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이미 뿌려진 피
[설교] 이미 뿌려진 피
  • 글 | 오세재(기쁜소식울산교회 목사)
  • 승인 2023.05.14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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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호 기쁜소식
CLF 강연 | 성막에서 드린 제사와 그리스도의 구속_제5강(마지막 회)

 

 

역대하 7장 16절에서 하나님이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곳은 바로 성전입니다. 성전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성전 외의 예배나 모임 장소는 회당이라고 했습니다. 성전은 처음에 솔로몬이 7년에 걸쳐서 건축했고, 이후에 스룹바벨 때 재건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헤롯 왕이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헤롯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에돔 자손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성전 재건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 후 서기 70년에 로마군에 의해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성전이 허물어졌습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이슬람 사원인 황금돔 사원이 서 있습니다. 

참 성전인 예수님을 만나 죄를 사함 받은, 간음하다 잡힌 여자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간음하다 잡힌 여자와 만났습니다. 여자는 돌에 맞아 죽기 위해 끌려가다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에게 올무를 놓을 도구로 사용하려고 여자를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들이 여자를 앞에 세우고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예수님이 땅에 글을 쓰시고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하셨습니다. 간음한 여자를 치려고 돌을 들고 있던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이 지은 죄가 생각나 양심에 가책을 받고 한 사람 한 사람 돌을 버리고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이 또 손가락으로 땅에 쓰신 뒤 일어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주여, 없나이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이 여자는 참 성전인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려 죄를 사함받듯이 예수님을 만나 죄를 사함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여자의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어쩌다 짓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죄의 나무와 같아서 수시로 죄를 짓습니다. 미국의 한 대학교에서 ‘사람이 하루에 거짓말을 몇 번 할까?’ 연구했습니다. 실험 대상자가 하는 말을 종일 녹음했다가 나중에 진실 여부를 확인하니 하루에 평균 200번의 거짓말을 했다고 합니다. 창세기 6장에서 사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은 죄를 씻는 제사로는 인간의 죄를 완벽하게 씻을 수 없습니다. 영원한 속죄제사가 필요합니다. 
구약 시대에 드렸던 제사와 예수님이 드린 제사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구약 시대의 제사는 지은 죄만 씻고, 앞으로 지을 죄는 씻을 수 없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단번에 영원히 씻으셨습니다. 구약 시대에 드렸던 제사는 그림자여서 죄를 다 씻지 못했지만, 참 형상인 예수님이 드린 제사는 모든 죄를 영원히 씻었습니다. 성전 앞에서 예수님이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하셨습니다. 이제 성전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참 성전인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구약 시대에 있었던 성전에서 속죄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참 성전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죄가 어떻게 씻어지는지 알아야 합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
이 말씀에서 영원한 속죄를 이룰 것이라고 했습니까, 이루었다고 했습니까?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영원한 속죄를 이미 이루셨습니다. 우리 죄는 이미 영원히 씻어졌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몰라서, 자신이 죄를 지으니까 죄인인 줄 압니다. 

