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월간 기쁜소식
  • 승인 2013.01.0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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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집이 아닙니다
“THIS HOUSE NOT FOR SELL(팔 집이 아닙니다)” 라고스 거리를 다니다 보면 이 문구가 담벼락에 큰 글씨로 쓰여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형제들에게 그렇게 써놓은 이유를 물어보니, 팔려고 내놓은 집이 아닌데 식구들 중에, 예를 들면 삼촌, 고모, 심지어는 아들까지도 그 집을 주인인 아버지나 어머니 몰래 팔아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누구든 집을 보러 온 사람이 이 문구가 담벼락에 쓰여 있으면 속여 팔지 못할 거니까 그렇게 써놓은 거라고 했다. 땅을 사고 팔 때도 마찬가지다. 가족의 땅(family land)을 가족 가운데 아무나 자기 땅인 양 팔아버려서, 땅을 샀다는 사람이 여러 명 나타나서 재판에 들어가 묶여 있는 땅도 많다. 웃을 수 없는 코미디 같은 일이다. 식구끼리도 믿기 힘든 분위기니, 남에 대해서는 어떻겠는가?
서로 믿을 수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낸 문화, 곳곳에서 그런 광경을 볼 수 있다. 대낮에도 철창문을 닫고 안으로 자물쇠를 걸어놓은 채 철창문 틈으로 물건을 주고받으며 장사하는 가게, 비행기를 탈 때에나 통과하는 보안문을 지나 한 사람씩 들어갈 수 있는 은행, 골목골목마다 만들어놓은 대문, 쇠창살로 모든 창문과 대문을 장식(?)한 집들…. 꼭꼭 닫고 사는 것이 익숙해져 있어서, 불편하고 이상한데도 그렇게 살고 있다. 서로를 믿지 못하니까 마음을 열고 대화하며 사는 것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마음을 열거나 나눈다는 것이 쉬운 일 같지만 나를 깨뜨리지 않으면 흉내도 낼 수 없는 일이다. 어디 이곳 나이지리아 사람뿐이겠는가?

그건 윤경이가 아니었다
강윤경. 벌써 6년 전에 함께 지냈던 단기선교사다. 아담한 키에 재주도 많고 명문대 출신의 학생임에도 상대방을 쳐다보며 말하기를 힘들어했다. 사람들 앞에 서기만 하면 목소리가 심하게 떨려오고, 얼굴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고…. 극복해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낙망만 더 커질 뿐이었다.
교회를 떠나 있었던 시절, 혼자 방안에 틀어박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동안에 ‘사람이 무섭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고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인 이후 윤경이는 모두에게 마음을 닫아버렸다. 소위 대인기피증.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 가거나 지하철을 타기도 힘들어했던 자신의 삶을 바꾸고 싶어서 윤경이는 일부러 아프리카를 택해서 왔다.
그때에는 주일 오후마다 교회 부근에서 어린이 성경학교를 자주 했다. 어느 일요일, 윤경이가 강사로 서야 하는 차례가 되었다. 한 주 전부터 윤경이 마음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너무나 부담스러운 나머지 일주일 내내 잠도 잘 못 자고, 몹시 불안해했다. 한국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다. 윤경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나님이 윤경이를 위해서 어떻게 일하고 싶으신지를 생각해보았다. 그 일이 윤경이에게 득이 될 것이 분명했다.
드디어 윤경이가 강사로 선 날, 본인이 열심히 그린 그림책을 들고 아이들 앞에 선 윤경이는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면서
10분 가량 횡설수설하다가 내려왔다.
“사모님, 저 해냈어요.”
그렇게 한 것만으로도 윤경이에게는 큰 벽을 넘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주, 주말 저녁마다 이웃 동네에서 갖는 성경 세미나 때 남편은 다시 윤경이를 강사로 세웠다. 윤경이는 영어로 차근차근 말씀을 전해나가기 시작했다. 말씀을 듣는 동안 우리 모두 너무 놀라웠다. 한 번의 목소리의 떨림도 없이, 웃기도 하면서…. 그건 윤경이가 아니었다. 자꾸 코가 시큰해졌다. 그렇게 넘고 싶었던 벽을 하나님이 넘게 해주신 것이다. 한번 벽을 깨뜨리고 나니까 다른 장애물이 나타나도 또 넘을 수 있는 힘이 윤경이 안에 생긴 것을 보았다.
라고스대학의 오픈 스타디움에서 단기선교사들, IYF 학생들과 함께
<문화의 밤> 행사를 몇 차례 가졌을 때 윤경이는 <헬렌 켈러> 연극의 주연을 맡아 열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라고스대학의 강당을 빌려서 <한국 문화전>도 같이 꾸며나가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 주일 낮, 어린이 성경 집회 후 아이들과 교사들이 함께(파란색 옷이 강윤경 단기선교사).

