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유대인도, 헬라인도 회개해야
[설교] 유대인도, 헬라인도 회개해야
  • 글 | 홍오윤(기쁜소식진주교회 목사)
  • 승인 2023.06.0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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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호 기쁜소식
CLF 강연 | 진정한 회개와 자백(제1강)

신앙생활의 두 기둥인 회개와 믿음. 둘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신앙은 바로 서지 못해 무너지고 만다.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회개는 어떤 것인가? 바르게 회개하고 바르게 믿을 때 비로소 참된 신앙의 길에 들어설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면서 하늘의 신령한 축복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인도할 수 있다. 한국 CLF(Christian Leaders Fellowship) 컨퍼런스에서 홍오윤 목사가 ‘진정한 회개와 자백’을 주제로 목회자들에게 강연한 내용을  정리하여 5회에 걸쳐 소개한다. 

 

이 강연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회개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 요한일서에 나오는 자백에 관하여 다루려고 합니다. 시간과 경비를 들여 멀리 한국까지 오신 목회자 여러분께, 이 강연이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산 유대인들도 회개해야 한다고 전한 사도 바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회개와 성경이 이야기하는 회개는 다릅니다.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성령에 이끌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밀레도에 이르렀을 때,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밀레도로 오라고 청했습니다. 장로들이 밀레도에 도착하자 바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유언처럼 한 이야기였습니다. 바울이 마음을 다 쏟아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증거한 것이 있었는데,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었고, 헬라인은 하나님의 존재도 모르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 모두에게 잘못된 삶에서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함을 증거했다고 했습니다. 헬라인이 회개해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고 있던 유대인이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한다는 것은 언뜻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에게도 회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회개에 관한 이런 이야기는 의미가 깊은 내용으로, 심도 있게 다루어야 할 부분입니다. 

