 하루만 봉사하고 왔는데, 합창단의 공연 의상을 만드는 일에 봉사하는 자매들이 너무 귀해 보였다.
하나님은 내게 한 말씀을 생각나게 하셨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수 없는 사람인데 하나님이 이끌어주세요. 저도 그라시아스합창단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데 길이 없습니다. 도와주세요.”
그 후 누가복음 말씀을 읽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아이를 잉태할 거라고 말하자, 마리아는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한다’고 했고, 천사는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했다. ‘하나님에게는 길이 많네요. 그럼 저에게도 길을 보여주세요.’라는 마음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그때 교회에서 장동기 형제를 소개해 주었다. 20여 년을 혼자 살았기에 늦은 나이에 재혼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는데, 얼마 전에 읽었던 누가복음 말씀이 떠올랐다. ‘아, 하나님이 길을 여시는가 보다. 하나님이 내게 안식할 처소를 주시고, 봉사도 하고 신앙생활도 하게 하시려는가 보다.’ 하면서 교회의 인도를 따르고 싶었다. 마음이 평안하고 감사했다.
결혼하고 3개월이 지났다. 교회로 말미암아 남편이 생기고, 내 편이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했다. 무엇보다 우리 결혼을 교회가 기뻐하고 목사님이 기뻐하시니 더더욱 감사하고 행복했다. 
박옥수 목사님은 우리 부부가 남은 삶을 교회를 섬기며 살면 좋겠다고 하신다. 아직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당신의 종을 통해 이끌어주시는 삶이 가장 복된 것을 알기에 모든 것을 교회에 맡긴다.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매년 그라시아스합창단이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칸타타 순회공연을 하는데, 남편과 함께 가서 아들과 며느리가 공연하는 것도 보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현장도 직접 보고 싶다. 나를 죄에서 구원해주시고, 나의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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