차재득 형제가 남기고 간 편지
어디 윤경이뿐이겠는가? 그동안 함께했던 단기선교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하나님이 주신 행복하고 즐거웠던 온갖 이야기들이 그들의 마음에 고스란히 남아, 그들의 인생에 큰 변화를 주었을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5기 단기선교사였던 차재득 형제가 남기고 간 편지 속의 간증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께서 집을 나가시고, 아버지는 돈 벌겠다고 강원도로 가셨어요. 그래서 누나와 저는 고모 집에 맡겨졌지요. 고모 집에 있는 동안 친구들과 조금씩 장난으로 시작한 도둑질이 계속 늘어가서, 그 돈으로 게임에 빠져들면서 제 인생은 점점 망가졌어요. 대학에 와서는 술과 담배에 절어서 나중에는 간염 보균자가 되었어요. 이렇게 살기 싫어서 자살까지 하려던 제가 이렇게 나이지리아에 와서 1년간 산 것이 너무나 감사해요.
이건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이야긴데요, 저 사실 중고등학생 때 자살하려고 몇 번 시도했었는데 왜 못 죽었는지 아세요? 그건 그냥 지나가다 들었던 이야긴데요,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고 해서였어요. 그런데 나이지리아에 와서 복음 전하면서 제가 구원을 받았어요. 히브리서 10장을 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는 10절 말씀이 내 마음에 그대로 믿어졌어요. 단기선교사로 와서 구원도 받고, 얼마나 기쁜지…. 아직 아무에게도 말을 못했지만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이 간증 하려고요.
여기 사는 동안 주님이 얼마나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셨는지…. 음료수가 먹고 싶다고 기도했는데 복음만 전하면 하나님이 주시고, 펜이 없고 신발이 떨어져서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복음만 전하면 주셨어요. 복음에 관계되는 건 전부 주셨어요. 그러면서 저도 믿음이 조금씩 조금씩 자라났어요.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면 사탄은 무너뜨리고, 다시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면 또 다시 사탄이 믿음을 무너뜨리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하나님은 절대로 포기를 모르시는 분 같아요. 사탄은 모든 일을 부정적인 쪽으로, 나를 세우는 쪽으로 몰아가지만, 반대로 하나님은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와도 그 일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주님이 해결하시겠다는 믿음을 주셨어요. 그러니까 제 마음에 자유가 오고,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세요.
박옥수 목사님께서 신앙은 무지 쉬운 거라고 하셨는데, 처음에는 목사님이니까 그러시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주님과 함께하니까 진짜 신앙이 쉽고, 이렇게 단기선교사로 생활하는 것이 행복하고 기뻐요. 여기 있는 동안 간염도 다 나았고, 이제는 육신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종이 되어 살도록 이끌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 라고스에 있는 대학들을 찾아가 굿뉴스코 활동을 홍보하며 복음을 전했다(한가운데가 차재득 단기선교사).