자백해야 죄가 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씻어졌다
요한일서 1장 9절의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는 말씀을, 자백하면 죄가 씻어진다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백해야 죄가 씻어지는 것이 아니라, 죄는 이미 씻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몰라서 죄가 씻어진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지 않다가, 죄인인 것을 깨달은 뒤 ‘예수님의 보혈로 내 죄가 다 씻어졌구나.’ 하고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에게 죄가 씻어졌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짓고, 악한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내가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해도 안 되는구나.’ 하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루신 영원한 속죄를 마음에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사람이 지은 죄를 깨달은 뒤 어떤 때는 죄를 자백하기도 하지만 죄를 자백하지 않아도 안수와 속죄제사를 통해 죄가 씻어졌습니다. 자백은 죄 사함을 받기 위한 필수사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속죄제사가 드려진 상태에서 우리가 죄를 깨닫게 됩니다. 반드시 자백해야 죄가 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자백과 상관없이 구약의 속죄제사와 마찬가지로 이미 예수님이 드린 속죄제사로 죄가 사해진 것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죄를 깨닫는 것이 먼저고 속죄제사가 다음이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영원한 속죄제사를 드린 것이 먼저고 죄를 깨닫는 것이 다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하늘나라 성전에 뿌리셨는데, 그 후에 우리 마음에 뿌리는 것입니다. 
죄는 지을 때마다 용서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씻어진 것을 믿는 것입니다. 자백한다는 것은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지 않을 때에는 예수님이 죄를 씻은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자백할 때 예수님의 보혈로 죄가 씻어진 것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피를 뿌리셔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예수님의 피가 뿌려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를 우리 마음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22) 
범죄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마음이 어두워져서 하나님과 마음이 멀어지는 것입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이 말씀대로 십자가에서 이미 흘린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합니다. 우리가 범죄한 것을 인정할 때 예수님의 피로 죄가 씻어진 것이 우리 마음에 미쳐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2천 년 전에 인류의 죄가 영원히 씻어졌습니다. 이제 그 사실이 우리 마음에 임해서 우리 마음만 범죄에서 해방되면 됩니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이 하신 일만 가득 차 있지 인간이 한 일은 없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이 스스로 무슨 일을 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그때 안식이 깨졌고,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열심히 일하며 살았지만 고통과 죄악과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이 일하시는 세계가 다시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병든 자를 고치시고, 배고픈 자를 먹이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인간이 원하지만 할 수 없었던 일을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입니다. 이 세계는 인간이 일하는 세계와 다르기 때문에 우리 생각을 버려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 55:6~7)
하나님이 가까이 계실 때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때에도 하나님을 못 만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생각이 인간의 길이나 생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자기 생각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못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앞을 보지 못하는 분이 세 사람 있는데, 그 가운데 한 형제님은 자전거를 탑니다. 아내가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지시해 주는 대로 자전거를 운전해서 갑니다. 자신은 앞이 보이지 않지만 앞이 보이는 아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자전거를 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의 세계를 보지 못하고, 하나님은 영의 세계를 보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두 가지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를 대적하는 사탄의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가 영원히 씻어졌다고 하고, 사탄은 죄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죄에서 영원히 벗어나고, 사탄의 말을 들으면 죄인이라는 생각과 정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다 해도 그 모든 죄는 십자가에서 이미 끝이 났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이미 씻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마다 “그대로 되니라.”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그 말씀이 마음에 그대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을 버리면 말씀을 믿는 것이 굉장히 쉽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믿으려고 애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 틀렸구나.’ 하고 버리면 말씀을 믿는 것이 아주 쉬워집니다. 

자신의 생각이 아닌 성경 말씀대로 이야기해야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의 잊음이 되지 아니하리라.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사 44:21~22)
우리는 하나님을 잊을 수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를 빽빽한 구름이 사라진 것같이, 안개가 사라진 것같이 도말하였으니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죄를 도말한 것이 먼저입니까, 우리가 돌아가는 것이 먼저입니까? 우리가 돌아가면 도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도말했으니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다 씻어 놓았으니 그것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로 돌아와서 자유를 누리라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말씀이 로마서 3장 23~24절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첫 번째 사실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사실은 예수님이 이루신 구속으로 우리가 값 없이 의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기독교인이 로마서 3장 23절만 믿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합니다. 23절만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24절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죄를 지었고,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진저’”(겔 13:2~3)
여기, 하나님께서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선지자를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본 것 없이 자기 마음을 따라 예언하는 자입니다. 선지자는 자기 마음을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전해주시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자기 생각을 말해야 합니까? 우리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을 따라 말하는 사람은 우매한 선지자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목회자들이 성경과 다른 자기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교인들에게 죄인이라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우리 생각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우리 죄가 다 씻어져서 우리가 의롭게 되었습니다. 우리 생각에 맞지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전하는 사람이 올바른 하나님의 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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