신앙의 두 기둥, 회개와 믿음
사도 바울이 했던 일들을 한마디로 이야기한다면, 회개와 믿음을 증거한 것이었습니다. 신앙은 회개와 믿음, 두 가지로 이루어집니다. 두 가지 가운데 한 가지가 빠지면 신앙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신앙에는 반드시 회개가 있어야 하고, 이어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회개와 믿음은 사도 바울이 제일 먼저 이야기했던 것은 아닙니다. 마가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5)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실 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회개와 믿음은, 그것이 신앙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두 기둥입니다. 그 가운데 먼저 회개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잘못된 행실’에서 ‘선한 행실’로 돌이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전적으로는 ‘죄에서 돌이키는 신앙적인 행위’를 회개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죄는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 우리가 현재 모임을 가지고 있는 장소에서 서울에 가려고 한다고 해봅시다. 어디를 가려고 하면 목적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 목적지는 서울입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부산에 있는지, 대구에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부산에 있다 해도, 해운대 백사장에 있는지 현재 모임을 가지고 있는 벡스코에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목적지가 정해지고 현재 위치를 알면, 가는 길을 찾습니다. 신앙도 회개하기 위해서는, 즉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가기 위해서는 출발점인 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죄’ 하면 통상적으로 타인에게 손해나 피해를 끼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도둑질이나 강간이나 살인 등을 죄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죄’라고 하지 않고 ‘범죄’라고 말합니다. 죄와 범죄는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범죄를 죄라고 여기기 때문에, 잘못된 행실에서 돌이켜 바르고 선하게 사는 것을 회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악한 행실’에서 ‘선한 행실’로 돌이키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죄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소위 모태 신앙이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교회에 다녔고, 형님들 등에 업혀 주일학교에 다녔습니다. 자연히 하나님에 대해 배웠고, 술이나 담배나 도박 같은 것들과는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제가 다섯 살 때 중병에 걸렸습니다. 병원에서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다고 했지만 집에 돈이 없어서 병원에서 그냥 나왔습니다. 새벽마다 어머니 등에 업혀 윗동네에 사는 교회 장로님에게 가서 안수 기도를 받고, 민간요법으로 약을 만들어서 먹었습니다. 얼마 뒤 제가 기적처럼 나았습니다. 그때부터 가족들이 저에게 “하나님이 너를 살려 주셨어. 너는 선택받은 사람이야. 하나님이 너에게 특별히 은혜를 베푸셨어. 너는 함부로 살면 안 돼.”라고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자라서 저도 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 집이 가난해서 수업료를 제때 내지 못해 교실에서 종종 쫓겨났습니다. 지금은 한국이 잘살지만 제가 중학생이던 50년 전에는 대부분 어렵게 살았고, 우리집은 더 가난했습니다. 한 반에 학생이 65~70명인데, 그 가운데 가난해서 수업료를 못 내는 아이들이 다섯 명 정도 되었습니다. 학교에 가면 수업 시간에 서무과장님이 교실로 들어와서 “지금 부르는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하고 이름을 불렀습니다. 제 이름도 들어 있었습니다. 
“지금 호명한 학생들은 책상에 책을 그대로 놓고 책가방도 그대로 두고 뒷문으로 나가, 집에 가서 수업료를 가져오세요.”
수업을 받다가 쫓겨났습니다. 쫓겨나서 집에 가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돈이 없어서 수업료를 못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집에 가봐야 괜히 어머니 마음만 아프니까, 쫓겨난 아이들끼리 학교 뒷산에서 놀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번은 뒷산에 앉아 있다가 ‘가난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난 때문에 수업 시간에 쫓겨나 자존감도 떨어지고, 열등의식도 생기고….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내가 물려받을 재산도 없고 든든한 배경도 없고,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은 공부밖에 없겠다. 오늘부터 이를 악물고 공부해야겠다.’ 열심히 공부해서 얻을 행복한 미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돈을 많이 벌면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살 수 있을 거야.’ 
생각이 계속 흘러갔습니다.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해 자녀도 낳아 주말이면 함께 야외로 놀러 가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지?’ 인생을 계속 생각하다 보니, 생각지 않았던 방향으로 생각이 흘러갔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죽겠지.’ 갑자기 허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은 죽음이구나.’ 생각이 거기 이르자 많은 의문이 생겼습니다. 
‘어차피 죽는다면 성공하려고 고생할 필요가 있을까?’ ‘죽음 후에는 어떻게 될까?’ ‘하나님이 진짜 계실까? 계신다면 천국과 지옥도 있을 텐데 나는 어디로 갈까?’ ‘내가 천국에 간다고 믿고 있다가 하나님이 나를 모른다고 하시면 어떡하지?’
저는 그때까지 가난이 제일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가난보다 더 힘든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막연함’이었습니다. 무엇 하나 정확히 아는 것이 없고, 다 막연했습니다. 그 후 <인생론> 책을 구해서 읽어 보았지만 막연함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스물여섯 살 때였습니다. 함께 운동하면서 친구로 지내던, 나름의 인생철학을 가지고 주먹 세계에 몸담고 있던 사람이 어느 날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을 보았습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바뀐 것은 설득으로 된 것이 아니라 어떤 능력이나 힘에 의한 것’임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회라고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사람이, 제가 모태 신앙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물었습니다. 
“너, 구원받았어?”
“내가 다섯 살 때 중병으로 죽을 뻔했다가 기도를 받고 나았고, 그 후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어왔으니까 구원받았지.”
“마음에 죄는 있어?”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살면서 짓는 게 죄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왜 돌아가셨어?”
제가 형님들 등에 업혀 교회에 다니면서부터 들었던 이야기였습니다. 
“그야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셨지.”
“예수님이 네 죄를 위해 돌아가셨는데 너는 왜 아직 죄가 있어?”
내 신앙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내 마음은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회개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알고 있던 말씀이 저에게 능력이 되어 마음이 죄에서 해방되는 자유는 없었습니다. 

회개한 적이 없어서 하나님과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회개가 선행되지 않으면 복음이 우리 마음에 임할 수 없고, 죄에서 진정한 해방을 누릴 수 없습니다. 오늘날 회개가 빠진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 죄를 씻었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듣는 사람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그 마음을 죄에서 해방시키지는 못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면서도 그 사실을 숨긴 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하고 지나갑니다. 그렇게 10년, 20년, 30년, 40년을 교회에 앉아 있다가 지옥으로 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전혀 다르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요 8:44) 그들이 마귀의 자식이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이 말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경멸했던, 로마에 붙어서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세리와 하나님이 주신 몸을 쾌락의 도구로 사용하는 창기들이 그들보다 낫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마 21:31) 견딜 수 없는 이야기로, 유대인들이 ‘저런 말을 하는 자는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설교하는 것처럼 예수님도 유대인들에게 축복을 받을 거라고 말씀하셨으면 환영을 받았겠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마귀의 자식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요 8:44)
여기에서 인간이 행하고자 하는, 마귀의 욕심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죄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참된 회개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죄에서 떠날 수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그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과 같다면 떠나라고 해도 떠나지 않습니다. 회개한 적이 없어서 하나님과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떠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것 같지만, 기회가 주어지면 세상을 선택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창기들은 자신들이 잘못된 것을 알고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지만,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은 회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마귀의 자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도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짓말하고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을 용서해 달라고 구하며 거기에서 돌이키려고 하는 것이 회개가 아닙니다. 근본 죄인 마귀가 가진 욕심에서 돌이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죄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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