어느 토요일 이른 아침, 멋진 자가용이 집 앞에 서더니…
나이지리아에 사는 동안 때때로 사람들에게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거기 살기 너무 어렵지 않습니까?”다. 어렵다, 혹은 어렵지 않다고 대답하기가 매우 곤란한 것이, 복음 때문에 아주 많은 은혜를 입고 살기 때문이다.
14년 전에 아프리카에서의 삶을 시작한 후 늘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영어가 안 되어서 문제, 아파서 문제, 형제 자매들이 많지 않아서 문제, 때론 집이 없어서 문제, 차가 없어서 문제…. 그런데 여기서 사는 동안 하나님이 보여주셨다. 문제라 여겼던 모든 것들이 복음이라는 전체집합에 포함된 부분집합일 뿐이어서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2년 전, 가족 예배를 드리던 날이었다. 남편은 아들 도영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문제를 두고 기도했는데, 국제고등학교로 진학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하나님이 주셨다고 했다. 아이들과 나는 서로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국제고등학교, 좋긴 하지만 학비가 얼만데…. 남편은 ‘우리가 앞으로 나이지리아에서 IYF 일을 크게 할 건데, 집 근처에 있는 학교에 가지 말고 국제학교에 가서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의 아이들과 사귐도 가지고 그 아이들에게 복음도 전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고 하며, 우리 가족이 같이 기도하자고 했다.
기도를 시작한 지 한달쯤 지났을 무렵, 어느 토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멋진 자가용이 우리 집 앞에 서더니, 키가 큰 낯선 사람이 우리를 찾았다. 그분은 자기를 소개하면서, 라고스에서 세 개의 국제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어리둥절했다. 그분의 이야기인즉, 몇 달 전에 우리 단기선교사와 선교학생이 짝이 되어 그분이 운영하는 학교가 있는 지역으로 전도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분이 두 사람을 우리 집까지 태워다준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분은 차안에서 두 사람이 전도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외국인이 이곳 나이지리아까지 와서 복음을 전하는데….’ 그래서 우리 집에 도착해 집 앞에 있는 우리 아이들을 보고는 ‘내가 이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선교사님을 꼭 돕고 싶다. 잘사는 자기 나라 한국을 떠나 이곳까지 와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인데….’ 하고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그 토요일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는데 갑자기 우리가 생각나면서 ‘꼭 가서 그 선교사님 가족을 만나 학교 이야기를 해라’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나서 아침 식사도 않고 부랴부랴 왔노라며, 자녀 가운데 아무나 한 명을 자기 학교에 보내면 3년 동안 전액 장학생으로 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분에게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고, 어떻게 우리 가족이 아프리카에 선교하러 왔으며, 그리고 이곳에서 하나님이 도우신 일들을 간증했다. 그분도, 우리도 서로 신기해했고, 마음이 참 편했다. 도영이가 자기 실력이나 우리 형편과 상관없이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고 사는 이유 하나 때문에 은혜를 입게 된 것이다.

구하기만 하면 들어주시겠다는 마음이 들어
올해는 딸아이가 고등학교에 가야 했다. 우리를 도왔던 분은 자녀 가운데 한 명을 지원해주겠다고 못을 박았기 때문에 소현이도 같은 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분에게 딸의 장학금까지 부탁한다는 것이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소현이마저 국제학교에 보내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 7:11)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겠다는 약속처럼 들렸다. 구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시겠다는 마음이 들어, 월드캠프를 마친 후 소현이와 함께 학교 경영자를 찾아갔다. 그분은 자기가 우리에게 했던, ‘자녀 가운데 한 명’이라는 말을 꺼냈지만 그냥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이야기했다. 내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 그분은 담당자를 불러 소현이를 입학시험을 보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나에게 두 가지를 부탁했다. 하나는 학교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것, 다른 하나는 남편을 초청해서 학교에서 성경세미나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난 우리 아이들을 볼 때마다 주님으로부터 너무 과한 대접을 받는다는 마음이 들곤 한다.

너는 왜 어려움을 당하면 안 되는 사람이냐?
3년 전, 우리가 살던 동네 ‘안토니 빌리지’를 떠나 ‘이코로두’로 예배당을 옮길 당시를 회상해본다. 건물 세가 너무 올라 도저히 안토니 빌리지에 거할 수 없는 데에다 여러 이유로 라고스의 변두리 동네인 이코로두로 이사해야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하지만 마땅한 건물을 구할 수 없었다. 집이 구해질 때까지만이라도 전에 있던 집에 거하고 싶었지만, 계약이 벌써 끝난 집이라 주인의 등쌀에 마음이 편칠 않았다. 남편은 ‘하나님이 어렵게 하시면 어려움을 당하자’고 했다.
이코로두에 빅토 형제가 살던, 방이 3개 있는 조그마한 집으로 우선 옮긴 후 그곳에서 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한 방에서는 빅토 형제 내외가, 한 방에서는 우리 식구가, 한 방에서는 선교학교 자매들이, 그리고 홀에는 선교학생들이 자고, 단기선교사들은 홈스테이 식으로 형제 자매들 집으로 흩어졌다. 교회의 짐은 이곳 저곳에 다 흩어서 맡겨놓은 채.
예배당을 옮긴 후 교회 식구의 1/3 정도가 떨어져나갔다. 얼마 후, 선교학생 두 형제가 “이렇게 구차하게 사는 게 믿음입니까? 선교학교에서 내 인생을 허비했습니다. 난 차라리 돈을 벌어서 복음을 위해 헌금하며 살겠습니다.” 하며 선교학교를 떠났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들이 떠난 후 며칠을 남몰래 울며 다녔다.
그 당시에는 우리가 사용할 좋은 집이 나온다 해도 우리에겐 지불할 집세도 없었다. 우리가 얹혀 지내던 빅토 형제의 집 주인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에서 지내니까 싫어했다. 온 사방에서 우리를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 안에 있는 나는 참 작고 초라해 보였다. 때로 음식 때문에 다투는 선교학생들을 보아도 그들을 나무랄 처지가 못 되었다. 그렇게라도 함께해주는 형제 자매들이 무척 고마웠다.
지금 돌아보면, 순간순간 하나님을 구하고 불렀던 시간이었다. 내 안에 있는 온갖 욕망은 허상일 뿐, 실제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루는 하나님 앞에 이것저것 하소연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내게 물으셨다. ‘너는 왜 어려움을 당하면 안 되는 사람이냐?’ 나이지리아에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이들이 참 많은데, 나는 마치 그런 삶을 살면 안 되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그 와중에도 나를 세우고 어찌하든 안 좋은 형편에서 벗어나려고만 했었다. 그러나 내 앞에 100이 쌓여 있어도 하나님이 1을 주시면 1만 취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만 받을 수 있을 뿐이었다. 혹 안 주셔도 나는 불평할 아무 자격이 없는 자였다.
100여 일이 지난 후, 하나님은 우리 모두 편히 거할 수 있는 넓고 큰 집으로 우리를 옮겨주셨다. 낡아서 손을 봐야 할 곳이 많았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로 하루하루 모든 것을 채워나가시는 걸 보았다. 하나님 안에서, 복음 안에서 난 정말 아무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 아들 도영이도 딸 소현이도 국제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들어가 공부할 수 있게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셨다.

 

복음 안에 모든 게 들어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얼마 전, 교회 형제 자매들과 함께 무전전도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남편과 둘이서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을 목적지로 다녀왔다. 남편이 ‘굳이 멀리까지 가서 전도여행을 해야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 아니니 가까운 곳에 가자’고 했다. 은근히 걱정이 되는 것이, ‘너무 가까운 곳에 가면 누가 먹여주고, 재워주나?’ 싶었다.
지금 이곳은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때다. 오전에 세 군데를 들러 복음을 전하고, 뙤약볕을 피해 어디서 전도해야 할지 몰라 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누가 “차이니스(중국인)!” 하고 부르며 시원한 곳에 앉으라고 자리를 내주었다. 그분은 이 더운 시간에 왜 걸어다니냐고 물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온 선교사로 전도하러 나왔다고 하자, 그분이 깜짝 놀랐다. 나이지리아 목사들은 절대로 이렇게 살지 않는다며, 외국인인 우리가 햇볕 아래 걸어다니며 전도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다 열었다. 우리에게 시원한 음료수, 물, 그리고 식사까지 대접하더니, 그러지 말고 아예 자기 집으로 가서 말씀을 전해달라고 했다. 자기 아내와 아이들도 다 교회에 다닌다며. 그분은 주간 잡지인 <THE SOURCE(더 소스)>의 편집장이었다. 그분 집에서 하룻밤 머물며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분은 꼭 자기 잡지사에 우리를 초청해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무전전도여행을 다녀온 형제 자매들 모두 참 행복해했다. 한 장년 형제는 아내와 이처럼 다투지 않고 지낸 적은 처음이라며 ‘무전전도여행이 아니라 신혼여행을 다녀온 것 같다’고 간증해서 모두 같이 웃었다.
박옥수 목사님께서 자주 말씀하셨고, 지금도 자주 하시는 말씀. “배고프면 복음 전하고, 어려우면 복음 전하고…” 무슨 공식 같은 말이지만, 이곳에서 사는 동안 그것을 배웠다. 복음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비결, 기쁨, 행복, … 모든 게 들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 9:14)

 

▲ 라고스대학교에서 가진 <코리아 컬쳐 korea culture> 행사 때 한국의 여러 문화를 선보인 후 참가 학생들과 성경 이야기를 나누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하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

아프리카에서 살면서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 교회의 마음을 더듬으며 살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난 여전히 들을 수 없는 자, 볼 수 없는 자다. 그리고 지금까지 입은 은혜보다 입어야 할 은혜가 더 많다. 그래서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이 예수님과 단둘이 함께했던 그곳에 마음의 자리를 펴고 복음과 더불어 살 수 있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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